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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한국영화 흥행기록, 조만간 앞자리가 ‘2’가 될 수도 있다” - <고산자, 대동여지도> 강우석 감독 인터뷰
정지혜 사진 오계옥 2016-09-05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강우석 감독을 만나기 위해 강남 도산대로 한복판으로 갔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준비하던 지난해 시네마서비스는 충무로에서 이곳으로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이사 이후 시네마서비스가 제작한 첫 번째 작품이 <고산자, 대동여지도>다. 강우석 감독의 20번째 연출작이기도 하다. “충무로에 있으면서 8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했다. 근데 한곳에 너무 오래 있다보니 자꾸만 처지더라. ‘회사 규모는 줄이더라도 강남으로 가자! 내가 다시 시작할게!’ 그래서 요즘 가장 ‘핫’하다는 도산대로로 왔다.”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강우석 감독의 의지가 전해진다. 한국영화계에서 승부사로 통하는 강우석 감독에게도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터닝 포인트로서 중요한 작품이었다. 그만큼 만드는 내내 기대만큼의 걱정과 그 이상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현장이기도 했다.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 지도에 담긴 김정호의 철학을 좇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돌아온 강우석 감독을 만났다. “매 컷이 아슬아슬한 고통의 현장”이었다는 그 긴 여정을 되짚으며 개봉을 앞둔 강우석 감독의 속내를 들어봤다.

-<전설의 주먹>(2012) 이후 3년 반 만의 신작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초반, 조선 팔도를 누비다 3년 반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김정호가 나오는 것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허허허. <공공의 적>(2002)도 3년 반 만에 찍었다. 어떤 일을 기다리는 마지노선이 3년 반이 아닐까. 더 쉬면 영화를 못할 것 같을 때가 딱 그때다.

-제작보고회 때, “신인감독의 마음과 별 차이가 없다. 긴장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데뷔작”이라고 여길 만큼 이번 작품에 남다른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시작도, 찍는 과정도, 영화를 대하는 자세도, 고생의 양도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달랐다. 원작인 박범신 선생의 <고산자>를 읽었는데 정말 방대한 드라마였다. 김정호 이야기가 TV드라마로는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처음이다. 많은 감독들이 <고산자>를 읽었을 텐데 엄두를 못 냈을 거다. 나도 처음에 ‘이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 그 생각부터 했으니. 근데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 그러고 보면 <실미도>(2003) 때도 한지승, 장윤현 감독이 다 못하겠다고 해서 내가 한 거다. 찍기 힘들어서 그렇지 영화의 소재로는 얼마나 좋나. 어려우니까, 남들이 안 하니까 내가 한 거다.

-원작의 어떤 면에 가장 크게 감흥을 받은 건가.

=결국 민초의 삶이다. 왕족, 양반, 기득권층, 가진 자들의 이야기였다면 안 했다. 목판으로 지도를 만들어 백성이 볼 수 있도록 대량으로 찍어 배포하겠다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었겠나. 놀라운 일을 한 분을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다. 잘난 놈들이 선행을 한다고 사람들이 위로를 받진 않는다. 자신과 같은, 혹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일을 해줄 때 감동하고 함께 우는 거다. 그런 걸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시대에 필요하다. 영화가 그런 인물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했다. 김정호와 당시 권세가들이 충돌하는 지점만 잘 그려낸다면 나머지는 내 머릿속에 다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가 완성한 초고를 보고 결심이 섰다. 박범신 선생께 영화로 만들겠다고 하니 흔쾌히 좋아해주셨다. <풀잎처럼 눕다>(감독 이경춘, 1983)를 비롯해 <은교>(감독 정지우, 2012)까지 선생의 작품들이 얼마나 많이 영화화됐나. 그런데 <고산자>는 단 한번도 영화화하겠다는 연락을 못 받으셨다고 하더라. 처음 전화한 게 강우석이었다. 선생께서 “박범신의 <고산자>가 아닌 강우석의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만들어달라. 원작에 짓눌리지 말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꼭 보여달라”고 부탁하신 게 큰 힘이 됐다.

-영상미를 구현하는 데 대한 부담이 상당했던 걸로 안다. 강우석 영화를 놓고 평자들은 미장센의 아쉬움, 부족함을 말해오기도 했던 터다.

