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젊은 독립영화 감독②] <김군> 강상우 감독 - 5·18에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덧입히다
장영엽 사진 오계옥 2019-03-13

<김군>은 지난해 하반기 영화제 시즌, 눈 밝은 관객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 중 한편이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입소문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같은 해 연말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대상을 수상하며 영화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5·18 민주화운동(이하 5·18)을 호령하는 새로운 시각과 다른 방식을 제시했다”는 것이 서독제 당시 본선 심사위원들의 평이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긴 한 무장 시민군, 그의 행방을 좇는 다큐멘터리 <김군>은 이미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비극의 순간으로서의 5·18을 조명하기보다 지금껏 간과되어왔던 인물과 사건을 재발견하고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는 역사에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개입시킴으로써 5·18에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덧입히는 작품이다. <김군>을 연출한 1983년생 강상우 감독은 “지금까지 봐왔던 대다수의 5·18과 관련한 작업들은 감정적으로 울분에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5·18을 경험하지 못한 80년대 세대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 측면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5·18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감정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김군>을 만들게 되었다고 소회한다. 강상우 감독의 말처럼 <김군>은 1980년 광주를 경험한 이들의 회한과 울분보다 이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대의 질문과 탐색에서 추동력을 얻는 작품이며, 그것이야말로 이 다큐멘터리가 여타의 5·18 관련 영상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할 만하다.

영화의 이야기는 한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도심 곳곳에서 포착된, 트럭에 올라 군모를 쓰고 무기를 든 매서운 눈매의 무장 시민군. 극우 논객 지만원은 사진 속 이 남자를 ‘제1광수’라 명명한다. 그는 남자가 북한의 농업상 김창식이라며 그의 존재야말로 북한 특수부대(광수)가 5·18 당시 광주에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지만원이 ‘광수’라 지목한 사람은 600여명에 달했다). <김군>은 5·18 북한 개입설의 핵심에 위치한 사진 속 남자의 행방을 쫏아 그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5·18을 생각할 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든 소년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자의 이미지에 가려 정작 5·18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이미지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만원씨와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가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기록사진 뒤편에 위치한 시민들의 이미지를 통해 역사의 빈틈을 공략한 거잖나. 이제까지 한번도 전면에 나선적 없었던 시민들의 이미지를 정면에서 직시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강상우 감독이 밝힌 <김군>의 연출 의도다. 영화의 제목인 ‘김군’은 극중 한 시민이 기억해낸 사진 속 남자의 호칭으로, “구체적인 개인인 동시에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는 보편적인 명칭”이라는 생각에 제목으로 낙점했다고 한다.

물론 <김군> 이전에도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인물들을 새롭게 찾아나서는 시도를 한 일련의 다큐멘터리들- <서칭 포 슈가맨>(2012)과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이 있었다. 하지만 강상우 감독에 따르면 <김군>은 이들 작품보다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다큐멘터리 <인간증발>(1967)에 더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영화다. “<서칭 포 슈가맨>과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경우 찾아야 할 주체가 명확하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상 ‘김군’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인간증발>을 보면서 프로젝트가 미궁에 빠졌을 때 제작진이 겪는 고민과 혼란의 과정 또한 영화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 재미있었고, 논픽션과 픽션을 아우르는 영화적 고민과 기법 또한 흥미로웠다.”

강상우 감독의 말처럼 제작진이 ‘김군’을 찾아 나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제작진이 건넨 사진을 보고 저마다의 해석을 보태는 목격자들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고 트라우마로 인해 종종 소실되어 있다. ‘김군’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여러 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함이야말로 관객에게 해석과 개입의 여지를 남긴다. “사진이 맥락을 소거하고 그 순간만을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매체잖나.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같은 이미지를 보고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진에 대한 목격담을 많이 들을수록 더 다양한 맥락의 이야기가 생겨났고, 그런 점을 영화에 반영하고 싶었다.” 그런 연유로 강상우 감독은 올해 5월 개봉(예정)을 앞두고 재편집 중인 <김군>의 작업 방향을 “5·18을 둘러싼 저널리즘적 측면의 타임라인보다 시민들의 체험담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한 시민군이 얘기한다. 많은 시민들이 항쟁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처음부터 5·18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분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김군’을 찾아가며 만났던 선생님들도 대부분 이런 연유로 항쟁에 참여하게 된 ‘목격자’다. 그분들이 눈으로 목격한 것을 직접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했다.”

