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생. 소설가.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2012년 <파라솔이 접힌 오후>로 등단했다. 지난해 11월, <더 웬즈데이>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유리> 등 9편의 단편이 실린 첫 소설집 <의인법>이 나왔다. 십대 땐 영화감독을 꿈꿨다. 지금은 회사를 다니며 소설을 쓰고 있다. 동료들은 오한기를 두고 ‘뇌구조’가 범상치 않은 ‘신인류’라고 말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일본 배우 마쓰다 류헤이를 연상시키는 외모.
1981년생.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분야 MD로 일하다 본격 서평가의 길에 들어섰다.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는 그의 독서편력과 책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서평집. 정지돈, 오한기, 이상우 등과 후장사실주의자 그룹을 결성해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정지돈의 말을 빌리면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개를 제일 사랑하는 남자”이기도. 닮은꼴로 돔놀 글리슨과 가세 료의 이름이 언급됐으나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만 흘렸다.
정지돈
1983년생. 소설가.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와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했다. 2013년 <눈먼 부엉이>로 등단. 지난해 <건축이냐 혁명이냐>로 제6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창백한 말> <미래의 책> 등 지금까지 6편의 단편소설을 선보였다. 오한기와 비슷하게 십대 땐 영화를 꿈꿨다. 지적인 작가, 공부하는 작가답게 문학, 미술, 영화 등 그의 촉수는 넓고 깊게 뻗어 있다. 대화를 나눌 때도 인명, 도서명, 영화명 등 고유명사를 대방출한다. 어딜 가도 구심점이 될 것 같은 사람.
이상우
1988년생. 소설가. 2011년 <중추완월>로 등단. 지난해 12월 <비치> <객잔> <888> <추리 추리 하지 마 걸> 등 8편의 단편을 수록한 첫 소설집 <프리즘>이 출간됐다. 이상우의 템포, 이상우의 리듬을 탄 소설들은 그림 같고, 음악 같고, 시 같다. 유튜브 세대답게 사진합성과 영상편집은 일상의 유희. 고다르의 <경멸>(1963)을 패러디해 만든 2분짜리 미디어아트(!) <금멸>은 인터넷에 떠도는 금정연의 영상에 <경멸>의 음악을 절묘하게 입힌 것. 가만히 있어도 시크함이 뚝뚝 흐른다.
“작가에게 가장 나쁜 일은 다른 작가와 알고 지내는 것이고, 그보다 나쁜 일은 다른 작가 여러 명과 알고 지내는 것이다. 같은 똥덩어리에 몰려다니는 파리 떼처럼.” 찰스 부코스키 <여자들>의 한 대목. 그리고 오한기의 소설 <의인법>에도 인용되는 말. 소설가 오한기, 이상우, 정지돈 그리고 서평가 금정연은 이른바 ‘후장사실주의’자다. 후장사실주의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런 탐정들>에 언급되는 ‘내장사실주의’를 패러디한 것으로,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했으나 문단에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으려는 이들의 움직임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다. 아무튼 이들은 한국문학이라는 좁은 바운더리 안에서 글로써 시공간을 초월하는, 비약하고 도약해서 낯선 지평으로 독자를 훌쩍 데려가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위악적으로 찰스 부코스키의 저 말을 인용했다. 등단 순서에 상관없이,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상우씨’, ’한기씨’로 부르는 이들은 커피잔이 바닥을 보인 지 한참이 지날 때까지 문학에 대해, 소설의 미래에 대해 무한정 얘기할 수 있는 관계. 정지돈 작가는 “보통의 작가나 소설가 같지 않아서 서로 친해진 것 같다”고 말했고, 이상우 작가는 “개인적으로 이 만남이 유지되는 건 각자에게 배울 게 너무 많아서”라고 말했다. 각설하고, 소설이 아닌 영화를 동경했던 시절을 공유한 정지돈, 오한기 작가와 이미지를 예민하게 감각하고 그 감각을 그러모아 소설을 쓰는 이상우 작가, 그리고 이들의 소설을, 소설의 탄생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관찰해온 금정연 서평가를 한자리에 불렀다. 영화적 취향, 소설과 영화의 관계, 지금의 한국영화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점들이 종횡으로 엮인 이야기는 끊길 줄 몰랐다. 1월23일 토요일 오후 3시에 모인 이들은 저녁 8시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씨네21_최근 오한기, 이상우 작가의 첫 소설집 <의인법>과 <프리즘>이 나란히 출간됐다. 또한 두 작가의 해설을 금정연, 정지돈 작가가 썼다.
