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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문라이트>, 밤의 해변에서 둘이
주성철 2017-03-03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문라이트>를 서둘러 챙겨본 것은 순전히, 배리 젠킨스 감독 스스로도 얘기했듯 왕가위 영화의 향기가 느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솔직히 크게 느끼지 못했고 잘 따라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어떻게 그 기분을 내보고자 했는지 그 애초의 마음만은 잘 알 것 같았다. <아비정전>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는지는, <필름스테이지>에서 편집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관계없이 왕가위를 좋아하고 블랙무비도 좋아하는 입장에서, 흑인 주인공의 삶을 담은 한편의 LGBT영화로서 좋았다. 그런 점에서 남녀 조연연기상을 각각 흑인 배우들인 <문라이트>의 마허샬라 알리, <펜스>의 비올라 데이비스에게 주고 <문라이트>에 작품상까지 안겨준 올해 아카데미는 꽤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2013년 4월12일,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소재로 한 <42>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을 때(재키 로빈슨을 연기한 채드윅 보스먼은 이후 ‘블랙 팬서’가 되어 승승장구 중이다), 흑인 감독 말콤 D. 리의 코미디 <무서운 영화5>(2013)는 박스오피스 2위였다. 에바 두버네이의 <셀마>(2014), 돈 치들의 <마일스>(2015)처럼 전자와 유사한 역사/실존인물/실제사건 영화, 그리고 팀 스토리 감독, 아이스 큐브 주연 <라이드 어롱> 시리즈처럼 후자와 함께 묶이는 코미디영화, 그렇게 양극단에 자리한 영화들이 지금껏 상업 블랙무비의 중요한 두축이었다. 그런데 <문라이트>는 두축 모두 추구하고 있는, 영화에서 이른바 ‘흑형’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인권을 위해 싸우거나, 시끄럽게 웃기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하는, 흑인 사회 내 남성성 강요의 고정관념을 억압받는 소수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며 벗어난 작품이었다. 거기에 <아비정전>과 <해피 투게더> 사이 ‘왕가위적 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1961년 4월12일, <아비정전>에서 필리핀까지 찾아갔지만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친어머니에게 “나도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라며 돌아서서 씩씩하게 걷던 아비(장국영)의 뒷모습, 하지만 친어머니와 달리 테라스에서 돌아보는 계모(반적화)의 마지막 모습을 정면 숏으로 우아하게 담아낸(그전까지는 아비에게 “그래, 우리 같이 죽자”며 사납게 싸우던) 카메라는 <문라이트>의 아들과 엄마에게도 겹쳐진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해피 투게더>를 연상시키는, 마이애미로 떠나는 샤이론(트레반트 로즈)의 차 위로 흐르는 카에타누 벨로주의 <쿠쿠루쿠쿠 팔로마>는 이제껏 보지 못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마크 레빈의 <슬램>(1998) 이후 처음으로 느껴본 낯선 블랙무비의 정조였다. 물론 두 영화 모두 흑인 사회 내에서 범죄와 빈곤의 대물림에 대한 묘사를 잊은 건 아니었다. 어쨌건 이제는 왕가위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그 시절을 그렇게라도 느껴본 건 고마운 일이었다. 이번호 영화비평에서 시인 황인찬과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글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이번 1095호와 다음호에 걸쳐 김성훈, 정지혜 기자가 진행한 대선 주자 인터뷰를 나눠 싣는다. 이번호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인터뷰가 실리고 다음호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희정 충청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을 만날 수 있다(두 호 모두 이름은 가나다순이다). 문화예술 산업, 특히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후보들의 철학과 생각에 귀기울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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