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문정희가 연기한 지수는 ‘슈퍼맘’이다. 10년째 백수로 지내는 남편 태만(김상경)을 대신해 미용실을 운영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진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강한 모성애를 보여줬던 전작 <연가시>(2012)와 <숨바꼭질>(2013)과 달리 지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아줌마다.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사진 찍는 순서를 직접 챙길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문정희의 모습은 슈퍼맘 지수와 똑 닮았다.
-사진 찍는 순서까지 직접 체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씨네21> 표지 촬영이 처음이라 그런 건 아니고. (웃음) 사진은 오래 남는 데다가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영화는 봤나. 어땠나.
-따뜻한 가족 드라마였다. 전작 <연가시>와 <숨바꼭질>에 비하면 지수는 지극히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다. =전작에서 센 캐릭터를 연기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숨바꼭질>이 끝난 뒤 전환점이 필요했다. 현실적이고 따뜻한 여성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연가시>와 <숨바꼭질> 때 힘들었나보다. =센 캐릭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로감이 쌓였던 건 아니다. 재난영화(<연가시>)나 스릴러(<숨바꼭질>) 같은 장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랄까. 그동안 여성성을 강조하거나 힘을 뺀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으니 여성적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지수는 어떤 여자던가. =미용실을 운영하며 10년째 백수 생활에 접어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여자다. 남편한테 잔소리를 하지만 기를 죽이는 여자는 아니다. 오히려 남편에게 지극정성인 여자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까닭에 미용 기술을 배워야 했다.
-일상적인 에피소드가 많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준비해야 할 게 60%라면 나머지 40%는 현장에서 만들어 갔다. 그래서 (김)상경 선배와의 호흡이 중요했다. 상경 선배가 연기한 남편이 다소 과장된 연기를 해야 했다면, 지수는 그보다 현실적이다. 남편에 비해 눌린 역할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혼자 감당해야 하는 가장의 면모도 필요했으니 말이다.
-실제 남편이 10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면 어떨 것 같나. =남편이 백수라도 상관없다. 누구나 직업이 없는 시기가 있지 않나. 나를 되돌아봐도 그렇다. 영화 속 태만처럼 서울대 나와서 집에서 놀면 본인은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겠나. 물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지수가 힘들겠지만 남편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애정을 가지고 이 작업에 임했다.
-확실히 지수의 잔소리는 남편의 신경을 긁지만 자존심까지 건드리진 않는다.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신경 썼을 것 같다. =지수는 가장의 자리에 군림하는 여자가 아니다. 실질적인 가장은 지수지만 남편의 자리는 온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가 편안하게 와서 앉을 자리다. 딸이 아빠를 온라인 중고 장터에 내놓는 설정이지만, 이런 해프닝을 겪으면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딸은 딸대로 성장하는 것 같다.
-<연가시> <숨바꼭질>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카트> 등 최근 쉴 틈 없이 작업하고 있다. =연이어 결과물들이 나오다보니 그렇게 보이는 거다. 한 작품씩 차근차근 했다. 욕심은 사람들에게 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캐릭터와 해야 하는 캐릭터는 또 다르다. 매 순간 나를 던진다면 인연이 생길 거라 믿는다. 내게 오지 않는 캐릭터에 미련을 가지진 않는다. 나한테 오는 건 또 막지 않고. (웃음)
-<아빠를 빌려드립니다>와 <카트>가 한주 간격으로 개봉한다. 어떤 영화가 잘될 것 같나. =둘 다 잘됐으면 좋겠다. (웃음) 뻔한 대답이라고? <카트>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이고,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따뜻한 가족 드라마다. 두편 모두 각기 다른 작품이라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