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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찾아 파리를 배회하는 남자 <파리의 한국남자>
문동명 2016-01-27

상호(조재현)는 아내 연화(팽지인)와 신혼여행지 파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 상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연화가 돌연 사라진다. 아내가 인신매매당했다고 생각한 상호는 매춘부 거리에서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2년이 지나 노숙자로 사는 그는 정처 없이 파리를 떠돌아다니고, 어느 날 밤거리에서 창(미콴락)을 만나, 아내를 잃은 뒤 처음으로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연화의 옆집에 살았다고 말하는 여자가 나타나고, 상호는 마르세유로 걸음을 옮긴다.

전수일 감독의 근작들은 주로 낯선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왔다. 각각 히말라야와 페루에서 촬영한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2008), <콘돌은 날아간다>(2012)는 물론, 한국에서 찍은 <검은땅의 소녀와>(2007)와 <핑크>(2011)도 외딴곳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인물을 비췄다. 전작 <콘돌은 날아간다>에 이어 조재현과 작업한 신작 <파리의 한국남자>는 제목처럼 프랑스에서만 진행된다. 파리에서 아내를 잃어버리고 1년 만에 다시 만난 옛 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살을 붙여나간 영화는, 아내를 찾아 파리를 배회하는 남자의 로드무비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돌아다니는 공간은 극히 한정돼 있다. 서늘하고 건조한 거리를 걷는 상호는 여러 사람들과 만나지만 그 과정에서 이렇다 할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의 안식과 욕망을 일깨워주는 창 역시, “아내가 스스로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금방 영화에서 사라진다.

<파리의 한국남자>는 두드러지는 사건 없이 주인공의 여정을 가만히 쫓는다는 점에서 전수일 감독의 고집 있는 필모그래피에서도 불친절한 편에 속한다. 다만, 모호한 서사 속에서 상호가 대하는 이들이 매춘부, 여장남자, 노숙자 등 소수자라는 명확한 도식은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차라리 평평하게 만든다. 파리를 벗어나 전혀 새로운 장소인 마르세유로 향하는 길에 만난, 죽은 부인을 화장하는 남자와 함께 모여 즐겁게 파티를 즐기는 집시를 거쳐 아내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흔히 보아온 아트하우스형 로드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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