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 박영임, 명소희, 장윤미, 강유가람(왼쪽부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 11주년을 기념해 지난 11월 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기획전 ‘ Ⅰ- 독립영화 여성감독전’을 열었다. 이 기획전에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관을 구축해온 여성감독 14인의 작품이 상영됐다. <씨네21>은 이들 중 장편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연출한 5명의 감독에게 만남을 청했다. <이태원>의 강유가람 감독, <방문>의 명소희 감독, <구르는 돌처럼>의 박소현 감독,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박영임 감독, <공사의 희로애락>의 장윤미 감독이 그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여성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등을 통해 주목받아온 이들의 작품은 한국영화에서 종종 배제되곤 하는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를 예리한 감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번 대담은 여성 독립영화 감독들의 작업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하는 목적과 더불어 독립영화 제작의 열악한 환경 가운데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지, 또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서로 연대하고 있는지 듣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했다. 대담 장소에 함께한 다섯 감독은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이야기들이 앞으로 더 많이 발화되어야 하며 더 많은 여성감독들이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평소 영화 작업을 함께해온 분들도, 서로 알고 지내던 분들도 있다. 각자의 인연이 궁금하다.
=강유가람_ 박소현 감독과 임신중절 문제를 다룬 <자, 이제 댄스타임>을 공동 제작했다. 동년배 여성감독 넷(손경화, 조세영, 강유가람, 박소현)이 모여서 만든 영화인데, 그 작품을 인연으로 서로 작업할 때마다 품앗이하듯 도와주고 있다.
=박소현_ 강유가람, 손경화 감독과 백련산 아래 있는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다. 서로의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하고, 같이 밥도 지어먹으며 영화 만들기의 불안함을 최소화하는 중이다. (웃음) 첫 연출작 <야근 대신 뜨개질>을 시작할 때 제작비가 하나도 없었는데 강유가람 감독이 돈을 빌려줘 영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작업실도 마련해주고. 개인적으로 나에게 울타리가 되는 중요한 동료다.
강유가람_ 너무 띄워주는 거 아냐? (웃음) 박소현 감독은 내 영화 <시국페미>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박영임 감독은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네트워킹 모임인 ‘신나는 다큐모임’에서 처음 만나 오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박영임_ 현재 충남에 살고 있는데, 서울에 올 때마다 강유가람 감독이 작업실에서 재워준다. 오늘도 신세를 질 예정이다.
=장윤미_ 나도 강유가람, 박소현 감독을 ‘신나는 다큐 모임’에서 만났고 명소희 감독과는 같은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출신이다. 기수가 달라 수업은 함께 듣지 못했지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명소희 감독의 단편 <24>를 보았는데 영화제에서 가장 좋게 본 작품이었다.
영화 속에 작가를 투영하는 방식
-서로의 영화를 어떻게 보았나.
장윤미_ 작품마다 색깔과 리듬, 호흡이 달라서 재미있었다. 명소희 감독의 <방문>을 보고 내가 잊고 있던, 덮어두려 했던 감정이 치밀어오르는 경험을 했다. 박영임 감독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여성주인공이 계속해서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묘하게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위로를 받게 되더라. 박소현 감독의 <구르는 돌처럼>은 내가 연출한 <공사의 희로애락>과 비교하면서 보게 됐다. 나는 노년의 아버지를 찍었고 박소현 감독은 노년이 된 여성 무용수를 찍었는데, 노년이 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더라.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 힘을 내는 편인데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강유가람_ 명소희 감독의 <방문>을 보고,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스릴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적으로 자신의 가족을 드러내는데 왜 이렇게 스릴러 같은 느낌이 들지? 의도적으로 그렇게 연출한 건가?
=명소희_ 그건 아니다. (웃음)
강유가람_ 나는 그렇게 느꼈다. 특히 명소희 감독 본인의 여성으로서의 삶과 어머니, 외할머니에 이르는 여성들의 연대기가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좋았다. 장윤미 감독의 <공사의 희로애락>을 보면서 아버지를 촬영했던 나의 전작 <모래>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삶을 나는 아버지를 촬영하며 집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것 같은데 그 과정을 <공사의 희로애락>에서도 볼 수 있었고, 아버지와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장면이 특히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다.
박소현_ 네 감독의 작품이 제각각 달라 보이지만 결국 연결되는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고, 매 작품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내 영화 <구르는 돌처럼>을 비롯해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서도 유독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사라져가는 어떤 것에 대한 정서가 눈에 띄었다. 특히 박영임 감독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웃음), 여자주인공을 내가 연기할 뻔했다. 박영임 감독이 나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거든. (좌중 웃음) 내가 일상에서 문득 만나게 되는 불안함을 고스란히 이 영화를 통해 마주할 수 있었다.
