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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빵뿐만 아니라 장미도 달라`
2002-05-18

스페인 내전을 그린 <랜드 앤 프리덤>(1995), 니카라과 내전을 담은 <칼라송>(1996) 등 거대한 역사적 사건 속으로 관객을 이끌던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 감독이 <빵과 장미>(2000)로 오랜만에 극장에서 한국관객과 만난다. 2000년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작품이다. <빵과 장미>에서도 사회 하층민중의 일상을 묘사하는 로치의 힘은 여전하다. 게다가 훨씬 더 여유로와지고 따뜻해졌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쾌하고 대중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심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멕시코와 미국 국경 사이를 숨가쁘게 넘어가는 사람들을 다큐멘터리라도 보여주듯 비춘다. 중개업자의 차를 타자 경쾌한 음악에 실려 ‘다큐’는 끝나고 극영화로 들어간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친언니 로사를 찾아온 멕시코인 마야는 언니가 근무하는 고층빌딩의 청소부가 된다. 청소부의 대부분이 라틴계인 이곳에서, 이들은 첫달 월급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휴가나 의료보험은 꿈도 못 꾼다. 거기서 마야는 노조조직을 설득하고 다니는 상급노조 간부 백인 샘을 알게 된다. 영화의 한 축은, 일자리라는 ‘빵’을 얻는 데 만족하던 청소부들이 샘과 마야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해가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노조 결성의 주동자 이름과 승진을 맞교환하자는 제안을 거부하다가 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인 노조간부들은 믿을 수 없다”고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다. 영화를 시종일관 밝게 만드는 건 좌충우돌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순수하기 그지없는 마야다. 그는 노조 때문에 대학 등록 기회를 놓친 동료를 위해 가게에서 절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이상을 위해 싸우면서도 순수하기만 한 마야에 애정을 느껴가는 샘의 모습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실제 청소부로 일했던 아마추어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와 동료애가 더해진다. 이들은 결국 할리우드 변호사들의 파티를 급습하며 골탕먹이고, “빵 뿐만 아니라 장미를 달라”며 시위에 나선다. 또 다른 축은 로사다. 일찌감치 가족들을 위해 거리로 나서야 했던 로사. 동료들을 배신하기까지 했던 그가 동생 마야에게 자신의 과거를 격한 감정으로 털어놓는 순간 <빵과 장미>는, 가난이 희생시킨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영화로 바뀐다. “내가 배신자 같아? 네 배를 채워줬는데? 아버지가 집 나가서, 남편이 아파서, 네가 일자리를 원해서, 난 몸을 팔아!” <빵과 장미>는 새삼스레 노조의 결성을 ‘선동’하는 영화는 아니다. 마야와 로사, 이 두 축이 따뜻하게 만나는 결말부에서 로치 감독은 다만, ‘인간으로서 살 권리’가 백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나지막히 전한다. 눈물조차 앗아가버린 비극적인 현실을 웃음에 실어 전달하는, 66살 노감독의 경륜과 여유가 짙은 향기를 풍긴다. 24일 개봉.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