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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오카다 마리의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작
송경원 2018-07-19

언젠가 헤어진다 해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외톨이가 외톨이를 만났네.” 착각하기 쉬운 게 하나 있다. 우리는 같은 시절을 살아간다고 믿지만 사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시간 속을 살아간다. 한 사람의 기억과 삶은 온전히 자신만의 몫이기에 각자가 겪어온 체험은 근본적으로 공유되지 못한다. 그래서, 외롭다. 외롭기에 관계를 맺는다. 인간의 역사란 서로 다른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관계라는 실로 엮어낸 거대한 직물이라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이하 <이별 아침>)는 장대한 시간에 아로새겨진 기억을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풀어낸 애니메이션이다. 중세를 연상시키는 배경에 웅대한 전투 장면, 환상적인 볼거리도 제공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관계의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 한명의 외톨이가 다른 외톨이를 만나 서로의 기억이 되는 시간. 서로가 처한 위치에 따라 관계에는 다양한 이름표가 붙는다. 모정, 애정, 집착, 우정 등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리지만 결국 갈라진 길은 하나로 모아진다. 너와 함께한 시간을 잊지 않겠다는 것. 언젠가 찾아올 이별이 아름다울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이자 희망.

오리지널 왕도(王道) 판타지를 극장에서 마주하는 기쁨

<이별 아침>은 오랜만에 찾아온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대개 TV판, 원작 등 다양한 이야기의 최종 버전으로 극장판이 선택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리지널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자주 제작되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가 크다. 무엇보다 한번도 보지 못했고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에 거대한 제작비와 시간, 인력을 투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은 역시나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 증명된다. 대표 브랜드였던 지브리 스튜디오가 문을 닫은 뒤에도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2016),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메리와 마녀의 꽃>(2017), 호소다 마모루의 <미래의 미라이>(2018년 개봉예정)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이들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는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십분 살리기 위한 선택이겠지만 이 경우 설정 자체가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별 아침> 또한 판타지 무대를 빌려 관계의 깊이에 도달한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왕, 기사, 공주, 용(정확히는 용과 흡사한 디자인의 레나토라는 고생물) 등 이른바 중세풍 왕도(王道) 판타지를 선보인다. 이 모든 설정의 중심에 요르프족이 있다.

수백년의 수명을 지닌, 나이가 들어도 소년 소녀의 모습을 한 요르프족은 긴 수명 탓에 ‘이별의 종족’이라고도 불린다. 요르프족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 일상을 히비오르라고 불리는 천에 짜넣으며 살아가는데 투명하게 빛나는 히비오르에서 이 기록들을 읽을 수 있는 건 요르프족뿐이다. 이야기는 평화롭게 살아가던 요르프족이 메자테 왕국으로부터 침공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메자테 왕국은 하늘을 나는 짐승 레나토의 힘을 빌려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몇 마리 남지 않은 레나토가 레드 아이라는 병에 걸려 죽어나가자 이를 대체할 권위를 찾으려 한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것이 태고의 종족 요르프다. 요르프는 긴 수명과 히비오르 이외에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고대의 존재라는 상징성이 있고, 메자테 왕국은 요르프족 여성들과 혼인하여 고대의 핏줄을 이음으로써 권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요르프족 소녀 마키아(이와이 마나카)는 혼란스런 침략 속에 광폭해진 레나토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마을을 탈출한다. 홀로 먼 숲에 떨어진 마키아는 강도의 습격을 받은 집단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아이를 발견한다. 마키아는 아이에게 아리엘(이리노 마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

<이별 아침>의 장대한 설정은 오직 이 만남을 위한 상상력이다. 영화는 거대한 서사와 작고 조밀한 이야기라는 날실과 씨실로 히비오르를 짜나간다. 장대한 서사의 날실은 요르프족과 세계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마키아의 친구인 레일리아가 왕국에 납치되어 왕자와 강제로 결혼을 하고, 레일리아의 연인이자 친구인 크림이 레일리아를 되찾기 위해 갖은 수단을 쓰는 등 한쪽에는 전쟁 서사의 스펙터클을 중심으로 한 웅장한 무대가 있다. 하지만 영화가 진정 집중하고 싶은 쪽은 마키아의 ‘엄마 되기’, 아리엘의 성장과 정체성의 혼란을 그린 미려한 씨실쪽인 것 같다. 영원을 사는 종족이 인간 아이를 거둬 키워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 사실 슬픔은 예고되어 있다. 요르프족이 이별의 혈족이라 불리는 이유, 격리된 채 살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을의 장로는 마키아에게 당부한다. “만약 요르프 마을을 떠나 바깥세상의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해도 절대 사랑을 해선 안 돼. 사랑에 빠지면 정말 혼자가 될 거야.” 관계가 시작되어야만 헤어짐도 있기에 혼자가 되기 위해선 일단 먼저 둘이 되어야 한다. 마키아와 아리엘은 긴 시간을 거쳐 다양한 관계로 서로를 마주한다. 처음엔 남이었고 아리엘이 성장할 땐 모자였으며, 아리엘이 자란 후엔 동년배 이성을 향한 기이한 감정이 싹튼다. 한 사람이 이 모든 변화를 감당해야 할 때 우리는 어떤 얼굴로 상대를 마주할 수 있을까. 관습적으로는 슬픔에 머물 것 같지만 <이별 아침>은 신파와 눈물 이상의 강인함으로 운명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담는다. 누군가는 모든 걸 끌어안는 그 위대한 사랑을 모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카다 마리’라는 뜨거운 원점