<김군>은 강상우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다. <김군> 이전 중·단편 극영화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 <백서><클린 미> 등을 연출했던 그는 “다큐에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인터뷰어가 감독이라는 점도 잘 몰랐다”며 웃었다(<김군>에는 인터뷰어로 감독이 아닌 연출부 스탭이 등장한다. 강상우 감독은 “스탭의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대화를 나누는 맥락이 소거된 채 증언자의 말만으로 진행되는 작업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연출 의도를 밝혔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광이었던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뒤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강상우 감독이 핸디캠을 들고 촬영을 도와줄 친구들을 수소문해 만든 첫 단편영화가 바로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이다. 스케이트장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는 소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소년의 시각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설명적인 대사 하나 없이 그저 주인공 소년의 눈에 비치는 일상 풍경을 감각적인 카메라워킹으로 담아냄으로써 연정과 절망을 오가는 주인공 소년의 심리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됐던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백서>, 출소한 남자주인공이 교정시설에서 청소 일을 맡아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다룬 <클린 미> 등 강상우 감독의 작품은 연출자의 명민한 감각으로 포착한 직관적이며 매혹적인 순간들을 담고 있다. 내러티브보다 감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로 승부하는 감독의 영화적 스타일은 다큐멘터리 <김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회적 이슈는 출발의 재료일 뿐 내게는 선생님들이 경험했을 현상학적인 체험과 감각을 구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개봉 전이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극장에서 <김군>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주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연출자의 적절한 개입을 거쳐 드라마틱한 파장으로 전달되는 순간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구분짓지 않으며, 앞으로도 자신에게 다가올 감각적인 경험들을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신인감독의 미래가 사뭇 궁금하다.

● 강상우 감독에게 영향을 준 감독과 영화

“<김군>을 작업하며 최근에 클로드 란즈만의 <쇼아>(1985)를 다시 봤는데 충격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훌륭한 영화라는 건 알았지만 다시 보니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미지와 생존자들의 증언이 굉장히 치밀하게 설계되고 배치되어 있더라. 큰 자극을 받았다. 일관되게 존경하는 감독은 하시구치 료스케다. <해변의 신밧드>(1995)부터 <나를 둘러싼 것들>(2008)까지 좋은 작품이 너무 많다. 그가 사람과 삶을 그리는 방식을 좋아한다. 나이 들수록 자신의 이야기에서 타인들의 이야기로 작업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10대 시절 가장 좋아했고 영향을 많이 받았던 감독은 구스 반 산트토드 헤인즈다. 왜 그런 얘기 있잖나. 거위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보는 사람을 엄마로 인식한다는. 10대 시절의 나에게 구스 반 산트가 특히 그랬다. 그의 영화를 보며 이런 삶의 방식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토드 헤인즈의 경우 <벨벳 골드마인>(1998)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 이후의 영화는 너무 머리로만 만든 것 같아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 강상우 감독의 전작들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부터 <백서> <클린 미>에 이르기까지 강상우 감독의 극영화는 사회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삶과 풍경을 감각적인 프레임으로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선택이 소수자에 대한 관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작업에 가깝다고 말한다. 강상우 감독의 첫 단편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은 남자친구를 연모하는 소년의 심리 변화를 불균질하고 긴장감 넘치는 카메라워킹으로 담아낸 작품이며, <백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영화로, 하얀 종이 위에 병역거부 사유를 적어 내려가나 결국 글을 끝맺지 못하는 남자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중편이다. <클린 미>는 수감 생활을 마치고 사회 복귀를 준비 중인 남자가 교정시설에서 청소 업무에 임하는 모습을 통해 한 시절을 마무리하는 인물들과 청소 행위의 이미지를 흥미롭게 교차시킨다. 2014년 인디포럼 폐막 영상인 <안마도> 역시 바닷가에 평화롭게 앉아 있는 소와 잠을 청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대비시킨 단편. 이처럼 강상우 감독의 전작들은 예기치 못한 이미지들의 충돌로부터 새로운 감흥을 자아내곤 한다. 광주 시민들의 일상적인 순간들을 담은 <우리는 없는 것처럼>은 <김군>의 또 다른 얼굴이다.

● 필모그래피: 장편 2018 <김군> 연출 2018 <안녕, 미누> 촬영 2016 <위켄즈> 촬영 2014 <위로공단> 촬영 2013 <만신> 연출부 / 단편 2016 <우리는 없는 것처럼> 연출 2014 <클린 미> 연출 2014 <안마도> 연출 2010 <백서> 연출 2009 <어느 게이 소년의 죽음> 연출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