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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받지 않은 진실의 대한민국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4-02-20

<찌라시: 위험한 소문>에 대한 제작자·시나리오작가·감독·프로듀서의 생생 리포트

사설 정보지 혹은 증권가 찌라시. 줄여서 그냥 찌라시.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은 그 찌라시의 세계를 파헤친다. <찌라시>를 기획한 신범수 대표와 김광식 감독, 황성구 작가, 신창길 프로듀서는 그 세계에 ‘누가, 어떻게, 왜’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들이 경험한 찌라시의 세계는 어땠는지, 이들이 <찌라시>를 통해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었는지 들었다.

“혹시 잠입취재를 해볼 생각은…?” <찌라시>에서 배우 매니저인 우곤(김강우)은 자신의 신분을 연예부 기자로 속이고 찌라시 정보회의에 참석한다. 시나리오엔 찌라시가 제작/유통되는 과정이 꽤나 리얼하게 묘사돼 있다. 혹여라도 용감무쌍한 감독(혹은 작가, 제작자)이 정보회의에 잠입하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김광식 감독은 “그럴 순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예부 기자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 그게 곧 정보회의”라며 “영화기자들의 정보회의는 없나요?”라고 되물었다. 찌라시의 세계가 새삼 가깝고도 낯설게 느껴졌다. <찌라시>의 주요 스탭 4인이 들려주는 ‘고급정보’를 공개한다.

오늘의 명랑뉴스는 뭐야?

신범수 영화사 수박 대표의 REPORT

신범수

<찌라시> 제작자. 영화사 수박 대표. <제보자> <특수본> <이태원 살인사건> 제작.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컨버세이션> 같은 영화, 도청전문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도청전문가 이야기를 파다보니 공운영 전 안기부 미림팀장(미림팀은 정치인 및 주요인사를 상대로 불법 도청 활동을 펼쳤고, 2004년 공운영 팀장이 도청테이프를 외부로 유출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편집자) 이야기가 나왔고, 전직 안기부 출신 국내정보 담당자들이 퇴직 뒤에 찌라시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았다. 처음엔 다른 작가와 스릴러 장르로 시나리오를 준비했는데 결국 무산되고, 황성구 작가의 손에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을 맡겼다.

사전 취재는 쉽지 않았다. 우선 주간지나 월간지의 찌라시 관련 특집 기사들을 읽었다. 기사를 쓴 기자는 물론이고 주변 연예부 기자들을 통해 찌라시의 세계에 접근했다. 국정원에선 찌라시의 연예정보를 ‘명랑뉴스’라고 부르는데, “오늘 명랑뉴스는 뭐야?” 물어보기도 하면서 스포츠지의 데스크들과 국정원 국내정보 담당자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교류한다고 하더라. 아는 연예부 기자를 통해 국정원 직원과 미팅을 할 뻔도 했었다. 만남 직전 그쪽에서 마음을 바꿔 미팅은 성사되지 못했다. 대신 ‘정보회의’에 참석한 ‘정보맨’, 찌라시 제작자, 찌라시를 받아보는 사람들을 두루 만났다. 찌라시 구독자는 주로 국회의원 보좌관, 증권사나 대기업 홍보팀 직원들이다. 정보맨들의 면면도 비슷하다. 경찰, 검찰, 국회의원 보좌관, 대기업 홍보 담당자 등 정보를 다루거나 정보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낮에 여의도 룸살롱 같은 데서 볶음밥 같은 거 시켜 먹으면서 정보회의를 한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정보를 입수한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그 정보들이 모여 찌라시 제작자들에게 전달돼 유포되는 거다.

찌라시 제작자도 한분 만났다. 전직 경제지 출신 기자였다. 찌라시 특집 기사를 준비하던 <동아일보> 기자가 우리가 <찌라시>라는 영화를 만드는 걸 알고 찾아왔는데 그 기자가 찌라시 제작업자를 만났다고 하더라. 우리가 그렇게 찾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던 업자를 말이다! 전직 기자였다는 찌라시 업자는 찌라시 제작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둠 속에서 암암리에 일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는데 상상이 빗나갔다. 정식으로 등록된 언론사도 운영하면서 사설 정보지도 함께 만드는 분이었다. 찌라시 업계에서 ‘특종’도 몇번 터뜨렸고 명예훼손으로 소송도 여러 번 당한, 나름 이 바닥에서 유명한 업자였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찌라시가 지금보다 더 많이 나돌았다. 특히 대선 전후로 찌라시를 통해 상대를 음해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정권이 바뀌고 첫 번째로 떨어지는 일이 찌라시 척결일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런데 척결이 안 되는 이유는 찌라시 제1구독자가 검찰이라서란다. 찌라시 제작/유통업자들을 다 잡아버리면 검찰의 취재 소스가 사라져버려 그럴 수 없다고.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봤다. 사설 정보지가 찌라시라고 불리는 이유는 허가받지 않은 언론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찌라시에서 진실이 튀어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진실이 언론에서 튀어나오지 않고 찌라시에서 튀어나오는가. 왜 찌라시에서 얘기가 돈 다음에야 언론에 기사가 나는가. 그 말은 곧 공식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이미 (언론에 뇌물을) 다 먹여놨는데 어떻게 진실이 나와”, 그런 현실이다. <찌라시>를 통해 언론의 역할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찌라시>는 무협의 세계와 닮았다

황성구 시나리오작가의 REPORT

황성구

<찌라시> 시나리오작가. <간기남> <특수본> <파랑주의보> <새드무비> 각본.

