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씨네21> 412호 특집 ‘송재호·변희봉·선우용녀·김인문, 따봉! 백전노장 전성시대’ 중에서.
쉼 없이 긴 연극 같은 삶이었다. 막간을 둘 새도 없이 배역을 달리하며 무대 위의 성실함으로 삶을 채웠다. 60여년의 배우 인생을 뒤로하고, 지난 11월 7일 배우 송재호가 영면했다. 향년 83살. 1년 가까이 지병으로 투병했지만 마지막은 평온했다고 전해진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는 베트남전쟁에서 돌아온 당대의 열혈 청년으로,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인자한 아버지로, <살인의 추억>에서는 묵직한 기둥이었던 수사반장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간직한 노인으로 출연하며 송재호는 배역을 따라 나이 들었다.
혹여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둔감했던 관객에게조차, 송재호의 푸근한 미소는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 스며들어 미더운 약속처럼 기억된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보내온 추모의 메시지와 함께, 1960년대부터 한국영화의 파고를 함께하고 추억 속 브라운관 드라마의 단골이었던 그의 궤적을 되짚어본다. 영화 출연작만 총 88편. 작품 속에서 배우는,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
이만희, 김호선, 배창호를 거쳐간 한국영화의 증인
당대 배우들의 이력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듯이 송재호의 첫 연기 경력은 녹음실에서 시작됐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1959년에 부산 KBS성우로 데뷔한 그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이북 출신인 박종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학사주점>을 통해 영화계에 입문한 송재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본 이는 바로 이만희 감독이었다. <흑맥> <군번없는 용사> <잊을 수 없는 연인> <싸리골의 신화> <원점>까지 이만희 감독 영화속에서 배우 신성일의 옆을 지키고, 전쟁의 역사에 휘말리는 청년으로 분하며 그는 조연 경력을 착실히 쌓았다. 10여년 이상 내공을 다진 끝에, 서울 관객 36만여명을 기록한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로 송재호의 전성기도 시작된다. 가난한 노동자계급의 젊은 연인을 비추는 <영자의 전성시대>를 연기할 당시 송재호의 나이는 38살.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 속에서 그는 스무살 청년의 모습도 멀끔히 소화하며 오랫동안 마땅한 스포트라이트를 기다린 청춘 스타의 염원을 드러낸다.
그렇게 김호선 감독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 그는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에서 광고주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아낸 ‘효과맨’(폴리기사)종실을 연기해 코미디 감각과 흥행력을 동시에 증명했다. 1980년대의 신축 복도식 아파트를 배경으로, 집을 잘못 찾아 의도치 않게 콜걸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 남자가 체면을 차리느라 온갖 해프닝에 휘말리게 되는 이 영화에서 배우 송재호는 세련된 동시에 허황된 도시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또 문학의 영화화가 활발하던 시대적 조류와 함께, 김승옥(<영자의 전성시대>), 이어령(<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 박완서(<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작품이 품고 있는 역사적 초상들을 나눠 가졌다.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특유의 유한 인상이 점점 더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빈민운동에 앞장서는 목사를 연기하면서 이상적이고 듬직한 조력자 캐릭터의 적임자임을 알렸다. 비중에 상관없이 관객이 기억하고 회자하는 배우, 그는 그렇게 선한 카리스마로 작중 인물과 관객을 안심시키는 조연의 대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편지 쓰는 아버지의 따뜻함으로
서울 상경 후인 1968년에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된 송재호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진출했다. 영화계의 열악한 촬영 환경과 조·단역배우에 대한 후진적 인식에 실망한 나머지 1990년대에는 방송국 활동에만 전념했다. 송재호는 곧바로 소시민들의 일상사를 담은 일일극의 단골 배우로 자리 잡아, 100회를 웃돌며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 이상 장기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보통 사람으로 녹아들었다(드라마 <보통사람들> <사랑이 꽃피는 나무> <내일은 사랑>). 성우 시절부터 단련한 노련한 악센트 연기로 사극에서도 안정적으로 존재감을 빛냈던 그는 <용의 눈물> <상도> <장희빈> 등의 대하 사극에서도 활약했다. 암투와 모략이 난무하는 시대극 장르에서 조차 그는 악역을 맡는법이 드물었다. <용의 눈물>에서는 권력 앞에 초연하고 충언에 능한 태종(최수종)의 장인 민제를, <장희빈>에서는 학문에 매진하는 노론파의 문인을, <상도>에서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는 거상 임상옥(이재룡)의 아버지를 연기하며 지성 혹은 덕성을 갖춘 어른의 상을 대변했다.
