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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락> 이권 감독, "피해자를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이 중요했다"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8-12-13

수상쩍게 열려 있는 원룸 도어록의 덮개. 집 안에서 발견된 낯선 사람의 흔적. 그리고 살인사건의 발생. 이 모든 상황을 직접 경험하는 평범한 1인 가구 여성 경민(공효진)이 <도어락>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전반부를 채우는 건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공포와 여러 층위의 폭력적 상황이다. 가해자의 범행이 드러나는 중반 이후, 영화는 납치와 고문과 살인이 벌어지는 스릴러의 무대로 이야기를 옮긴다. 무섭고 섬뜩하다는 평과 무섭고 불편하다는 평이 공존하는 가운데 <도어락>이 지난 12월 5일 개봉했다. <도어락>은 <내 연애의 기억>(2013), <꽃미남 연쇄 테러 사건>(2007)을 연출한 이권 감독이 스릴러 장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이권 감독은 너무도 솔직하게, 애초 자신이 만들려 했던 것은 원작 <슬립타이트>(2011)처럼 가해자 시점의 독특한 스릴러영화였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피해자 시점의 여성 원톱 스릴러로 완성됐고, 결과적으로 뻔한 스릴러는 피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 또한 관철된 듯 보인다. <도어락>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이고, 장르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피해 재현과 관련해 피하고자했던 것은 무엇인지 이권 감독에게 물었다.

-시사 이후 영화에 대한 반응을 챙겨봤나.

=내 예상보다 무섭다, 잔인하다는 반응이 많은 것 같다. 폭력성과 잔인함의 정도를 많이 낮췄다고 생각했는데, 관객의 체감이 나의 예상과 달라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다. 현실공포라서 관객이 더 세게 반응하는 것 같다. 편집 과정에선 “왜 이렇게 착하게 찍었냐”는 말도 들었다. (웃음)

-촬영할 땐 어떤 등급을 예상하고 찍었나.

=지금의 등급(15세 관람가)을 기대하고 찍었다. 혹시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었다. 전작 <내 연애의 기억>이 예상치 못하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신경이 쓰였다. 그땐 결과가 당황스러워 영상물등급위원회까지 찾아갔는데, 애인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설정 자체를 문제 삼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웃음) 그러니 <도어락>도 모방범죄의 측면에서 등급 걱정이 되긴 했다.

-영화 개봉에 앞서 주연배우 공효진이 홈쇼핑에서 영화 예매권을 판매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를 펼쳤다. 감독으로선 주연배우가 이렇게 홍보에 열심이니 행복하겠다.

=홈쇼핑 마케팅은 효진씨가 <미씽: 사라진 여자>(2016) 때 시도하려던 거였다. 엄지원 배우와 함께 홈쇼핑에서 영화를 홍보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여러 이유로 성사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러다 이번에 하게 된 거다. 효진씨 본인의 아이디어다. (웃음) 사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효진씨가 걱정이 많았다. 여성 원톱 영화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다. 또 편집본 보고 속상했을 수도 있다. 효진씨는 기본적으로 정형화된 이야기, 정형화된 연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어락>은 스릴러영화고, 사건에 의해 캐릭터가 움직여야 하는 측면이 있다. 효진씨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지만 영화의 톤과 맞지 않아서 쳐낸 것들이 많다. 그런데 시사회 이후 걱정을 조금 덜고 안심하는 것 같아 나 역시 기쁘다.

-<도어락>은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제작사에서 스페인영화 <슬립타이트>를 원작으로 한 스릴러영화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작품의 연출 제안을 받았다. 박정희 작가와 함께 원작을 새롭게 각색했다. <슬립타이트>는 범죄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미국 드라마 <덱스터>나 토니 스콧 감독의 <더 팬>(1996)처럼, 살인마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구성이 매력적이었다. 그 시선을 취해 계급의 문제를 다뤄볼까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가해자 남성이 아닌 피해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어서 박정희 작가가 시나리오를 새로 썼는데, 나만 빼고 그 버전을 다 좋아했다. (웃음) 그러면서 빠르게 투자·배급사가 결정됐고 캐스팅이 진행됐다. 효진씨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의 연출부로 일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최근엔 아내인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에도 출연을 한 터라, 사람들이 내게 얼른 공효진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하라고 미션을 안겼다. 스스로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시나리오를 주려니 마음이 껄끄러웠지만, 효진씨가 곧 발리로 떠난다고 해서 공항까지 찾아가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캐스팅이 이루어진 뒤, 효진씨와 함께 시나리오를 많이 다듬어나갔다. 나 역시 애초 생각했던 그림은 완전히 리셋하고, 여성주인공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스릴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주인공 경민은 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혼자 사는 여성이다. 경민을 설명하는 여러 키워드 중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나.

=보통 스릴러영화의 주인공에겐 트라우마나 결격사유가 있다. <숨바꼭질>(2013)에서 주인공(손현주)이 형에 대한 트라우마와 결벽증을 가진 것처럼. 처음엔 그런 요소를 생각했는데, 결국 배제했다. 경민은 특별한 트라우마도 없고 결격사유도 없는,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이다. 주인공을 보통의 인물로 설정하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다수가 느낄 수 있는 공포가 중요해졌다. 대신 이 여자를 고립시키려면 ‘혼자’ 라는 키워드가 필요했다. 원룸에 혼자 사는 평범한 여성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강승혜(한지은)가 지하철 역사를 나와 원룸에 들어가는 과정을 CCTV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일상 속에 도사린 공포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누군가는 집에 도착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원룸에서 강승혜가 사건을 당하는 장면을 바로 보여줘도 되지 않냐고 했지만, 그럴 경우 원룸 자체의 보안 문제로 보일 수도 있다고 봤다. 클로즈업이 많은 보통의 스릴러영화와 달리 <도어락>의 초·중반에 부감 컷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인물을 고립시키고, 이를 바라보는 불특정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경민은 불미스런 사건을 겪은 뒤 이사를 가는데, 그 집은 전보다 많이 낡았다. 안전해지려 이사하지만 실은 안전에 취약한 공간으로 옮겨갈 뿐이다.

