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프랑스의 소설가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를 읽는 동안 떠올린 영화들의 목록이다. <숏 컷>(로버트 알트먼), <매그놀리아>(폴 토머스 앤더슨), <그을린 사랑>(드니 빌뇌브), <그녀에게>(페드로 알모도바르), <가족의 탄생>(김태용), <러브 액츄얼리>(리처드 커티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민규동),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요시다 다이하치) 등등. 아, 그리고 <백 투 더 퓨처> 시리즈까지.
위 목록을 보면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많은 교집합을 만들어낸다. 여기에선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저기에선 지나가는 조연으로 등장하고, 별 관계 없어 보이던 인물들이 중요한 순간에 만나 귀한 인연을 맺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 그리고 다양한 시간대로 이루어진 알쏭달쏭한 퍼즐을 푸는 것 같아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걸 완벽히 파악하겠다는 강박을 내려놓은 채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편안히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전체 이야기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런 작은 퍼즐 조각은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든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죽음까지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렬하고 깊은 사랑.
이 책에는 서로 다른 네 커플이 등장한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십대도 있고, 불륜에 빠지는 삼십대, 오십대 커플도 있고, 죽음을 앞둔 노년의 커플도 있다. 하지만 인생을 얼마나 살았든 이들은 모두 사랑과 죽음을 함께 생각한다. 소년은 소녀를 너무 사랑해 죽고 싶고, 상대를 먼저 떠나보낸 노인은 혼자 살아갈 수 없어 죽고 싶다. 작가가 낭만적 사랑에 대한 맹목적 예찬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곁에 둘 때만 비로소 제 의미를 갖는 사랑의 불완전함과 역설을 일관적으로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 사랑을 진정으로 완성시켜주는 건 죽음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불안해하고 외로워한다. 그리고 사랑하다 먼저 죽은 사람들을 은밀히 동경한다. 지극히 달콤하지만 지극히 위태로운 사랑. 사랑의 어떤 특성을 선명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우리는 서로가 마지막 사랑이라고 굳게 믿는다
문제의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내가 엄마한테 이렇게 얘기했었다. 이제 다 끝났어요. 내일 떠난대요. 그 애를 다시는 못 만날 거예요. 죽을 것 같아요. 그러자 엄마는 내게 나지막이 위로의 말을 건넸었다. (…) 얘야, 이 세상에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아무도. 소설책에서나, 그게 아니면 모자란 사람한테나 일어나는 일이지.(76쪽)
우리는 서로가 마지막 사랑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런 확신이 우리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히 아름다운 존재이다. 이제 우리는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를 가진 사이이다. 무한한 사랑을 나누는, 하지만 소설책에 담을 만한 정도는 아닌 사랑.
따지고 보면 우리는 아주 무미건조한 부부이다.(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