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어떤 배우를 계승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속 노년의 배우 파비안느는 기자의 물음에 답한다. “전 언제나 저 자신이었어요.” 다음 질문. “그러면 거꾸로 선생님을 계승한다고 보시는 배우는 있나요?” 대답은 한결같다. “프랑스에는 전혀 없어요.” 이 대사를 듣다 불현듯 전도연이 떠올랐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 속 전도연을 넘어서는 배우는 존재할까. 어쩌면 그 넘어섬은 전도연 자신에 의해서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1997년 한국영화 뉴웨이브의 도착을 알린 <접속>을 시작으로, 파격과 도전의 다른 이름으로 점철된 <해피엔드>(1999),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을 안긴 <밀양>(2007), 사각의 스크린이 감당하지 못할 에너지를 뿜어냈던 <무뢰한>(2015), 그리고 이 사회의 아픔을 절절하게 토해냈던 최근작 <생일>(2019)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18편에 이르는 괄목할 만한 작품을 거치며 전도연은 필모그래피의 한 단계 한 단계마다 바로 자신을 뛰어넘는 도전을 해왔고, 매번 그걸 속임수 없는 진짜의 연기로 완수해냈다. 한국영화 100주년의 해, CGV아트하우스가 2016년 임권택관·안성기관, 2017년 박찬욱관·김기영관에 이어 그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배우 전도연을 선정한 건, 그렇게 진심으로 스텝을 밟아온 배우의 길에 대한 무한한 리스펙트에서일 것이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그 당연한 찬사 앞에서,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우려는 단 하나밖에 없다. 여전히 더 많은 캐릭터와 작품이 우선해서 주어져야 할 현재진행형의 배우에게, 혹여 너무 큰 상찬으로 크나큰 부담을 안기는 건 아닌지. 이토록 노련하고도 본능적인 연기를 거침없이 해낼 수 있는 배우가 스크린에서 활개를 치고 관객과 더 많이 호흡할 수 있도록, 차라리 그의 어깨의 짐을 한없이 가볍고 친근하게 내려줘야 하지 않을지. “지금 나에게서 ‘배우’를 뺀다면 큰 구멍이 있을 것 같다. 그건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로, 그렇게 ‘영화가 곧 자신’이라고 말하는 이 배우에게 꼭 하나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당신의 연기가 고프다고.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아니 더 많은 도전으로 우리가 영화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전진하고 진화하는 전도연의 연기가,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한국영화 100년의 풍경을 더 다채롭게 바꿔놓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한창 마무리 중인 걸로 알고 있다. 폐차장에서 있는 주인공 연희의 모습이 공개됐는데 스틸만으로 강렬함이 전해지더라. 그 드넓은 공간에서 어느 누가 그렇게 시선을 잡아끌 수 있을까. 배우 전도연의 파워가 느껴지는 한컷이었다.
=그날 햇살과 바람이 너무 좋았다. 자연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숏이었다.(웃음)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 등 출연진이 화제다. 김용훈 감독에게 이런 캐스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자, 전도연 배우가 구심점이었고 그래서 다른 배우들도 모일 수 있었다는 말을 하더라. 전도연의 영향력을 새삼 느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내가 윤여정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 윤 선생님이 꼭 하셨으면 하는 역할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다. 선생님이 흔쾌히 해주신다고 해서 너무 감사했다. 시나리오의 강점과 개성이 있고, 그 장점을 선생님도 보셨을 거고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고. 시나리오가 재미없는데 설마 전도연이 하자고 해서 하진 않았을 거다. (웃음)
-최근에 JTBC 예능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서 한 말들이 ‘짤’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닌, 평소 단호하게 소신을 밝히는 전도연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호응이 큰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지미 선생님을 뵙고 충격을 받았다. 만나 뵀을 때 선생님이 인터뷰하신다고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해서 떨어져 앉아 있는데, 그 때 너무 주눅이 들었다. 내가 웬만해서 주눅이 드는 애가 아닌데. (웃음) 선생님이 영화를 800편 이상 하셨는데, 그때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찍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와 키가 비슷하다며, 입었던 재킷을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너무 큰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다. 내가 김지미 선생님의 기운을 받고 있구나. 나 나름대로 오래 작품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작품 편수에 비교하자면 턱없이 모자라는구나. 선생님이 주신 이 기운을 받아서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내 작품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큰 의미로 다가오더라. 내 영화지만, 다양한 사람이 새로운 시각에서 이야기해주는 걸 듣는 게 흥미로웠다.
