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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화제작 감독 인터뷰①_ <우상> 이수진 감독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9-03-21

첫 번째 기준은 ‘이야기’, 장르는 그 후에 선택한다

데뷔작 <한공주>(2013)에 쏟아진 호평 이후 이수진 감독은, 지난 5년간 차기작이 가장 기대되는 감독으로 손꼽혀왔다. 전작의 영향으로 그의 다음 영화는, 또 한번 우리 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 되리라 미루어 짐작했다. <우상>은 그런 지점에서 이수진 감독이 꺼내든 또 한번의 날카로운 ‘칼’이다. 교통사고, 시체유기라는 범죄 스릴러 장르 속 사건으로 연결된 세 사람. 아들의 죄를 덮으려는 도지사 후보 구명회(한석규), 그 사고로 아들을 잃은 소시민 유중식(설경구), 그리고 그날 사고의 목격자인 중식의 며느리 최련화(천우희)가 각자의 ‘폭주하는 행동’을 전개한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서 상영된 후, 복잡한 전개에 대한 호불호로 의견이 분분한 작품. 전작처럼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 15세 관람가지만, <우상>에는 본성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행동을 뒷받침할 충격적인 장면들도 적지 않다. 5년 만에 신작 개봉을 앞둔 이수진 감독을 만났다. “<한공주>가 첫 장편영화이자 독립영화라 개봉에 대한 부담이 좀 적었던 편”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상업영화라는 타이틀에 상업 자본이 들어갔으니 그만큼 부담도 크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공주>는 국내 공개 이후 해외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평가를 받은 것과 달리, 이번엔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서 먼저 공개됐고, 이제 국내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 후 호평뿐만 아니라 전개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평도 있고, 의견이 분분하다.

=베를린 상영작이라는 이유로 빨리 개봉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베를린 상영 때는 긴장도 됐는데 그보다 흥분이 컸다. 배우들과 함께 완성된 영화를 처음 관람한 자리라 기분도 좋았다. 시사 후 의견이 많이 나뉘더라. 불호가 영화를 완전히 외면하는 불호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불호라면, 그것도 좋다고 본다.

-앞서 한석규 배우 인터뷰에서 “감독이 무려 13년 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라 인물들을 집요하게 파고든 시나리오라고 들었다. <한공주> 개봉 이후 그 무게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차기작을 생각한다고도 했는데, 결국 만만치 않게 깊은 어둠으로 들어가는 차기작을 택했다.

=그땐 힐링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우상>쪽으로 손이 가더라.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착상한 때는 <한공주>도 시작하기 전이었다. 나중에 내가 장편을 만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미리 준비해놓으려고 썼었다. 단편 작업을 하면서 생각한 한국 사회의 크고 작은 모순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온 것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갔다. 초고는 단편 <적의 사과>(2007)를 만들고 나서 나왔다. 그때 이야기는 지금보다 더 단순했는데, <한공주>를 만들고 나서 사회적인 이슈들이 추가됐다. 투자사도 만나고 그랬는데 잘 안 되면서 접어둔 이야기였다.

-<한공주>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사건’이 모티브가 되기도 했는데, <우상>의 사건 역시 ‘있을 법한’ 사회 범죄를 바탕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작용했다고 말하는 건 무척 조심스럽다. <한공주> 때도 사건을 언급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컸다. 자칫 실화가 바탕일 때, 그것이 과거의 일로 치부될까봐서였다. 그들이 겪은 사건이 엄연히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우상>도 그런 면에서 내가 성장하면서 이 사회에서 겪은 현실이 재료가 됐지만, 그것을 과거의 어떤 구체적인 일로 한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영화의 사건은 다른 조건을 제외하면 결국 ‘두 아버지’의 시각에서 해석된다. 구명회와 유중식은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쭉 평행선으로 각자의 계급으로 평가받는 세계에서 살아갈 남자들인데, 그들이 아들로 인해 한 사건으로 충돌한다. 50대, 대한민국, 가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존재하는 두 유형의 아버지다.

=제일 먼저 만든 캐릭터가 중식이었다.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 평생을 근면성실하게 자신의 일만 해온, 어떤 권력도 없는 분이, 자신이 그토록 아끼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행동할까. 이야기의 시작은 그것이었다. 구명회의 경우도 ‘정치인’에 방점을 두지는 않았다. 그보다 가장 선택을 많이 하는 사람, 선택을 하는 것이 직무인 사람을 상정해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지만, 한번 어그러지면 큰 파국이 된다는 것을 두 아버지를 통해 전개하려고 했다.