박영임_ 이 자리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분이 다큐멘터리 감독들이다보니, 나는 다큐멘터리란 뭘까, 라는 고민을 이번 기회에 하게 된 것 같다. 인물을 담아내는 방식, 인물을 좇는 방식, 영화 속에 작가를 투영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이태원>에서는 굉장히 마음에 와닿은 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선풍기를 맞으며 멍하게 앉아 있는 장면. 인간의 아름다운 순간이 공명하는 느낌이었다. <공사의 희로애락>을 보면서 나는 장윤미 감독처럼 아버지와 다정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나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봤다. 아버지가 자기 얘기를 자식에게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장윤미_ 처음 하신 거다. (웃음)
박영임_ 그것이 다큐의 힘인가 싶었다. 논픽션이 가질 수 있는 힘 있는 지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명소희_ 나는 전반적으로 영화를 보며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가진 힘을 느꼈다. 여성감독들이 카메라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귀를 잘 기울이고 있구나, 정말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소 강유가람, 박소현 감독의 작품은 팬심으로 다 챙겨본다. 두분은 내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막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장편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두분이 계속 영화를 하신다는 게 너무 위로가 된다. 앞으로도 계속해주셨으면 한다. 특히 강유가람 감독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이태원>을 피칭하며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연히 이태원을 걷다가 이 공간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경험일 수 있는데, 그 순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이곳에 와야겠다는 시작점이 인상적이더라.
여성의 이야기라고 ‘사적’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이 자리에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연출한 여성감독의 비율이 4:1이다.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감독의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더 많은 것 같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박소현_ 이건 일반화할 수 없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영화과를 다닐 때부터 극영화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학교 다니면서 감독처럼 안생겼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인 것 같다. (좌중 폭소) 극영화 감독을 하려면 아우라가 뿜어져나와야 한다나? 목소리도 조그맣고 얌전하게 생겼다며 현장에서 못 굴러다닐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실제로 영화 스탭 면접을 보면 계속 떨어졌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연출부보다는 편집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고 편집감독을 해야겠다고 주변에 얘기하면 남자 선배들은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들 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우연한 기회로 장편다큐멘터리의 조감독을 맡아 다큐 현장의 전 과정을 경험해봤는데, 연출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극영화와는 좀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아까 아우라 얘기도 했지만(웃음), 극영화가 수십명의 스탭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면 다큐멘터리는 대상과 관계 맺기에 더 집중한다는 특성이 있더라. 내 성향과 더 맞는다고 생각해서 다큐 작업을 시작했고 흘러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강유가람_ 장편과 단편 극영화를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단편 극영화 부문은 여성감독들의 비중이 생각보다 큰데, 장편 극영화로 갔을 때 여성감독이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는 게 구조적으로 어렵지 않나 싶다. 나는 지금 능력치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투자 등 여러가지 시스템을 얘기하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다큐멘터리는 좀더 적은 자본으로 연출자 스스로가 매니징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에 여성감독들이 꽤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박소현_ 덧붙여서, 친구 중에 장편 극영화 연출을 준비하며 단편 작업을 해오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이태원>을 보고 감탄하더니 자기도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하더라. 이런 미장센을 극영화로 만들려면 불가능하다며 자본과 공간 활용, 연출 방식에 있어서 보다 유연한 다큐의 매력에 빠진 거다. 그런데 친구는 현재 영화 일을 완전히 접었다. 다큐멘터리 촬영 당시 대상이 남자였는데 성희롱을 너무 많이 당했다고 하더라.
강유가람_ 결론이 왜 이래.
명소희_ 나는 출산과 육아를 경험했는데, 만약 내가 극영화 현장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임신했다는 말을 하자마자 ‘그래,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 같다. 두분 말씀을 듣고 보니 여성 작업자들이 본인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환경은 그나마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 연출도 구성도 편집도 한 사람이 할 수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작업 환경 자체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섯 감독의 작품 중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가 꽤 있었다. 명소희 감독의 <방문>은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장윤미 감독의 <공사의 희로애락>은 아버지의 삶을 조명한다.
