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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길티>(feat. 황석희 번역가) 용씨네 PICK, 고전적 영화문법의 서스펜스를 즐겨보시라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19-03-22

송경원 기자, 번역가 황석희, 김소미 기자(왼쪽부터).

“적극적으로 주변에 영업하고 싶다. 제발 좀 많이 봐주셨으면 하는 영화다.”(황석희) 황석희 번역가가 특별 게스트로 참석한 용씨네 <더 길티> GV 시사회가 3월 19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진행은 <씨네21>의 송경원, 김소미 기자가 맡았다. 구스타브 몰레르 감독의 데뷔작인 덴마크영화 <더 길티>는 긴급구조전화센터에서 근무하는 경찰 아스게르(야코브 세데르그렌)가 어느 날 밤 자신의 납치 사실을 알리는 이벤(예시카 딘나게)의 전화를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담은 지닌 스릴러다. 아스게르는 다음날이면 긴급구조전화센터를 떠나 현장에 복귀할 예정인 데다, 과거에 아스게르가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이벤의 사건과 함께 서서히 드러나 긴장을 한시도 늦출 수 없다. 이날 행사는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영화 대부분이 모니터 화면으로 진행된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서치>(2017)와 비교해보고 싶은 작품. <더 길티>는 오로지 전화기 너머의 음성에 의지한다”라고 영화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한 황석희 번역가의 소개로 시작됐다. 송경원 기자는 “<더 길티>의 제일 좋은 점은 러닝타임이 88분이라는 사실”이라면서 “<서치>가 기발한 영상문법을 새롭게 시도한 쪽에 가깝다면, <더 길티>는 고전적인 영화문법에 충실한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요즘에 보기 힘든 영화여서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라고 호평했다. 김소미 기자는 “<원스> <위플래쉬> <서치> 등 그동안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은 모두 한국 관객에게도 사랑받았다”면서 흥행을 낙관하는 한편 영화의 특징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공간 자체가 특징인 경우가 많은데, <더 길티>는 평범해 보이는 경찰서 사무실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독특하게 다가온다. 이는 오로지 영상언어에 의지해 관객의 집중력과 상상력을 끌어올린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어 자막본을 거쳐 한글로 번역하는 비영어권 작품인데도 황석희 번역가가 적극적으로 번역에 나선 이유는 무얼까. 번역가로서 <더 길티>에 매력을 느낀 지점에 대해 그는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말 특유의 존댓말 사용 여부를 재밌게 활용할 수 있겠더라”라고 의외의 부분을 알려줬다. 차 안에 갇힌 이벤은 자신이 경찰에게 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마치 자기 아이와 통화하듯 아스게르를 대한다. 그래서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연스레 이벤은 반말을, 아스게르는 높임말을 쓰게된다. 황 번역가는 “일반적으로 한국어의 존댓말은 번역할 때 거추장스러운 요소인데, <더 길티>는 조금 달랐다. 전화기 너머에서 이벤이 갑자기 “안녕, 아가”라고 말하는 순간 섬뜩한 분위기가 증폭된다”라고 설명했다. 미세하고 정교한 사운드 디자인이 돋보이는 만큼 번역 과정에서 특징은 없었는지 묻는 질문에는 “배경음악이 없고 대사로만 진행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대사가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막이 총 815개밖에 안 돼 놀랐다. 평균 1300~1500개, 우디 앨런 영화는 2천개, 에런 소킨 영화는 3천개 정도”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전했다. “번역가 입장에선 땡잡았다. (웃음)” 이는 곧 <더 길티>가 전화기 너머의 음성정보로 영화를 진행하면서도 대사를 남발하지 않고 오히려 관객이 상상을 펼칠 수 있도록 여백을 대담하게 활용했다는 의미다. 송경원 기자는 “일인칭 시점일 때 사운드가 완전히 뮤트되는 등 사운드를 아예 없애거나 혹은 키우는 방식이 특징적이다. 전화로 통화할 때 대답하기까지 중간에 잠깐 침묵하는 순간도 감정이입을 돕는다. 앞뒤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아스게르의 표정도 <더 길티>가 관객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연출 포인트”라고 분석했다.

<더 길티>

김소미 기자는 눈여겨볼 한 장면으로 영화 후반부에 아스게르가 홀로 회의실에 앉아 있는 장면을 꼽았다. 김 기자는 “처음에는 밝고 트인 공간에서 동료들과 함께 있다가 상황이 심각해지면 혼자 회의실에 들어가 블라인드를 내리고 자신을 고립시킨다. 종국에 아스게르의 심리가 극에 달할 때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긴급구조전화센터를 상징하는 붉은 조명 등만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의 얼굴을 물들인다. 한 공간에서도 조금씩 공간의 이동과 조명의 차이를 더하는 미장센으로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연출력이 훌륭하다”라고 평가했다. 황석희 번역가는 해당 장면 직전에 이벤과 아스게르가 나누는 대사에 대해서도 의견을 덧붙였다. “블루플래닛 수족관을 떠올리면서 바다 밑의 커다랗고 파란 침묵을 이야기하는데, 소리로 전달되는 색감과 화면의 붉은 조명이 대비를 이루는 지점도 새삼 흥미롭다.” 송경원 기자는 “액션숏과 리액션숏이 있을 때 리액션숏을 먼저 보여주고 액션숏을 붙여야 긴장감이 배가된다. 그렇게 보면 <더 길티>는 영화 내내 리액션숏(아스게르의 얼굴)을 먼저 접하게 되는 셈이다. 정보를 차단한 뒤 하나씩 서서히 공개하는 교과서적인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구축한 영화”라고 영화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는 원인을 정리했다. “사운드와 이미지, 편집만으로 관객을 감정이입하게 하는 영화다.”

한편 덴마크어 원제가 ‘범인’을 뜻하는 데 반해 국내 개봉 시 채택한 영어 제목이 ‘더 길티’인 데 대해서도 여러 추측이 오갔다. 황석희 번역가는 “명백한 유죄를 가리키는 동시에 죄책감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점에서 영어 제목의 이중적인 지점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주인공 아스게르도 어떤 사건에 얽힌 혐의가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죄를 잊고 다른 사건의 범인을 쫓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 결국엔 자신의 죄책감으로 돌아온다”라고 영화의 테마를 짚었다. 송경원 기자 역시 “영리한 설정과 아이디어를 가진 작품일수록 마지막에 인물들에게 무책임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더 길티>는 주제의식이 매우 분명하고, 그 주제를 위해 설계한 영화 전체의 디자인이 돋보인다”라고 평했다. 이날 행사는 사운드에 집중하는 즐거움과 함께 최소의 정보로 최대치의 상상을 허락하는 <더 길티>에 관해 영화의 형식과 주제, 한글 번역 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는 특징까지 다각도로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황석희 번역가는 끝으로 “너무 억울하다. (웃음) 번역하느라 집에서 작은 화면으로 봤는데 소리가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에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특히 안타깝게 느껴진다. <더 길티>는 반드시 극장에서 경험해야 할 영화”라고 강조했다. <씨네21>과 CGV용산아이파크몰의 용씨네 PICK은 앞으로도 매달 진행되며, <씨네21> 독자 인스타그램과 CGV 홈페이지, 모바일 앱 이벤트 페이지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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