-전작 <한공주>에서 공주에게 가해진 사건을 스릴러적 구성으로 풀어낸 것처럼, 이 영화도 장르적 긴장감이 바탕이 된다. 특히 초반부에 구명회의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중식의 아들의 시체를 유기하기까지, 범죄 스릴러, 누아르 장르의 긴장감을 최대한 활용하다가 후반부는 다른 결로 나아간다. 막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장르의 재미를 과감히 ‘버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감독의 의도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낯선 스토리텔링일 수도 있다.

=늘 나의 첫 번째 기준은 ‘이야기’다. 장르는 그다음에 선택한다. 관객에게는 주제보다 장르가 다가간 후, 연상되는 게 있으면 되짚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상>도 그래서 전체적인 장르는 스릴러로 놓고, 챕터별로 내 나름대로 꼬아놓았다. 전형적으로 가지 않기 위한 내 나름의 계산이기도 했고, 인물들의 감정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구성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세 인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영화의 70%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두 남자의 ‘련화를 찾아라’였다면, 이후 국면이 전환된다. 련화는 한명 한명의 캐릭터를 좇아가기보다 전체를 봤을 때 드러나는 캐릭터다. 어떻게 보면 앞의 것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챕터,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챕터가 있다. 제일 중요한 건 구명회가 활동하는 엔딩 장면이었고, 그 챕터를 완성하기 위해 앞의 수많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장르적인 지점에서 장치들의 활용을 보면, 영화의 전체 잿빛 톤과 함께 스릴러, 누아르적인 속성이 부각된다. 인적이 드문 밤, 을씨년스러운 사건 현장과 비의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다가온다.

=비를 왜 썼나 싶더라. (웃음) 촬영 시기가 겨울이고 날씨도 너무 추워서 비가 내리다 얼어버려 철수한 적도 있고, 모두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비를 고집해야 했다. 비가 하나의 레이어 역할을 하길 바랐다. 인물에게 겹이 되어 그 사람의 심리까지 보여주려 했다. 비뿐만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물의 이미지도 중요했다. 반영, 반사의 이미지로 구명회의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데 활용했다.

-세 인물 모두 작은 판단에 의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는다. 특히 구명회의 진폭이 커 보인다. 시체유기의 증거가 되는 ‘최련화’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직접 악행에 가담하는데, 그 전환이 다소 급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악행을 행할 때 다른 누구의 손을 빌리는, 여느 영화에서 볼 법한 정치인과는 사뭇 다르기도 하다.

=구명회에게 련화를 비밀리에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흥신소 사내가 이런 대사를 한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왜 이럴까.” 그는 자문자답으로 “믿을 사람이 없거나 사람을 믿지 못하거나”라고 말하는데, 구명회는 그런 이유로 자기가 직접 범행에 가담한다. 그는 워낙 집요하고 철두철미한 인간이다. 지금의 사건이 자신의 정치 인생의 빌미가 된다는 생각에 계속 그릇된 행동을 한다. 구명회 안에 선과 악이 같이 있는데, 자꾸 삐끗해서 잘못된 길로 가는 거다. 구명회의 첫 번째 실수는 아들이 낸 사고가 뺑소니라고 단정짓는 데서 시작된다. 선택의 과정에서 원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더 큰 오류에 처하고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본인 내면의 양심에서 오는 죄책감,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그게 판타지 장면으로까지 구현된다.

-유중식 역시 흔히 볼 법한 윤리적, 도덕적인 의식을 가진 ‘착한’ 아버지로 그리지 않는다. 지체장애 아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해주려 자위를 돕고, 함께 성매매를 하는 그는 중증장애를 가진 딸의 성적 욕구를 근친상간으로 풀어낸 단편 <아빠>(2004)에서 보여준, 센세이셔널함이 연상되는 캐릭터다.

=군 제대 후 봉사활동에서 다운증후군을 앓는 20대 남자를 만났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그때 인식했고, 내 사고의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그때 <아빠>를 만들려 했다. 당시에는 그 소재가 가져올 파장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나 역시 무모했다. 관객이 받아들이는 걸 생각하기보다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게 더 앞섰던 것 같다. 내 영화의 소재가 ‘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나는 소재에 집착하지 않고 그 소재 안에 있는 인물을 중요하게 본다. 소재는 사회문제가 드러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우상>을 만들 때 그때의 캐릭터가 이야기 연결상에서 미친 영향이 있었고, 그 부분을 가져왔지만, 단편을 만들 때와는 접근이 달랐다.