장윤미_ 노동자로서, 한국 사회의 국민이자 시민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해 풀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가족을 찍는다니, 너무 쉽게 작업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지만 내가 가족으로부터 얻고 싶은 질문이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 대해 궁금했던 많은 것들은 신문과 책, 뉴스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됐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사적인 문제들은 평소 대면하기도 힘들고 복잡한 감정으로 남아 있다보니 다큐멘터리라는 나 나름의 표현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명소희_ <방문>을 만들며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면서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잊혀지는 게 아닐까. 또 출산과 육아를 해야 하는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채로 다른 사람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복합적인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이 작업은 천천히 시간이 들더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아기를 낳고 얼마 안 있다가 다른 현장을 좀 찍어보고 싶어서 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굉장히 심하게 성희롱을 당했다. 4주를 나갔는데 나중에는 눈물이 나더라.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촬영을 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질책했다. 내가 이 정도의 말에 동요할 정도로 약한 인간인가? 그렇게 다그치면서 몇주를 나갔는데 마지막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빨리 이 한계를 받아들이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유가람_ 여성감독이 자기에 대한,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굉장히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방식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으로 연결되는, 여성의 삶의 맥락을 축소시키는 방식의 시각이다. 남성이 만든 다큐는 사회적인 이야기가 되고, 여성이 만든 다큐는 사적이라고 매핑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실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쉽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있겠지만 그걸 사유하는 과정은 몹시 괴로운 일이다.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로 들어가면 그만큼 치열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자신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다. 나는 이러한 시도가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노동을 보고 여성을 바로 바라보게 되다
-다섯 작품 중 여성 캐릭터를 중요하게 다룬 영화가 많은데, 특히 노동하는 여성의 고단함을 예리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처한 여성이 많지만 그들을 마냥 희생자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강유가람_ <방문>에서 명소희 감독의 어머니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옷가게를 하셨다가 닭갈비집을 열고, 음식점 손님들을 태우고 운전하며 노래도 부르고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모습. 이렇게 표현하면 이상할 수도 있지만 반짝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 주요 미디어에서 여성의 노동을 재현하는 방식이 너무 제한적인 것 같다. 그 한계를 다큐멘터리가 보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소희_ 보통 ‘엄마가 되어야 엄마를 이해한다’고 말하는데, <방문>을 작업하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엄마의 노동을 보고 나서야 엄마라는 여성을 바로 보게 됐다. ‘엄마가 되어야 엄마를 이해한다’는 말은 여성을 모성 신화에 편입시키는 대신 노동을 삭제해버린다. <이태원>을 보면서도 인상적이었던 게, 여성들이 노년이 되어서도 정말 열심히 일하잖나. 손님들을 대하는 몸짓, 행동, 외국어까지 구사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기까지의 여성의 삶이 보였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감독이 두편 이상의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SNS에 ‘두 번째 영화, 찍을 수 있을까’라는 사이트가 있을 정도로 현재 많은 상업영화, 독립영화 감독들이 두 번째 장편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또 당신들은 어떻게 두편 이상의 장편영화를 찍을 수 있었나.
박소현_ 아까 얘기했듯 동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요즘 나는 생계와 작업을 잇는 작업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일례로 <구르는 돌처럼>도 하자센터에서 남정호 선생님이 진행하는 무용 수업 과정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생계를 목적으로 교육 영상을 찍다가 발견한 이야기였다. 이처럼 생계로 시작한 일을 어떻게 내 작업과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강유가람_ 나 역시 집단 속에서 영화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네트워크의 힘을 실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함께 작업하며 시너지를 내는 방식을 앞으로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인데, <이태원>을 모 영화사에서 피칭할 때 10팀 정도가 있었는데 여성 연출자는 내가 유일했다. 상위 단계로 올라갈수록 여성감독의 작업이 어려워지는 맥락이 뭘까. 그 생각을 많이 했는데, 다큐멘터리는 사실 투자 집단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제작 지원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어떤 작품을 지원해줄 것인지 결정하는 집단의 성비가 심각하게 남성쪽으로 쏠려 있다. 얼마 전 ‘2018 성평등 문화·예술 정책 포럼’에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조혜영 프로그래머가 “영화진흥위원회 내 심사위원 구성을 보면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2 대 8이다, 그만큼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들을 더 양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명소희_ 비슷한 맥락인데, 인디스페이스가 이번에 주최한 독립영화 여성감독 기획전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표현방식의 영화들이 상영되는 반면 실질적으로 제작 지원을 받은 영화들을 보면 표현의 폭이나 이야기가 그렇게 다양하지 못하다. 그런 측면에서 다양한 개성의 영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줄 수 있는 비평의 역할, 기획자의 역할과 공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윤미_ 나는 기획서도 못 쓰고 피칭도 못해서 지원받기 적합하지 못한 유형의 연출자다. (웃음) 언제나 마음 한켠에 나는 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열심히 지원해야 한다고 하더라. 한편으로는 기획 개발 단계에서 창작자들에게 좀더 유연하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한다. 또 비교적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남성감독이 만드는 것 같은데, 여성감독 중에서도 많은 자본을 가지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박영임_ 나는 ‘순리필름’이라 명명한 창작집단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기존의 시스템에 속하면 내가 원하는 영화를 언제 만들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 보였기에,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 모여 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후반작업과 촬영을 서로 돕는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세 번째 장편영화인데, 나는 장편영화를 지원받아서 만든 적이 없다. 텀블벅 후원도 받고, 지인과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 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제작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 같다.
