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에 대한 요구가 이처럼 절실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영화에 있어서 대안이 요구된다면, 이런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크고 작은 영화제들일 것이다. 그중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은 어떤 영화제보다도 대안이라는 말을 절실하게 붙잡아왔다. 제14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이 8월7일(목)부터 15일(금)까지 9일간 미디어극장 아이공, 한국영상자료원, 산울림 소극장 등에서 열린다. 개막작은 제주 4.3 사건을 정조준한 다큐멘터리 <거듭되는 항거>인데, 이 제목은 한편으로는 대안영화의 존재방식을 설명하는 간명한 어구로도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사운드다. 6개의 챕터로 분절된 영화는 시, 기도, 살풀이, 공식 담화, 사적 진술 등 다양한 발화의 형식을 통해 4.3의 재현 가능성을 실험한다. 첫 장면을 장식하는 까마귀떼의 강렬한 이미지는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매개로 영화 내내 존재감을 드러내며 상징적 분위기를 더한다.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우리 시대의 민속지’다. 민속지는 주로 다큐멘터리 방법론을 설명할 때 쓰이는 용어로 탐험을 기반으로 토착민과 관계 맺는 인류학적 접근법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인류학자이자 혼합 다큐멘터리의 대가인 장루슈의 회고전이 마련된다. 장루슈의 개성이 발아한 초기작, <나, 흑인>부터 <조금씩 조금씩>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해볼 기회다. 다큐멘터리의 확장성을 실험하는 최신작들도 소개된다. <망대>는 지역과 투쟁을 이야기할 때 상대적으로 배제된 강원도 춘천의 좁은 골목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지역 주민들의 인터뷰와 공간에 대한 조망을 바탕으로 한 작품에 변곡점을 그리는 것은 SF소설을 지향하는 작가적 상상력이다. 삶이 곧 투쟁인 지역 주민들을 미래에서 파견된 시간여행자이자 ‘불법체류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흥미롭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형식의 ‘애니다큐’를 소개하는 섹션도 마련된다. 다큐멘터리에서 애니메이션은 <관타나모 수용소: 단식투쟁>처럼 기억을 재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며, <아일랜드식 가구 재활용>에서처럼 가구들의 시간을 마술적으로 포착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애니다큐라는 용어 자체에 의문이 생긴다면 메타영화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그게 뭐야?>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
경쟁부문인 글로컬 구애전 섹션에서는 극영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단편의 묘미를 잘 살린 이색적인 작품들이 눈에 먼저 띈다. 코소보라는 낯선 나라에서 온 영화 <발코니>는 4층 높이의 발코니에 걸터앉은 아이로부터 번져나가는 관계망을 원신 원컷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발코니>를 코소보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 짓는 해석이 많지만 그와 동시에 영화 관람 방식에 대한 은유로 해석해볼 여지가 있다. 사건의 진원지인 소년이 영화에서 묘하게 배제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앙상블>은 음성 대신 음향효과만 존재하는 시기의 무성영화의 기법을 표방한다. 남녀의 일상적인 다툼을 그리던 흑백영화는 컬러로 전환되면서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때 두 남녀를 위한 음향적 분신인 탭댄서와 래퍼가 등장하는데 그 순간부터 주객이 전도된 듯 남녀의 이야기가 자꾸만 밀려난다. 디지털 시대의 상징으로도 읽힌다. 올해 특별전은 스페인 비디오아트로, 현재진행 중인 비디오아트의 경향을 가늠해볼 기회다. 5분의 러닝타임 동안 내시경으로 관악기의 내부를 탐사하는 <관>, 결정적인 순간을 되돌리는 방식의 <비상구> 등 단순한 방법을 통해 새로운 시선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