이상우_문예지에 소설을 발표할 때는 소설 뒤에 나라는 사람이 숨어 있는데 소설이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인터뷰도 하게 되고 나 자신이 공개되는 느낌이 들어서 좀 혼란스럽다. 심지어 난 작가의 말도 안 쓰는데. 비겁한 말이지만 책임지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 작가의 말을 쓰면 아무래도 그 말에 조금은 얽매이게 되지 않을까.
정지돈_인터뷰와 관련해 장 주네가 한 이야기가 있다. “내가 말하는 순간 상황이 나를 배반합니다. 나는 그저 내가 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내 말을 듣는 사람에 의해 배반당합니다. 단어의 선택도 나를 배반합니다.” 그 말이 늘 와닿는다. 상우씨 소설의 해설을 쓰게 된 건 물론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지만 그럼에도 지금 한국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소설이고 대단한 작품이기 때문에 추천사가 됐든 뭐가 됐든 써야 할 것 같았다.
씨네21_오한기의 소설은 논리적이기보다 본능적이고, 이상우의 소설은 회화적이고 음악적이다. 각 소설집의 해설에선 이상우를 한국문학의 백남준, 오한기를 한국문단의 김기덕에 비유했다.
정지돈_그건 일종의 전유 개념이 있는 유희적 표현이다.
금정연_“거칠고 종잡을 수 없으며 종종 (실은 자주) 비약을 거듭하지만 어쨌거나 끝내준다”고 해설에 썼다. 김기덕의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하지 않나. 거칠고 불편하고 컷의 비약도 있고,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쑥 빠져들게 되는, 그런 느낌의 동질성을 발견하게 된다.
정지돈_백남준이 매체를 다루는 방식, 즉 시간적 요소, 조형적 요소, 철학적 요소들을 위상수학적으로 병치했던 방식이 상우씨의 소설에서도 읽힌다. 시간과 공간이 전혀 다르게 배치되는 지점이 있다.
씨네21_그렇다면 정지돈 작가는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금정연_텍스트를 읽는 법, 소설 쓰는 법, 현대미술에 관한 관심,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 등 다방면에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러니 영도자란 말이 딱 맞겠다. (웃음)
이상우_당대의 앙드레 말로와 좀 비슷하지 않나?
오한기_에너지가 넘치는 작가다. 초기작을 보면 말도 못하게 괴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은 지적으로 더욱 성숙하면서 그것이 에너지와 조화를 이루게 된 것 같다. 케이크 같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상우_이런 게 김기덕 같다는 거다. 여기서 케이크가 왜 나오지? (웃음)
오한기_생크림도 있고, 초코도 있고, 호두도 있고….
정지돈_케이크는 진짜 충격적이다.
씨네21_“<비치>의 판권을 할리우드에서 사갈 것 같다”고 금정연 작가가 해설에 썼는데, 이상우 작가의 몇몇 작품은 영화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상우_누벨바그 감독들이 문학에서 영향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듯이 영화의 이미지들에 영향을 받아서 문학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내 소설은 또 다르다. <비치> 때만 해도 서사가 있어서 영화화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정지돈_자크 랑시에르가 <이미지의 운명>에서 회화의 목표는 시가 되는 거라고 했다. 다른 장르에서 영향받는 일은 늘 벌어지는데, 상우씨는 이미지에서 강렬하게 자극받고 그걸 텍스트로 어떻게 풀 것인가 고민하는 작가인 것 같다.
씨네21_이중에서 영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오한기 작가 아닌가.
금정연_실제로 본인이 영화도 찍었으니까.
오한기_상상마당 홈페이지에 단편영화 <인간쥐의 습격>이 소개됐다. 초창기 소설의 경우 영화를 본 뒤 독후감으로 쓴 소설도 많다.
