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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모자를 쓰기 전과 후
이주현 2014-03-13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매커너헤이의 연기 변천사

매튜 매커너헤이의 출연작 중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은? 대답은 여러 갈래로 나뉠 것 같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타임 투 킬> <콘택트> 같은 영화를 얘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웨딩 플래너>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같은 2000년대 로맨틱 코미디의 제목을 대는 이도 있을 것이고, <매직 마이크>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머드>처럼 캐릭터가 돋보이는 최근작을 얘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론 우드루프를 만난 다음이라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에이즈 환자 론 우드루프로 변신한 매튜 매커너헤이와 눈이 마주친 다음이라면? 당신은 분명 매튜 매커너헤이의 대표작 목록에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제목을 기입하게 될 것이다. 근래 가장 흥미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배우 매튜 매커너헤이의 연기 변천사와 그의 치명적 매력을 탐구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지금이 진짜 배우 인생의 하이라이트다. 실로 엄청난 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최종 목적지는 아니겠지만.”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매튜 매커너헤이가 시상식 2주 전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우리는 이 고백이 연기 경력 20년 넘은 배우의 입에서 나온 얘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993년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멍하고 혼돈스러운>으로 데뷔한 매튜 매커너헤이는 그로부터 20년하고도 1년이 더 지나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매커너헤이는 오스카 시상식보다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론 우드루프로 이미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배우 인생의 전반기를 로맨틱 코미디의 반지르르한 왕자님으로 보낸 그를 두고 <타임>은 “3년 전만 해도 ‘남우주연상은 매튜 매커너헤이’라는 문장은 터무니없어 보였다”라고 썼는데, 확실히 최근 매커너헤이의 커리어엔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완벽한 변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그 지각변동을 완성하는 작품이다. 매커너헤이의 오랜 팬이었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제작자 로비 브레너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배우들을 제치고 매커너헤이에게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건넸다. 그리고 매커너헤이는 에이즈에 걸려 의사로부터 30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한 남자, 론 우드루프의 삶에 주저 없이 뛰어든다(참고로 매커너헤이는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태어나고 롱뷰에서 자란, 텍사스 토박이다). 론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전형적인 미국남부 텍사스 출신 마초다. 본업은 전기 기술자. 생활 터전은 로데오 경기장과 술집이며, 술과 마약과 여자가 빠진 일상은 섭섭해서 참아낼 수 없는 남자다. 영화는 카우보이모자를 쓴 론이 로데오 경기장 한쪽의 어두운 대기실에서 여자와 격렬히 섹스하는 뒷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론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얼굴은 매커너헤이의 팬이라도 단박에 알아맞히기 힘들만큼 생경하다.

매커너헤이는 영화를 위해 20kg을 감량했다. 앙상한 겨울 나무를 연상케 하는 몸. 그 몸을 만들기 위해 촬영 4개월 전부터 식이요법과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촬영 내내 60kg 초반대의 몸무게를 유지했다(그 모습을 본 매커너헤이의 딸의 반응은 “왜 이렇게 아빠 목이 기린처럼 길어요?”였단다). 사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잘생긴 데다 건장하기까지 한” 매커너헤이가 과연 론 우드루프로 변신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손꼽히는 섹시남에게 죽음을 눈앞에 둔 에이즈 환자 역을 맡기는 게 감독으로선 분명 도박이었을 거다. 게다가 매커너헤이는 근작 <매직 마이크>에서 스트리퍼로 변신해 탄력 넘치는 몸을 충분히 과시한 바 있다. 채닝 테이텀의 파워풀한 댄스 못지않게 매커너헤이의 허리돌림은 섹시했다. 그 유연한 허리돌림에 눈을 뗄 수 없었던 이라면 장 마크 발레 감독의 걱정이 충분히 이해되고 남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매커너헤이는 변신의 귀재 소리를 들어 마땅할 만큼 놀라운 변신을 선보인다. 드라마틱한 외형적 변화가 연기 변신을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외적 변신은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매커너헤이의 앙상한 몸이 눈에 익을 때쯤, 그러니까 일차적 충격효과에서 벗어날 때쯤 우리는 론 우드루프 그 자체가 된 매튜 매커너헤이를 마주하게 된다. 감독과 작가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완성하는 ‘절대적’ 한 조각은 바로 매튜 매커너헤이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백마 탄 왕자님에서 섹시한 변호사로

