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성 감독은 신인 감독이 아니다. 13여년 전 한국의 우익 꼴통들에게 ‘뻑큐’를 날렸고(<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2001)), 월드컵 4강 진출에 광분하는 4700만 붉은 악마를 혼자서 ‘왕따’시켰다(<그들만의 월드컵 ver. 2.0>(2002)).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전쟁 파병을 앞서서 풍자하기도 했다(<제국-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2003)). 최근에는 여러 밴드들과 함께 4대강 공사 현장을 찾아가 펼친 작은 공연을 카메라에 담았고(<저수지의 개들>(2011)), 제주 강정 마을에 해군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퍼포먼스에 참여하기도 했다(<Jam Docu 강정>(2011)). 이 밖에도 뮤지컬영화(<히치하이킹>(2004)), 옴니버스 퀴어영화(<동백꽃>의 <김추자>),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한 실험영화(<이상, 한가역반응>(2011), 32명의 SM 아티스트의 성장담을 다룬 상업다큐멘터리(<I AM.gt;(2012))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해온 그다. <소녀>는 최진성 감독이 만든 첫 번째 장편 극영화다. <소녀>는 그의 종잡을 수 없는 관심의 궤적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지난해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I AM.gt;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소녀>를 진행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쉬고 싶은 마음은 없나.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꽂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다. 2010년부터 다큐멘터리 <저수지의 개들>, <저수지의 개들 take2 낙동강 with 바드, 정민아>(2011), <Jam Docu 강정>, 지난해의 <I AM.gt;까지 4편을 쉴 새 없이 찍었다. 왜 이 영화를 해야 하는가, 이 영화에 꽂힌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판단이 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I AM.gt;이 끝난 뒤 CJ 콘텐츠 개발실로부터 여러 아이템을 제안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 <소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녀>가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말’을 다룬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주인공 소년과 소녀가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19살이라는 것. 하드보일드한 세상에 버려진 소년과 소녀의 멜로. 청소년과 어른, 하드보일드와 멜로 등 이 경계를 잘 다듬으면 빛과 소리로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영화의 사건은 왜곡된 말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윤수(김시후)와 해원(김윤혜) 역시 말 때문에 상처받은 과거가 있다. 왜 ‘말’인가. =우리는 항상 말을 하면서 산다. 하지만 말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 오해를 하고, 또 오해를 받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해하고 양보하는 것? =그 말 안에 사랑에 대한 당신의 진심이 전부 표현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컵에 있는 물을 자신의 손바닥에 따르면서) 이렇게 새나가는 거지. 남아 있는 건 ‘이해하고 양보한다’는 말뿐이다. 좋은 말을 할 때도 이렇게 진심이 빠져나가는데 우리가 하는 말의 절반은 안좋은 말이다. 그게 소문이고, 뒷담화일 것이다. <소녀>는 소통의 어려움과 오해 같은 것을 극단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10대 소년과 소녀가 주인공인 한국영화다. 윤수와 해원 역에 각각 김시후와 김윤혜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얼굴. 얼굴의 아우라. 배우의 얼굴이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순수함과 폭력에 처한 불안감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얼굴이 필요했다. 해원은 순수함과 팜므파탈적인 면모를, 윤수는 멋모르는 순진함과 끔찍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어둡고 음침한 느낌을 함께 보여줘야 했다. 김윤혜와 김시후의 얼굴이 적합했다.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구제역이라는 사회적 문제까지 끌어들인다. =구제역은 최근 몇년 동안 계속된 현재진행형 문제다. 이 사건을 통해 영화를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자 했지만 더 중요했던 건 생매장이라는 모티브였다. 전염성이 강한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산 채로 죽임을 당하는 돼지처럼 영화 속 인물들 역시 잘못 전달된 말, 그러니까 소문에 의해 생매장될 위기에 처한다. 죄 없는 돼지가 생매장되는 사회적인 문제와 말에 의해 작은 공동체 안에서 생매장 당하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연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I AM.gt;도, <소녀>도, 일종의 성장담이다. =성장담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성장담으로서 <I AM.gt;과 <소녀>는 극과 극의 영화다. <I AM.gt;이 32명의 SM 소속 아티스트들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 꿈의 무대에 서게 되는 <빌리 엘리어트> 같은 성장담이라면 <소녀>는 ‘반성장담’에 가깝다. 19살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과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거부당하고, 또 자발적인 의지로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을 거부하는 끔찍한 이야기다. 이들에게 성장은,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장을 멈추는 게 이들에게 최선이 아닐까 싶었다.
