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한송이 꽃으로 피어난, 검은 땅의 소녀와
검은 땅의 소녀와 웃다 Laugh with a girl of black soil강원도 탄광촌,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도 아버지와 두 아이는 희망을 잃지 않고 즐겁게 살아간다.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조건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가고자 하는 아버지 해곤, 귀엽고 똘똘하게 아버지의 사랑스런 딸, 오빠의 자상한 보호자 역할까지 해내는 아홉살 영림, 지능은 3살이지만 아버지와 여동생을 잘 따르며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열한살 동구. 이렇게 세 식구는 서로를 바라보며 힘겨운 현실도 잊은 채 즐겁게 살아간다.
검은 땅의 소녀와 바라보다 See Through with a girl of black soil
하지만 현실은 이 세 사람에게 즐거운 날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곤은 탄광에서 사고를 당하고 보상금도 받지 못한 채 해고된다. 사택 철거 보상금으로 간신히 마련한 용달차로 장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꿈에 부풀지만 동구의 실수로 용달차가 고급 승용차에 사고를 내면서 용달차도 잃고 추가로 보상금까지 물어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다시 일어서기엔 너무 많은 절망을 경험한 해곤은 어린 아이들 앞에서조차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점차 나락으로 빠져들고, 예전 같지 않은 집안 분위기에 불안을 느낀 동구는 나날이 통제하기 힘든 행동을 하여 영림을 힘들게 한다. 더 이상 혼자 아버지와 오빠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영림은 이 둘을 도와줄 나름의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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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oviemore
과거와 현재 사이에 선 모두의 이야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 깊이를 더하다
‘탄광’은 한때 강원도 탄광촌 대다수 지역 주민의 일터였기에 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 넣어준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폐광이 늘어가면서 점차 생존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위기와 절망의 공간으로 몰락해버렸다. 과거의 희망이 현재의 절망으로 바뀐 사회적 변화 앞에서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에 맞서 나간다. 사회 구조에 맞선 투쟁을 택한 이들, 아픔을 딛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들, 절망의 땅을 버리고 떠나버린 이들 등 현실에 대응하는 개인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는 희망이 사라져가는 폐광촌에 남아서 삶을 이어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새롭고 자극적인 것들에 현혹되기에 앞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다시 한 번 고개 돌려보길 권하는 속 깊은 울림을 주고 있기에 변화의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검고도 깊은 절망 끝에 외롭게 발 딛고 서있는 소녀의 시린 아픔과 한 줄기 희망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고독한 개인의 정체성 찾기’에서
‘사회적 자아의 삶의 모색’으로 나아가다
<내 안에 부는 바람>(1997)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1999)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2005)으로 ‘시간’과 ‘기억’을 매개로 한 개인의 정체성 찾기를 영화를 통해 풀어내 왔던 전수일 감독은 신작인 <검은 땅의 소녀와>를 통해 ‘시간과 기억의 3부작’을 넘어 또 다른 작품 세계로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전의 작품들이 ‘주인공의 정체성 찾기’라는 내면의 과제를 끌어 안고 왔다면, <검은 땅의 소녀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폐광이라는 사회적 현실이 개인에게 끼친 영향을 주된 모티브로 삼고 있다. 카지노라는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지역 경제와 주민의 삶을 지탱시켜 왔던 탄광이 폐쇄되기에 이른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개인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어떻게 이를 헤쳐 나가는지를 차분하고 관조적인, 하지만 혹독한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냉정한 시선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의 차가움만큼이나 영화는 뜨겁고 가슴 벅찬 감정적 울림으로 다가온다.
10년 내공이 빛을 발하다!
세상 한가운데 선 감독, 전수일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는 처절할 정도로 사실적인 탄광촌의 현실 묘사와 이 현실을 감내해내는 주인공을 다름아닌 아홉살 소녀로 설정한 독특한 구성, 그리고 눈빛 하나로 세상의 아픔을 토로하는 배우들의 연기로 89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깊고도 길게 채우며 ‘감독, 전수일’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전수일 감독의 작품 세계를 세상 한가운데 던져 놓으며 새로운 거장 감독의 탄생을 예견케 하는 예사롭지 않은 작품임에 분명하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집스럽게 자기 색깔을 지켜내며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고독한 영화의 길을 걸어온 전수일 감독이 이 작품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간 쉼없이 쌓아온 역량과 뚝심이 드디어 인정 받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스포트라이트는 10년 전 <내 안에 우는 바람>으로부터 시작하여 <검은 땅의 소녀와>에서 또 다른 도약을 이뤄낸 전수일 감독의 영화세계 전체로 비춰져야 할 것이다.
‘거리두기’의 미학
영화 속에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지나가는 여인’(강수연 분)이 등장한다. 동구와 영림이 천진하게 눈싸움을 하며 노는 모습을 멀리서 말없이 지켜보며 한 번, 동구를 특수시설에 데려다 주러 가는 길에 또 한 번. 어린 영림이 힘겨운 시절을 모두 보내고 어른이 된 후 다시 고향을 찾은 것처럼 옅은 미소를 띄우며 어린 영림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색다른 시점을 제공한다. 잠깐 등장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주인공들의 모습을 관조하다 사라지는 이 여인은 그들의 삶과 무관하지만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관객의 시선이다. 영화 속 영림은 여유로워 보이는 이 낯선 여인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저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 여인 역시 ‘저렇게 씩씩하고 똘똘한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 하나의 고정된 시선을 두지 않고 모두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거리두기’의 미학. 이것이 바로 ‘검은 땅의 소녀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Production Note
Cinematography
촬영, 조명, 음향 장비를 모두 갖추고 내려간 지하 800미터에서 갱도를 통해 1킬로미터를 더 걸어간 후에야 드러나는 좁은 채굴장에서의 촬영 씬은 탄광 노조의 도움과 제작진의 설득으로 간신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 비현실적이라 생각될 만큼 열악한 작업 환경이 영화를 통해 노출되는 것을 꺼린 광업소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 허가를 받은 이후에도 카메라에서 물이 흐르고 밧데리가 방전될 정도로 습도가 높았던 갱도 내의 환경과 시야를 가릴 정도로 공기를 가득 메웠던 검은 분진은 또 다른 난관으로 작용하였다. 제작팀 모두가 실제 광부들의 작업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힘겹게 촬영하였기에 영화가 갖는 진실성의 무게가 이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묻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Director’s Comment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에서는 탄광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과 소외된 삶을,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다. 배경은 폐광과 탄광이 공존하고 있는 강원도의 한 작은 마을이다. 석탄산업의 사양화는 과거 탄광촌의 윤택함과 아름다움을 모두 앗아가 버리고 지금은 피폐한 아픔만을 남겨두었다. 그들 중 일부는 탄광촌에 남아 투쟁을 통해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으려 했으나 오히려 진폐증이라는 가혹한 병을 떠안은 채 죽음을 기다려야만 했다.
황폐한 탄광촌 사람들은 평생을 막장이라는 곳에 길들여졌으므로 갱도 밖의 다른 삶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자는 막장이 아닌 다른 삶의 무대를 찾아 떠나기도 했고, 혹자는 끝까지 남아 투쟁을 통해서라도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아직도 몸부림치고 있다.
이 영화는, 불과 몇 년 후 소멸되어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희망을 위한, 혹은 그 노력에 대한 눈물겹지만 아름다운 기록으로 남겨둘 것이다.”
2007년, 전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