최근 3년 사이 매커너헤이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며 다양한 가면을 썼다 벗었다. 확실히 예전과는 작품 선택의 기준이 달라졌다. 아직 신인이던 시절, 그는 <론 스타> <타임 투 킬> 같은 범죄물에서 꽤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 모습을 눈여겨본 제작자와 감독들은 <콘택트> <U-571> 같은 규모 큰 영화의 주인공으로 매커너헤이를 발탁한다.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는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밝고 가벼운 작품들로 채워진다. <웨딩 플래너>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은 그를 ‘로맨틱 코미디의 백마 탄 왕자님’ 이미지로 못 박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웨딩 플래너>의 잘나가는 의사 스티브와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의 잘나가는 광고회사 직원 벤자민은 여자들의 환상을 채워주기 위해 창조된 캐릭터였다. 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안 매커너헤이도 전형적인 미남 배우가 되어갔다. <사하라> <달콤한 백수와 사랑만들기> <위 아 마셜> <사랑보다 황금> 같은 평범한 상업영화들에서 예사로운 연기들을 선보이며 매커너헤이는 30대를 보냈다.

6년 전, 마흔을 코앞에 둔 매커너헤이는 가족과 에이전트에게 이런 얘기를 꺼냈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잠시 그늘에서 쉬려 한다. 이제 곧 40대가 된다. 남자에겐 중요한 시기다. 얼마 전 가족도 꾸리지 않았나. 웃고 사랑하고 모험을 즐기는 시간을 갖고 싶다.” 휴식을 끝낸 그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킬러 조> <버니>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 <머드> <매직 마이크>로 자신의 귀환을 알린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매커너헤이는 자신을 ‘보스’라 부르는 운전사를 둔 변호사 믹 할러를 연기한다. <타임 투 킬> <아미스타드>에 이어 변호사만 세 번째. 고등교육을 받은 지적이고 섹시한 남자의 대명사 또한 매튜 매커너헤이다. 법정에 선 매커너헤이는 노출을 감행할 때보다 더 섹시하다. 실제로 그는 배우가 되기 전 변호사가 되길 희망했다. 법학도를 꿈꾸며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를 다니던 그는 그러나 기말고사 직전 오그 만디노의 <위대한 상인의 비밀>(The Greatest Salesman in the World)을 읽고 인생 항로를 법학에서 영화로 바꾸게 된다(이 책은 위대한 세일즈맨이 되는 법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어쨌거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매커너헤이의 섹시함은 무르익는다. 믹 할러는 고뇌하는 지식인이 아니다. ‘돈 안 내면 변호도 없다’는 철칙으로 움직이는 속물이면서 ‘무고한 의뢰인’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다. 매커너헤이는 건조한 유형의 인물보다 적당한 속물근성과 능청스러운 처세술로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피해가는 유형에 훨씬 잘 어울리는 배우다. 믹 할러와 <매직 마이크>의 달라스가 딱 그런 캐릭터였다.

<킬러 조>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에선 그보다 음영이 짙고 비극적인 캐릭터를 소화한다. 피 튀기는 막장 가족 해체극 <킬러 조>에서 매커너헤이는 형사이자 킬러인 조 쿠퍼를 연기한다. 카우보이모자와 선글라스는 이번에도 빼먹지 않고 쓰고 등장하는데, 광기에 휩싸인 채 변태적 성욕을 표출하는 매커너헤이의 모습은 어째 많이 낯설다.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됐다는 선전포고가 지나치게 강렬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파격은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에서도 계속된다. 1969년 미국 남부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매커너헤이는 인권운동에 관심이 많은 <마이애미 타임스>의 기자 워드로 분한다. 워드의 얼굴엔 진실을 파고들다 생긴 상처가 훈장처럼 새겨져 있는데, 결국 그 집요한 성격이 화를 불러 워드는 애꾸눈이 된다. 검은 안대를 쓴 매커너헤이의 모습은 손바닥만 한 팬티 한장에 노란색 쫄쫄이 상의를 걸친 <매직 마이크>의 한 장면보다 충격적이다. 시각적 충격도 충격이지만, 극적 장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배역은 매커너헤이와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잭 블랙 주연의 블랙코미디 <버니>에서 그가 연기한 지방검사 대니가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도 무언가를 더하려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가. 맨몸 캐릭터의 최고봉은 <머드>의 머드다. 권총 한 자루, 총알을 막아준다는 흰색 셔츠 말고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남자. 진흙에서 뒹굴다 나온 것 같은 행색이지만 순수하고도 절대적인 사랑을 믿는 남자 머드를 연기하면서 매커너헤이는 그간 숨겨뒀던 순수의 얼굴을 꺼내 보인다.