이상우_영화도 많이 보지 않나. 전작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오한기_예전에 배우 윤진서가 에릭 로메르를 좋아한다고 말한 인터뷰를 읽었다. 그때가 대학교 1~2학년 때였는데 난 에릭 로메르가 누군지도 몰랐다. 소설가가 되고 싶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사람이 에릭 로메르는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때부터 영화를 계보학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취직을 하고 난 이후엔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영화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인간쥐의 습격>은 대학 때 친구들이랑 재미삼아 찍은 작품이다. 분장할 돈이 없어서 가장 쥐를 닮은 친구를 캐스팅해 찍었는데 댓글로 욕 많이 먹었다. ‘영화는 장난이 아니다’ 그런 쪽지도 받았고. 어린 마음에 상처받았다.
금정연_최근에 <한국일보>에 칼럼을 썼다. “첫 책을 낸 사람의 90%는 깜짝 놀란다. 책이 안 팔려서. 두 번째 책을 낸 사람의 90%도 깜짝 놀란다. 여전히 안 팔려서.” 두 번째 책 <난폭한 독서>가 나오고 쓴 글이었는데 칼럼에 달린 댓글이 뭐였는지 아나. “이렇게 쓰니까 안 팔리지!” (웃음)
비디오 가게가 몰락한 이후…
씨네21_각자의 영화적 취향이 궁금하다. 정지돈 작가는 여러 번 장 뤽 고다르와 알랭 레네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고, 오한기 작가는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제목의 단편을 내놓기도 했다.
정지돈_고다르와 레네 이야기를 자주 하니까 사람들이 예술영화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더그 라이먼도 좋아하고 브라이언 드 팔마는 말할 것도 없다. 예술영화는 나 못지않게 상우씨도 많이 본다.
이상우_나도 <앤트맨>(2015) 좋아하고, <우리동네 이발소에 무슨 일이>(2002) 같은 미개봉 흑인 주인공들 영화도 챙겨본다.
금정연_난 고급스럽지 않은 영화, 소위 말하는 화이트 트래시 코미디를 좋아한다.
이상우_한기씨의 영화적 취향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지돈_극우! (웃음)
오한기_큰일 날 사람들이네. (웃음)
이상우_박근혜 대통령의 수필과 한기씨 소설이 <현대문학>에 같이 실리지 않았나?
오한기_같이 실리진 않았다. 내 소설은 그다음 호인가 실렸는데, 당시 나는 박근혜의 수필이 실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지금 생각나는 감독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데이비드 린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로서 좋아했지 감독으로선 좋아하지 않았다.
금정연_갈등이 없는 영화를 좋아한다. 서사가 없는 영화가 아니라 서사가 있지만 갈등에 맥이 없는 영화. 최근 본 영화로는 카메론 크로의 <알로하>(2015)나 휴 그랜트 주연의 <한 번 더 해피엔딩>(2014) 같은. 기본적으로 10대 때 보던 할리우드영화들, 브루스 윌리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들이 내 취향이다.
씨네21_영화를 얼마나 자주 보는지, 관람 패턴도 궁금하다.
이상우_나를 비롯한 지금의 20대는 인터넷에 대해 아무런 신기함도 못 느낀 채 너무도 자연스럽게 접근한 세대다. 그래서인지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보다 컴퓨터로 다운받아 보는 게 편하고, 유튜브로 영상을 많이 찾아본다.
정지돈_영화적 경험이 많이 달라졌다. 감독이나 평론가들은 극장이란 공간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지만 지금은 그게 거의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20대 땐 나도 시네마테크에 자주 갔다. 하지만 컴퓨터로 다운받아서 본 영화가 훨씬 많다. 그게 내 영화적 경험에 큰 영향을 줬다. 책의 경우, 신작이 있고 베스트셀러가 있고 고전이 있는데 그 모든 책에 언제든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작이 굳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제는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상우_<내부자들>(2015)과 나루세 미키오 영화가 동시대의 것처럼 느껴진다. 두 영화를 동시대에 접할 수 있으니까. 내게는 안 본 영화가 신작인 거다.
