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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에서 시네마노블로

<저스티스 리그>의 예비서사가 되어야 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피할 수 없었던 한계

<맨 오브 스틸>(2013)에 이어 DC 유니버스의 서막을 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은 오랜 시간 기획단계에 머물러 있던 꿈의 프로젝트였다.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워너브러더스와 손잡고 기획하던 프로젝트에는 <배트맨 이어 원>의 영화화와 함께 이 작품의 초기 아이디어가 있었으며, 2001년 볼프강 페터슨이 감독을 맡고 <쎄븐>(1995)의 각본을 쓴 앤드루 케빈 워커의 초고를 아키바 골즈먼이 다시 각색해 2002년에는 완성된 각본이 나온 상태였다. 이 당시의 각본에 담긴 설정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은퇴한 지 5년이 지나 동료인 알프레드, 로빈, 고든을 모두 잃은 배트맨은 엘리자베스 밀러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아내가 조커에게 살해당하자 배트맨은 복수를 다짐하게 되는데, 슈퍼맨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둘은 점차 대립의 각을 세우게 된다. 그 이면에는 조커와 손잡은 렉스 루터의 음모가 있었다.

대런 애로노프스키와 볼프강 페터슨의 기획은 무산되었지만 워너브러더스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제작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J. J. 에이브럼스가 쓴 <슈퍼맨 플라이바이>의 각본에 자극받아 방향을 튼 결과 <수퍼맨 리턴즈>(2006)를 만들었지만, 점진적으로 <배트맨 대 슈퍼맨>, 더 나아가 <저스티스 리그>로 이어지는 큰 흐름을 계획해두고 있었던 것이다(<수퍼맨 리턴즈>의 디테일을 보면 뉴스릴에 고담시가 언급되고 조커의 존재가 암시되며, <나는 전설이다>(2007)의 폐허 묘사를 보면 <배트맨 대 슈퍼맨> 로고의 초기 버전을 볼 수 있다). <그린랜턴: 반지의 선택>(2011)이 흥행에서 재앙을 맞으면서 좌절된 이 계획은 장장 15년을 끌고 나서야 <맨 오브 스틸>로 DC 유니버스를 리부트시킨 잭 스나이더의 손에 결실을 맺게 되었다.

<배트맨 대 슈퍼맨>, 혹은 그래픽노블 팬보이의 신앙 간증

<300>(2006)과 <왓치맨>(2009)으로 그래픽노블계의 거장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의 동명 작품을 연달아 영화로 만든 만큼 잭 스나이더의 영화는 그래픽노블과 인연이 깊다. 그 자신도 미국 그래픽노블 문화의 열렬한 팬이며 그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음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잭 스나이더의 접근방식은 그래픽노블을 극화한 여타의 감독들과는 다르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의 브라이언 싱어, <다크 나이트>(2008)의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대중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감독들은 슈퍼히어로를 소재로 삼아 자신의 작가적 구도를 관철시키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스나이더는 만화의 프레임과 서사를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이식함으로써 그래픽노블 세계에 대한 팬보이로서의 순수한 헌사를 바치려 하는 것이다. 그래픽노블(graphic-novel)을 시네마노블(cinema-novel)로 옮기려는 그의 연출 성향은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각본은 큰 틀에서 두편의 그래픽노블에 의지하고 있다.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댄 주겐스, 제리 오드웨이의 <슈퍼맨의 죽음>. 1986년에 출간된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침체기에 접어든 배트맨 코믹스의 인기를 끌어올린 동시에 안티히어로 배트맨의 정체성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며, 1993년에 연재되기 시작한 <슈퍼맨의 죽음>은 ‘강철의 사나이’가 지닌 무적의 이미지를 깨뜨려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50살 넘은 중년의 몸을 이끌고 다시 복귀한 배트맨이 돌연변이 갱의 난동으로 혼란에 빠진 도시를 진정시키고, 레이건 정부의 하수인으로 진압 명령을 받은 슈퍼맨과 맞서는 <다크 나이트 리턴즈> 이야기에서, 프랭크 밀러는 배트맨을 일종의 무정부주의자로 재해석해 미국의 정상성을 대변하는 슈퍼맨과는 대극을 이루는 관계로 설정해놓는다. 범죄 투사로서의 무자비한 성격과 자경단으로서의 무정부주의, 중년에 이른 배트맨 캐릭터는 <다크 나이트 리턴즈>로부터 옮겨진 것이며, 로이스 레인과 슈퍼맨의 발전된 관계, 슈퍼맨조차 압도하는 괴물 둠스데이의 존재 또한 <슈퍼맨의 죽음>의 메인 플롯에서 고스란히 차용해온 유산이다(부모의 죽음, 총기를 사용하는 배트맨의 모습, 강화 전투복이나 핵폭발에 휩쓸려 좀비처럼 일그러진 슈퍼맨의 모습 등의 디테일은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컷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