-CGV아트하우스 전도연관 선정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기쁘면서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먼저 헌정관에 선정된 안성기 배우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웃음)
=나도 선배님처럼 똑같이 부담이 컸다. 이걸 거절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으면서 지난 시간 계속 그 부담을 안고 갔던 배우인지라 거기에 부담이 더해지는 게 싫었다. 늘 내가 가진 이 부담을 내려놔야지 하면서 가고 있었고. 그래도 배우로 내 이름을 걸고 가는 상영관이 하나 생긴다는 것, 헌정관을 갖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가 생각하게 되더라. 앞으로 내가 그 의미를 채워가면 되지 않을까. 너무 거창하지 않다면, 조용히 한번 그 부담을 안고 가보자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영화들을 돌아보며
-2016년 임권택관·안성기관, 2017년 박찬욱관·김기영관에 이어 ‘한국영화인 헌정 프로젝트’의 5번째 주인공이자 여성으로서는 처음이라는 의미도 더해진다. 한 분야에서 일한 여성이 온전히 평가를 받는 데서 오는 의미가 크다.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여성으로 열심히 일하고 그것에 박수쳐 주는 건 좋은 일이지 싶다. 그런데 나는 배우이기도 하고 여배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도연이면 전도연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그 분류에 대해 나 스스로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들이 부여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은 받아들이고, 감당할 수 있는만큼은 감당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극장에 ‘배우 전도연’ 이름을 걸고 좋은 작품들이 상영된다는 건 짜릿한 일인데, 가까운 사람한테는 기쁨을 표했을 것 같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딸한테 자랑했다. “엄마 이름 건 극장이 생기는데 나중에 친구들하고 거기 가서 꼭 영화 봐” 했더니 “와아!” 하더라. 아직은 11살이라 어려서 뭔지는 잘 모를 거다.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좋아해주긴 했다.
-헌정관 개관에 부쳐 CGV아트하우스가 한국 영화산업과의 상생을 위해 내년 초 헌정관 수익 중 1500만원을 전도연 배우의 이름으로 후원한다.
=최근 제작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200억원의 큰 대작들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작은 독립영화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독립영화 중 밀도 높은 작품들이 많다. <벌새>도 그랬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작품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는데 좋은 작품들이 많아지면 더 많은 배우에게 작품을 선택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내 이름으로 후원이 되지만, 나 역시 그 덕을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헌정관 개관 기념으로 ‘전도연 마스터피스 특별전’도 열린다. 시기별로 배우 전도연의 연기에 분기점이 된 <접속> <해피엔드> <밀양> <멋진 하루> <무뢰한>, 총 5편이 상영된다. 작품 선정에도 관여했는지, 꼭 넣어달라고 한 작품이 있었는지.
=내 작품 중 어떤 작품을 꼽아도 좋다고 했다. 모두 자신 있는 작품이라 자부하기 때문에, 행사 취지와 분위기에 맞는 작품을 임의로 선정해주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필모그래피 안에서 다섯편 각각의 의미가 크다. <접속>은 드라마에서 인지도를 쌓아올린 전도연을, 본격적으로 스크린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한 작품이다.
=지금의 전도연, 영화배우 전도연을 있게 한 작품이다. <접속> 할 때 생각하면, 내 얼굴이 너무 동안이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땐 여기저기서 수술하라는 제안도 있었다. 코도 동글동글하고 그렇다 보니 너무 동안아니냐 한 거다. 수술 안 하길 너무 잘한 거지.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가 지금도 생각나는데, 영화계로 진입하기 전 TV드라마 활동을 할 때는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발랄함이 앞서서, <접속>의 수현이 가진 우울한 캐릭터를 연상하기 힘들었다. 물론, 보기 전까지 말이다. 그래서 그 유명한 <접속>의 헤어스타일도 그렇게 한 건가 싶었다.
=그런 이유도 컸다.
-그즈음에는 <내 마음의 풍금>의 홍연과 <해피엔드>의 최보라같이, 나이를 도통 가늠할 수 없는 캐릭터를 비슷한 시기에 받아들이고 모두 설득력 있게 소화하는 걸 보며 놀라워했다.
=홍연이를 너무 사랑했다. (웃음) 시나리오를 읽고 매니저님에게, 내가 17살 홍연이를 한다고 하면 미쳤다고 할까 물었다. 대본에 항상 나이가 명시되어서 나오지 않나. 그런데 굳이 나이가 왜 중요할까. 지금 내가 그 세계 안에서 그 인물처럼 보이면 되는 게 아닐까. 그 인물로 느껴지는 걸 전달하고 그래서 그 인물처럼 보이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지금에 와서 20대 연기를 하고 싶다면 과욕이겠지만. 이제 그런 숫자가 내가 느끼는 것보다 나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됐다.