정지돈_글을 좀 적어왔는데 (일동 ‘역시 공부하는 작가’라는 눈빛을 보낸다) 유운성 평론가가 지난해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쓴 ‘밀수꾼의 노래’를 보면, 토렌트 영화 공유 커뮤니티 멤버들이 나루세 미키오의 59편 작품의 영어자막을 제작해 배포한 일을 어느 영화평론가가 올해의 사건으로 꼽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파일 공유 사이트가 예술계에 영감을 주는 중요한 공간이며 이걸 불법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영화 자막계의 정성일’로도 불리는 자막 제작하는 ‘태름아버지’ 같은 이들의 기여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들이 자막 작업하는 영화는 개봉이 요원하거나 개봉을 하더라도 시네마테크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인데, 그들 덕에 좋은 영화에 늘 접속할 수 있게 됐다. 비디오 가게가 몰락한 이후 어쩌면 우리는 훨씬 더 광활한 아카이브에 무한으로 접속해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이상우_유튜브에 비하면 비디오 가게가 굉장히 좁은 공간처럼 느껴진다.
금정연_이건 진짜 세대 차이인 것 같다. 책에선 분명 그렇게 느낀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책이 있고 신간이 있을 때 그 둘을 동일선상에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 반면 내게 영화는 다르다. 신작이 주는 의미가 분명 있다. 어렸을 때 비디오 가게에 신작이 나오면 며칠을 기다렸다 예약해서 빌려보곤 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10분 안에 파일을 다운받아서 영화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진 않는다. 대신 IPTV 서비스를 통해 텔레비전으로 본다. 이제 내게 영화는 편하게 누워 아무 생각 없이 리모컨으로 선택하는 게 된 것 같다.
오한기_하드디스크에 이만큼의 영화가 쌓인 순간 영화에 대한 매력을 잃어버렸다. 영화라는 게 받아놓고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 돼버렸으니까.
요즘 한국 상업영화에 대해
씨네21_정지돈 작가는 <GQ>에 쓴 칼럼 ‘한국영화는 영화가 아니다’에서 요즘의 한국 상업영화가 “오락도 예술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게 돼버렸다”고 했다.
정지돈_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한국영화 구리다’ 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 같다. <명량>(2014), <국제시장>(2014) 같은 영화들이 전혀 당기지 않는다. 한국문학도 1990년대까지는 잘나갔다. 출판계는 독자들이 소구하는 방식을 계속해서 재생산했다. 그렇게 10년쯤 지나고 나니 ‘한국문학 촌스럽다’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게 됐다. 지금의 한국영화가 그런 것 같다. 2000년대 초•중반 박찬욱, 봉준호, 김기덕, 홍상수 영화가 나올 때는 그렇지 않았다. 어제 상우씨가 ‘K-와꾸’라는 표현을 썼는데, <히말라야>(2015), <국제시장> 같은 영화들, 박훈정 영화들에도 공통적으로 ‘K-와꾸’가 있다. 박훈정의 <신세계>(2012)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1972)를 오마주했다고 하지만 조폭영화의 K-와꾸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멋있는 것만 취한 거 아닌가. <대부>가 무슨 남자들의 의리를 부각한 영화인가. 회장 자리에 오른 이정재의 등장 신이나 박성웅의 마지막 장면 같은 앵글이 너무 불편했다.
씨네21_지난해 개봉한 두편의 천만 영화, 최동훈의 <암살>(2015)과 류승완의 <베테랑>(2015)은 어떻게 보았나.
오한기_주위 사람들은 <베테랑>을 다 좋아했는데 난 실망했다. 마지막에 정웅인의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을 보여주는 것도 불편했다. 진짜 잔인했던 건 정웅인이 고층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을 두번이나 보여준 거였다.
금정연_유아인을 비롯한 대기업 사람들을 지질한 절대악으로 만드는 구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유아인이 정웅인을 직접 죽이려 한 것은 아닌데, 단지 사과하기 싫어서 일이 커졌다는 이야기로 갔으면 풍부한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상우_재밌게 봤다. 그런데 최근 <검은 사제들>(2015)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한국영화가 점점 드라마적 구조와 느낌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에 큰 레이어가 없고 평면적이랄까. 어쩌면 이런 것들이 특히 미드 세대한테는 더 편하게 다가갈 수는 있겠구나 싶었다.
