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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터] 현실의 나처럼 - <그래, 가족> 이요원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7-02-14

‘가족’이라는 단어는 배우 이요원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말처럼 보였다. 명석한 두뇌와 빈틈없는 말투, 강인한 생존력으로 무장한 이요원의 분신들은 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 유리천장을 깨부수려 하는 자수성가형 인물에 가까웠다. <그래, 가족>의 방송사 기자 수경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 일 잘하는 ‘알파걸’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 앞길을 막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존재의 무거움을 그녀가 어떻게 안고 가는지 지켜보는 건 <그래, 가족>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전력질주하던 인물에서 벗어나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던 이 영화는 이요원에게 어떤 것들을 남겼을까.

-영화에 출연하는 건 <전설의 주먹> 이후 4년 만이다. 그동안 <황금의 제국>이나 <불야성>처럼 감정적으로 치열하게 연기해야 했던 작품들이 많았다. 차기작으로 가족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한동안 일상 연기, 생활 연기와는 거리가 먼 작품들에 출연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래, 가족>의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다. 수경이라는 인물이 최근에 내가 맡아보지 않은 유형의 캐릭터라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영화 속 수경은 코믹한 모습도 있고 능청스러운 모습도 보여줘야 하니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점에 끌렸다.

-수경을 어떤 인물로 이해했나.

=형제가 여럿 있는 집의 전형적인 둘째딸이라고 생각했다. 오빠가 장남이라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동생들은 동생이기 때문에 챙겨줘야 하는. 또 형제들 가운데에서 능력이 가장 좋아 다들 기대려 하는 인물이다. 주변에도 보면 그런 가족이 많잖나.

-가족이 처음으로 모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수경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혼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 끝까지 벗지 않는 인물인데.

=감독님의 아이디어였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찌됐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건 수경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을 거다. “말은 냉정하게 해도 얘는 아마 혼자서 울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느라 빨개진 눈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수경이라면 아마 형제들에게 자기의 감정을 보이고 싶지 않을 테니 선글라스를 끼는 게 어떠냐”고 감독님께서 제안을 하셨는데 결과적으로는 흥미롭게 표현된 것 같다.

-가족으로 출연하는 세 배우, 정만식, 이솜, 정준원과는 이전에 호흡을 맞춰본 적이 없다.

=그렇다. (<그래, 가족>의 보도자료 속 정준원의 사진을 손으로 짚으며) 이 친구도 처음 알게 됐다. 어린 친구인데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많이 했더라. 평소에 그런 영화를 안 봐서 어떤 친구인지 잘 알지 못했다.

-어둡고 무게감 있는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나. 영화 취향이 궁금하다.

=연기할 때는 힘든 역할을 맡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희한하게 정극 드라마에 끌렸다. 그런데 영화를 볼 때는 반대로 밝고 따뜻하고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작품에 끌린다. 최근에는 <라라랜드>와 <너의 이름은.>을 재미있게 봤고, <신비한 동물사전>이나 <마션> <인터스텔라> 같은 작품을 좋아한다.

-다시 배우 얘기로 돌아가보자.

=재미있는 게 다들 영화 속 캐릭터랑 비슷한 부분이 있다. 만식 선배님도 처음에는 무서울 것 같다고 생각 했는데 영화 속 큰오빠처럼 귀여우시다. 솜이씨는 실제로도 현장에서 준원이와 잘 어울렸고, 영화 속 셋째처럼 엉뚱한 구석도 있더라. 그렇게 우리가 현장에서 맺고 있었던 관계의 ‘케미’가 영화에도 반영된 것 같다.

-오이냉국을 뒤집어쓰거나 형제들과 끊임없이 티격태격 하는 등 ‘생활 연기’를 오랜만에 해보니 어떻던가.

=드라마는 대사가 중요하잖나. 대사에 맞춰 어떤 포인트에서 힘을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텐션을 줄지 고민 하며 촬영에 임한 순간이 많았다. 이번에는 많은 생각을 안 하고 매 상황에 맞게 현장에서 부딪쳐보려 했다. 드라마 <불야성>을 찍다가 <그래, 가족>의 후시녹음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그때 깜짝 놀랐다. 내가 당시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그만큼 어떤 상황 속에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려 했다.

-드라마 <불야성>이 얼마 전에 끝났다. 이 작품에 열광하는 ‘부랴리언’들의 팬덤이 굉장하더라. 인기를 실감하나.

