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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키드 류승완,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다
김성훈 2015-08-11

<베테랑> 슬랩스틱 코미디와 액션을 버무려 완성한 류승완표 폴리스 스토리

“에헤이.” 카센터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추임새를 신호삼아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발로 찬 쇳덩이가 쉭 하고 날아가 악당의 머리에 땡 하고 명중한다. 휘리릭 하고 날아간 차 번호판은 연장을 들고 달려오던 또 다른 악당의 급소를 정통으로 가격한다. 조무래기 두명이 안 되겠다 싶어 한꺼번에 달려들자 서도철은 도색용 분무기를 둘의 눈에 찍찍 하고 뿌린다. 성룡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은 류승완 감독의 9번째 장편영화 <베테랑>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카센터 액션 시퀀스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슬랩스틱 액션이 발랄하고 호쾌하다. 그런 점에서 <베테랑>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생이 많았던 전작 <베를린>(2012)이나 <부당거래>(2010)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선과 악이 모호하고(<부당거래>), 철석같이 믿었던 이데올로기로부터 낙오돼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베를린>) 인물이 이 영화에는 없다.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이 <부당거래> 때 취재했던 내용 중 중고차를 밀매하는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경찰 얘기로 시작됐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동경심이 생겼다. 1980년대 형사영화를 좋아했던 터라 규모가 너무 크지 않은 선에서 영화로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라는 게 류 감독의 설명이다. 그게 서도철이라는 캐릭터와 <베테랑>의 출발점이다.

적의 소굴에 들어가서 볼일부터 보질 않나, 대치하고 있는 범인에게 수갑을 던진 뒤 알아서 차라고 하질 않나. <베테랑>의 주인공 서도철은 산전수전 다 겪어 웬만한 상황에서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는 여유가 몸에 밴 광역수사대 베테랑 형사다. 그렇다고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열혈 형사 진가구(성룡)처럼 경찰로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진 영웅을 떠올리면 안 된다. 팀장(오달수)에게서 전화가 올 때마다 “또 쫀다”고 짜증부터 내고, 중고차 절도단을 검거한 뒤 “승진이 왔네, 승진이 왔어. 본청 책상에 내 이름 박고, 기름칠하고, 얼싸 좋네”라고 노래부르며 희희낙락하는 부하 직원이다. 집에서는 옷 벗을 때 먼지가 난다는 이유로 아내(진경)에게 구박받는 평범한 남편이자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아들바보’이기도 하다. 다만, “수갑 차고 다니면서 ‘가오’ 떨어질 짓 하지 말자”고 말할 만큼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갖췄다는 점에서 서도철은 길거리 노점상으로부터 용돈을 받아쓰는 <공공의 적>(2002)의 강철중(설경구) 같은 형사와 확실히 다르다. 오히려 냄새만 맡고도 죄가 있는지 없는지 대번에 파악하는 촉, 한번 문 범인을 절대 놓치지 않는 집요함을 갖춘 까닭에 서도철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워커홀릭, 우 형사(박중훈)와 닮은 구석이 꽤 많다.

어느 날, 서도철은 자문으로 참여했던 드라마 <여형사>의 쫑파티에 갔다가 그곳에서 재벌 3세이자 신진물산 기획조정실장 조태오(유아인)를 만나 범죄의 낌새를 차린다. 조태오에게 “죄 짓고 살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그래서다. 부산항에서 중고차 절도단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서도철에게 도움을 준 트레일러 기사(정웅인)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퇴사 통보를 받는다. 임금 420만원이 떼인 데다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당한 탓에 억울한 마음에 그는 자신을 해고한 화물 중개소의 본사인 신진물산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인다. 그룹 조직 개편을 앞두고 재산분할 문제 때문에 예민해 있던 조태오는 1인시위를 하던 트레일러 기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인다. 그곳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나고, 트레일러 기사는 투신자살을 시도하다가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것을 지켜본 트레일러 기사의 아들은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 있던 서도철의 명함을 발견해 그에게 전화한다. 서도철은 자신의 관할이 아닌 이 사건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수사에 착수한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는 조태오의 말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삐뚤어진 재벌 3세로서 그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베테랑>의 서사가 전개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서도철이 자신의 관할도 아닌 이 사건에 물음표를 던지면서 서도철과 조태오, 살면서 한번도 마주칠 일이 없는 두 사람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경찰 역사상 조태오 라인을 건드린 적이 없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서도철은 조태오의 사무실에서 트레일러 기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트레일러 기사 아들의 말과 조태오 사무실쪽의 증언이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등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선다. 수사망이 좁혀올수록 조태오는 사촌 형인 최 상무(유해진)를 시켜 트레일러 기사의 아내를 돈으로 회유해 합의하려 하고, 광역수사대의 윗선을 움직여 서도철을 막는 데 총력을 쏟는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서도철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는 건 “미안하다는 사과 하나면 끝날 일을 자꾸만 크게 키운” 조태오의 후안무치 때문이다. 그 점에서 <베테랑>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명확하게 구분된 형사영화다.