정지돈_<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과 달리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옷 같았다. 액션의 참조점을 성룡 영화에서 가져온 것도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만 기업을 다루는 부분, 사회를 절대악과 절대선으로 양분하는 지점들이 ‘지금 시대’라는 맥락에 들어오면 불편할 수 있다. 칼럼에도 썼지만, <암살> <베테랑> <국제시장>은 서로 다른 영화이고 완성도도 상이하지만 그 영화들이 보내는 ‘시그널’에서 유사함을 느낀다. ‘기업은 나쁘다, 정부는 나쁘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라는 시그널. 류승완이나 최동훈처럼 재능 있는 감독들이 왜 그런 부분에서 좀더 예민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괴물>(2006)만 보아도 봉준호는 한국 사회를 지금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로 건드리지 않나. <암살>을 보면서도, 타란티노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 했던 것처럼 시대적 사명감에 얽매이지 말고 영화적으로 가지고 놀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정연_<암살>은 재밌었다.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라는 게 오히려 많은 것들이 소거된 무중력 공간으로 다가왔다. 일종의 서부극 같은 느낌으로. <암살>은 그야말로 오락영화로서 즐겼던 것 같은데 <베테랑>은 포퓔리슴적인 구도 속에 이데올로기를 투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지돈_<암살>에서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라는 전지현의 대사나 “우리 잊으면 안 돼” 같은 오달수의 대사는 정말 걸리더라. 왜 자꾸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선조들의 업적을 알아달라는 건가? 국방부에서 (영화) 만드나? 감독이 설사 특별한 의도 없이 쓴 대사라 하더라도 예민한 촉수로 걷어냈어야 한다고 본다.
오한기_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이 미국으로 떠나버렸다고 생각하던 즈음에 기대할 감독은 류승완, 최동훈이라 생각했는데 <암살>을 보고서 최동훈 감독 초기의 매력이 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금정연_<대호>(2015)야말로 보면서 깜짝 놀랐다. 아들이 일본군 포수대에 지원해 들어갔다는 걸 최민식이 깨닫게 되는 장면 있지 않나. 앞서 보여준 아들의 이야기를 편집해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데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거대 예산이 들어간 영화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인데,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재밌게 봐야 하기 때문에 예능의 자막 넣듯이 장면을 만드는 거다.
이상우_<신세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부자들>을 좋아하는 거 아닐까.
정지돈_<내부자들>에도 <암살> <명량>과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알겠냐”는 이병헌의 대사. 그리고 정치인은 무조건 나쁘고 썩었다는 이야기.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포퓔리슴이다(“시스템이나 제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를 정치화시키며(이른바 먹고사니즘) 기존의 정치 모두를 매도하는 것, 모든 문제를 카타르시스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 이 지점에서 파시즘은 포퓔리슴과 결합한다”고 정지돈은 <GQ>에 썼다.-편집자). 영화가 보여주는 마초성, 권위성, 폭력성이 너무 불편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카타르시스를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고 멋있다고 말한다. 결국 <내부자들>에서 남는 건 정치인들은 술자리에서 그렇게 논다더라, 하는 이야기와 조승우와 이병헌의 의리다.
씨네21_창작자의 책임 외에 관객의 책임은 없을까.
정지돈_관객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기 힘든 게 관객은 책임지지 않을 거니까. 이런 식의 한국영화가 계속 나오면 언젠가 관객은 돌아선다고 본다. 하지만 괜찮다. 미국영화 보면 되고 유럽영화 보면 되니까. 관객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 결국은 영화가, 영화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와 2010년대의 한국문학을 비교하면, 인기 작가들의 판매부수가 과거에 비해 1/3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그 문제의 책임을 독자들이 지진 않았다. 대중에게 제대로 된 소비를 해달라고 책임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문학계 내부가, 영화계 내부가 바뀌는 게 맞다.
기대되는 감독들, 영화들
씨네21_200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일군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김기덕, 홍상수 그리고 이후 나름의 색깔을 보여준 류승완, 최동훈, 나홍진 감독 중에서 여전히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감독이 있나.
오한기_박찬욱 감독. <박쥐>(2009)를 보고 놀랐다. 분홍색 고래가 물을 뿜더라. (웃음) 한국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이상우_한기씨가 말한 것처럼,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이미지를 건진 영화가 한편도 없다. <베테랑>과 <암살>을 재밌게 봤지만 인상 깊은 이미지는 하나도 없었다. 질문에 답하자면 그 이름들 중에 기다려지는 사람은 없다. 대신 주목하는 사람은 있는데….