찌라시를 본 첫 느낌? 되게 시시했다. 왜 시시할까 생각해봤는데 정/재계 사건이나 동향은 내게 필요 없는 정보거나 무관한 정보였던 거다. 찌라시의 맨 끝에 부록처럼 달린 연예계 얘기는 그나마 좀 읽혔지만. 취재를 하고 글을 쓰면서 느낀 건 내게 이토록 시시한 문서가 누군가에겐 목숨이 달린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 그 부분에서 이야기를 잘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작업은 1년 반 정도 걸렸다. 취재를 바탕으로 상상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내 상상력이 실재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찌라시의 세계는 존재하는 세계지만 철저히 감춰진 세계다. 그 세계에도 분명 프로페셔널이 존재한다는 얘기인데,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그려내는 데 있어 내 상상력이 그만큼 받쳐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차라리 역사물이라면 제약이 덜했을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도청 수법은 미림팀 사건을 참조해 상상을 덧붙였고, 연예계 얘기나 매니저의 삶은 알고 지내던 매니저들을 통해 들은 얘기가 있어 쓰기에 조금 수월했다. 그런데 내 버전과 김광식 감독이 각색한 버전이 그 지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나는 연예계의 부정적인 면을 그리는 데 마음의 부담이 덜했다(주위에 좋은 매니저들이 없어서 그런가? 물론 농담이다). 그래서 주인공 우곤(김강우)을 자기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매니저로 설정했다. 반면 김광식 감독은 매니저와 연예인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 우곤 캐릭터는 진심으로 자신의 배우를 아끼고 사랑하는 매니저로 탈바꿈하게 됐다.

<찌라시>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무협의 세계와 닮았다. 찌라시 세계의 고수(박 사장)가 있고, 그 세계에 복수심을 품고 의욕적으로 뛰어든 신참(우곤)이 있고, 그 신참을 공격하고 방해하는 인물(차성주)이 있다. 세상에 도전하다 여기저기 깨지고 내동댕이쳐지지만 결국 신참은 성장한다. 복수 플롯이라든지 캐릭터 설정은 어느 무협물에서나 볼 수 있는 구조다. 개인적으로 <찌라시>를 한편의 성장영화로 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장르적인 요소는 가급적 덜어내고 좀더 <인간극장>스럽게!

재밌는 정치영화에 대한 욕망

김광식 감독의 REPORT

김광식

<찌라시> 감독. <내 깡패 같은 애인> 연출.

찌라시가 진짜 있었단 말야? 시나리오를 읽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알고 나니 궁금해졌다. 대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 세계를 구성하는지. 사실 사설 정보지 그 자체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그 세계에 연루된 사람들이 재밌는 거지. 취재차 찌라시 업자를 만났을 때도 ‘아, 대한민국에 전문가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사회를 그대로 보는 듯해 재밌었다. 그분도 ‘생계형’이었다는 얘기다. 또 고급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그 정보를 쉽게 남에게 퍼뜨리지 않는다. 50만원, 100만원씩 돈 주고 산 정보를 왜 굳이 알리려 하겠나. 사설 정보지가 증권가 찌라시라는 오명을 얻게 된 건 저급한 정보가 다량으로 유포되는 곳이 증권가이고, 정보를 가공해 퍼뜨리는 사람들이 주로 증권맨들이기 때문이다. 증권사 직원들은 자신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야 주식 거래 의뢰가 들어오니까. 이처럼 찌라시의 세계를 들여다볼수록 찌라시라는 소재가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를 한번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찌라시 제작업자 박 사장(정진영)의 사무실 세트 촬영현장.

<찌라시>에는 연예인 자살사건, 동영상 유출, 불법도청 등 우리의 현실을 환기하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아 리얼리티를 확보하고자 했지만 그렇다고 특정 사건을 다뤘다거나 힘줘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질 의도는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현실을 비유하는 영화가 된 것 같다. 예전부터 정치, 경제, 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무겁지 않고 재밌게 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늘 했었다. 우리나라엔 재밌는 정치영화가 거의 전무하다. 내가 <찌라시>를 왜 하게 됐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결국 정치적인 이야기를 재밌게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찌라시>의 시나리오를 읽고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 <찌라시>가 우리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국회에서 영화 찍은 건 우리가 처음이다

신창길 PD의 REPORT

신창길

<찌라시> PD. <의뢰인> <> <분홍신> <질투는 나의 힘> 프로듀서.