장군에 멍군 하는 격으로 말을 두는 과정에서 서도철과 조태오의 ‘가족’이 드러나는데, 둘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직장(경찰) 선후배 사이인 광역수사대는 진짜 가족보다 더 끈끈하다. 미스 봉(장윤주)의 클럽 다니는 취미며, 칼침 맞은 추억이며, 대출금이 남아 있는 가정사까지 서로의 시시콜콜한 사연 모두를 알고 있는 그들이다. 특히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가 필요할 때 꼭 옆에 있어주는 서도철과 오 팀장은 형제같다. 마치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과 동표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박중훈과 장동건의 관계처럼 말이다. 반면, 혈연으로 맺어진 조태오와 조태오의 아버지인 그룹 회장(송영창), 그리고 최 상무는 회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패밀리 비즈니스’ 사이다. 언제든지 조직에서 버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괴물로 만든 셈이다. 가족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베테랑>은 감독의 전작 <주먹이 운다>(2005) 속 가족의 다른 얼굴이다.

“결국 장르를 내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 스타일로 장르를 해석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영화로 말하자면, ‘<영웅본색>의 인물들이 <차이나타운>이나 <LA 컨피덴셜>로 가서 <폴리스 스토리>의 액션을 보여준다’이다.” <짝패>(2006) 때 류승완 감독이 했던 이 말을 <베테랑>에 대입해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액션영화로서 <베테랑>은 ‘어릴 때부터 즐겨봤다는 성룡, 버스터 키튼, TV만화 <톰과 제리>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버무려 자신의 스타일로 완성한 류승완표 <폴리스 스토리>’다. 영화는 크게 다섯 가지 액션 시퀀스가 배치되어 있다. 서도철과 광역수사대가 중고차 절도단을 덮치는 카센터 시퀀스, 중고차 절도단과 러시아 조직의 거래를 급습하는 부산항 시퀀스, 화물 중개소 전 소장(정만식)의 아지트에서 조선족 청부살인업자와 광역수사대가 맞붙는 시퀀스, 조태오의 차량이 신세계 백화점 앞 8차선을 질주하는 시퀀스, 서도철과 조태오가 맞붙는 명동 거리 시퀀스가 그것이다.

이중 영화의 초반부에 배치된 액션 시퀀스들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고 경쾌하다. 앞에서 짧게 언급했듯이 카센터 액션 시퀀스와 좁은 방 안에서 칼부림이 나는 전 소장 아지트 시퀀스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성룡 액션영화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재기가 넘친다. 미로 같은 컨테이너 구역에서 벌어지는 광역수사대와 범인의 추격전은 버스터 키튼의 코미디영화나 <톰과 제리> 그리고 <프로젝트 A>(1983)의 골목길 추격 신을 연상케 할 정도로 유머러스하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은 격렬해진다. 조태오가 자신의 차를 타고 신세계 백화점 앞 8차선 도로에 정차되어 있는 차들을 들이받는 장면이나 서도철과 조태오가 맞붙는 명동 거리 액션 시퀀스는 여러 이유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장면이다. 그럼에도 감독의 노련한 연출과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덕분에 이 영화 속 액션은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화면에 꽉 찬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서도철 같은 형사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게 하는, 순수한 형사영화다. 그러면서 관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하지만 현실은 갈수록 정의가 사라져가고 있는 까닭에 이 영화는 정의가 승리하는 세계를 그리는 판타지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더욱 씁쓸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움직임(액션)에 대한 류승완의 순수한 열정과 애정이 <부당거래> <베를린>이라는 멀고 먼 길을 돌아 <베테랑>에 다시 당도했다는 사실이다. 액션 키드 류승완이 액션 마스터가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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