정지돈_나는 김기덕. 홍상수와 비교했을 때 김기덕 감독이 홀대받는 느낌이다. 김기덕 감독이 최근에 일본에 건너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소재로 다룬 영화를 찍었다던데 대체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다. 그런데 홍상수 영화는 개봉하면 재밌게 보지만 늘 예상하는 대로 흘러간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도 그랬다. 김기덕은 다르다. 기복은 심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찍었지 싶은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평론가들이 홍상수는 만장일치로 지지하면서 <뫼비우스>(2013)는 한명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고 안타까웠다.
금정연_대부분의 예술은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양식화가 되는데 비평가나 학생들은 그러한 양식과 기술에 집중하는 면이 있다.
정지돈_김기덕의 영화는 갈수록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다. 이건 좀 심하다 싶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장면이 있으니까.
씨네21_봉준호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서 신기하다.
정지돈_다들 기대하는데 우리까지 기대할 필요가 있나. (일동 웃음) 봉준호의 신작 <옥자>는 궁금하다. 이 영화로 봉준호가 데이비드 핀처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길을 가느냐 못 가느냐가 결정되지 않을까.
이상우_그게 너무 슬픈 것 같다.
정지돈_무슨 소리야. 지금 영화계에선 놀란과 핀처가 제일 잘나가는 감독이지.
씨네21_그렇다면 주목하는 감독은 누구인가.
이상우_김희천 작가! 영상작업하는 미술가다. 아주 단순하게 접근해보자면 그의 영상 <바벨>과 <랠리>가 미술작품으로 출품되지 않고 영화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해도 아마 (다른 영화들을) 다 씹어먹었을 거다. 아무튼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정지돈_김희천 작가는 최근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신진작가다. 영화라고 해도 무방한 영상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내레이션은 스페인어로, 자막은 한국어로 깔고 흑백의 자료화면과 본인이 찍은 영상을 겹친다. 자전적 비디오 에세이 같지만 사회적인 맥락과도 연결된다. 무엇보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영화계에서도 참조할 만한 지점들이 많은 작품이다.
씨네21_최근 가장 과대평가받은 영화와 과소평가받았다고 생각하는 영화 리스트도 궁금하다.
오한기_<무뢰한>의 평가는 어땠지? 과소평가는 아닌 건가?
정지돈_한국영화에 대해 계속 맹비난만 해서 미안한데, 개인적으로는 <무뢰한>을 보며 슬펐다. 오승욱 감독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이미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감독이다. 그런데 깡패 같은 경찰과 술집 여자의 이야기, 그 판타지가 너무 70년대 뉘앙스였다. 이야기의 감수성이 올드하다고 느꼈다.
오한기_나는 <무뢰한>을 보고 진짜 오랜만에 낭만을 느꼈다. (웃음)
정지돈_같이 영화 본 친구는 김남길의 마지막 대사, “새해 복 많이 받아라 XX년아” 거기서 견딜 수 없어 하더라. 그 낭만과 정서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참지 못하는 거지.
금정연_그 대사가 끝나면 비로소 타이틀이 뜬다. 무뢰한! shameless! (웃음) 그런데 나도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다.
이상우_과대평가받은 작품으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2014)과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이하 <시카리오>).
금정연_그래, <무뢰한>이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시카리오>도 나쁘기는 마찬가지잖아. 마지막 시퀀스를 봐. 그런데 왜 인기가 있을까?
정지돈_이것도 상우씨의 표현인데, <시카리오>를 두고 인스타그램 앵글이라더라.
금정연_그럼 <무뢰한>은 싸이월드 화면인가? (웃음)
이상우_<버드맨>은 전형적인 ‘아메리카 와꾸’였다.
금정연_그래서 내가 재밌게 봤나봐. (웃음)
정지돈_퇴락한 백인 남자 이야기 좋아하니까.
이상우_거기에 레이먼드 카버까지 나오니 환장하지.
금정연_나는 카버 안 좋아한다.
정지돈_(대담 4시간 경과) 아, 진짜 이 좌담의 끝이 없을 것 같다.
