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찾은 영화 전문가, 관객 앞에서 부산아시아영화학교의 교육 과정을 통해 8개월간 기획·개발한 작품을 선보이는 ‘AFiS 프로젝트 피칭’의 한 장면. 브루나이 감독 압둘 자이니디가 <지렁이와 마녀>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01. “중국영화계에서 잘 볼 수 없는, 현실적인 성장영화를 만들고 싶다.”(<햇살은 아직 그곳에 있어>, 이혜혁) “크레이지하지도, 리치하지도 않은, 계급간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싱가포르의 현재를 보여주고 싶다.”(<시간 속에서>, 조던 캐서린 시) 행사 첫날, 파라다이스 호텔 그랜드볼룸에서는 부산아시아영화학교(AFiS) 국제 영화비즈니스 아카데미 교육생들이 기획·개발한 프로젝트를 피칭하는 ‘AFiS 프로젝트 피칭’이 열렸다. 10월 7~8일 진행된 이 행사에서는 16개국 21명의 교육생들이 지난 8개월간 현업 영화인들과의 멘토링과 워크숍을 통해 개발해온 다양한 프로젝트를 영화 전문가와 대중에 선보였다. 이 자리에는 타이 감독 아딧야 아사랏(<원더풀 타운>)과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오픈도어스(신진 프로듀서 양성 프로그램) 부문 책임자 소피 부르동, 아시아영화의 해외 배급을 맡고 있는 아시안 섀도의 이자벨 글라샹, 동남아시아 대표적인 장편 기획·개발 랩 SEAFIC(Southeast Asia Fiction Film Lab)의 집행위원장 레이먼드 파타나비란군이 전문가 패널로 나서 교육생들과 Q&A 세션을 가졌다. 일본과 필리핀 프로듀서가 중국 감독과 함께 작업할 영화를 피칭하는 등 글로벌한 프로젝트가 종종 눈에 띄었고, 기존의 상업·독립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던 로컬의 특색을 강조한 영화들이 다수 보였다. 무대 위에서 수화를 선보이거나, 미리 촬영한 일부 영상을 소개하는 등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교육생들의 졸업식이 열리는 10월 19일에는 AFiS 프로젝트 피칭 참가작 중 최우수 동남아시아 프로젝트에 수여되는 퓨린상(2500달러)의 발표도 함께 있을 예정이다.
게일 오소리오, 이마이 다로, 림 잉 시안(아래 왼쪽부터).
02. AFiS 프로젝트 피칭을 마친 뒤, 세명의 교육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말레이시안 프로듀서 림 잉 시안과 앞선 지면에서 소개한 일본 프로듀서 이마이 다로, 필리핀 프로듀서 게일 오소리오가 그들이다. 이들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선보여야 하는 피칭 과정이 “몇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림 잉 시안)면서도 지난 8개월간 동고동락한 친구들의 성장을 보니 기쁘다는 소감을 말했다. 평소 국제 공동 제작을 하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는 꿈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이들은 글로벌 프로듀서를 양성하는 데 특화된 AFiS의 프로그램에 매력을 느껴 교육생으로 지원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마이 다로 프로듀서는 “부산에서 피칭을 선보이고 나서야 쇼치쿠, 가도카와 같은 일본의 유명 투자사와 미팅을 할 수 있었다”며 독립영화 프로듀서에게 ‘부산아시아영화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말했다. 10월 19일 졸업식이 끝나면, 이들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게 된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좋은 퀄리티의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림 잉 시안) “아시아 영화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부업을 하지 않고 오직 영화에만 집중하는 프로듀서가 되길 원한다.”(이마이 다로) “수도권에서 벗어나 로컬의 언어와 문화를 살린 영화를 만들고 싶다.”(게일 오소리오) 이들의 꿈이 어떤 곳으로 이들을 이끌게 될지 궁금하다.
기술세미나의 패널들. 왼쪽부터 강윤극 세종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교수, 진행을 맡은 구재모 한국영상대학교 영상촬영조명과 교수, 정성욱 촬영감독, 조희대 알고리즘미디어랩 대표, 이병원 픽스게임즈 이사.
03. 그해의 최신 영상 이슈와 신기술을 소개하는 ‘기술세미나’는 LINK OF CINE-ASIA의 시그니처 섹션이다. 올해는 ‘다시 마주하다: 백 투 더 비스타비전’이라는 주제로 최근 라지 포맷 촬영기술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과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웃사람>의 정성욱 촬영감독은 라지 포맷이 촬영기술에 가져온 변화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베오울프> 등의 시각특수효과(VFX)를 맡은 강윤극 세종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교수는 라지 포맷에 따른 후반작업 공정의 예상되는 변화와 과제에 대해 얘기했다. 영화 <부산행> <명량> 등을 작업한 조희대 알고리즘미디어랩 대표는 기존 파이프라인의 변화와 데이터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개선을 주문했다. 픽스게임즈의 이병원 국제사업부 이사는 영화·영상산업의 판도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 OTT 서비스 등 플랫폼의 확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라지 포맷 시대를 대비하는 인프라와 인력의 확충, 기존 작업 공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 각국의 로케이션 정보를 제공하는 ‘RISING ASIA’의 참가자들. 왼쪽부터 진행을 맡은 조대은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운영위원장 대행)과 패널로 나선 케마라 선 캄보디아 영상위원회 필름 커미셔너, 그레이스 스웨 진 흐타익 미얀마 영상개발원 고문, 알렉산드라 라자레바 프리모리예영상위원회 국제 프로젝트 매니저.
04. LINK OF CINE - ASIA의 ‘Rising ASIA’ 섹션은 아시아 3개 지역을 선정해 로케이션과 촬영시설 등 현지 정보를 소개한다. 올해는 러시아의 프리모리예(연해주), 세계적인 문화유산과 캄보디아, 미얀마가 소개됐다. 캄보디아영상위원회 위원인 케마라 선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캄보디아의 문화 유적지에서의 촬영 허가를 신속히 받을 수 있다”며 프랑스와의 국제 공동 제작 협정을 맺고 있기에 캄보디아에서 영화를 촬영하면 유럽과의 접근성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미얀마의 영상개발원 고문 그레이스 스웨 진 흐타익은 미얀마의 독특한 경관을 소개하며 “정부 차원에서 영화 육성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특히 국제 공동 제작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프리모리예영상위원회의 국제 프로젝트 매니저 알렉산드라 라자레바는 아시아 주요 도시와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유럽 대비 60%의 제작 비용이 절감되는 점을 강조했다.
부산아시아영화학교 졸업생이자 ‘BIZ 프로젝트 피칭’의 참가자로 다시 부산을 찾은 이용희 프로듀서.
05. 아직 3회밖에 치르지 않은 행사이지만, 아시아 신진 영화인들을 육성하고 지원한다는 LINK OF CINE -ASIA의 지향점은 프로그램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올해 행사에서는 AFiS 1기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아시아 프로듀서 협의체 ‘뉴아시아프로듀서네트워크’(NAPNet)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NAPNet의 일원으로 올해의 행사에서 <언페이블 로드>라는 작품으로 BIZ 프로젝트 피칭에 참여한 이용희 프로듀서는 “왜 한국 감독과 프로듀서가 타이에서 영화를 찍으려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정승훈 감독은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를 수료했고, 나는 AFiS에서 공부했다. 우린 부산에서 수많은 아시아 영화인들을 만났다. 우리는 아시아 시장의 크기를 보아왔고, 제3자의 눈으로 이들 시장에 들어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이 자리에 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그의 사례처럼 부산을 거점으로 한 아시아 영화인들의 네트워크는 점점 더 견고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