세계에 대응하는 시선을 드러내는 것이 작가의 조건 중 하나라고 하면 <이별 아침>은 작가로서의 오카다 마리를 표현한 분신과도 같은 영화다. 제작사 P.A.WORKS의 호리카와 겐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카다 마리의 100%가 담긴 이야기”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 각본가로 명성을 쌓은 오카다 마리는 이번 작품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드라마, 그중에서도 관계의 다면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데 역량을 발휘해온 오카다 마리는 사춘기의 어두운 경험들을 곧잘 작품에 반영하곤 했다. 히키코모리였던 어린 시절부터 극작가로 데뷔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자서전 <학교에 가지 못했던 내가 ‘아노하나’와 ‘고코사케’를 쓰기까지>에 그 과정들이 잘 담겨 있다(자서전은 현재 <NHK BS> 특집 드라마로 제작중이다).

다소 비현실적인 여성관과 대책 없는 낭만으로 귀결되는 오카다 마리의 이야기들은 이런 체험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결과물이라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막장 드라마 같다는 비판적인 지적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와 같은 과장된 통속성과 낭만적 해결이야말로 오카다 마리 월드로 접속하는 키워드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의 세계관은 작가 오카다 마리의 내면 깊숙이 자맥질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영원을 사는 요르프족은 각자의 시간을 사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요르프족인 마키아, 레일리아, 크림은 강제로 세상 밖으로 내몰린 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변해간다. 마키아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에게 아낌없이 쏟아붓는 사랑을 몸으로 익혀가고, 레일리아는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는다. 크림은 잃어버린 걸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맹목의 감정에 휩싸인다.

<이별 아침>의 이러한 설정은 그 자체로 세계를 마주하는 오카다 마리의 시선을 관통한다. 관계의 다양한 면면을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묘사하는 이야기는 흔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한 여성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일생에 담아내는 구조는 그것만으로도 아이러니한 감정들을 자아낸다. 한편으로 상대와 함께 늙어갈 자유가 없는 요르프족은 세계를 방관하는 신과 다를 바 없다. 아리엘이 늙은 후에 아리엘의 삶을 기억하는 마키아의 모습은 어머니라는 위치를 넘어 거의 세월이란 이름의 신처럼 보일 정도다. 때문에 오직 히비오르의 기록자로서 존재하던 요르프족, 특히 마키아가 세계와 관계를 맺고 필사적으로 주변과 동화되어가는 모습은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격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마키아는 변할 수 없다. 아리엘은 마키아로 인해 변화된 삶을 살지만 마키아에겐 그조차 한 순간에 불과하다.

<이별 아침>의, 이별의 혈족의 진짜 슬픔은 거기에서 배어나온다. ‘나’는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잔혹한 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제대로 보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키아의 마음은 단단한 껍질을 깨고 기꺼이 고통을 직시한 채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는 각오를 동반한다. 방문을 열고 이야기(기록)로 세상과 마주하는 히키코모리의 용기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이유로 모성 서사가 두드러지긴 하지만 이를 굳이 모성이라는 관계에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크고 작은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짧지 않은 상영시간이지만 이야기는 실로 방대하고 종종 급격한 점프와 생략으로 호흡이 가빠지기도 한다. 여성과 모성에 관한 다소 낡은 접근방식 역시 지적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오카다 마리는 그간 지적받아온 자신의 약점들을 감출 생각 따윈 없어 보인다. 히가시지 가즈키 미술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오카다 마리라는 뜨거운 원점에 접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유려한 작화와 환상적인 그림

무엇보다 <이별 아침>은 ‘세계를 그린다’는 명제를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다. 빼어난 작화로 정평이 난 P.A.WORKS가 제작을 맡았고 <택틱스 오우거> <파이널 판타지12> 등 게임 캐릭터 디자인으로 유명한 요시다 아키히코가 캐릭터 원안을 담당했다. 각본과 그림을 연결시키는 작업, 머릿속의 이미지를 물질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은 결국 창작자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각본과 감독을 함께 맡은 오카다 마리의 비전은 그 자체로 본인이 선보이고 싶은 메시지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시나리오 지문에 미처 담지 못했던 감정의 정보량은 최상급 애니메이터들의 손을 빌려 스크린에서 현실로 되살아난다. 특히 유려하고 세밀한 작화와 생동감은 중세 판타지 공간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환상적이다. 반투명한 자태로 하늘거리는 히비오르의 아름다움, 하늘을 활강하는 레나토의 아찔한 비행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마키아와 아리엘이 머무는 헤름 농가의 목가적인 풍경, 디테일을 살려낸 소박한 집 안의 모습 등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따스하게 데워지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쪽빛으로 물든 하늘에 붓끝이 닿은 것마냥 길게 늘어진 구름, 광활한 대지 위에 돋아난 황금빛 작물. 한폭의 그림 위에 선 마키아는 아리엘과 함께했던 과거, 두 사람의 히비오스를 회상하며 울먹이다 결국 크게 울음을 터트린다. 곧이어 푸른 하늘을 가득 메울 듯 퍼져나가는 꽃씨들. 영화는 그렇게 이별의 아침을 위로할 약속의 꽃 같은 장면을 당신에게 선물한다. 그림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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