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경이로운 낯섦 1950년대 시네마로 돌아가다
장영엽 2016-03-30

코언 형제 신작 <헤일, 시저!>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

코언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가 3월24일 개봉한다. 1950년대 미국 고전영화와 영화인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이 코미디영화는 굳이 코언의 팬이 아니더라도 두루 즐길 수 있을 법한 대중성을 갖췄다(당신이 코언의 팬이라면 보다 긴장을 풀고 편한 자세로 영화를 관람해도 좋겠다). 그런 가운데도 코언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는 여전하다. 꽤 오랜만에 당도한 그들의 본격 코미디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알고 보면 좋을, 1950년대 실존 인물과 영화에 대한 에피소드도 함께 소개한다.

만약 당신이 배우이고 어떤 감독이 구상 중인 영화에 간절하게 출연하고 싶다면, 그런데 그 감독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면, 조지 클루니처럼 행동해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수년 전부터 자신의 차기작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 작품요? 저는 <헤일, 시저!>에 출연할 겁니다.” <헤일, 시저!>는 코언 형제가 조지 클루니와 함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를 촬영하던 당시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던 프로젝트다. 형제들은 클루니에게 ‘1920년대 배우들이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에 출연하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고 조지 클루니는 그렇다면 그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조지 클루니가 <참을 수 없는 사랑>(2003)과 <번 애프터 리딩>(2009)에 출연하며 코언 형제와의 협업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헤일, 시저!>의 제작 여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본 없이 아이디어만 존재했던 영화에 대한 이 할리우드 톱스타의 러브콜은 최근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클루니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헤일, 시저!>는 코언 형제의 머릿속을 배회하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뒷전으로 밀렸을지도 모른다.

현실과 상상의 아슬아슬한 경계

코언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는 1950년대 미국 영화사 캐피틀 픽처스의 총괄프로듀서 에디 매닉스(조시 브롤린)의 궤적을 좇는 영화다. 눈 밝은 독자라면 ‘캐피틀 픽처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1940년대, 돈과 명예를 좇아 할리우드로 왔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 살인사건에 휘말려 광기와 공포에 시달리다가 호텔을 불태우고 사라진 그 시나리오작가, 바톤 핑크(코언의 전작 <바톤 핑크>(1991)의 주인공)가 일하던 곳이 바로 캐피틀 픽처스였으니까. 바톤 핑크는 홀연히 사라졌지만, 꿈의 공장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달프기로 따지면 바톤 핑크 못지않은 고독한 남자, 에디 매닉스가 있다. 그는 스튜디오 곳곳을 오가며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다. 말타고 휘파람만 불던 액션 전문 배우(엘든 이렌리치)는 실내극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 실내극의 감독(레이프 파인즈)은 배우의 ‘발연기’를 참을 수 없어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미혼의 여배우(스칼렛 요한슨)는 임신을 했고 특종을 찾던 가십 칼럼니스트(틸다 스윈튼)는 스타에 대한 루머를 폭로하겠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영화사의 얼굴인 톱스타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이 납치된다. 대작영화 <헤일, 시저!>(극중 영화다)의 클라이맥스인 후반부 장면의 촬영을 남겨두고 사라진 베어드를 찾기 위해, 에디는 언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헤일, 시저!>의 캐피틀 픽처스는 1950년대 MGM 스튜디오를 모티브로 제작된 가상의 공간이다. 40년대까지 황금기를 누리던 MGM은 50년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TV가 영화의 새로운 라이벌로 떠올랐으며 대형 스튜디오들은 극장을 처분할 위기에 처했다. 50년대 미국을 강타했던 매카시즘은 할리우드의 영화 관계자들에게도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러한 음울한 분위기를 상쇄하려는 듯, 할리우드는 수천명의 배우들을 앞세운 에픽 블록버스터와 화려한 뮤지컬영화, 우아하고 경이로운 수중발레영화 등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영화산업의 풍경은 <헤일, 시저!>의 밑그림이 되는 중요한 배경이다. 50년대에 태어난 코언 형제가 이 당시의 영화들을 접한 건, 슈퍼8mm 카메라를 사기 위해 공원에서 잔디 깎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즈음의 일이었다고. “우리는 1950년대 영화들을 TV로 접했다. 그때 봤던 영화들은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중략) 하지만 우리는 후진 영화를 보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그 영화들을 좋아했다. 우리는 그 당시의 영화들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조엘 코언은 말한다. 그의 전언대로 <헤일, 시저!>는 1950년대 할리우드 고전영화들에 대한 코언 형제의 러브레터나 다름 없다. 당시의 실존 인물과 사건을 노골적으로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자세한 내용은 다음 페이지)로부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짐작해보는 건 이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일 거다.

