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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파인즈>
이예지 사진 백종헌 2015-06-18

<파인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 변용란 옮김 / OPUSPRESS 펴냄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은 진짜이며, 받아들일 만한 것일까. <매트릭스>(1999)와 <트루먼쇼>(1998)가 그러했듯이, ‘현실을 회의하는 순간’의 드라마탁한 설정은 SF 장르의 고전적인 특권이다. 세상이 미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미친 것인지 혼란스러운 순간에 대다수의 사람은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고 현실에 순응하려 할 것이다. 지금 현실이 잘못된 것을 알고 진정한 세계와 자신을 찾기 위해 ‘빨간 약’을 선택하고,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나이트’ 인사를 남긴 채 안온한 현실이라는 세트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 지금, 그런 미덕이 다시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나이트 M. 샤말란 감독이 연출하고 맷 딜런이 주연한 미드 <웨이워드 파인즈>의 원작 소설 <파인즈>는 그런 용기를 시사한다. <파인즈>는 미연방수사국 비밀요원 에단 버크가 기억을 잃은 채로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실종된 두 연방요원을 찾아 웨이워드 파인즈로 온 에단은 병원과 보안관 사무소를 오가며 조금씩 기억을 되찾는다. 그러나 웨이워드 파인즈 사람들은 자신이 비밀요원이라고 주장하는 에단을 미치광이 취급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자고 설득한다. 자신이 제정신이라는 걸 굳게 믿는 에단은 이곳 사람들이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시골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미스터리와 폭력을 숨기고 있는 웨이워드 파인즈. 에단은 이 기이한 마을의 진실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초반엔 기억을 잃은 비밀요원의 평범한 스릴러 같아 보이는 <파인즈>는, 에단의 기억이 아닌 웨이워드 파인즈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며 SF 장르로서 폭넓은 세계관과 예상치 못한 반전을 드러낸다.

<파인즈>는 장르 팬들이 반길 만한 책이기도 하다. ‘<트윈픽스> <X파일> <로스트> <셔터 아일랜드>의 팬에게 바친다’는 저자 블레이크 크라우치의 헌사처럼, 이 작품은 고전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호러, 스릴러, SF 장르의 적절한 혼합으로 장르 팬들에게 호소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또한, <파인즈> 말미에서 정체를 드러낸 이 세계관은 <웨이워드> <라스트타운> 3부작 소설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그는 도시로 돌아와 있었다

길이 곧아지자 안개도 사라지고 숲도 사라졌다. 멀리 보이는 표지판 하나. 아직 200m나 거리를 두고 있어서 보이는 것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네 사람의 형체 뿐이었다. 새하얀 치아를 드러낸 환한 미소. 반바지에 줄무늬 셔츠를 입은 사내아이. 원피스 차림의 어머니와 딸. 중절모를 쓰고 양복을 입은 채 손을 흔드는 아버지. 완벽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가족 그림 아래 적힌 문구. “천국이 집인 곳. 웨이워드 파인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단은 가속페달을 밟아 표지판을 지나쳤고, 길은 목장 울타리와 평행하게 이어져 전조등 불빛에 가끔 초원과 소떼가 드러났다. 멀리 보이는 불빛. 초원이 그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다시 가정집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중앙의 황색선 두줄이 사라지고 길이 넓어졌다. 길은 1번로로 이어졌다. 그는 도시로 돌아와 있었다.(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