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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덕혜를 좀더 능동적인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 - <덕혜옹주> 허진호 감독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6-08-08

허진호 감독이 차기작으로 <덕혜옹주>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생각만큼 프로젝트에 가속이 붙지 않아 궁금증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손예진박해일의 캐스팅 소식을 접했을 땐 궁금증에 믿음이 더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가 완성됐다. 비극적 운명을 뜻대로 헤쳐나가지 못한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옹주의 삶을 허진호 감독은 비극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비극성을 강요하지 않는 건 생략과 절제를 아는 연출 덕이다. 허진호라는 멜로드라마의 장인은 1910~60년을 아우르는 방대한 시대극 안에 절제된 사랑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중국과의 합작영화 <위험한 관계>(2012)가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긴 했지만, 역사적 인물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 실재와 허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덕혜옹주>를 준비하며 가졌던 고민과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허진호 감독에게 들었다.

<덕혜옹주>

-<위험한 관계>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다.

=자주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늘 오랜만이라 매번 처음 영화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영화를 찍고 시사회를 가지고 인터뷰를 하고, 이 모든 과정에 익숙해질 때가 됐는데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웃음)

-<덕혜옹주>는 굉장히 오랫동안 품어온 프로젝트다.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시점, 최초의 계기가 궁금하다.

=2007년경이었다. KBS 프로그램 <한국사傳>에서 덕혜옹주를 다룬 방송다큐멘터리를 봤다. 고종이 환갑에 낳은 딸이고 굉장히 예뻐했으며, 막 신문사가 생겨나기 시작하던 때라 덕혜옹주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될 정도였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인물이 아버지가 독살당했다 믿은 채 일본에 끌려가 일본인과 결혼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이혼하고 딸은 자살하는, 굉장히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공항 장면이었다. 왕조의 부활을 걱정한 정권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던 덕혜옹주가 1962년 드디어 귀국을 하게 되는데, 공항에 덕혜옹주의 유모였던 변복동 할머니가 나와서 정신이 온전치 않은 덕혜옹주에게 ‘아기씨’라 부르는 모습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그 장면을 보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처음 가지게 됐다. 세월이 지나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만류했다. 영화화하기 쉽지 않다고. (웃음) 제작비가 많이 드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덕혜옹주가 능동적인 인물도 아니고,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성공한 이야기도 아니라는 점 때문에 우려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몇년 뒤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가 나왔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보면서 이 이야기가 (대중과의) 접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 과정이 길었던 만큼 다양한 버전의 시나리오가 있었을 것 같다.

=이야기의 축이 많이 바뀌었다. 그 축을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모인 복순(라미란)과 장한(박해일)은 소설에서 가져와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캐릭터인데, 장한이란 인물의 변화가 많았다. 장한이 덕혜의 상상 속 인물이었던 적도 있었다. 덕혜가 정신병을 앓고 있으니 그녀의 상상 속 캐릭터로 가져가면 어떨까 싶어서 꽤 오래 그런 구성을 취했다. 그러다 좀더 단순하게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개발 초기 단계에선 덕혜의 이야기를 극화하기보다 사실적으로 가려고 했었다. 또 처음엔 멜로로 이야기를 풀지 않으려고도 했었고.

-멜로는 감독님의 장기 아닌가.

=역사물을 멜로로 다뤄서 실패한 사례들이 있어서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멜로를 넣어야 한다 빼야 한다, 의견이 분분했는데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결론에 도달했다. (웃음)

-덕혜의 남자로는 일본에서 결혼했다 이혼한 남편 소 다케유키도 있다. 소설과 달리 영화에선 덕혜의 일본 결혼생활이 많이 생략됐다.

=그 부분을 더 다룬 시나리오도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찍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서 현실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시나리오였다. 다케유키가 쓴 시도 보고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덕혜의 결혼생활을 어떻게 다룰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부분을 깊이 다뤘다면 좀더 실제와 비슷한, 소설과 유사한 이야기가 됐을 거다.

-앞서 덕혜옹주의 삶을 영화화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언급했다. 감독님 입장에선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시킬 무언가를 찾아야 했을 텐데.

=극화하면서 새롭게 가져온 장치가 영친왕 상하이 망명 작전과 장한이라는 인물이다. 극화한 이야기에 대한 정당성 혹은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덕혜옹주의 일본에서의 삶은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그녀가 왜 정신적으로 불안한 삶을 살았는지,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지, 일본인 남편 소 다케유키가 알려진 것에 비해 꽤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일본에서 왜 잘 살 순 없었는지, 하는 질문들을 계속 했다. 그러면서 덕혜란 인물이 단지 나약한 존재로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덕혜보다 좀더 능동적인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

-얘기한 것처럼 영친왕 및 왕족 상하이 망명 작전은 영화적으로 창작된 사건이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영화에서 핵심 사건을 픽션으로 가져간 선택이 신선했다.

=허구적 사건이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려 했다. 의친왕 망명 사건도 있었고, 일본 패전 분위기가 감돌 때 왕조를 부활하려는 사람들이 영친왕을 찾아가 조선으로 돌아가자 했을 때 ‘그렇다면 내 (일본인) 아내는 어떻게 되느냐’고 한 기록도 있고. 이런 내용들을 망명 작전으로 가져가면 어떨까 싶었다. 덕혜의 이야기로만 가기엔 드라마적 한계가 있어서 좀더 극적인 사건들을 집어넣으려 했다.

