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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다가오는 소리
김혜리 2016-10-05

<다가오는 것들>

다른 사람과 살고 싶다는 남편의 통보를 받은 철학 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는 옛 제자 파비앙(로만 콜린카)에게 이 소식을 처음 들려준다.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관계다. 안이한 이야기였다면 나탈리와 파비앙의 관계는 연애로 흘러가고 지적인 중년 여성의 위기는 젊은이와의 사랑으로 돌파됐겠지만 <다가오는 것들>은 그보다 포부가 큰 영화다. 파비앙이 이 이야기에서 맡은 역할은 응급용 연인이 아니라 교사인 나탈리가 노년에도 계속 만나고 토론해야 할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목소리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이 생각하는 60대 여성에게 다가오는 이슈는 이혼과 사별만이 아니라, 시니어 시민으로서 사회에서 본인의 위치를 검토하는 과제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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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눈질과 모른 척, 훑어보기와 훔쳐보기. <밀정>은 많은 대사를 시선이 대신하는 영화다. 물론 시선의 위치와 교차를 정확하고 부드럽게 연결한 촬영과 편집이 없었다면 이 재미는 설계에만 그쳤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첫 관람을 하며 의열단이 경성역에 도착할 때까지의 스토리보드를 그래픽노블로 읽으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했다. 오늘 두 번째로 영화를 보며, 시험 삼아 대사에 얼마간 귀를 폐쇄하고 (눈으로 치면 초점을 맞추지 않은 상태로) 표정과 움직임, 음향의 덩어리로서 영화를 따라가보았다. 상당한 드라마와 감정의 흐름을 무리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경부 이정출(송강호)과 비밀 의열단원 김우진(공유)이 사진관에서 첫 대면한 다음 서로를 탐색하기 위해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는 장면전환은 디졸브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일종의 자각몽이 시작되고 있다는 묘한 인상을 만든다. 영화 전체에 걸친 이정출의 궤적을 돌아보면 이 만남은 확실히 몽환적 미로의 입구이기도 하다. 여기서 두 남자는 목적을 위해 연기 중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모조리 거짓은 아니다. 이 시퀀스가 취기 속에서 제정신 차리기라면, 정채산(이병헌)까지 세 인물이 상하이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말술을 마시는 장면은 제정신인 채 취하기를 보여주는 대구다. 상하이 말술 신에 이르러서도 촬영과 편집은 두드러지게 긴장을 늦추고 ‘칸타빌레’(cantabile)로 악상기호를 전환한다. 분위기가, 화면에 보이는 사건의 진행을 앞질러 해당 장면이 갖는 궁극적 의미와 인물의 운명을 예고하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밀정>은 매우 매력적이고 야심만만한 방식으로 음악을 구사하는 영화다. 루이 암스트롱, 드보르자크, 라벨의 기성곡은 아예 뮤직비디오처럼 시퀀스를 통째로 포장하도록 사용한 반면, 오리지널 스코어는 멜로디를 과감히 버리고 음과 여음, 음정과 음정 사이의 거리를 활용한다(모그의 이은주, 우주 등이 맡았다). 모든 악기가 타악기처럼 들리는 <밀정>의 음악이 음향에 가까운 스타일이라면, 극중 사운드를 배경음악 대신 활용한 신들도 솔깃하다. 벽 너머에서 몰아치는 외풍이 의열단 단원들의 밀담을 더욱 긴급하게 만들어주는 아지트 장면, 샹들리에의 수정이 서로 부딪혀 위협적인 풍경(風磬)을 연주하는 기차 식당칸 액션 신은 달리 음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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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부터 등장하지만 이제 그의 등과 어깨가 그리는 각도만으로도 관객에게 소개는 충분하다. 9월10일 일기에서 나는 <밀정>의 송강호가 김지운 감독이 지어올린 영화의 나머지 전부와 마주서서 저울의 균형을 맞춘다고 썼다. 이정출 역은 <사도>의 영조 역에 이어 ‘플러스 난이도’의 캐릭터다. <사도>의 영조가 관객의 호감과 연민을 경유하지 않고 인물을 성립시키는 연기를 요했다면 <밀정>의 이정출은 막판까지 본인도 어디로 가는지 몰라야 하는 사람이다. 그는 극중에서 공작을 할지언정- 별로 잘하지 못한다- 관객에게 패를 숨기고 있는 인물은 아니다. 송강호의 이정출은 상대를 속이려들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모호하다. 김장옥(박희순) 검거 과정에서 체포된 주동성(서영주)을 대뜸 풀어줬을 때 그는 단순히 너그러웠던 것인가 아니면 의열단 내부에 분열의 씨앗을 심은 것인가? 정채산을 얽어 넣겠다고 계략을 짜는 이정출도 진심이고, 막상 정채산이라는 거인을 만나자 반사적으로 존경 어린 목례를 하는 이정출도 진실하다. 한편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딱 떨어지지 않는 모호함을 표현하는 송강호의 중요한 도구는 유머다. 비극 안에서 미량의 웃음을, 희극 안에서 슬픔을 발견하는 데에 그는 도가 텄다. 건조하다 못해 소금기가 허옇게 올라오는 하드보일드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갈비뼈에 단도로 꽂힌 판결문을 읽어보려고 동진이 고개를 외로 꼬는 순간, <박쥐>에서 뱀파이어가 그리 악할 것도 없음을 강변하는 상현이 간절한 횡설수설을 늘어놓는 순간, 우리는 비애의 와중에도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웃음은 영화의 톤을 무너뜨리는 법이 없다. <밀양>의 카센터 사장 종찬의 경우에는, 어느 장면이라고 따로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사건의 표면과 엇나가는 미세한 아이러니를 감식해 대담하게 연기에 반영하는 송강호의 습성은, 무거운 이야기를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관객 친화적 ‘서비스’가 아니라, 극중 사태를 풍성하게 하는 긴요한 방법이다. 그리고 김지운 감독은 이 배우와 작업한 감독 가운데, 송강호가 말하고 행동하다 ‘마’가 뜰 때 생성되는 묘한 뉘앙스에 가장 민감한 연출자다. <반칙왕>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충분히 보여준 대로 김지운은 송강호가 한산한 공간을 가로지르거나, 덩그러니 서 있을 때 발생하는 ‘거시기한’ 공기를 재빨리 나꿔챈다. 정채산이 가져온 술동이 앞에서 덜 깬 눈을 껌벅일 때, 어이없이 커다란 도자기를 선물로 챙겨 옆구리에 끼고 다닐 때, “야, 내가 밀정이야! 원래 내가 하는 일이야”라고 공작 대상 앞에서 속 터져 할 때 우리는 김지운이 해석한 판본의 송강호를 다시 즐길 수 있다. 많은 감독들은 송강호를 가리켜 행복한 뒤통수 맞기의 체험을 말한다. 예상한 정답을 벗어나는 답을 카메라 앞에 내놓아 애초 주문한 아이디어가 비좁았음을 깨닫게 한다는 감탄이다. <밀정>에도 송강호의 간단한 대사 톤에 흠칫 하는 순간이 있다. 비서 김사희(최유화)가 갖고 온 첩보 봉투를 보고 “이게 왜 뜯어져 있어?”라고 묻는 억양, 쓰러진 상대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제명을 단축하나?”라고 경멸과 애석을 뭉뚱그려 내뱉을 때 나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감독과 배우 사이에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특정 연기가 필름에 남게 되었는지는 구경꾼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지만 ‘과연! 아마 이런 것인가’ 싶다.