-<해피엔드>의 최보라는 <내 마음의 풍금>의 홍연과 같은 해에 나온 캐릭터였는데 분위기가 반전된다. 두 작품으로 대종상, 청룡영화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그전까지의 나는 수동적으로 감독님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배우였다면, <해피엔드>는 감독님과 소통하면서 내 생각과 느낌을 전하고 상의하며 찍은 작품이었다. 부족하지만, 나 나름의 생각이 생길 때였다. 이 장면에서는 “이렇게 해도 돼요?”, 또 이 장면에서는 “전 이런 것 같아요” 하면 정지우 감독님이 항상 “네 좋아요”라고 해주시는 거다. 이렇게 내가 내 생각을 표현해도 되나 생각하면서도, 그런 작업이 너무 신기했다. 그때가 27살이었다. 그 나이에 하기에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는데도, 신이 나서 능동적으로 했다. 그때부터 현장을 즐기게 됐고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됐다.
-<멋진 하루>를 선택했을 때, 전도연이 하는 작품 선택의 의외성에 대해 생각했다. <밀양>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고 난 뒤라 지켜보는 눈이 많았을 때, 대중이 전도연의 행보에 가장 주목할 때 오히려 작은 영화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그렇게 큰 상을 받고 왜 좀더 대중적이고 화려한 작품을 하지 않을까?’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빨리 상의 무게를 내려놓는 게 급선무였다. 사실 이 작품이 온전히 작품만으로 평가를 받았나. 칸의 빛에 가려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아쉬움이 있다. 지금까지도 <멋진 하루>를 보고 좋은 작품이라고 이야기해주는 분들이 많고, 그 작품만의 미덕이 있다. 그래서 난 <밀양> 이야기를 하면 항상 <멋진 하루> 이야기를 같이한다.
-그렇게 <멋진 하루>와 짝이 된 <밀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밀양>은 전도연의 배우로서의 입지를 최고점에 올려준 작품이다.
=<밀양>은 연기하는 배우 전도연에게 조금 다른 스테이지를 밟게 하고, 가게 한 작품이다. <밀양> 덕분에 연기하는 것에 대해, 남들 시선보다 나 자신에 더 집중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내가 느끼는 것이 진짜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작품이 <밀양>이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밀양>으로 얻은 호평 뒤, 감당해야 할 무게도 무거웠을 것이다. 한번은 어느 제작자가 ‘전도연 배우는 센 역할만 할 거야. 이런 걸 주면 안 할 거야’라는 말을 하더라. 그렇게 항상 전도연의 선택에 영화계도, 대중도 ‘파격적인’, ‘센’이란 수사가 붙길 원한다. 그 안에서 균형적인 선택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밀양> 이후에 그런 작품들이 분명히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내가 깰 수 없는 틀이었다. <밀양> 이후에는 계속 아이를 잃은 엄마, 비운의 엄마 역할이 들어왔고, 난 그런 것들을 계속 피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 없더라. 안 하고 싶지만, 그러면 내가 할 작품이 없다. <밀양>의 신애는 그만큼 나에게 큰 존재였다. 그렇다고 작품을 안 할 수 없어 드라마로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것밖에 안 하는 게 아니라 그것밖에 선택할 수 없는 작품들이 들어왔다. 그런 가운데 피하려고 해도 내가 놓지 못하는 작품이 들어왔다. 그게 <생일>이었고.
-의무감이 앞선 선택이었나.
=<생일>은 두번, 세번을 거절해도 다시 돌고 돌아서 들어오는데, 아, 이건 해야 하는 건가보다 했다. 막상 해보니 <밀양>의 신애와는 너무 달랐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아이 잃은 엄마를 하기가 싫었던 거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 나로 인해서 오히려 더 많은 오해나 편견이 생기지 않을까. 너무 조심스러운 작품이었고 힘들고 지치더라. 나는 순남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고 그래서 부담이 된 건데, 그게 바보 같은 생각이란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거다. 돕는다는 말도 감히 표현할 수 없지만, 반대로 오히려 내가 이 작품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깨달음을 얻으니, 아 정말 이 작품을 선택하길 너무 잘했다 싶어졌다. 마찬가지로 <무뢰한>도 편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 영화 속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렇게 밑바닥에 있으면서도 무언가 꿈꾸고 사랑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갖는 것, 그런 것들에 호기심이 생겼다.