박소현_ 덧붙여서, 나이가 들수록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깊어지더라. 지난해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응급 상황이 생겼을 때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몇명이나 있는지 등을 조사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현실적으로 작업하는 여성들이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유지해나가면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출산, 육아, 경제적 어려움 등 여성감독들의 작업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담이 궁금하다.
명소희_ 영화 작업을 하고 싶어도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가 않아 어려웠다. 여성 작업자들이 항상 겪는 문제일 것 같은데, 아이를 맡기는 순간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육아노동을 하게 되는 상황이 싫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가 스스로 해보겠다는 치기어린 마음도 들었기에 촬영할 때 아이를 데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 다니는 파트너는 돈을 벌러가고 난 아이를 데리고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어느 순간 일종의 패배감으로 다가오더라. 행복한 삶을 선택하겠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나, 라는 이상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몇번씩 작업을 포기하고 싶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육아를 하는 여성감독들이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 영화를 편집할 때에도 유모차를 발로 밀면서 했다고 하고. 한편, 나랑 비슷한 구조의 문제가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그동안 왜 발화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단편적으로는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이 가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라. 사실 이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문제인데. 또 영화제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 ‘맘충’이라고 생각할까봐 두렵기도 했다. 그런 여러 문제들로 인해 요즘도 심각하게 취직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강유가람_ 얼마 전 SNS에서 이런 글을 본 것 같다. 남성감독들에게는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데 왜 여성감독들에게만 물어보냐고. 나는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여성으로서의 시각, 사회 전반으로 봤을 때에는 소수자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이런식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는 점에서 인식론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감독들에게도 한국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들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그들 역시 한국에서 남성으로 성장한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며 본인의 영화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박소현_ 어떤 관객이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에 이렇게 묻더라. <야근 대신 뜨개질>도 그렇고, <구르는 돌처럼>도 그렇고, 늘 여성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개인적으로 여성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나의 시선을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내 작품이 여성영화로 분류되고, 여성영화제에서 주로 상영되는 것을 보며 여성으로서 나의 시선, 나의 경험이 일반적인 시각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건가 싶더라.
아녜스 바르다, 이숙경, 샹탈 애커만, 손경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기획한 신인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대담에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여성감독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실제로 그런가.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박소현_ 아녜스 바르다처럼 할머니가 되어서까지 왕성하게 작업하는 여성감독 롤모델을 한국에서 보기가 너무 힘들고, 특히 나이가 들수록 여성 작업자로서 생계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이번에 <구르는 돌처럼>을 작업하며 분야는 다르지만 남정호 선생님에게 많은 자극과 영감을 받았다. 아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런 게 잘 이뤄져서 여성감독들이 사라지지 않고, 저분이 저 나이가 되어서도 영화를 만들고 있네, 저분이 출산했지만 이어서 작업을 하고 있네, 이렇게 눈앞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유가람_ 나는 선배 감독 중 이숙경 감독님(<어떤 개인 날>(2008), <간지들의 하루>(2012) 연출) 같은 방식으로 꾸준히 작업하고 싶다. 그분은 늘 주변에 있는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기획하고 나처럼 늦게 작업을 시작한 감독들이 합류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그런 방식을 본받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나 스스로도 어떤식의 성과를 더 내고 여유도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도 작업을 이어가려면 여성 작업자들끼리 계속 그런 식의 접점을 공유하고 세대를 초월해서 만났으면 좋겠다.
박소현_ 우선 지속적으로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가끔 여성감독들끼리 서로의 작업실을 릴레이로 방문한다거나 티타임을 가지자는 얘기는 나오는데, 유지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마음들은 있는 것 같다.
장윤미_ 샹탈 애커만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처럼 살아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다.