=<투캅스>(1993), <공공의 적>을 찍으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을 찍는다는 게 말이 되나. <고산자, 대동여지도>이기에 필요했고 가능한 일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첫 촬영을 하는데 그곳의 풍광을 보는 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집안 고향이 황해도 쪽이다.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고,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백두산에 올라 정기도 받고 그랬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 차례 백두산에 갔는데 두번 다 해가 쨍쨍했다. 안내하는 분도 이런 경우가 없다며 운이 따라줬다고 하더라. 촬영 마치고 숙소에 와서 촬영분을 확인하며 스탭들과 마음 깊이 울었다. ‘그래, 내가 우리의 풍광을 다 담는다! 국민들에게 이만한 서비스도 없다.’ 그래서 북한 방문 신청도 두번 했는데 잘 안 됐다. 그나마 천지를 다녀와서 ‘대동여지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나. 관객 몇명 더 들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김정호 선생을 만나러 가보자’는 느낌으로 관객이 영화를 봐주길 바란다. 그런 의미로서는 교육적인 측면도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인가. 전작들에서 여러 번 호흡을 맞춰온 촬영, 미술 등의 스탭을 전부 바꾸고 새로이 세팅했다.

=내 영화에 없는 미장센, 그게 이번에 없으면 난 죽는 거다. <실미도> 때 같이 작업한 이민호 프로듀서와 13년 만에 재회하면서 그랬다. “파트별 넘버1들을 모아달라.” 내로라하는 스탭들인데 다행스럽게도 나와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했고 준비를 정말 잘해줬다. 새벽에 동트는 거 찍는다 하면 새벽 3시 반부터 준비해 리허설까지 다 마친 뒤 내게 콜을 해왔다. 백두산 첫 촬영 이후 스탭들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모든 그림이 천지에 지면 안 된다!’ 순수 제작비 93억원 중에 미술에만 10억원을 썼다. 김정호의 집, 어시장, 처형장 등 모두 새로 지었다. 시장의 생선도 다 생물이다. 박일현 미술감독이 “가짜를 쓰면 관객이 다 안다”며 어찌나 준비를 잘하던지. 그 세트들을 순서 편집도 하기 전에 소스 확인만 끝나면 전부 부숴버렸다. 다른 드라마팀이 와서 촬영해가는 게 싫어서. 영화가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면 안 되니까. 보충 촬영? 우린 그런 건 안 하지. (일동 웃음)

-극의 초•중반, 김정호(차승원)와 판각장이 바우(김인권)의 대사 중에는 관객의 웃음을 염두에 둔 듯한 게 꽤 있다. 시나리오에는 없던 대사라 배우들의 애드리브일까 궁금해지더라.

=내가 찍는데 그런 게 좀 있어야지. 현장에서 내가 막 만들어내니 스탭들이 당황하더라. 이런 영화는 이런 재미가 없으면 후반에 가서 정작 해야 할 말을 못한다. 김정호가 “삼시 세끼 내가 다 해줄 수 있다”, “오랜만에 오니 집안이 개판 됐다”, “톱질은 드럽게 재미가 없어” 같은 말을 하는데 내가 아니면 안 나오는 대사다. 연기에 있어서 완벽을 기하는 차승원이 부담스러워하자 “이런 대목에서는 좀 즐겨라. 재밌게 하다가 조금 더 가면 드라마가 확 펼쳐진다”고 했다.

-<혈의 누>(감독 김대승, 2005),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2005), <황진이>(감독 장윤현, 2007) 등 사극을 제작, 기획한 경험은 많지만 사극 연출은 처음이다. 2010년대에 계속해서 시도한 작품들, 연출을 논의했던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2012), 연출을 준비하고 있는 <두 포졸> 역시 사극이었다. 강우석식 유머와 사회상을 사극에서 풀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사극에서는 감독이 사회를 향해 어마어마하게 소리를 쳐도 용인된다. 소리를 걷어내고 내용만 딱딱 전달되고 당대 상황과 대비되면서 굉장한 의미를 낳을 수 있다. 현대물에서는 제대로 못하면 관객이 ‘나도 안다. 가르치려 하느냐’고 한다. 다들 그러더라. <투캅스> <공공의 적> 1편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부터는 내가 너무 진하게 들이댄다고. 내 주장이 너무 강하다고. 사극에서라면 하나도 진하지 않다. 이번에도 굉장히 진한 얘기가 있다. ‘천하고 무지한 백성이 기술을 알아서 뭐하냐’고 하는데 소위 ‘민중은 개, 돼지’라는 식의 표현이지 않나. 20대 중반의 남성 관객이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고 “지금 우리 시대 얘기네”라고 했다. 어쩌면 훨씬 더 앞서가고 있는 관객을 내가 겨우 붙잡은 건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영화 만드는 사람은 관객에게 죽는다. <투캅스> 1편식의 풍자를 <두 포졸>에서 해보고 싶었다. 지금 시대의 권력은 돈이 아닌가. 그걸 빗대고 싶다. <두 포졸>은 덮은 게 아니다. 잠시 제쳐뒀을 뿐이다.

