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홍콩 만다린오리엔탈호텔 24층 객실에서 몸을 던져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했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으로 스타의 입지를 굳힌 장국영은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에 출연하며 배우이자 가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장국영 15주기를 맞아 3월 30일부터 기일인 4월 1일까지, <씨네21>은 그를 추억하며 독자들과 함께 홍콩 시네마 투어를 다녀왔다. 2박3일의 기록을 전한다.
3월 30일, 날씨는 더없이 맑았다. 4월 1일을 즈음하여 홍콩을 찾은 적이 여러 번이지만 15주기 때처럼 날씨가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는 이제 ‘스타의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성광대도(星光大道)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빅토리아항을 끼고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홍콩문화센터까지 길게 이어진 거리였는데, 현재 스타의 거리가 공사 중이라 원래 있던 곳으로부터 페닌슐라호텔을 지나 조금 더 떨어진 침사추이 이스트역 옥상에 스타들의 핸드프린팅과 명판을 옮겨다가 정원을 조성했다. 스타의 거리 자체가 2004년에 조성된 곳이기에, 안타깝게도 한해 앞서 세상을 떴던 장국영은 동료들과 함께 핸드프린팅을 남길 수 없었다.
장국영이 마지막까지 살았던 몽콕 카도리가 32A번지 집을 찾았다. 한때 이곳을 찾아 선물을 남기는 팬도, 장국영을 좇던 파파라치도 많았으나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집이 됐다. 이곳에서 장국영은 임청하가 선물한 개빙고와 함께 지냈다. 그전까지 홍콩의 한적한 부자 동네 리펄스 베이에 살았으나, 2000년대 들어 이곳으로 이사했다. 당시 절친이었던 주윤발이 우울해하던 장국영을 걱정하며 리펄스 베이보다는 분주하고 소음 많은 시내와 가까운 이곳으로 이사하길 권했다고 한다. <영웅본색>을 지금 다시 보며 놀라게 되는 건, 주윤발(1955년생)과 장국영(1956년생)이 겨우 한살 차이라는 것이다.
홍콩을 찾는 첫 번째 관광객들이 무조건 찾는 곳인, 빅토리아 피크의 마담투소 박물관을 찾았다. 같은 시기 열리고 있는 홍콩아트바젤을 방문한 배우 강소라를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다. 아무튼 이곳을 해마다 찾는 기분은 우울하다. 오래전 이곳에서 장국영 밀랍인형의 자리는 무척 넓었다. 커다란 무대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절친 매염방의 밀랍인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진핑의 자리도 마련해야 하고, K팝 스타들의 무대도 따로 만들어야 했기에 통로 근처에 자리해 있다. 게다가 매염방을 떠나보내고 어느 발리우드 스타의 무대가 이웃해 있다. 그래서 4월 1일이 가까워졌는데도 장국영의 노래는 거의 들리지 않고, 오직 마살라 음악만이 크게 들려왔다. <패왕별희>에서 그가 연기한 데이의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3월 31일, 장국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동산 하나로 이뤄진 거대한 납골당인 샤틴 보복산(寶福山)을 찾았다. 홍콩도 부활절 휴일이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가족을 찾아 보복산을 가득 메웠다. 그의 위패가 있는 곳은 보선당(寶禪堂) 965호실 695번이다. 그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해피밸리에 동연각원도 있는데 그곳이 가족들이 조촐하게 마련한 곳이라면, 보복산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거대한 납골당이다. 15주기를 맞아 홍콩과 일본은 물론 한국의 팬들도 수많은 선물과 백합으로 그 앞을 가득 채웠다. 이곳에서 그는 생전 특별한 인연을 나누었던 나문, 심전하와 함께 마치 가족처럼 사이좋게 모셔져 있다. 1945년생 나문은 ‘광둥팝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알란탐과 장국영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화려한 의상과 무대매너로 홍콩 대중음악계를 호령했던 가수다. 그의 창법과 스타일은 가수 장국영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영웅본색>에서 마크(주윤발)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가수 구창모의 <희나리>를 번안한 <기허풍우>라는 노래가 들려오는데, 바로 그 노래를 부른 가수다. 2002년 10월 18일 암으로 사망했는데, 그로부터 5개월 뒤 장국영도 세상을 떴다. 그의 죽음도 장국영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안겨줬을 것이다. 나문과 장국영 사이의 심전하는 홍콩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이자 배우였다. 늘 똑같은 헤어스타일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특유의 풍만한 캐릭터로 유명했다. 그녀의 전남편이 바로 <초류항> 시리즈로 유명한, 정소추다. 심전하 또한 2008년 2월 19일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유해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지만 정소추 사이에 낳은 딸 정흔의가 어머니의 신위를 이곳에 모시고 싶다 하여 장국영의 이웃이 되었다.
