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선택한 차세대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를 만났다. 그는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첫 번째 <스파이더맨> 영화의 주연이자, 이제 갓 스무살이 된 풋풋한 런던 출신의 영국 배우다. 한국 관객은 톰 홀랜드를 재난영화 <더 임파서블>(2012)에서 다친 엄마를 돌보며 아빠와 동생들을 찾아나선 어리지만 강한 소년 루카스로 처음 만났을 것이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이하 <시빌 워>, 2016)에서는 스파이더맨이 된 지 얼마 안 돼 흥분한 모습으로 잠깐 보았을 것이다. 이전까지는 그를 얼굴과 캐릭터로 기억했다면, 이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오는 7월 7일 전세계에 공개되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으로 생애 첫 주연을 맡은 배우 홀랜드는, 첫 주연 영화라서 느낀 무거운 책임감과 스파이더맨의 큰 책임감 사이의 유사점을 보았기에 자신의 감정을 영화에 반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하는 총명하고 반짝이는 배우였다. 지난 3월, 활짝 필 준비를 마친 홀랜드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그날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봤다.

키워드1. 세번째 '스파이더맨'

복잡하지만 한번은 설명하고 넘어가자. 곧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21세기 들어 만들어지는 세 번째 <스파이더맨> 3부작의 첫편이다. 첫 두 시리즈는 소니픽처스가 판권을 가진 이유로 샘 레이미 감독과 마크 웹 감독의 손에서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탄생했다.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이 만든 <스파이더맨>은 당시 신인이나 다름없던 토비 맥과이어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함께 출연했던 제임스 프랭코와 커스틴 던스트에게도 유명세를 안겨주었다. 영화가 흥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억3900만달러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전세계에서 8억217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시리즈로 발전했다. 2004년에 <스파이더맨2>, 2007년에 <스파이더맨3>까지 만들어진 뒤 레이미-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탄생했다. <500일의 썸머>(2009)를 만든 신인 감독 마크 웹과 역시 신인에 가까웠던 배우 앤드루 가필드를 기용해 만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1, 2>에서 스파이더맨과 그 연인을 연기한 앤드루 가필드와 에마 스톤은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는데, 전세계적인 스타덤도 따라왔다. 그 뒤 소니는 몇 가지 조건 아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영입하는 것을 허락했다.

앞선 두 시리즈가 연대기적 순서에 놓여 하나의 프랜차이즈로 볼 수 있다면, 이번에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시간적으로 <시빌 워>로부터 몇달 뒤를 그려낸다. 또한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나이도 이전 영화들보다 어려졌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피터 파커는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고, 예쁜 선배를 티나게 흠모하는 15살 소년이다. 돌연변이 거미에 물려 슈퍼히어로가 된 것만 뺀다면, 더없이 평범하다. 바로 이 점이 소니의 두 스파이더맨들과 마블의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가장 구별되는 점이다.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루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물론 시작은 고등학생이었지만) 성인이 된 스파이더맨에 대한 영화였다면, 톰 홀랜드가 연기할 스파이더맨은 아직은 어린 소년이 이제 막 얻게 된 슈퍼파워와 평범한 삶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성장담을 표방한다. 시리즈의 전통에 따라 청춘스타 자리를 예약한 톰 홀랜드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포함해 스파이더맨이 주인공인 영화 3편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 3편에 출연하기로 계약한 상태다.

키워드2. 몸연기에 익숙한 홀랜드의 액션

‘슈퍼히어로물을 가장한 성장영화’라고 존 와츠 감독은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액션영화를 위한 레이블이다. 그렇기에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액션 장면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영화의 재미 또한 액션 장면들에 크게 의지한다. 최첨단 스판덱스 슈트를 입은 스파이더맨이 초고층 건물 사이를 거미줄 하나에 의존해 고무공이 튀기듯 날아다니는 장면은 그저 때리고 부수는 액션이 아니라 유연하고 부드러운 소년의 액션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건 배우 톰 홀랜드 덕분에 가능했다. 힙합 클래스를 시작으로 윔블던의 댄스스쿨에 입학해 10살에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연을 따낸 그는, 오랜 연습과 훈련으로 단련된 신체의 소유자다. 소니의 제작자인 에이미 파스칼이 홀랜드를 스파이더맨으로 낙점한 이유가 그의 돋보이는 몸연기 때문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어린 시절부터 스파이더맨의 팬이라, 방에서 혼자 거미줄을 쏘는 포즈를 몇 천번을 따라했을 거라는 홀랜드는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의 액션은 다른 어떤 슈퍼히어로들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객이 얼굴이 아닌 움직임만 보고도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랜드는 선배 스파이더맨들의 포즈를 연구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새로운 포즈도 만들어냈고, 85일 동안의 촬영기간 동안 세컨유닛이 담당하는 대역의 움직임을 연출하는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전체 액션 장면의 90%를 직접 촬영한 덕분에 신체적 고생이 많았다. 영화의 악당인 악당 벌처(마이클 키튼)와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펼치는 대결 장면을 촬영할 때는 무려 1주일 동안 거꾸로 매달린 채 연기한 탓에 온 허벅지에 피멍이 들었고, 해변에서의 액션 장면은 촬영 뒤 몇주가 지나도 몸에서 모래가 나올 정도로 혹독했지만, 두 장면 모두 톰 홀랜드에 따르면 “관객이 두고두고 이야기할” 멋진 시퀀스로 탄생했다.