-두 아들이 빠진 자리에, 유중식의 며느리인 련화가 들어온다. 련화는 두 남자의 행동을 발전시키고 처벌하는 역할을 한다.

=련화를 포함해 구명회와 유중식 모두 이 사회에서 처한 계급적 위치가 다르다. 련화는 ‘조선족’에 국한하기보다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여성 전체를 아우르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행복한 다문화가정을 꾸리는 이들도 있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실제 사건들을 접하면서 분노가 컸다. 그들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얼마나 분노했을까. 련화를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로 설정했다. 조심해라, 계급이나 돈으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라는 일종의 경고를 주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다.

-<한공주>의 공주가 련화의 성격을 발전시키는 데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나. 공주가 피해자이면서도 2차 가해로 거듭 피해자가 된다면, 이 사회에서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은 련화는 공주와는 달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복수를 감행하는 여성 캐릭터다. 둘 모두 천우희가 연기했다.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련화를 만들면서 은연중에 공주가 있었을 것 같다. 련화라는 캐릭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조선족이자 첩의 자식, 자기 호적을 돈 주고 사야 하는 고단한 삶을 거치면서 스스로 독해져야 했던 여자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도 이용만 당한다. 련화를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캐릭터로 만들자, 련화가 럭비공 같은 행동을 하는데 그 모습이 통쾌하게 보이도록. 관객이 그 모습에 불편해하지는 않았으면 했다.

-련화가 폭발하기까지 그가 겪어온 폭력적인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자칫 ‘조선족 여성’이라는 지칭에 담긴 선입견을 강화시킬까 우려도 된다.

=나 역시 련화를 단순히 소비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련화가 하나의 캐릭터로 작용할 수 있게 하자. 실제 자료조사도 많이 했다. 실제로 그들은 ‘연변’과 ‘하얼빈’의 차이에 민감하다. 그들이 겪은 폭력적인 상황도 많이 봤다. 련화는 초반에는 언니 수련에 의해 설명되다가, 나중에 련화의 말 한마디가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단서가 되도록 구성했다.

-소위 ‘끝장’을 보는 캐릭터들은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의 연기가 있기에 가능했다.

=세 배우가 같이 만나는 장면이 아주 많지는 않다. 한(석규) 선배는 노래방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노래를 직접 불러줘 정말 감동이었다. (웃음) 현장에서 늘 열정적이셨고, 매번 우리가 영화를 하는데 믿음과 확신을 주셨다. 특히 촬영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큰 아픔을 겪기도 하셨는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중식은 명회와 정반대 캐릭터로 매 순간 감정이 올라와 있어야 했다. 주연배우는 ‘액션’을 위주로 한다면 설(경구) 선배는 ‘리액션’ 연기를 해야 했는데, 흥미로워하시고 열과 성을 다해주셨다. 천우희 배우는 시나리오 주고 나서 답이 없길래, “별로지?”라고 했더니 “내가 본 전무후무한 캐릭터”라며 힘든 캐릭터인데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공주>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이라 늘 나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노력해 고마웠다.

-인물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상’이라는 ‘허상’을 좇아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그 모습에 갇힌 우리를 바라보게 한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의 머리를 자르는 장면이 그 상징이 될 텐데, 한편으로 조심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극중에서 중식이 “가장 큰 사람의 목을 따야 알 수 있다”는 말을 하는데, 반어적으로 보면 결국 소시민은 알 수 없다는 뜻일 거다. 그 말에서 지칭하는 사람이 누굴까, 중식이 모든 걸 잃고 난 후 아버지로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얼까 고민했고 결국 이순신 동상의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베를린에서는 “광화문에는 세종대왕도 있는데 왜 이순신이어야 했나”라는 질문도 나왔는데 그땐 “이순신이 (동상 크기가) 더 큽니다”라고 대답했다. (웃음) 각자의 해석에 맡기고 싶다.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악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악해질 수 있고 남에게 해를 가할 수 있을까. 꿈이나 신념 같은 것이 너무 맹목적이 되면 정말 무섭게 변하지 않을까. 그것 또한 우상이라는 의미로 제목을 ‘우상’으로 가져갔다. 타이틀 ‘우상’을 시작 장면이 아닌, 엔딩에 넣은 것도 우상이라는 단어에만 너무 의미를 부여하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서였다. 장르영화로 즐기고 이후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면 반추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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