명소희_ 나는 <의자가 되는 법>에 조연출로 참여했던 게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었다. 손경화 감독이 내게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동료’였다며, 꼭 동료를 만들라는 이야기를 해줬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최근 나도 조금씩 친분을 쌓는 감독들이 생겼다. 멀리 있는 세대의 감독들도 롤모델이 될 수 있겠지만, 서로 비슷한 시기에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며 곁에서 서로에게 자극과 위로를 주는 감독들이 나의 롤모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 동료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작업했으면 좋겠다.
박영임_ 나는 성별을 떠나 예술가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작품과 그들의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술가는 좀 고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어떤 예술가든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지나치게 시류에 휩쓸리기보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오롯이 자신에게 와닿는 걸 탐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롤모델을 찾는다기보다 단독자의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료도 중요하지만, 작업을 할 때에는 아무리 마음이 통하는 동료가 있더라도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외로움을 감당하고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과정이 영화 만들기의 힘든 점이자 좋은 점 같다.
다섯편의 영화 소개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 <이태원>
미군 달러가 지배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태원에서 살아온 세 여성, 삼숙, 나키, 영화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어느덧 노년의 여성이 된 그녀들이 여전히 기지촌에서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 가운데 새롭게 이태원에 유입된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명소희 감독의 다큐 <방문>
가을만 되면 악몽을 꾸는 ‘나’(명소희 감독 본인이다)는 엄마가 생각나 오랜만에 고향 춘천으로 향한다. 오랜 시간 머물렀으나 이제는 황량한 공간이 되어버린 춘천 소양로를 배경으로 ‘나’는 유년 시절의 파편화된 기억, 그리고 엄마, 외할머니와 맺었던 관계를 소회한다.
박소현 감독의 다큐 <구르는 돌처럼>
교수 정년 퇴임을 앞둔 무용가 남정호는 화려했던 시간들이 사라지고 정처없이 구르는 돌처럼 잊혀진 존재가 된다는 건 어떤 심정일까 생각한다. 그녀는 제도권 바깥에 있는 10대, 20대들과 8일 동안 함께 춤추며 자신의 고민을 나누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투영하는 특별한 교감의 시간을 갖는다.
박영임 감독의 극영화 <기억할 만한 지나침>
시인인 김에게 삶은 고독하고 버겁기만 하다. 어느 날 남편이 예고도 없이 사라지고, 김은 저수지에서 버려진 개 한 마리를 발견한다. 개를 돌보며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그녀의 상황과 처지는 나날이 힘들어질 뿐이다.
장윤미 감독의 다큐 <공사의 희로애락>
평생 건물 만드는 일을 해온 노동자(그는 장윤미 감독의 아버지다)가 있다. 워커홀릭으로 악착같이 살아온 그는 노년에 접어들며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생각에 우울감에 젖는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평생 느꼈던 희로애락을 반추하는 남자의 내레이션과 함께 그가 만든 건물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박소현 감독_ 일본의 조선학교 이야기를 다룬 장편다큐멘터리 <우리학교>(2006)의 조감독을 시작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2008), <자, 이제 댄스타임>(2013)의 조감독 및 공동제작을 거치면서 다큐멘터리 작업과 함께 오랫동안 10대들과 다양한 영상작업을 해오고 있다. 첫 장편연출작인 <야근 대신 뜨개질>(2015)로 2017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했다.
박영임 감독_ 제작사 ‘순리필름’을 공동 운영하며 영화를 만들고 있다. 세상 주변부의 삶과 존재들을 영화에 담아왔다. 장편 극영화 <그저 그런 여배우와 단신 대머리남의 연애>는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장편다큐멘터리 <이름없는 자들의 이름>(2016)을 연출했다. 2018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세 번째 장편영화다.
명소희 감독_ 2011년 부천시민미디어센터 다큐멘터리 워크숍에서 시각장애인 친구 이야기를 다룬 <두 잔의 커피>라는 단편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2015년 인디다큐페스티발 봄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단편다큐멘터리 <24>를 만들었다. 2016년 좋은 동료를 만나 2년간 함께 작업한 다큐멘터리 <방문>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장윤미 감독_ 한 병역거부자에 관한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2012)을 시작으로 단편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5), <늙은 연꽃>(2016), <콘크리트의 불안>(2017)을 만들었다. 최근 작업한 장편 <공사의 희로애락>(2018)은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구미공단의 한 노동조합을 촬영중이다.
강유가람 감독_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 결성을 함께했으며 여성국극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의 조연출, 배급 PD로 활동했다.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와 부동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모래>(2011)를 연출, 제3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공간의 변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이태원>(2016), 박근혜 정권 탄핵 국면 속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다룬 <시국페미>(2017)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