키워드3. 아이언맨 VS 벌처

생각해보면 톰 홀랜드는 행운아다. 스타덤이 예약된 역할을 따낸 것도 그렇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이클 키튼과 함께 첫 주연영화도 찍었다. 그 스스로도 “대단한 행운이며 특권”이라고 말한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피터 파커는 뉴욕 퀸스의 좁은 아파트에서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와 함께 살아간다. 그런 피터에게 두명의 멘토가 다가온다. <시빌 워>에서 만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뉴욕에서 고철처리장을 운영하는 에이드리언 툼스/벌처(마이클 키튼)이다. 둘의 등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서가 아니라,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벌처 캐릭터와 아이언맨이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존 와츠 감독이 에이드리언 툼스를 두고 “어두운 토니 스타크”라고 설명한 것과, “많은 성인 관객은 벌처의 입장과 말에 설득당할 것”이라고 한 것도 그래서다. 멋진 슈트와 화려한 말솜씨, 누구에게나 매끄러운 행동의 토니 스타크와 옷차림은 털털하지만 성공한 사업가이며 거친 매력을 뿜어내는 에이드리언 툼스는, 어른의 세계를 동경하는 소년에게는 가져보지 못한 아버지이며 롤모델이다. “넌 누구냐? 스파이더 보이냐?”는 토니 스타크에게 “스파이더맨…”이라고 말꼬리를 흐리던 피터 파커는, “토니는 나를 아이로만 본다”고 분개한다. 그런 피터 앞에 나타난 에이드리언은 그를 어른처럼 대우해주며 악의 세계로 꼬여낸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의 타락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만나기에는 조금 이른 이야기일지 모른다. “스파이더맨이 이토록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옳은 일에만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홀랜드의 말처럼, 이번 영화에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벌처와의 끔찍한 대결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 장면 또한 홀랜드에 따르면 꽤나 기대된다. “아직 아이인 피터를 향해 벌처가 행사하는 무자비한 폭력에 동요하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키워드4. 스파이더맨의 친구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피터 파커는 수업시간에 딴생각을 하고, 짝사랑하는 선배의 졸업파티 파트너로 간택되는 꿈을 꾸는 순진한 소년이다. 이런 피터에게 더 순진한 친구가 있었으니, 네드(제이콥 바탈론)다. 여느 날처럼 메이 숙모 몰래 아파트를 빠져나가 도시의 악을 상대하고 살금살금 창문으로 돌아온 피터는, 침대에 앉아 그를 기다리던 친구 네드에게 스파이더맨이라는 정체를 들키고 만다.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기엔 너무 늦은 상황. 내 친구가 스파이더맨이라니, 15살 소년들이 감춘 신나는 비밀에 “큰 책임감”이 따를 리 없다. 네드는 피터가 평소 좋아해온 선배 리아에게 “피터가 스파이더맨을 안다”고 말해 친분을 쌓는다. 몸에 딱 붙는 스파이더맨 슈트를 뚱뚱한 네드가 빌려서 입어보는 것도 철없는 소년들 사이의 즐거운 한때다. 둘 사이의 비밀은 조용하지만 예리한 눈빛의 소녀 미셸(젠다야)에게 여러 번 들통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공개된 예고편을 보면 피터는 리아와 졸업파티에서 짧은 키스를 나누는데 키스가 끝난 뒤 “갈 데가 있다”며 리아를 떠나는 걸 보면, 피터와 미셸 사이의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키워드5. 신인 감독의 블록버스터 데뷔

<스파이더맨: 홈커밍>이 톰 홀랜드(사진 오른쪽)의 데뷔작은 아니다. 감독인 존 와츠의 연출 데뷔작도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런 규모의 영화에 도전하는 건 처음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존을 돕고자 했다. 이런 기회가 그에게 처음이라는 걸 알았고, 그가 지났던 그림자를 나 역시 지나왔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주연배우인 톰 홀랜드에게는 “첫 주연 영화”라는 의미에서 특별했고, 감독인 존 와츠에게는 첫 상업장편영화, 그것도 마블 스튜디오가 만드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경력의 발돋움판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존 와츠가 <스파이더맨: 홈커밍> 감독으로 발표됐을 때, 팬들은 조금 놀랐을 것이다. 그때까지 와츠는 연출작이 옴니버스영화를 포함해 3편에 불과한,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블록버스터의 감독을 선택할 때, 인상적인 데뷔작을 가진 신인 감독을 선호하는 건 요즘의 트렌드다. 유니버설 픽처스가 <쥬라기 월드>를 제작할 때 알려진 영화라고는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 한편뿐이었던 콜린 트러보로를 선택한 경우나, <500일의 썸머>를 만든 마크 웹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라는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감독으로 발탁된 것이 그렇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존 와츠도 마찬가지다. 일라이 로스가 제작한 공포영화 <클라운>(2014)으로 장편 데뷔한 와츠는 케빈 베이컨 주연의 로드 스릴러 무비 <캅 카>(2015)를 연출한 경력으로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감독 자리를 꿰찼다.

이런 식의 감독 발굴을 두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도박이라고 부른다. 잘 되면 승승장구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영화도 감독도 다음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로니클>(2012)의 조시 트랭크는 <판타스틱4> 리부트의 흥행 실패와 함께 다시는 언급되지 않는 이름이 됐지만, 콜린 트러보로는 <쥬라기 월드>의 흥행성공 뒤 <쥬라기 월드2> <스타워즈: 에피소드9>의 감독으로 내정됐고, <더 북 오브 헨리>를 최근 개봉했다. 전통적으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기수마다 하나의 감독을 두었다. 샘 레이미는 토비 맥과이어가 출연한 영화를 모두 연출했고, 마크 웹은 앤드루 가필드의 영화를 모두 연출했다. 존 와츠가 톰 홀랜드와 이같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흥행성적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