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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이하늬 - 인물의 딜레마에 충실했다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19-11-12

정지영 감독과 배우 조진웅이하늬를 현장의 건전지에 비유했다. 과연 그녀는 커버 촬영장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활기가 넘쳤고,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며 호탕하게 웃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1600만 관객을 웃긴 <극한직업>과 드라마 <열혈사제>를 연달아 거치며 코미디 퀸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를 자연스레 짐작할 수 있는 면모였다. 그러나 대한은행 헐값 매각사건을 다루는 <블랙머니>는 이하늬 사용법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는, 은행을 인수하려는 회사의 법률대리인 입장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과 딜레마를 점검하는 인물. 블랙 버전의 이하늬가 보여줄 카리스마는 어떨지 배우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오랜 시간 사회파 영화를 만들어온 정지영 감독과 배우 이하늬의 조합, 흥미롭다. 캐스팅 제의는 어떻게 받았나.

=풍문으로 듣던 시나리오였다. 하루는 감독님이 내가 있는 어느 회식 자리에 오셨는데 유독 나를 유심히 보시더라. 꿰뚫어보시는 듯한 감독님 특유의 눈빛이 있다. 캐스팅 때문에 찾아오신 줄 모르고 있었던 터라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식… 식사는 입에 맞으세요?” 같은 말이나 하고 그랬다. (웃음) 어쩌다보니 내가 코미디 장르를 연달아 소화해서 감독님이 나를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부러진 화살>(2011)을 세번 정도 봤는데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단선율의 느리지만 자분자분 할 말을 짚어나가는 템포가 다른 영화들과 달라서 무척 좋았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음악적인 요소로 설명하는 게 인상적이다. 습관인가.

=아무래도 처음 배운 분야가 음악이라서 그런가보다. 가끔은 연기가 합주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내가 후시녹음(ADR)에 강하다! (웃음) 미도파, 미도솔… 이런 식으로 혼자서 음을 짚어가면서 한다. (배우 조진웅의 연기를 악기로 표현한다면?) 베이스, 그중에서도 콘트라베이스다.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바이올린과 또 다른, 독보적인 존재감이 진웅 선배에게 있다. 물론 장난기도 많고 재밌으시지만 기본적으로 무게감이 있는 느낌이다.

-대한은행 매각 과정에 가담하는 김나리를 연기하기 위해 배우로서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작품을 따라갔나.

=사람들마다 각자 자기의 사명감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게 건강한 것이든 일그러진 것이든. 내가 연기한 김나리는 국가경제의 부강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바라봤다. 사실 정의로운 검사인 양민혁의 입장은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지지하는 바일 것이다. 이른바 ‘선’이다. 하지만 김나리가 생각하는 국익에 관해선 배우로서 나름의 믿음과 설득력을 가져야 했다. 동의는 하지 않을지언정 연기를 하기 위해선 스스로 납득이 돼야 하니까 인간이 작동하는 여러 메커니즘에 관해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살폈다.

-김나리는 엘리트 변호사지만 마냥 철저하고 빈틈 없는 사람은 아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나 종교와 관련해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더해져 흥미로워진다.

=자기 자신에게만 빠져 있지 않고 외부를 주의 깊게 살피는 인물이라 해석했다. 나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하는 전사를 나 홀로 생각한 적 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각별한 감정을 갖고 있고, 나이가 들수록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비전이 투철해지는 면이 있을 것 같았다.

-친숙하지 않은 금융 용어를 영어로 소화해야 했다. 일종의 스피치 개념으로 좌중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해야 하는 장면들도 눈에 띄는데.

=재밌었다. <로봇, 소리>(2015)에서도 영어 대사를 소화한 적 있는데, 사실 이런 경우 정보 전달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대사를 또박또박 열심히 공부하는 것 자체가 중요할 때가 많다. 원래 성격도 있지만, 한 3년 정도 매주 꾸준히 카메라와 방청객 앞에 서서 쇼프로그램(<겟잇뷰티>) 진행하는 일을 했더니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게 더 편안해진 감이 있다.

-영화, 드라마에서 소화한 다양한 장르와 연기, 뮤지컬 활동, 국악 전공, 미스 유니버스 참가, 쇼 프로그램 진행 등 자신을 섣불리 규정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까지는 가능한 한 두려움 없이 개척해야 할 나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안 낀다라는 마음으로. 나이가 들면 그렇게 하기 싫어도 무엇이든 좁고 깊게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나 자신을 믿고 다양한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해보지 못한 일들을 최대한 많이 해보고, 넓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배우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무기는 지금껏 오로지 성실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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