-어째서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먼저였나.

=<글러브>(2011), <전설의 주먹>(2012)에 손님이 안 들어서 관객 동원에 목이 말라 <투캅스>와 같은 영화를 꺼내든 것 같은 인상이 들까봐. 안성기씨나 박중훈에게 “언젠가 <투캅스>를 완결한다, 내가 의미 있는 영화 하나 만들어놓고 다시 코미디로 가겠다”고 말했다. 설경구도 <공공의 적> 시리즈를 왜 안 하느냐고 하고.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하고 가면 강우석이 코미디에 정말 관심이 있구나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치부심이다, 돈 떨어졌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돈은 벌어도 못 벌어도 투자•배급사의 몫 아닌가. 난 상관없다. (웃음)

-<광해, 왕이 된 남자> <두 포졸>에 이어 <공공의 적 2013>도 아직 멈춰 있는 상황이다 보니 마음고생이 컸을 거라 짐작됐다.

=고생 정도가 아니다.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두 포졸>을 찍었다고 해도 보람이 하나 없었을 거다. 뭔가 내 안에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기어올라와야 하는데 그게 없이 그저 한편 더 찍으면 뭐하나. <고산자>를 읽기 전까지는 심지어 어떻게 하면 근사하게 영화를 그만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으니까. 내가 영화 그만두겠다고 인터뷰라도 하면 끝까지 지킬 자신도 있었다. 근데 ‘뭐 한 게 있다고 은퇴하고 말거냐. 관객이 내 영화 더이상 안 보면 그게 은퇴지’ 싶더라. 목숨 걸고 영화 찍었는데 관객이 안 보면 그게 은퇴인 건데 그게 스무 번째 영화일 것 같았다.

-제작, 기획, 연출을 두루 거치며 산 지 만 28년이다. 현재의 강우석을 자평해보자면 어떻게 말하겠나.

=지금이 더 긴장되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마누라 죽이기>(1994), <투캅스> 만들 땐 ‘난 무조건 관객과 만난다, 관객을 재밌게 해줘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난 단순한 엔터테이너였다. 관객이 내게 뭘 기대하는지보다는 ‘내가 쇼를 하는데 보세요’라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관객이 보고 싶은 걸 내가 찍어서 보여야 한다.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근데 이제는 관객한테 ‘이런 영화 보고 싶으셨죠?’ 한다. <이끼>(2010)가 그랬다. ‘이건 관객이 기다리는 영화다!’ 그 생각이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도 마찬가지다.

-<실미도>로 한국영화에서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때 이후, 천만 영화가 계속해서 등장하더니 이제는 그 스코어 달성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상황이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앞으로 영화시장을 어떻게 예상하나.

=<실미도>에 천만 관객이 들 때 했던 첫 인터뷰에서 내가 “앞으로 천만 영화가 1년에 2편씩 나올 거다”라고 했다. 극장의 관 수나 영화시장의 크기가 커지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요즘 제일 영화를 많이 보는 관객층이 40~60대다. 그들이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 같은 영화를 보며 한국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런 관객이 지금 중요 관객층이 된 거다. 나와 함께 관객도 나이를 먹고 있다. 거기에 20대 관객까지 있으니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진 거지. <부산행>(감독 연상호, 2016)의 천만 관객에는 50, 60대가 없다. 그런데도 그 정도 관객이 들 수 있는 시장의 파이가 있다는 거다. <명량>(감독 김한민, 2014)처럼 젊은층과 장년층을 두루 포괄할 수 있는 영화가 또 나온다면 스코어는 계속 깨질 거다. 조만간 앞자리가 ‘2’가 될 수도 있다.

-그런 판단 속에서,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흥행은 어떻게 내다보나. 만들어보고 싶은 영화가 좀 달라질 수도 있는 건가.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어느 선까지만 관객과 만나주고 의미 있는 좋은 영화라는 평이 나온다면 다음에는 코미디를 하고 싶다. 시작도, 끝도 제대로 코미디. <투캅스> <공공의 적> 1편과 같은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다. 관객과 제대로 놀아보고 싶다. <투캅스>의 카피가 ‘웃다 죽어도 좋다!’였다. 그 카피를 한번 더 쓰면서. 코미디는 내 삶이니까. 사람들과 웃으며 얘기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서고. 술자리에서 건배할 때마다 ‘사랑합시다’ 라고 하는데, 그만한 말이 어디 있겠나. 아, 나 주사는 없으니 걱정 말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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