=SNS를 안 해서 잘 몰랐는데 마니아들이 많다고 해서 트위터에 들어가본 적이 있다. 정말 이 작품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신기했다.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왜 시청률은 안 나왔을까. (웃음)

-<불야성>이 사랑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한국영화,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워맨스’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고 키워주는 캐릭터가 그동안의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는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브로맨스는 있었어도.

=여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여성들의 연대에 대해서라면 이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경과 세진(유이)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 조금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더라. 내가 연기했던 서이경이란 인물이 정말 멋있는 여자잖나. 그렇기 때문에 여성 시청자분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돈도 백도 없는데 아버지뻘 되는 남자들을 들었다놨다 하고, 똑똑하고, 이제까지 드라마에서 남자배우들이 했을 법한 멋있는 대사들을 하고. 그런 데에서 대리만족을 느끼시는 게 아닐까? 나 역시 그랬고.

-배우 생활을 하면서 이경처럼 끌어주는 여성 멘토의 존재를 느낀 적이 있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점이 아쉽지는 않았나.

=다른 배우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와 쉽게쉽게 친해지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선배님들에게 무엇을 여쭤보기도 참 조심스러워하는 성격인데, 달리 생각해보면 선배 입장에서도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준다는 게 조심스럽지 않을까. 그래도 김미숙, 송옥숙 선생님과 연기했던 경험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들은 아무리 대사량이 많아도 NG를 거의 내지 않으신다. 휘몰아치는 감정 신도 한번에 가시고. 어린 마음에 그런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고 내가 민폐가 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에 그분들의 모습이나 자세를 보고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패션 70s>와 <선덕여왕>, <황금의 제국>과 <불야성> 등 목표가 확실하고 자수성가하는 인물들을 종종 맡아왔는데, 그런 인물들에 끌리는 편인가.

=그렇다. 적극적이고 자신이 주체가 되는 여성 캐릭터에 내가 좀 끌리는 것 같다.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며 얻게 되는 자극과 에너지가 크다.

-<불야성>의 이경이 할 법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최근 배우로서의 욕망이 있다면.

=누구나 큰 욕망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걸 숨기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이 욕망만 쫓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내 인생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실패했을때 그걸 극복할 멘털이 없으면 한순간에 망가지는 거거든. 나 역시 배우로서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그걸 못하더라도 ‘내 것이 아닌가보다. 또 좋은 게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마인드 컨트롤은 언제부터 가능했나.

=데뷔하고 얼마 안 있어 나의 위치를 빨리 터득했다. 보통 신입 때 다양한 역할을 맡아보잖나. 누군가에게 밀리고, 무시도 당해보고, 열심히 했지만 반응이 없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걸 본 적도 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하다가 내 위치와 나의 그릇을 판단했다고 할까.

-정말 현실적이다.

=내가 그렇다. 굉장히 현실주의자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의미에서 2017년의 목표가 있다면.

=올해는 기존에 안 해봤던 캐릭터를 맡아 연기해보고 싶다. 편안하고 친근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 가족>이 그 출발점이 될 것 같다.

드라마 <불야성>, 그녀가 그녀를 만났을 때

“딱 한 시간만 내가 돼줘요, 세진씨.” 욕망의 방아쇠를 먼저 당긴 건 이경(이요원)이었다. 모든 걸 다 갖췄지만 돈이 없어 무시당하는 세진(유이)의 서러움과 욕망을 이경은 정확히 간파해낸다. 그리고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만, 담백하고 덤덤하게 자신의 카드를 내민다. 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나 대신 미술품 거래상을 만나러 가달라고. 스스로의 욕망을 지금 막 깨닫게 된 후배의 눈이 반짝일 때, 그런 그녀로부터 훗날의 일들을 도모하려 하는 선배의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복잡다단한 뉘앙스를 표현해야 했던 이요원의 세밀한 연기가 빛을 발한 순간이다.

영화 2016 <그래, 가족> 2012 <전설의 주먹> 2012 <용의자 X> 2007 <화려한 휴가> 2005 <광식이 동생 광태> 2002 <서프라이즈> 2001 <고양이를 부탁해> 1999 <주유소 습격사건> 드라마 2016 <불야성> 2016 <욱씨남정기> 2013 <황금의 제국> 2012 <마의> 2009 <선덕여왕> 2007 <외과의사 봉달희> 2005 <패션 70s> 2002 <대망> 1999 <학교>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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