<매직 마이크>

크리스토퍼 놀란과 손을 잡다

지난 3년, 매커너헤이는 숨 가쁘게 기어 변속을 하며 달려왔다. 그 결과 그는 미국독립영화의 믿음직한 얼굴이 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물론 독립영화에 출연한 것이 “의도적 선택”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늘 훌륭한 캐릭터를 찾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상업영화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캐릭터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혹여나 스튜디오영화에서 그런 캐릭터가 있다 해도 내게 그 역할이 돌아오진 않는다. 그런 캐릭터는 조지 클루니에게 먼저 갈 테니까.”

자기만의 영화적 세계가 분명한 감독들과의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이후 매튜 매커너헤이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손을 잡았다. <머드>를 재밌게 봤다는 놀란은 자신의 신작 <인터스텔라>(11월 북미 개봉예정)의 여정에 매커너헤이를 초대했다(텍사스 촌구석을 벗어나 행성간 여행을 시도하는 매커너헤이라니. 설마 우주에서도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있진 않겠지). 최근엔 구스 반 산트의 신작 <시 오브 트리>(Sea of Trees)에 캐스팅됐다는 뉴스도 떴다. 그리고 현재 미국 <HBO>에선 그가 제작에도 참여한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가 방송되고 있다. 오랜동료인 우디 해럴슨과 짝을 맞춰, 연쇄살인마를 쫓는 형사로 출연한다. 물론 텍사스 출신의 형사다. 배우라서 행복하고,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다는 매튜 매커너헤이. 그의 배우 인생 2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버니>

진정한 남부의 신사

동료 영화인이 말하는 매튜 매커너헤이

“매튜 매커너헤이는 즐겁게 살기 위한, 배우로서의 삶을 사랑하기 위한, 예술적 작업에 봉사하기 위한 어떤 임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장 마크 발레 감독

“촬영 중 누가 매튜 매커너헤이가 입은 끈팬티의 끈을 찢었다. 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매튜는 중요 부위를 잡고 굴러야 했다. 하지만 그는 대담하게도 사람들이 계속 연기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었다. 한번은 그가 연기할 한 장면에 대해 짧게 설명을 했다. 그랬더니 ‘이 남자(달라스)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이었다. 그는 달라스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매직 마이크>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우리는 섹시하고, 뜨겁고, 매력 있고, 지적인-현실에서도 지적인 배우를 원했다. 그 모두를 충족시키는 남자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나. 매튜 매커너헤이는 거기 부합하는 몇 안 되는 남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진정한 남부의 신사다.”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프로듀서 크리스틴 피터

“매튜 매커너헤이와 처음 만난 건 그가 <타임 투 킬>을 찍고 난 뒤 한 행사장에서였다. 친절하고 재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원한다면 내가 데킬라 한잔을 사겠다고 했더니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아직 정오였고, 그는 그날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 (거절을 한 것이 미안했는지) 이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매튜 매커너헤이는 내게 형제나 다름없다.” -<트루 디텍티브>의 배우 우디 해럴슨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Filmography

2014 <인터스텔라> Interstellar(후반작업 중) <트루 디텍티브> True Detective(TV시리즈) 2013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2012 <매직 마이크> Magic Mike <머드> Mud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 The Paperboy <이스트바운드 & 다운> Eastbound & Down(TV시리즈) 2011 <킬러 조> Killer Joe <버니> Bernie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The Lincoln Lawyer 2009 <고스트 오브 걸프렌즈 패스트> Ghosts of Girlfriends Past 2008 <헬로우, 서퍼> Surfer, Dude <트로픽 썬더> Tropic Thunder <사랑보다 황금> Fool’s Gold 2006 <위 아 마셜> We Are Marshall <달콤한 백수와 사랑만들기> Failure to Launch 2005 <투 포 더 머니> Two for the Money <사하라> Sahara 2003 <자유: 미국의 역사> Freedom: A History of Us(TV시리즈 다큐멘터리) <팁토즈> Tiptoes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How to Lose a Guy in 10 Days 2002 <레인 오브 파이어> Reign of Fire 2001 <프레일티> Frailty <13 컨버세이션> Thirteen Conversations About One Thing <웨딩 플래너> The Wedding Planner 2000 <U-571> U-571 1999 <생방송 에드> TV Edtv <킹 오브 더 힐> King of the Hill(TV시리즈) 1998 <뉴튼 보이즈> The Newton Boys 1997 <아미스타드> Amistad <콘택트> Contact 1996 <스콜피온 스프링> Scorpion Spring <라저 댄 라이프> Larger Than Life <타임 투 킬> A Time to Kill <론 스타> Lone Star 1995 <글로리 데이즈> Glory Daze <보이즈 온 더 사이드> Boys on the Side 1994 <텍사스 전기톱 학살4> The Return of the Texas Chainsaw Massacre <외야의 천사들> Angels in the Outfield 1993 <멍하고 혼돈스러운> Dazed and Conf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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