장국영이 세상을 떴을 때, 팬들이 가장 많이 떠올린 영화는 <아비정전>이었다. 영화 속에서 아비(장국영)는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게 내 삶의 마지막 장면이었어. 그래서 난 눈을 뜨고 죽을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언제나 결핍의 시간을 보내던 아비는 퀸스 카페에서 휴식을 가졌다.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하던 장소도 퀸스 카페다. 코즈웨이베이에 있던 퀸스 카페는 2000년대 들어 문을 닫았다가, 몇년 전부터 홍콩 영업을 재개했다. 가장 닮은 곳은 노스포인트 지점이다. 창가의 커튼 느낌이 비슷한 데다 장국영, 장만옥, 장학우, 왕가위 등이 사인을 한 <아비정전> 포스터 액자가 걸려 있다. 수리진(장만옥)과 경찰(유덕화)이 만나던 캐슬 로드의 공중전화 부스와 똑같이 생긴 부스도 한가운데 자리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카페 입구의 ‘퀸스 카페’ 글자다. ‘QUEEN’S CAFE’ 글씨가 닳아서 페인트칠이 벗겨진 것까지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드디어 만다린오리엔탈호텔을 찾았다. 해마다 4월 1일이 되면 호텔 옆은 생전 그가 좋아했던 백합과 팬들의 편지로 발디딜 틈이 없다. 3월 31일 오전 10시부터 4월 1일 자정까지 전시된다. 15주기인 올해도 변함없이 많은 팬들로 가득했다.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장미로 장식한 거대한 빨간 하이힐이다. 장국영 최고의 콘서트 중 하나인 <97 과월 콘서트>에서 그는 빨간 하이힐을 신고 <홍>(紅)을 불렀다. 홍콩이 본토에 반환되는 1997년을 코앞에 앞둔 1996년 12월 31일 열렸던 그 콘서트는, 연출의 상당 부분을 장국영이 직접 구상했다. 사실 이때 장국영은 <해피 투게더>를 촬영 중이었다. 예정대로 촬영을 끝내고 아르헨티나에서 돌아와 7월부터 콘서트 준비에 집중하려 했으나, 촬영기간이 늘어나 결국 10월부터 콘서트를 준비했다. 비록 준비기간은 짧았지만 <해피 투게더>를 촬영하던 당시의 정서가 이 콘서트에 깊게 배어 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후 장국영 5주기 추모 콘서트 <Miss You Much Lesile>에서 막문위가 그를 따라 빨간 하이힐을 신고 <홍>을 부르기도 했다.
4월 1일, <연지구>의 촬영장소인 섹통추이의 영화 속 의홍루 자리를 찾았다. <연지구>에서 장국영은 처음으로 경극 분장을 했는데, <연지구>가 없었다면 <패왕별희>도 없었을 것이다. 1930년대와 1987년, 두개의 시간대를 오가는 <연지구>에서 진방(장국영)은 경극 배우를 꿈꾸는 섹통추이의 부잣집 아들이다. 의홍루의 기녀 여화(매염방)와 신분을 초월한 사랑에 빠지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죽기로 했지만 진방은 살아남고, 여화는 죽어서 홀로 저승으로 가게 됐다. 저승에서 50년간 진방을 기다리던 여화는 진방을 찾아 이승으로 다시 온다. 그리하여 1987년, 다시 태어나면 3월 8일 11시에 만나자고 약속했던 의홍루 앞으로 간다. 하지만 의홍루는 유치원으로 바뀌었고, 그 위로는 큰 고가도로가 생겼으며, 진방은 나타나지 않는다. 트램의 종점으로부터 먼 섹통추이는 몇년 전만 해도 여간해서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홍콩대학 지하철역이 이 장소 코앞에 생겨서 편하게 찾아올 수 있게 됐다. 5년 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얼마나 힘들게 묻고 물어서, 그리고 높은 고가도로가 보이는 곳까지 무작정 걷고 걸어서 찾아냈는지 기억에 선하다. 생각해보니 1987년으로부터도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주기를 맞아 썼던 책으로부터 많은 부분을 인용하였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주성철 지음 / 흐름 출판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