-<무뢰한>의 혜경은 남성 중심 서사와 장르도 일갈할 수 있는 강한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전도연의 저력과 매력을 확인한 캐릭터였다.
=남자배우 중심의 하드보일드 세계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동등하게 어깨를 겨누고 살아가는 여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내가 여배우고 또 여성인 혜경을 연기했지만, 어디까지나 한 여자를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세계 안에서 그들과 동등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게 여자였을 뿐이다. 오승욱 감독님도 만약 이 여자가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을 했고 그런 점에 관해서 서로의 생각이 일치했다.
-<밀양> 이후, 다른 의미로 엄마 역할은 꾸준히 하고 있다. 대다수 모성성보다 자신의 욕망이 앞서는 여성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지점의 선택이 엿보인다. 엄마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역할들이 지금의 전도연을 규정해주는 색깔로 보이기도 한다.
=엄마라는 틀은 이제 못 벗어날 것 같다. 이제 그런 나이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섹시하거나 여성스럽다거나 이런 걸 지향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라고 해도 여성성을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엄마이기도 하지만, 내 인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모든 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서 계속해서 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어느 순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말은 안 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청룡영화상에서 조여정 배우와 찍은 셀카가 화제다. 사진 한장으로 <캐롤>(2015)의 서사를 유추하던데. 지금 대중이 전도연이라는 배우에게 열렬히 기대하는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싶더라.
=전혜진 배우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앞에 감독님이 계시면 그래서 굉장히 부담을 준다. 왜 우리 둘은 안되는 거야! (웃음) 그런 서사들도 앞으로 나올 거고 또 기대한다. 셀카는, 사실 시상식에 카메라를 들고 간 게 처음이었다. 그런데 시상식에 드레스 입고 경직되어 앉아 있고, 후배들은 나를 선배라고 어려워하고, 이런 것들이 그날은 싫었다. 그날 (고)아성이도 있었고 김새벽, 이정은 배우도 있었는데 좀 어색한 분위기에서, ‘사진 한번 찍자 우리’하면서 편안해진 것 같다. 그렇게 편안해지고 싶다. 선후배란 격 없이 소통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밀양> 이후 전도연의 선택이 궁금했듯이, 최근 여성 서사가 활발히 기획되고 있을 때 배우로서 전도연은 또 어떤 계획을 세우고 나아갈지 궁금하다.
=막 선택하려고 한다. 그것도 용기이자 두려움인데. 배우로서 지난 시간 열심히 일해왔고, 그래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어, 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쭉 일할 거다. 확실한 건 지금 나에게서 ‘배우’를 뺀다면 큰 구멍이 있을 것 같다. 그건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며, 대체할 수 없다. 이젠 앞으로 뭘 더 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차근차근 그렇게 해왔으니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요즘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필모그래피보다 앞으로 쌓아갈 나의 의미가 지금은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이제 막 한번 살아보려 한다. (웃음)
“<접속>으로 전도연의 영화 데뷔작을 함께한 동료로서, 그가 배우로서 모험을 해야 하는 <해피엔드>의 역할에 용기를 내고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에 자부심과 고마움을 느낀다. 여성 영화인으로서 헌정관을 처음 갖게된다는 점에서도 전도연관은 의미가 각별하다. 이렇게 20년이 넘도록 올곧게,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성장하는 배우 전도연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무뢰한> 오승욱 감독
“전도연은 영화의 인물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배우다. 캐릭터가 가진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는, 속눈썹의 떨림, 눈동자의 작은 흔들림 같은 미세한 것들로 그 인물에게 숨겨진 감정의 폭풍이 무엇인지 표현해낸다. 그렇게 배우 전도연이 지금까지 고군분투하며 자신만의 연기를 만들어낸 시간에 대한 위로와 존경, 그 마음이 곧 전도연 헌정관이 아닐까. 전도연관의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생일>은 이 사회가 함께 경험한 굉장히 크나큰 아픔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 아픔의 한가운데 위치한 주인공으로 상처의 무게를 다 받아내는 것이 연기자로서는 무척 힘들었을 텐데 그걸 해내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존경의 마음이 더 커졌다. 전도연은 이 시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빛나는 배우다. 영화인의 헌정관에 꼭 들어가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배우와 영화사를 함께 걸어가는 것이 기쁘고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