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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페어웰'과 '미나리'
장영엽 2021-02-12

중국계 미국 감독 룰루 왕이 연출한 <페어웰>을 보면 더불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최근 북미 시상식에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국계 미국 감독 정이삭의 영화 <미나리>다. 두 작품은 아시아에 뿌리를 둔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한 미국 감독이 윗세대의 삶을 지켜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토대로 만든 자전적 영화다. 가족 중심적인 삶의 모습, 아시아 문화를 다룬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식사 장면, 인생의 지혜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건네는 매력적인 노인 캐릭터의 등장을 포함해 <페어웰>과 <미나리>는 수많은 영화적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두 영화의 닮은 점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다는, 이민 2세대로서의 혼란과 거리감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가정에서 습득하는 문화와 사뭇 다른 커뮤니티의 관습을 경험하고, 고단하고 외롭지만 자식들에게만큼은 삶의 무게를 전가하고 싶지 않은 부모 세대의 보호 속에서 성장해온 이민 2세대 아시아계 미국 감독들이 외부의 시선을 거치지 않은, 오롯한 자기만의 프레임으로 정체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나아가 이 영화들이 미국 내 아시안 커뮤니티를 넘어 북미 시상식이라는 메인스트림 무대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페어웰>과 <미나리>가 거둔 성취라고 할 만하다.

임수연, 김소미, 조현나, 남선우 기자가 참여한 이번호 특집 기사에서는 과거의 아시안 웨이브와 또 다른 할리우드 속 아시안 콘텐츠의 부상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국 배우 마동석이 출연하고 중국계 미국 감독 클로이 자오가 연출을 맡은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 <이터널스>, 정정훈 촬영감독이 합류한 <스타워즈: 오비완 케노비>의 경우처럼 아시아 출신 또는 아시아계 창작자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할리우드 메인스트림 콘텐츠가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번호에서 공개하는 동남아시아 지역과 문화를 소재로 한 최초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또한 그런 사례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서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연이은 흥행은 아시안 문화를 재현한다는 것의 질적, 양적 성장을 가능케 했고,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수많은 창작자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으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기에 감지되지 못했던 아시아계 창작자들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창작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줄 거라 믿는다.

공교롭게도 설 합본호를 발행한 뒤, <씨네21> 앞으로 한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인터넷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 메타크리틱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한 영화 <드라이브웨이즈>의 감독 앤드루 안의 어머니였다. 배우 윤여정봉준호 감독의 대담 기사를 읽은 뒤 그가 보내온 메일에는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한국계 미국 감독 앤드루 안의 <스파 나잇>과 2019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드라이브웨이즈>에 관한 기사와 자료가 빼곡히 첨부돼 있었다. 앤드루 안 감독의 행보를 응원하며, 우리가 더 많은 아시아계 창작자들과 가시적으로 마주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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