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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홍콩영화⑥] 2010년대 국내 미개봉작 중심으로 살피는 홍콩영화의 이모저모
김소미 2019-07-24

홍콩영화, 여전히 좋아하세요?

<화이트 스톰>

홍콩영화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홍콩영화를 모르는 사람, 홍콩영화에 관해서라면 세상은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1990년부터 침체기를 맞이한 이후 ‘홍콩영화’는 어느새 과거형의 단어가 됐다. 황금기의 홍콩영화를 중심으로 구축된 명작 리스트들만이 홍콩영화라는 고유명사 안에서 떳떳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홍콩영화는 계속 움직여왔다. <무간도>(2002), <소림축구>(2002), <흑사회>(2005), <뉴 폴리스 스토리>(2005) 등이 이어지며 2000년대 들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그곳은 여전히 아시아의 할리우드라는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지대다. 2010년대 들어서는 두기봉의 <마약전쟁>(2013), 왕가위의 <일대종사>(2013)가 등장하면서 무게감을 보탰고, 허안화 감독이 <심플 라이프>(2011), <황금시대>(2014)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주의 영화의 자존심을 지켰다. 사라진 이름들과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큰손들. 그리고 주류를 차지하는 60년대생 감독과 현재를 대표하는 70년대생 감독까지. 홍콩영화는 201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분주히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에 형성된 기대치와 향수가 높은 나머지,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많은 작품들이 극장가에 당도하지 못하고 IPTV로 직행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므로 이들 작품과 감독, 배우의 이름들을 살피기 위해선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과거를 더 아름답게, 미래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 홍콩영화의 최근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봤다.

제2의 왕가위로 불린 이름

2000년대 뉴 제너레이션으로 가장 돋보였던 팡호청 감독은 <이사벨라>(2006)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그 무렵 제2의 왕가위라는 수식을 공고히 했다. 홍콩영화가 쇠락하는 시기에 감독으로 데뷔해 <너는 찍고 나는 쏘고>(2001), <대장부>(2003), <공주복수기>(2004), <이사벨라>로 주목받은 팡호청 감독은 저예산영화, B급 정서로 주목받았다. 전성기 홍콩영화를 그대로 흡수한 듯한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구가한 그는 후기작으로 갈수록 대중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담배연기 속에 피는 사랑>(2010)과 <골치 아픈 사랑>(2012) 연작이다. 그의 영화 중 가장 트렌디한 멜로드라마인 <담배연기 속에 피는 사랑>은 탄탄한 스크루볼 코미디의 매력을 한껏 품고 있다. 금연법 실시 이후의 홍콩, 담배를 피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지명(여문락)과 춘교(양천화)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전작들에 비해 날카롭지는 않지만 2010년대 홍콩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단 한편 꼽으라면 아마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을 작품이 될 법하다. 흥미로운 점은 <담배연기 속에 피는 사랑>과 <골치 아픈 사랑> 모두 호러 혹은 스릴러에 가까운 오프닝 장면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담배를 피우러 모여든 사람들이 도시 괴담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그대로 장면화한 <담배연기 속에 피는 사랑>의 오프닝은, 극장에서 본다면 혹시 상영관을 잘못 찾아들어온 게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밀도 높은 외전을 보여주면서 팡호청 감독의 장르적 재기를 과시한다.

<절청풍운>

홍콩 누아르와 액션의 전통

왕정, 관지요 감독이 공동 연출한 <추룡>(2017)은 국내 개봉관을 찾지 못해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유덕화, 견자단이 한 작품에서 맞붙은 것은 <추룡>이 처음. 게다가 선글라스에 나팔바지를 입고 악역을 소화한 견자단의 변신을 볼 수 있기에 기대 포인트가 충분했던 영화다. 1960년대 영국 식민 지배하의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추룡>은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넘어온 중국 본토 남자와 비리경찰이 합심해 마약, 매춘, 투기 사업을 제패해나가는 이야기다. 여기저기서 ‘따거’(형님)가 들려오고, 그 시절 홍콩 누아르의 향수가 마구 샘솟는다. 중후한 멋과 허무를 내비치는 남성들의 세계, 적당히 통속적인 전개, 우정과 애정이 뒤섞인 액션…. 실존했던 홍콩 암흑가의 마약왕 이야기를 다룬 <파호>(1991)의 리메이크이자 <파호>의 스핀오프 격인 <여락>(1991)의 세계도 섞여 있다. 전반적으로 세피아 빛이 도는 화면 안에 <파호>의 주연인 견자단과 <여락>의 주연인 유덕화가 조우한 <추룡>은 그야말로 클래식한 홍콩 누아르다. 20세기 마지막 무법지대라 불리는 홍콩의 슬럼가 구룡성채의 묘사 역시 뛰어난 볼거리다. 1천만위안(약 17억원)을 들인 정교한 마굴의 재현은 홍콩다움에 대한 왕정 감독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2017년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까지 겹치면서 대박 흥행을 이어간 <추룡>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후속편 제작도 확정됐다. <추룡> 이전에 왕정 감독은 <미래경찰 X>(2010)를 통해 홍콩 SF영화의 명맥을 잇기도 했다.

