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앨리스(제시카 비엘)는 어느 날 머리에 못이 날아와 박히는 어이없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지만 의료보험도 없는 상태에서 엄청난 수술 비용을 구하는 데 실패한 앨리스는 뇌에 못이 박힌 채 충동조절장애에 시달리며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지내기 시작한다. 그녀를 돌보던 가족들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도 서서히 그녀를 포기해갈 때쯤, 우연히 TV에서 국회의원 하워드(제이크 질렌홀)가 ‘시민들의 걱정을 함께하고 도움을 주겠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에 감동한 그녀는 자신을 도와줄 유일한 사람을 발견했다며 무작정 그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으로 길을 떠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감독 데이비드 O. 러셀에, 출연만으로도 충분히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두명의 배우 제시카 비엘과 제이크 질렌홀, 이것도 모자라 ‘엑시덴탈 러브’(우연한 사랑)라는 감성 넘치는 제목까지, 어느 하나 의심할 여지없이 ‘로맨틱 코미디’의 외형을 갖추었다. 하지만 영화는 놀랍게도 시작한 지 10여분 만에 이러한 관객의 기대를 순식간에 어리둥절함으로 바꾸어놓는다. 데이비드 O. 러셀은 영화 초반, 주인공 앨리스의 머리에 ‘못’을 박아넣은 다음, 그녀를 감정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정신없이 오고 가게 만들어 이 영화가 그녀의 로맨스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우리에게 알린다. 대신 <엑시덴탈 러브>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놀랍게도 단 하나,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지금 미국 사회에 어떠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이다.
이 문제에 대해 <식코>(2008)의 마이클 무어가 직설화법을 선택했다면, 데이비드 O. 러셀은 ‘미국 B급 감성 유머’에 냉소를 섞음으로써, 소재의 무게는 덜어내고 주제의 날카로움은 더했다. 어떠한 인과관계의 고리도 없이 건너뛰듯 진행되는 이야기는 때로 당혹스럽지만, 시골 마을 웨이트리스인 앨리스가 의료보험법을 개정하기 위해 워싱턴의 고위 정치인과 싸우는 투사로 변신하는 과정은 일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기에 의료보험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 인종, 동성애 등 현재 미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정치 이슈들도 함께 등장해 보는 이들을 순간순간 각성시킨다.
하지만 이렇게 미국 사회의 현안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다 보니 이 영화가 미국 밖 관객인 우리에게 얼마만큼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그저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이처럼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조롱하며 비판할 수 있는 그들의 여건과 풍토가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