장년층 배우로서 송재호를 향한 대중의 사랑이 완연히 무르익은 또 하나의 작품은 <부모님 전상서>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가부장제를 수용하는 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송재호가 보여준 아버지 연기만큼은 검열과 냉소를 물리게 했다. ‘양심에 부끄럽지 말자’가 좌우명인 4남매의 아버지로, 승진에 밀려 만년 교감인 그는 감정 표현엔 서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이 최우선인 묵묵한 아버지였다. 밤마다 일기 대신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안교감의 굽은 등은 송재호의 뒷모습에 자기 모습을 덧입히고 싶은 남편들을 주말 저녁마다 주 시청층인 주부들 곁으로,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들였다.
영원한 수사반장, 사투리 연기의 달인
2000년, 송재호는 <무사>로 스크린과의 재회를 결심해 <살인의 추억> <그때 그사람들> <해운대> 같은 굵직한 작품들에 이름을 새겨넣었다. 경기도 시골 형사와 서울 형사 사이에서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살인의 추억> 속 신 반장은 익숙한 구태와 매력적인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베테랑 캐릭터로 영화사에 각인됐다. 송재호의 사투리는 자연스러움 그 이상의 구수한 토속적 향취를 풍긴다.
1937년 평양에서 태어나 6·25전쟁 중(1·4후퇴) 아버지를 잃고 부산으로 내려온 그는, 생계를 해결하려 길거리에서 몸을 부딪치며 부산 사투리를 흡수했다. 표준어를 깔끔하게 구사하면서도, 방언을 쓸 기회가 오면 세월이 묻어나는 고전적인 어휘를 적재적소에 내보이는 배우. 그의 재능은 감독들로 하여금 서울말을 사용하는 캐릭터를 경상도 출신으로 바꾸게 만들었다(<살인의 추억> <그대를 사랑합니다>). <고독이 몸부림칠 때> 촬영 당시 이수인 감독은 사투리를 배워서 연기해야 하는 다른 배우들이 기죽지 않도록 “조금만 약하게 해달라”고 사투리 하향평준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유년기를 평양에서 보낸 배우답게 공유 주연의 <용의자>에서는 군더더기 없는 평양 말씨를 사용하며 이북 출신의 재벌 회장 연기를 사실적으로 소화했다.
대중을 위한 배우
일찍이 카메라에 취미를 들인 송재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지역 영화평론 모임에 가입해 꿈을 키웠고, 시나리오를 공부하기 위해 동아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 감독 대신 배우가 되었지만 영화 제작의 열망은 여전했고, 30대에 차린 제작사 사업은 그에게 배우 생활에선 없던 고난을 안겨줬다.
큰 빚과 실패를 안은 뒤에도 2000년에 또다시 제작사를 설립해 미국에서 촬영을 계획했다고도 알려진다. 그는 한번 관심을 가진 분야에는 대체로 집요한 애정과 노력을 보였다. 1979년에 사격에 입문해 전국체전 금,은,동메달을 모두 섭렵한 뒤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고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심판으로 활동했다. 사격을 매개로 밀렵 활동에도 문제의식을 느껴, 생전에 “밀렵은 생태환경을 위협하는 만행”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2000년에 밀렵감시단장을 지내며 단속 활동에 꾸준히 참가했고, 2014년엔 야생생물관리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2012년에 방송 배우들이 해묵은 출연료 미지급에 항의하며 파업을 선언했을 때도, 후배들을 위해 앞장섰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은 부고 소식을 접한 뒤 “선생님은 조합 행사나 시위 때 늘 함께 자리해주셨다. 유명 배우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인데도 맨 앞줄에서 현수막을 들어주는 그런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로 오래 활동하는 등 그는 배우 생활 바깥에서도 성실함과 의협심이 탁월했던 인물로 기억된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목욕탕 때밀이를 하며 어렵게 모은 돈을 영자를 위해 아낌없이 탕진하는 남자 창수는, 36년 후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는 주차 관리원 할아버지로 나타나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마초, 순애보의 청춘, 철없는 중년, 인자한 아버지를 거쳐 실버 서사의 부활을 논의하게 만든 배우 송재호. 필모그래피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는 2010년 무렵부터 앤서니 퀸이 주연한 <노인과 바다>(1990)같은 작품에 꼭 출연해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남겼다. 그에게 <노인과 바다>를 연기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지난 60여년의 궤적을 살피면 왜 하필 <노인과 바다>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스타이기보다 대중을 위한 배우였던 사람. 온화한 열의로 평생 게으를 줄 몰랐던 한 사람이 오랜 항해를 마쳤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이 있는 한, 작별인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