자신의 주인공을 연쇄적인 곤경 속으로 몰아넣고, 그가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하는 건 코언 형제의 전매특허다. <헤일, 시저!> 또한 한 제작자의 오디세이적 여정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인사이드 르윈>의 르윈 데이비스가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기나긴 여정을 떠났다면 <헤일, 시저!>의 에디 매닉스에게 그 여정의 경유지는 세트장의 이곳저곳이라는 점이 다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27시간 동안 에디 매닉스는 가톨릭 테마의 블록버스터 <헤일, 시저!>의 현장을 비롯해 <즐겁게 춤을>의 실내극 세트, <흔들리는 배>의 뮤지컬영화 세트, <조나의 딸>의 수중발레 세트 등을 떠도는데 각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에디가 만나게 되는 인물들간의 사연은 이 피로한 주인공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넘어서야 하는 일종의 스테이지 역할을 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건 각종 장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비틀어 인장을 남기는 코언 형제의 연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즐겁게 춤을>의 세트장에서 영화의 대사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배우를 타박하는 감독의 에피소드는 말 더듬는 인물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언 스타일 대사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장면이다. 일란성쌍둥이로 분해 등장인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며 같은 상황, 다른 대답으로 폭소를 유발하는 틸다 스윈튼의 1인2역 연기도 마찬가지다. 그중 가장 압권인 장면은 영화 속 영화 <헤일, 시저!>의 감수를 위해 에디 매닉스의 사무실에 모여든 종교인들의 대화다. 시나리오에 문제는 없는지 묻는 에디에게 “전차 신이 허접하더라”라고 동문서답을 하는 동방종교지도자와 “그리스도는 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랍비 등의 엇박자 대화는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웃게 되는 대목이다.

코언 형제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

무엇보다 <헤일, 시저!>는 코언 형제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고 부를 만하다. 조지 클루니를 비롯해 스칼렛 요한슨, 틸다 스윈튼, 레이프 파인즈, 채닝 테이텀 등 매 장면을 빛내는 할리우드 톱스타들과 호사스러운 볼거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코언이 유명 배우를 기용해왔던 건 이미 오래전부터였기에 주요한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보다도 주인공 에디 매닉스를 바라보는 코언의 시선에서 우리는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주인공의 수난과 실패, 거절이 반복되면서 쌓여나가는 서늘하고도 황량한 에너지는 코언 월드를 완성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헤일, 시저!>의 에디 매닉스는 시련을 겪지만 패배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다른 영화에선 흔히 볼 수 있었을 법한 전형적인 성장의 단계를 따르고 있으며,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에디는 죄많은 사람들(아마도 스튜디오 사람들)을 위해 대신 희생하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얻기까지 한다. <필름 코멘트>는 이를 두고 “이 얼마나 경이로운 낯섦인가! 모두를 조종하는 총괄프로듀서를 코언 형제가 떠받들고 있다는 게 말이다. 그들은 예술가와 엔터테이너들을 마치 보호받아야 할 아이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게 코언 형제가 동료들을 바라보는 방식일까?”라고 불편함을 표하기도 했다. 확실히 <헤일, 시저!>는 자신들이 설계한 이야기의 미로 안에 더 깊은 상징과 의미들을 실마리처럼 던져놓는 코언의 촘촘한 설계가 다소 헐겁고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시네마에 대한 매혹과 애정, 유머로 가득한 이 영화를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언제쯤 당도할지 모를, 코언의 차가운 황무지를 기다리며 조금은 가볍게 쉬어갈 수 있는 경유지 같은 느낌이어서일까.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