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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제2의’라는 수식은 싫어요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4-04-03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만든 영화 차례로 개봉하는 김정훈, 유원상, 한승훈 감독

김정훈, 한승훈, 유원상 감독(왼쪽부터).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을 접할 때 가장 먼저 꺼내드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제2의’라는 말이다. 매번 ‘제2의 봉준호’, ‘제2의 장준환’, ‘제2의 <파수꾼>’이라는 이름으로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만큼 이 기관을 통해 발굴되는 실력 있는 신인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는 최익환 원장의 방침 아래 영화계와의 ‘스킨십’이 더 강해졌고, 상업영화의 틀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의 배출이라는 성격이 보다 뚜렷해졌다. 앞서 개봉한 작품 <잉투기>가 상반기 다양성영화 부문에서 호평을 이끈 데 이어, 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세 작품이 차례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정훈 감독의 드라마 <들개>(개봉 4월4일)는 고등학생 시절 수제폭탄 제조범으로 소년원에 갔던 청년의 이야기를 청년실업과 관련해 긴장감 있게 엮어냈으며, 유원상 감독의 <보호자>(개봉 4월10일)는 유괴당한 딸을 구하기 위해 다른 아이를 유괴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한승훈 감독의 드라마 <이쁜 것들이 되어라>(개봉 4월17일)는 10년째 사법고시를 준비 중인 청년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으로, 아버지의 외도와 낙방이라는 고배, 진정한 사랑 찾기를 유쾌한 필치로 그린다. 세 작품 모두 장르적 특징을 참신한 시선으로 사용한 매력적인 작품들로 ‘제2’라는 수식어 없이도 온전하게 설 수 있는 개성 강한 작품들이다.

-각자 어떤 의도로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된 건가. =김정훈_나와 비슷한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회를 향한 불만과 분노가 상당한데 표출할 대상이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하더라. 이 세대의 억눌린 현실을 취업 이야기와 사제폭탄이라는 소재와 접목해서 풀어보고 싶었다.

유원상_관객이 주인공을 과연 어디까지 응원해줄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가장 나쁜 짓을 찾다보니 유괴범이 나오더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관객에게 감정적인 동의를 얻으며 엔딩까지 가느냐에 방점을 두었다.

한승훈_주인공 ‘정도’(정겨운)의 성장기를 쓰고 싶었다. 목적 없이 살았던 인물이 자아를 알아가는 변화의 과정을 따라가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 작업에서 멘토 교수의 지도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 =한승훈_학생들이 각자 선호하는 멘토 교수를 1지망부터 3지망까지 적어내면 교수님들이 시나리오 심사 과정을 거쳐서 선택하는 방식이다. 난 박흥순 감독님이 멘토 교수셨다. 교수님이 ‘정도’의 성장 과정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아이템을 많이 주셨다. 돌이켜보면 장편 작업을 잘 몰라서 괜히 고집을 부린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김정훈_김태균, 정지우 감독님이 멘토 교수셨다. 전적으로 지도를 한다기보다는 한달에 두세번 정도 작품을 검토하고 조언을 해주시는 역할을 한다.

유원상_강이관, 오승욱 감독님이 멘토 교수셨다. 오승욱 감독님은 내가 감독님 의견에 너무 좌지우지되어 색깔을 잃을까봐 매번 조심하셨다.

-연출자로서 장편 프로덕션을 온전히 이끌어나가는 첫 경험이었다. =김정훈_프로덕션 자체가 커졌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였다. 무술, 특수효과, CG팀이 현장에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야의 스탭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본 게 처음이라 힘이 들더라. 어느 장면에서는 내가 할 일이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현장이 이렇게도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좋은 경험이자 힘든 경험이었다.

유원상_가장 크게 절감한 건 연출력 부족이었다. 현장에서 그랜드캐니언을 처음 마주할 때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더라. 뭘 할 수 없을 정도의 감당 불가능한 기분이 2~3일에 한번씩 찾아왔다. 26회차를 찍는 동안 그런 심적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승훈_단편 때와 달리 준비할 게 많아 당황스럽더라. 그런데 막상 촬영 때는 재밌었다. 스탭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끝나고 나니 아쉽다.

-편당 6천만원이라는 제작비에 비해 프로덕션 규모가 크다. 특히 특수효과와 무술 스탭들이 참여한 <들개> 경우엔 제작비 대비 규모가 상당해 보인다. 최익환 원장이 영화계와 학교가 협력할 수 있는 ‘스킨십’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런 아카데미의 방향성이 실질적으로 프로덕션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김정훈_여러 곳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서울액션스쿨은 돈을 얼마 못 드렸는데 도움을 주셨고, 특수효과를 맡아준 데몰리션의 경우는 최익환 원장님의 도움으로 함께했다. 이지승 교수님 소개로 CG도 큰돈 안 들이고 할 수 있었다. 데뷔도 안 한 감독이 이런 스탭을 구성할 수 있었던 건 영화아카데미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승훈_<파수꾼>이 시장에서 성과를 낸 뒤 현장과의 연계가 부쩍 많아진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인력을 구성하는 게 쉬워졌다. 좀더 상업영화의 프로덕션에 가깝게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영화아카데미의 최근 분위기이기도 한데, 조성희 감독 이전에는 몇년간 아카데미가 배출한 스타감독이 많지 않아서 좀더 지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최익환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우리처럼 예술영화 안 하는 학생들은 아예 입학도 못했을 것 같다. (웃음)

유원상_후배들은 우리보다 점점 더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질 것이다.

-이제 데뷔를 했는데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유원상_중학교 2학년 때 TV를 산 기념으로 비디오를 빌려봤는데 <파이널 디시전>이었다. 그거 고르다가 비디오 가게 형이랑 친해졌고, 그길로 비디오 가게 알바생으로 취직해서 일했다. 그때 신작부터 무협, 에로 등 가리지 않고 다 봤다. 영화 말고 다른 거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감독이 되거나 안 되면 비디오 가게라도 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었다. 아는 형 소개로 <다슬이> 연출부로 일하고 이후에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한승훈_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광고에 관심이 생겼다. 친구가 광고 찍고 싶으면 연극영화과를 들어가라고 하더라. 입학하고 나서도 1년 동안은 광고 만들어서 공모전 내고 그랬는데,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의 재미를 알게 됐다.

김정훈_중3 때 <펄프 픽션>을 봤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세계가 있구나. 전공은 경영학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영화를 하게 된 건 갑자기 군대 면제를 받으면서였다. 복학하고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 스터디를 하면서 영화가 특별한 사람만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졸업하고 ‘돈 벌어서 영화하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1년간 다니다 <이태원 살인사건> 연출부로 영화계에 들어왔다. 현장 분위기는 경험했지만 영화를 배운다는 생각은 없더라. 어쨌든 내 작품을 찍고 인정받자는 생각에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유원상_영화라는 게 결국 내가 원한다고 다 만들 수는 없는 거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학연수를 준비했었는데 지금은 새로 아이템을 구상 중이다.

한승훈_그동안 영화 각색 작업하면서 지냈다. 아이템은 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쓰지는 못했다. 일단은 개봉 시기니 여기에 전념하려 한다.

김정훈_<들개>를 찍으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영화에 반영됐다는 생각에 잘 만들고 아니고를 떠나 기분이 홀가분하다. 다음 영화 역시 사회에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 결국 범죄영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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