그외에도 잭 스나이더는 다양한 그래픽노블의 플롯과 아이디어를 차용해 <저스티스 리그>로 향하는 포석을 깔아놓는다. 역사를 바꾸기 위해 미래로부터 시간을 거슬러온 플래시의 등장은 제프 존스의 <플래시 포인트>, 2대 로빈 제이슨 토드의 죽음을 암시하는 묘사는 <패밀리의 죽음>, 렉스 루터의 음모로 슈퍼맨이 누명을 뒤집어쓰는 이야기에는 <슈퍼맨 배트맨: 공공의 적>의 영향이 엿보인다(엔딩 크레딧 말미에는 프랭크 밀러, 짐 리, 제리 오드웨이를 비롯한 여러 그래픽노블 작가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잭 스나이더는 그래픽노블의 형형색색 기호들을 한데 끌어들여 영화의 형식으로 복제하며 유희하려 한다. 개연성이 희생된 서사와 편집의 이면에는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한 ‘소장’(possession)에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DC 코믹스 그래픽노블의 세계를 혼용한 패스티시(pastiche)이자 팬보이의 신앙 간증이 빚어낸 2억5천만달러 규모의 애장품이 되었다.

<왓치맨>을 잇는 장르의 자기성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힘은 타락하지 않는다는 믿음이죠.”(You know the oldest lie in America, senator? It’s that power can be innocent.) 극중 렉스 루터가 던지는 이 대사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바탕에 깔린 테마를 단번에 함축한다. 각각 미국의 낮과 밤을 상징하는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극적 관계는 서로에게 미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 이미지가 된다. 인류 전체를 위협할 초월적 힘의 소유자 슈퍼맨은 대외적으로 패권주의 노선을 걷는 미국의 위험성(로이스 레인을 구하기 위해 테러조직을 급습하는 슈퍼맨은 영락없이 9•11 이후 대테러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반영화에 가깝다)을, 자경단 활동을 통해 폭력으로 정의를 집행하는 배트맨은 내적으로 경찰국가의 면모를 보이는 미국의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투사한다.

이처럼 슈퍼히어로의 존재를 통해 미국의 국가상을 반영하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자기성찰적 면모는 “누가 감시자들을 감시하는가”(who watches the watchmen?)라는 화두를 던지며 히어로란 존재의 이면과 심층심리, 사회적 부작용을 파헤쳤던 <왓치맨>의 연결선상에 놓여 있다. ‘힘을 지닌 자가 그 힘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해야 하는가?’ 또는 ‘정의를 목적으로 한 행위조차 악이 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윤리적 딜레마는 기본적으로 슈퍼히어로를 다루는 그래픽노블 작가들이 공유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이다. 하지만 잭 스나이더는 이 딜레마와 정치적 메타포를 심층적으로 파고들길 멈추고 ‘외부의 적(둠즈데이)에 의한 내부의 단결(저스티스 리그)’로 두 캐릭터의 갈등을 간단히 봉합하며 답을 회피한다. 이는 닥터 맨해튼을 인류 공통의 적으로 제시하며 평화를 찾은 <왓치맨>의 결말에 대한 반복 재생산처럼 보이지만, 아쉽게도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는 그만큼의 몰입감과 심도는 사라지고 없다. <저스티스 리그>의 예비서사(exposition)가 되어야 하는 부담감, 그래픽노블의 캐릭터와 도상에 바치는 오마주의 향연 가운데서 <왓치맨>이 선사했던 급진적 정치성은 방향을 잃고 <배트맨 대 슈퍼맨>이란 대작의 표면에 묻은 옅은 흔적으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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