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프간이여…아프리카여…두 이란 감독의 영화가 한데 묶여 오는 3월1일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동시에 개봉한다. <에이.비.씨 아프리카>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 작가로 부상해 97년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아프리카 우간다를 찾아가 내전과 에이즈에 시달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기록한다. 이제껏 사회문제를 정면에 내세운 적이 없는 이 거장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반면 이란 민주화운동으로 6년간 복역한 뒤 줄기차게 사회참여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운동권`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칸다하르>에서 내전과 기아로 벼랑에 내몰린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을, 기이한 이미지에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영화가 사회현실을 어떻게 비춰야 하는지, 또 그 현실에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새삼 생각해볼 거리들을 던져주는 많지 않는 기회다.<칸다하르>는 영화의 내용이 주인공 여배우의 실제 이야기와 흡사하다. 주인공 나파스 역을 맡은 닐로우 파지라는 16살이던 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캐나다로 망명했다. 98년 고향 친구 다이애나로부터 가혹한 아프간의 현실이 견디기 힘들어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2년이 지난 2000년 파지라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과 함께 아프간을 찾아갔고, 마흐말바프는 그 노정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그러나 기록영화는 아니다. 아프간에서 망명한 나파스라는 가상인물과, 그가 자살하려는 여동생을 찾아 혼자 칸다하르로 찾아간다는 시나리오를 지닌 로드 무비 형식의 극영화이다. 이란-아프간 국경지대 사막에서 출발해 지뢰와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검문을 피해 칸다하르로 향하는 험난한 나파스의 여정에 여러 인물이 스쳐간다. 길안내를 맡은 소년은 돈에 눈이 멀어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구호단 앞에서 의족을 받으려고 줄을 서는 상황에서, 한 청년은 의족을 팔아 돈을 챙기려고 사기를 친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가난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편, 정의를 쫓아 소련-아프간 전쟁에 뛰어들었다가 이곳에 머물게 된 미국 출신 흑인 의사의 입을 빌어 출구 없는 현실의 암울함을 직접 들려준다.하지만 이런 서술보다 이미지의 연출이 눈길을 끈다. 의족이 낙하산에 매달려 사막으로 떨어질 때 그걸 서로 가지려고 목발을 집고 뛰어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스포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린 화면으로 클로스업한다. 몸을 드러낼 자유조차 없는 여인들의 행렬이 갖은 색상의 부르카로 인해 현란하고 아름답기까지하다. 이런 모순적인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건 부인하기 힘들지만, 아프간의 현실을 드러내는 올바른 방법인지를 두고 논란을 낳았다. 특히 9·11 뉴욕 테러로 아프간에 관심이 쏠리게 된 뒤 이 영화가 개봉된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현란한 이미지가 리얼리티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임범 기자isman@hani.co.kr
압바스 키아로스타미(62)는 카메라를 아이들 삶을 들여다보는 돋보기로 쓰는 이란 감독이다. 그 카메라는 동시에 어른들 삶의 졸보기가 되기도 한다. 그 멀리보기와 가까이보기가 겹쳐지면서 이란 사람들의 생활은 입체적인 하나의 풍경을 이뤘다. 1987년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부터 92년작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까지, 아이들 뒤를 쫓던 그의 따뜻한 눈길은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미의 새로운 발견에 멈춘다.그런 키아로스타미에게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 시선을 빌려주길 청한다. <에이.비.씨(A.B.C) 아프리카>는 키아로스타미가 우간다 고아구제여성단체(UWESO)의 요청으로 2000년 3월부터 이듬해까지 우간다 어린이들의 삶을 담은 기록필름이다. 과거에는 비극적인 내전으로, 현재는 불붙듯 번져가는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200만 명을 헤아리게 된 우간다에서 이방인 키아로스타미는 두 대의 디지털 캠코더로 아프리카의 `에이, 비, 씨`를 찍기 시작한다.아이들이 낯선 카메라 앞에 모여든다. 찍히고 싶은 마음에 졸졸 따라다니며 큰 몸짓으로 춤추고 노래한다. 부모가 죽고, 칠순 할머니 밑에서 열댓 명 친척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조차 어린이들의 맑은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젊은 가장들이 사라진 마을에 남은 여성들은 계를 조직해 삶을 꾸려간다. 아이들은 그들에게 짐이자 희망이며, 오늘이자 내일이다. 키아로스타미는 그렇게 아프리카를 하나씩 읽어간다.에이즈 환자 격리병원에서 천에 둘둘 말려 종이 상자에 얼기설기 쌓인 채 자전거 짐받이에 실려가는 아이 시체나, 먼 외국으로 입양돼 가는 아이 눈망울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겼다. 아프리카는 멀지만, 그 아이들은 우리들 가슴에 있는 아이들이기도 하다.정재숙 기자j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