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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한국 감독들의 생명 연장의 꿈을 응원하며
주성철 2016-01-01

지난 신년호의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류승완, 나홍진 감독 대담에 이어 이번호도 2016년 한국영화 기대작들을 총망라했다. 촬영현장에서건 사무실에서건 만날 수 있는 감독들은 직접 만나 얘기를 들었다. 선두에 내세운 영화는 바로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다. 특집 전체의 대문을 장식한 <아수라> 최초 공개 스틸을 확인해주시길.

한살을 더 먹으면서 문득 현역 감독들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본의 아니게 공개적으로 출생연도를 써서 죄송한데, 40, 50대 감독들이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며 시장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는 형국이 한국영화계에 있어 실로 오랜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김기영, 신상옥, 유현목 감독으로 대표되는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 이후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지 싶다. 1961년생 김성수 감독도 그렇고 박찬욱 감독(1963년생), 김지운 감독(1964년생) 모두 어느덧 5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스타급 배우와 대규모의 제작비, 그리고 창작의 자율성을 보장받는(다고 믿고 싶은) 감독들이다. 올해 각각 <동주>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들고 찾아올 이준익 감독(1959년생), 강우석 감독(1960년생)도 마찬가지다.

사실 1980년대 이후로는 30대 감독들의 전성시대였다. 일부 예외적인 감독들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보통 감독들의 작품 세계가 만개한다는 40대에 전성기를 맞은 감독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제대로 된 투자•배급 과정을 거쳐 50대에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더더욱 찾기 힘들었다. 1945년생 이장호 감독과 1953 년생 배창호 감독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도 30대에 나왔다. 이후 1953년생 장선우 감독과 1955년생 박광수 감독도 그러했는데, 40대 들어 각각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과 <이재수의 난>(1999)을 만들며 사실상 상업영화 시장과 작별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1년생 이만희 감독이 눈에 띈다. 향년 43살로 세상을 떴으니 놀랍게도 그 유명한 <만추>(1966), <귀로>(1967), <휴일>(1968) 등은 모두 30대에 만든 작품들이다. 그래서 <길소뜸>(1985),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등을 만들며 50대에 이르러 작품 세계가 보다 만개했던 1936년생 임권택 감독의 존재는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언제나 한국 감독들의 조로 현상에 대해 얘기해왔었는데 이제 우리도 리들리 스콧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우디 앨런처럼 꾸준히 노익장을 과시하는 감독이 보고 싶고, 어느덧 그럴 수 있는 시기로 접어든 것 같다. 문득 더 찾아보니 1923년 생장철 감독이 기념비적인 출세작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를 만든 게 40대 초반이었고, 1946년생 오우삼 감독이 <영웅본색>(1986)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나이가 바로 마흔이었다. 1910년생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라쇼몽>(1950)을 만든 나이 또한 마흔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 <요짐보>(1961), <천국과 지옥>(1963), <붉은 수염>(1965) 모두 50대에 만든 작품들이다. 물론 1919년생 김기영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마흔에 만든 <하녀>(1960)를 시작으로 수많은 걸작들로 40대를 채웠고, 박찬욱 감독이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영화 <화녀 ’ 82>(1982)는 환갑이 지나 만든 영화다.

한국영화계가 침체기니 어쩌니 하는 접근법을 떠나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모처럼 찾아온 특별한 시대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펼쳐져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