국회의사당에서 영화를 찍은 건 우리가 최초다. <찌라시>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던 송호창 의원(무소속)과 전병헌 의원(민주당)이 도움을 많이 줬다. 전병헌 의원은 사람들을 섭외하는 데 도움을 줬고, 송호창 의원은 본인의 국회사무실을 촬영장소로 제공해줬다. 안성기 선배님이 영화에 남 의원으로 출연하는데, 남 의원의 국회사무실은 그러니까 송호창 의원의 사무실이다. 국회 업무가 없는 휴무기간에 송호창 의원으로부터 촬영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엔 사무실 내부 촬영만 허락받았는데 양해를 구하고 구해서 복도까지 연장해 찍기도 했다. 두분 국회의원 이름은 영화에 도움주신 분들 크레딧에도 들어간다.

<찌라시>의 촬영은 대부분 현지 로케이션으로 진행됐다. 박 사장의 사무실만 세트였고 나머지는 오픈세트였다. 영화에는 10초도 안 나오는 장면이지만 꼭 보여줘야 하는 장면들이 많아서 여기저기 이동을 많이 하며 찍었다. 미진의 집, 경찰서 장면 등 부산에서의 촬영도 15% 정도 됐다. 장소가 잘게 쪼개지다 보니 촬영 회차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총 70회차가 넘었다. 김광식 감독은 “찍어도 찍어도 끝나지 않는 영화”라고도 했다. 김광식 감독의 전작 <내 깡패 같은 애인>이 45회차 촬영이었는데, 50회차가 넘어도 촬영이 끝나지 않자 “왜 이렇게 안 끝나지?” 싶었다고. 그래도 열심히 찍은 덕에 예산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규모에 비해 볼거리가 풍성한, 역동적인 움직임이 많은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소재나 장르만 놓고 보면 <내 깡패 같은 애인>과 <찌라시>가 굉장히 다른 영화 같지만, 영화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찌라시>에도 김광식 감독만의 인장이 새겨져 있다. 정서적으로 따뜻하고 관객에게 위안을 준다는 점에서, 또한 세상이 좀더 올바르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상통한다. 사회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한 대로 정정당당하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지 않나. 그런 데서 오는 분노와 스트레스가 있는데, <찌라시>는 그런 답답함을 후련하게 날려주는 통쾌한 영화다.

너~~무 잘생기면 안 돼

김광식 감독이 말하는 캐스팅 뒷이야기

우곤(김강우) 신인여배우 미진의 매니저. “이런 얘기하면 강우씨한테 미안하지만, 너~~~무 잘생긴 배우가 우곤 역을 맡으면 ‘지가 배우하지 왜 매니저해’ 이런 얘기가 나올 수도 있을까봐 지나치게 꽃미남과는 아니었으면 했다. 물론 강우씨도 정말 잘생겼지만. (웃음) 그리고 후반부에 복수 라인을 가져가려면 기본적으로 선한 이미지의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강우씨가 국민형부 이미지를 얻으면서 우곤 역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박 사장(정진영) 찌라시 유통업자. “정진영 선배는 내가 이 영화에 합류하기도 전에 시나리오에 매력을 느끼고 함께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 역시도 박 사장 역에는 정진영 선배 말고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감독으로선 복받은 일이었다.”

백문(고창석) 도청전문가. “백문이란 캐릭터가 영화에 밝은 기운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했다. 고창석씨가 최근에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 밝은 이미지가 백문 역에 잘 어울릴 거라고 판단했고, 실제로 그런 이미지에 많이 기댔다.”

차성주(박성웅) 보안업체 CEO이자 일명 해결사. “<신세계>에서 센 악역을 한번 선보여서인지 성웅씨가 처음엔 차성주 역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사이코메트리>란 영화를 함께 찍으면서 강우씨가 성웅씨랑 친분이 있었고, 성웅씨를 만나게 됐다. ‘차성주는 절대 그냥 깡패가 아니다. 전직 국정원 출신이고 보안업체 CEO이고 어쩌고저쩌고…’ 차별성을 엄청 부각하면서 성웅씨를 꼬이는 데 성공했다.”

비속어라도 괜찮아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라는 제목이 나오기까지

애초 제목은 <찌라시: 예언자들>이었다. 김광식 감독의 작명이었다. “찌라시를 예언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래서 예언자들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코웃음만 치더라.” 간혹 소문이 예언이 되기도 하고 찌라시에 예언적 속성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언과 소문은 태평양만큼 넓은 간극을 지닌 단어다. 김광식 감독도 인정했다. “예언이란 말에는 진실성을 담보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찌라시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했다.”

비속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컸다. 황성구 작가는 “제목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다”고 말했다. 신창길 PD는 “비속어 제목이라 등급 심의받을 때 지적받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다. 결국 관객에게 설문을 돌린 결과 찌라시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생각만큼 크지 않고, 부제를 붙이더라도 찌라시라는 단어가 앞에 오는 게 더 선명한 인상을 준다고 판단해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라는 제목이 최종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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