한 배우의 용적을 이만큼 활용하는 영화가 여성 캐릭터들에게는 진부한 접근에 그치는 모습은 특별히 더 아쉽다. <밀정>에서 대사가 주어진 여성 인물인 연계순(한지민)과 김사희의 묘사는 상투형을 벗어나지 않는다. 내러티브에서 그들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느냐 마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연계순은 정예 의열단원으로 설정돼 있지만 영화가 그리는 그녀의 투쟁방식은 고답적이다.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로 타락한 여자로 위장해 위기를 넘기고, 감정에 휘둘려 사진을 남기는 바람에 일본 경찰에 꼬투리를 제공하고 검문에서 발각되자 성급히 총을 꺼내 사태를 악화시킨다. 그때까지 냉정한 중간 리더였던 우진은 사랑하는 그녀가 맞는 모습에 흥분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뻔한다. 그리고 그녀는 가련하게 피흘림으로써 다른 남성주인공의 각성을 촉발한다. 김사희의 경우는 개인 이정출에게 신뢰와 충성심이 깊다는 사실 외에는 행동의 동기를 유추하기 어렵다.

<죽여주는 여자>

좋 아 요

다가구

<죽여주는 여자>에서 노인은 캐릭터 코드가 아니라 그저 인물의 인구학적 속성이다. 이재용 감독은 유복하지 않은 고령 독신자들이 어떻게 자기를 부양하고 어디서 주거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보여준다.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은 다문화 인구 비중이 높고 성 소수자들이 모여 즐기는 공간이 밀집된 이태원에 산다. 소영에겐 연고자가 없는 대신 지붕을 공유하는 트랜스젠더 집주인 티나와 다리가 불편한 청년 도훈(윤계상)이 있다. 영화에서 종종 보는 전형적 소수자 유사가족의 형태이지만 세 사람이 서로에게 곁을 나눠주는 방식은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법 없이 편안하다. 그들은 과거사를 캐묻거나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다. 소영이 어느 날 코피노 소년을 데려오자 타박하지 않고 손이 빌 때 맡아준다. 여윳돈이 생기면 한 사이즈 큰 치킨을 사서 둘러앉는다. 서로를 번갈아 딱하게 여기며 그날그날 가능한 도움을 교환하는 것. 가족한테도 이 이상을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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