한편 <천장지구>(1990)의 진목승 감독이 만든 <화이트 스톰>(2013) 또한 1980년대 누아르의 감성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남다른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만큼 <화이트 스톰> 역시 진득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누아르로 완성됐다. 마약단속반에서 일하는 세 친구 건추(고천락), 호천(유청운), 자위(장가휘)가 동남아시아 최대 마약조직의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뛰어들면서 생사를 건 위험에 휘말린다. 2008년부터 이어진 엽위신 감독의 <엽문> 시리즈도 홍콩영화를 향한 기대를 대표적으로 충족시키는 작품이다. <엽문>(2008), <엽문2>(2010), <엽문3: 최후의 대결>(2015)을 통해 견자단이 펼치는 나 홀로 액션의 최고치를 확인할 수 있다. 무협 액션의 진수를 탄탄한 시각효과를 동원해 펼쳐낸 이 시리즈는 액션 마니아들에겐 일말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을 작품들이다. <엽문> 시리즈를 모두 소화한 엽위신 감독은 홍콩판 <테이큰>이라 불리는 <파라독스>(2017)를 선보였다. 실종된 딸을 찾아 타이로 향하는 홍콩 경찰 리(고천락)의 일당백 액션은 엽문 못지않게 화려하다.

<쇼크웨이브>

경찰 액션물과 판타지 사극의 흥행

<무간도>의 각본을 쓴 맥조휘, 장문강 감독은 2009년부터 2014년 사이에 <절청풍운> 시리즈를 3편까지 만들었다. 세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편이나,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편집상, 각본상 후보에 고루 노미네이트되는 등 화제성과 작품성 면에서는 꾸준히 주목을 받았다. 시리즈 내내 함께한 배우 고천락과 오언조는 <절청풍운> 시리즈 외에도 작품에 자주 함께 출연하는 자타 공인 콤비다. <절청풍운>(2009)에서는 세명의 경찰이 주가조작을 의심받는 회사를 도청 중에 고급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서 전 재산을 걸고 주식판에 뛰어든다. 음모 세력과 벌이는 목숨을 건 액션, 타락한 경찰의 윤리적 고민이 조밀한 긴장감으로 얽혀 있어 두 감독이 <무간도>에서 보여준 재능을 다시금 긍정하게 만든다. 한국 리메이크 버전을 위해 <도둑들>(2012), <암살>(2015)의 최동훈 감독이 판권을 구입하기도 했다. 한편 공포영화 <언톨드 스토리>(1992)처럼 호러, 범죄, 에로를 뒤섞은 어두운 영화들로 인기를 끈 구예도 감독 또한 2010년대 들어서 역시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그중 액션물 <쇼크웨이브>(2017)는 늙지 않는 홍콩영화의 전설, 유덕화의 스페셜 무대라 할 만하다. 폭발물 해체 전문가 장재산(유덕화)은 은행 강도 홍계봉(강무)이 시내 중심가의 터널에서 인질극을 벌이자 일생일대의 협상에 나서는데, 118분간 스릴과 액션으로 밀어붙이는 선 굵은 영화적 스타일은 오로지 유덕화에 의한, 유덕화를 위한 것에 가깝다.

<주윤발의 도성풍운>(2013) 이후로 다시 홍콩 활동을 꾸준히 펼치기 시작한 주윤발의 2010년대 최고 흥행작은 <도성풍운> 시리즈가 아니라 정바오루이 감독의 <몽키킹: 손오공의 탄생>(2014)이다. 주윤발의 옥황상제와 견자단의 손오공, 과한 설정과 난무하는 CG, 종종 이어지는 막가파 개그까지. 정바오루이 감독은 <모터웨이: 분노의 질주>(2012)를 마치고 홍콩영화의 중요한 혈통인 코믹 판타지 사극을 복원하는 데 일조했다. 이 작품은 우리로 치면 천만 영화라 부를 수 있는 ‘10억위안 클럽’에 진입하고, 역대 흥행 3위를 기록하면서 곽부성 주연의 <몽키킹2: 서유기 여정의 시작>(2016), <몽키킹3: 서유기 여인왕국>(2018)으로 이어지는 순풍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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