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전세계 12개 지역에 외계비행물체 셸이 동시다발로 출현한다. 450m에 달하는 거대 비행체가 가만히 서 있을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자 각국 정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외계인과 접촉을 시작한다.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애덤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은 외계인과 대화를 시도하고 소통을 위해 서로의 문자를 배워나간다.
상당히 지적인 영화다. 장면마다 여러 가지 복선과 의미를 품고 있어 차분히 뜯어볼수록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준다. 그렇다고 어렵지는 않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장기는 장르적 외피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SF 스릴러를 표방한 이 영화는 긴장과 호기심을 버무려 관객이 시선을 뗄 수 없도록 끝까지 끌고 간다. 차분한 카메라와 관객의 긴장을 유지시키는 장면 구성력은 관객을 인물의 심리와 완전히 밀착시켜 몰입을 유도한다. 반면 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깊고 정적이다. 영화를 처음 접할 때와 전체 서사를 알고 난 뒤의 풍경이 전혀 달라지는 영화로 단순히 놀라게 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데뷔작 <그을린 사랑>(2010)부터 전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까지 ‘세계, 경계, 폐쇄’라는 화두에 천착해온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압축, 정리한다. 그가 테드 창의 SF소설 모음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선택한 것도 납득이 간다. ‘외계생명체의 언어’를 중심으로 소통과 화합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에서 외계인들이 굳이 12개 지역에 나뉘어서 지구인들과 접촉하는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언어를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계인들보다 더 소통하기 어려운 각국의 모습은 개방과 폐쇄정책을 둘러싸고 양분되고 있는 현재의 세계 정세를 투영한 상징적 이야기로 거듭난다. <프리즈너스>(2013),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호흡을 맞춘 음악감독 요한 요한슨의 사운드가 복잡해질 수 있는 플롯과 숏의 변화를 하나의 톤으로 우아하게 통일시킨다. 해결 방식이 다소 느슨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나치게 착한 구석이 있지만 드니 빌뇌브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엔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