-영친왕의 경우 일본 왕족 대우를 받으며 지냈고, 덕혜옹주 역시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 없어서 영화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영친왕은 11살에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서 자랐으니 일본 사람이나 다름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살았으니까. 덕혜옹주의 경우 영친왕의 아내인 이방자 여사가 쓴 글들을 보면 민족의식이나 나라 잃은 설움이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에 의해 독살당했다고 믿는 소녀가 일본에서 호의호식한다고 해서 민족의식이 없었을까? 난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면서 덕혜옹주나 영친왕을 두둔하거나 미화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위인들이 있었다’는 식으로 인물을 다루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다만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을 ‘극화’한 것이고, 극화의 결과에 대한,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비판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덕혜의 비극적 삶을 보듬고 싶어 하는 듯한 감독님의 마음이 계속 느껴졌다. 한편으론 냉정해도 좋았을 순간에 냉정해지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더라. 강제징용 노동자들 앞에서 덕혜가 연설하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친일 연설을 했더라면 덕혜의 내적 갈등, 영화적 갈등이 더 부각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 장면도 고민이 많았다. 덕혜옹주가 친일 연설을 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분명 일본에 많이 이용당했을 거다. 결과적으론 덕혜옹주를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설탕을 좀 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웃음) 그러한 장면 외에 덕혜가 능동적으로 사건을 끌고 갈 수 있는 장치가 별로 없었다.

-숲속 가옥에서 해안가로 이어지는 총격 신은 ‘허진호의 액션 신’이란 점에서 특별했고, 정신병원에 있는 덕혜를 장한이 찾아가는 장면은 허진호식 감성이 살아 있는 장면이라 기억에 남는다. 급박하게 사건이 전개되는 와중에도 정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바닷가 신은 이태윤 촬영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원래는 바닷가가 아니라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신이었는데 기차 신을 찍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닷가 배경으로 바꾸었다. 총격 신은 나로서도 거의 연출해본 적이 없는 터라 찍으면서 계속 멋있다, 놀랍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웃음) 자세히 보면 영화에 허점도 많은데, 손예진과 박해일의 연기가 그 허점을 잘 메워주었다고 생각한다. 바닷가 신은 전남 신안에서 찍었다. 촬영날 파도가 너무 높아 이 장면을 못 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어렵게 완성한 신이다. 정신병원 촬영에선, 손예진이 노역 분장을 하고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공간에 몇 시간씩이나 들어가 있으면서 감정을 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로케이션도 진행한 것으로 아는데 일본에서 촬영한 장면들은 무엇인가.

=영친왕 집과 소 다케유키의 집 장면이다. 해방 이후 장한이 다케유키를 찾아가 그의 집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일본의 가옥에서 찍었다. 한국에선 그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일본식 가옥을 세트로 짓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대사 중에 튀었던 건 덕혜의 연설 장면에서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구를 사용한 것과 총격전이 벌어지는 가옥에서 장한이 덕혜에게 “오향장육은 드셔보셨습니까”라고 묻는 대사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덕혜의 문학적 면모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덕혜의 그런 모습을 반영한 장면들이 빠져서 튀어 보인 것 같다. 원래는 장한과 덕혜가 서로 소설책을 빌려주는 장면들이 있었다. 장한의 경우도 군인에서 신문기자가 된 거니,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넣은 설정이었다. 현장에선 손예진도 그 대사가 좀 세지 않냐고 했다. 편집실에서 다시 보니 덕혜의 진실한 마음이 잘 담긴 것 같아서 좋더라. 오향장육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대사였다. 장한이 뭔가 희망찬 표현, 새로운 표현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상하이 망명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이고 당시에도 존재하는 음식이고 해서 오향장육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현장에서 다들 많이 웃었는데, 박해일씨가 특히 재밌어했다. (웃음)

-배우들 칭찬을 많이 했지만, 손예진과 박해일의 연기가 드라마를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어린 덕혜와 나이 든 덕혜를 연기할 배우를 나눠서 갈 생각도 있었다. 한 사람이 연기하느냐 두 사람이 연기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고, 그렇다면 노역까지 소화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배우가 누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손예진이 떠올랐다. 이전에 함께 작업한 적도 있고 그간의 연기를 쭉 지켜봐왔기 때문에 손예진이란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외출> 작업할 때도 굉장히 좋았다. <외출>로 나는 욕을 많이 먹었지만 손예진은 연기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웃음) 똑똑한 배우고 힘 있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박해일은 그만이 가진 무언가가 있다. 가짜 같지 않은 무엇, 진정성이라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박해일의 그런 힘이 영화를 좀더 사실적으로 만들어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손예진, 박해일, 윤제문, 정상훈, 라미란 모든 배우들이 다들 친해서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위험한 관계>도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고 <덕혜옹주> 역시 비슷한 시대를 다룬 시대극이다. 어쩌다 보니 연달아 시대극을 하게 됐다.

=두 영화는 좀 다르다. <위험한 관계>는 상하이라는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세트가 있었고 미술적으로 가져갈 부분이 많았다. 반면 <덕혜옹주>에선 1930년대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191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를 다루다보니 영화의 사이즈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찍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이 시대가 참 표현하기 힘든 시대구나 싶더라. 특히 1962년 덕혜옹주의 공항 귀국 장면의 경우 그 시대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준비 중인 차기작은 뭔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빨리빨리 다음 작품을 내놔야 하는데 한 작품을 내놓기까지 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매번 처음 하는 것 같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에 가면 늘 신인감독이 된 듯한 느낌이다.

-<위험한 관계> <덕혜옹주>는 초창기 감독님의 멜로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와 비교해 꽤 먼 지점에 있는 영화들이다. 다시 현실적인 멜로영화들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나.

=생각은 있다. 준비 기간과 규모를 줄여서 그런 영화들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 <호우시절>(2009) 때 그렇게 찍어보니 그것만의 재미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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