씨네21_정말 마지막이다. 해 떨어질 때까지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 나눈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오한기_대학에서 영화동아리 활동할 때 <씨네21>은 로망이었는데, <씨네 21>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인 것 같다. 엉망으로 얘기해서. 오늘 정지돈만 살아남은 것 같다. (웃음)
이상우_한국영화 욕을 많이 했는데 한국문학도 만만치 않게 욕 먹을 게 많다. 어쨌든 어딘가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을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금정연_상우씨 마음이 참 따뜻하다. (일동 웃음) 마찬가지로 좋은 영화만큼 좋은 한국소설도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정지돈_<씨네21>이 더 매력적인 매체가 됐으면 좋겠다. 그게 한국영화와 상호작용하는 지점도 분명 있을 거다. 사람들이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떠들면 재밌는 영화를 만들게 되어 있다.
내 인생의 영화
금정연
“영화의 원체험이라 할 수 있는 게, 1989년 어머니와 함께 동시상영 극장에서 본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1987)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대니 드 비토가 쌍둥이로 나온 <트윈스>(1988)다. 드 팔마의 영화 중엔 이상한 작품도 많은데 <언터처블>은 지금 봐도 참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화이트 트래시 코미디를 좋아하게 된 건 <트윈스> 때문이다.”
오한기
“자크 타티의 <나의 아저씨>(1958). 자크 타티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절대적인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에는 내가 경험한 최고의 영화적인 순간이 나온다. 윌로씨가 창문의 각도를 조절하며 햇빛을 반사해 맞은편 건물에 걸려 있는 새장을 비추는 장면. 햇살이 비추면 새가 지저귄다. 극장에서 그 장면을 보며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윌로씨가 선물한 햇살 아래에서 영화를 본 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상우
“단순히 지금 당장 잔상이 떠오르는 영화를 얘기하면 피터 그리너웨이의 <필로우 북>(1996)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세이 쇼나곤의 수필집 <베갯머리 서책>은 오래전부터 애서가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나는 크게 좋지 않았다. 영화도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감상했는데, 감독이 아무렇지도 않게 연출해나가는 영상의 상상력이랄지 배짱이 좋아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정지돈
“요아킴 트리에의 장편 데뷔작 <리프라이즈>(2006). 마르그리트 뒤라스, 조르주 바타유, 모리스 블랑쇼 등 다양한 작가를 인용하고 참조할 뿐 아니라 알랭 레네, 고다르 등의 영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패러디한다. 주인공인 문학청년 에릭의 데뷔작 제목이 <의인법>인데, 나의 등단작 <눈먼 부엉이>의 주인공 에릭 호이어스와 그의 소설 <의인법>을 이 영화에서 가져와 변형해서 사용했다. 오한기씨의 소설 제목 <의인법>도 아마 그런 걸로 안다(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여러모로 내게 많은 영감을 준 영화다.”
내 인생의 배우
금정연
“브루스 윌리스와 케빈 코스트너. 오늘 이야기한 걸 반추해보면 ‘한국영화에 대해 비난했지만 결국 좋아하는 건 할리우드의 화이트 트래시 영화와 주드 애파토우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가 돼버린 것 같은데, 마치 한국소설 비판하는 영화평론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은 <다빈치 코드>라고 말하는 것처럼. (웃음) 하지만 그럼에도 브루스 윌리스는 정말 최고다!”
오한기
“케빈 스미스 영화들에 출연한 제이(제이슨 미웨스)와 사일런트 밥(케빈 스미스) 콤비. 동국대 영화공동체 ‘디딤돌’ 신입생 때 학내 케빈 스미스 영화제를 주최하면서 이들을 알게 됐고, 케빈 스미스 월드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인 이 콤비에 매료됐다. 더군다나 사일런트 밥은 케빈 스미스 감독 자신이다. 이 둘이 주인공인 <제이 앤 사일런트 밥>(2001)이라는 영화 또한 정말 유쾌하게 봤다.”
이상우
“캐리 히로유키 다가와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똑같은 연기를 펼치지만 그가 나타날 때면 지겹지 않고 반갑다. ‘아, 저 아저씨 살아 있구나. 아직도 연기하는구나. 이제 <모탈컴뱃>(1995) 때만큼 젊지 않구나’ 그런 마음. 가끔 구글에 이름을 검색해본다. 요즘은 뭐하고 지내는지.”
정지돈
“영화를 그만두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내가 배우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할 사람이 배우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어떻게 영화를 만드나 싶었다.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들도 대개 일반인 배우, 비전문 배우가 나오는 영화들이다. 그런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