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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반가운 옛날 사람들
주성철 2015-07-24

“어쩌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됐단 말이냐!” 10년도 더 된 김상진 감독의 <신라의 달밤>(2001) 시사회가 끝난 다음 일부 평론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쏟아낸 말들이었다. 그보다 3개월 앞서 개봉한 <친구>(2001) 시사회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영화계에 ‘조폭’이라는 좀비들을 불러낼 주문이라도 된 것처럼 역시 ‘말세’를 외쳤다. 이른바 ‘저질 코미디’, ‘저질 깡패영화’의 양산체제가 시작된 것처럼 걱정들을 쏟아냈던 것. 그러다 몇해 전 우연히 케이블TV에서 시간차를 두고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을 연달아 본 적 있다. 예전에 본 그 영화가 맞나 싶었다. 뭐랄까, 요즘 한국영화들에 비하면 오히려 순진한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당시 과하다고 느꼈던 코미디는 외려 소박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친구>도 이후 나온 여러 아류작들에 비하면 오히려 클래시컬한 향기를 풍긴다. 유난히 세월의 때를 깊이 타는 영화의 특성 때문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미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난주 배우 손호준 인터뷰에 이어 김상진 감독을 인터뷰하며 뜻하지 않게 <쓰리 썸머 나잇> 전도사가 된, 어지간한 영화를 봐도 거의 웃지 않는 정지혜 기자가 “꽤 재밌게 봤어요”라고 말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개인적으로 당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영화라 생각하는 조범구 감독, 박수진 작가의 <뚝방전설>의 세 남자가 스며든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박수진 작가가 바로 <쓰리 썸머 나잇>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호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얼굴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책을 낸 음악평론가 강헌도 반가운 얼굴이다. 이른바 ‘응사’ 세대인 나에게 그는 <핫뮤직>을 지나(성문영과 유은정이라는 환상의 콤비!) <서브>의 편집장이었던 성문영만큼이나 좋아하는 음악평론가다. 계간 <리뷰>와 월간 <키노>에 글을 쓰던 때는 물론이요, 종종 이동준이라는 본명을 쓰기도 했던 가수 이적이 대학 시절 ‘나는 왜 강헌을 싫어하는가’라는 글을 쓴 일도 기억한다. <씨네21>이 펴낸 <내 인생의 영화>에는 “나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며 <대부>를 인생의 영화로 꼽기도 했다. 무슨 스토커처럼 줄줄 읊었는데, 아무튼 강헌 자택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담배 연기로 샤워를 했다”는 김성훈 기자의 말만큼이나 흥미로운 인터뷰를 만날 수 있다. 장산곶매에 몸담으며 <오! 꿈의 나라>(1989), <파업전야>(1990) 같은 작품들에 참여했다는 경력, 영화와 음반에 관한 사전심의제도 위헌제청을 신청하고 승소함으로써 그를 원천적으로 없앤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머릿속에 축구 생각만 가득하여 ‘제발 좀 그만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건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만나는 인터뷰이마다 “축구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못 말리는 바보축구 김성훈 기자로 인하여 그가 EPL 리버풀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무튼 그의 글을 <씨네21>에서도 종종 보게 되길 기대한다.

끝으로, 지난 2주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9일 동안 데일리도 만들었다. 부천을 두고 옛날얘기를 할라치면 오래전 라스 폰 트리에의 <킹덤> 보느라 밤샌 얘기부터 역시 끝이 없다. 반갑게도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변병준 감독과 정연씨도 우연히 만나 더 옛날 생각이 났던 영화제였다. 아무튼 에어컨도 없는 사무실에서 옛날 중화요리 집에서나 볼 법한 강풍기를 벗 삼아 고생한 데일리팀 이화정, 최성열, 송경원, 윤혜지, 이예지, 문동명 객원기자에게 격려 인사를 전한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