=영화적으로 공간에 대한 변화를 어떻게 줄 것인가 고민했다. 경민은 더 나은 환경을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금의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돌고 돌 뿐이라는 걸, 공간의 변화로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폐호텔 역시 침대가 놓인 원룸과 다를 바 없다. 호텔 방을 탈출하려고 나오면 원룸의 복도와 비슷한 복도가 이어지고, 경민은 ‘정신차려, 여기서 나가야 돼’라는 말을 반복하며 나선형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들어간 방은 사방이 막혀 있다. 마지막에 장롱이 쓰러지는 장면은 경민이 더 좁은 공간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극대화한 표현이다. 후반부에선 <양들의 침묵>(1991)의 느낌을 참고했다. 레퍼런스 영화가 <양들의 침묵>이었는데, 사실 이 영화야말로 관찰자적 남성의 시선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양들의 침묵> 외에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있나.

=작품 준비하던 당시 데이비드 핀처의 드라마 <마인드헌터>를 재밌게 보고 있었다. 이 작품의 차가운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된 걸까 고민했다. 핀처 영화는 굉장히 정석적인데, 그러면서도 스타일리시한 구석이 있다. 중간에 삽입된 몇몇 스타일리시한 장면이 영화 전체를 스타일리시하게 만든다. <마인드헌터>를 보면서 숏의 사이즈나 사운드의 활용 같은 걸 참고했다. <도어락>에선 초·중반까지는 공간감을 주는 광각렌즈를 사용해 찍고, 이후 망원렌즈 사용을 늘려나갔다. 중간중간 빠른 카메라 무빙을 주기도 했다.

-영화 초반 혼자 사는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지점을 잘 포착해서 보여준다. 실제로 혼자 사는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는지 따로 조사를 했나. 이와 관련해 도움을 받은 것이 있다면.

=물론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SBS 스페셜-불안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다큐멘터리도 도움이 됐다. 분명 체감의 정도는 다르지만, 나 역시 혼자 살던 때 영화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밖에서 집 현관문을 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 경민이 그러는 것처럼 집에 아무도 없는 척 불을 끄고 말았다. 아내 이언희 감독도 도움을 많이 줬다. 영화를 만드는 동료 감독으로서, 내게 연출자의 시선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다룰 때는 카메라의 시선과 연출자의 시선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더라.

-김기정(조복래) 캐릭터를 통해선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의 피해의식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가해자 남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 혐오의 이슈도 얘기하고 싶었나. 가해자 캐릭터에는 어떤 특징을 부여하고 싶었나.

=결국은 소통이 단절된 사회가 양산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범인은 자신이 원하는 여성상에 경민을 끼워 맞춘 뒤 일방적으로 집착한다. 거기에 쌍방향 소통은 없다. 기정이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톤으로 그려지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장르적 허용을 넓혀간다. 페호텔에 갇힌 경민이 범인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의 경우 자극적으로 묘사된 측면도 있는데.

=그걸 장르적 허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생각보다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내 딴에는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표현은 많이 배제하려 했다. 만약 카메라가 범인의 시선으로 상황을 보여줬다면 훨씬 더 관객이 불쾌했을 것이다. 사지절단 장면에서도 직접적 표현은 일부러 피했다. 스릴러나 공포가 무섭지 않으면 그건 실패한 거라 생각한다. 장르영화를 즐기러 온 관객에게 충분한 공포와 스릴을 줘야 할 책임도 있는 거니까.

-앞서 공효진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한 사연을 들려줬는데, 어떤 점에서 공효진 배우가 적임자라 생각하고 캐스팅했나.

=투자·배급사에서 원한 것도 있지만, 왜 공효진이어야 하나, 왜 공효진일까, 스스로도 답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 배우 공효진의 장점은 디테일이 좋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다는 거다. 무엇보다 공효진이라는 배우 자체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지점이 있다. 우리와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배우가 아니라 옆집 언니, 옆집 동생 같은 느낌을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한 장점이 <도어락>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작 <내 연애의 기억>도 스릴러가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였다. 스릴러와 공포 장르를 좋아하나.

=좋아한다. 원래 공포영화로 데뷔하려 했다. <여고괴담> 시리즈로. (웃음) 차가운 학원 공포물을 만들려 했는데, 여러 이유로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조금은 엉뚱하게 <꽃미남 연쇄 테러 사건>으로 데뷔를 하게 됐다.

-정통 호러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나. 더불어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잘 만든 공포영화는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진짜 무서운 건 외부의 귀신이 아니다. <도어락>에서 경민의 캐릭터를 일관되게 따라간 것도 이 인물이 느끼는 공포, 이 인물의 내면을 더 깊숙이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동료들과 같이 몸풀기 율동을 할 때, 경민이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멍한 상태에서 동작을 따라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 장면을 영화에서 꼭 살리고 싶었다. 다같이 춤을 추지만 모호한 상태로 동작을 따라하는 장면이 경민의 심리 상태를 함축한다고 봤다. 호러는 장황한 대사가 아니라 인상적 이미지로 심리를 묘사하는 게 가능한 장르인 것 같다. 차기작으로 써놓은 시나리오에도 호러와 코미디의 요소가 섞여 있는데, 기본적으로 하이브리드 장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 준비 중인 시나리오가 있다고 하면, 연출 의뢰가 안 들어올 것 같기도 하고. 언제나 열려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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