-성장담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나이 들면서 얼굴이 온화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괴팍하게 변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정치인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징그럽고 무섭다. 온갖 권모술수와 말의 폭력이 일상화된 직업이니까. 성경에 간음한 자는 돌로 치라는 이야기가 있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한 여인이 사람들에게 붙잡혀 예수 앞으로 끌려갔다. 당시 로마 법은 민간인에게 사형집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음한 자를 돌로 치지 않으면 율법을 어기게 된다.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 문장이다. 예수의 말을 듣고 나이 든 사람부터 도망갔다. 죄 많은 사람부터 도망가고 아이들은 최후까지 남아 있다는 거다. 어른이 된다는 건 죄가 많아지는 거다. 그게 나쁘다고는 얘기 못하겠다. 나도 매일 죄를 지으니까.
-스스로의 나이듦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폭력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뉴스를 통해 끔찍한 사건이나 사고를 접해도 놀라지 않는다. 또 한편으로는 항상 긴장한다. 내가 폭력의 행사자가 되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영화를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조금이나마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2000년대 초반에 만들었던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그들만의 월드컵 ver. 2.0> <제국-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 등은 거대한 정치적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풍자했다. 하지만 <Jam Docu 강정>에서 당신이 연출한 에피소드는 사적인 관심사(모형 군함)에서 출발한다. <I AM.gt; 역시 32명의 SM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당신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진다. 과거와 달리 어떤 이슈에 접근할 때 사적인 관심사에서 출발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정치적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뤘던 20대의 최진성은 그런 얘기를 할 만한 자신감과 패기 그리고 반항심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쑥스러워지더라. 내가 만든 작품들이 쑥스러운 게 아니라 내가 그런 얘기를 할 만한 깜냥이 되나 싶더라. 그다음부터 바뀌게 된 거다. 나부터 좀 되돌아봐야겠다, 나는 잘 살고 있나, 그러면서 어떤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 작품을 하더라도 나의 소박한 관심사에서 출발하게 됐다.
-되돌아보니 잘 살고 있는 것 같나.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처럼 멋있게 살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
-그게 가능한가. 영화감독은 항상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일인데. =놀라운 건 항상 폐를 끼친다는 것이다. (웃음) 예전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거나 끼치더라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부끄러워한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것도 쑥스럽다.
-당신은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다. 그간 마음 맞는 스탭들과 함께 소규모로 작업했다면 <I AM.gt;과 <소녀>는 CJ라는 거대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 여러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야 했다. 어땠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것 같다. 여느 감독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스튜디오로서 CJ의 고민, 제작자의 고민, 여러 기술 스탭들의 고민, 연출자로서의 나의 고민 등 수많은 고민과 맞닥뜨려야 했다. 내 생각만 옳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범답안을 말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영화에 대한 나의 비전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런 깨달음을 얻었던 건 아니었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사비를 털거나 지원을 받아 만들어온 게 대부분이다.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뭘 만드는지 관심도 없었다. <I AM.gt; 때 처음으로 스튜디오 안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정말 많더라. SM의 수뇌부, 매니저들, CJ 담당자 등.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의견과 나 이상으로 이 영화에 관심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싸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면 영화가 안 좋아질 것 같더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 역시 나처럼 영화가 잘되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는구나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 경험이 <소녀>를 만들 때 많은 공부가 되었나. =<소녀>를 만들 때는 그런 생각이 더 정교화되고, 안정화된 것 같다. 각기 다른 의견이 너무 많아서 영화 만들기가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좋은 의견이 될 확률이 높고 이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덤비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기자회견에서 당신을 잘 아는 한 감독이 당신에게 이런 농을 던졌다. “최진성은 이 자리에 있을 군번은 아닌 것 같다. 10년째 가능성 아닌가”라고. (웃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 =2005년 <씨네21>에 ‘올해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으로 인터뷰한 적 있다. (웃음) 그 때 여러 작품을 준비하다가 결국 데뷔를 하지 못했다.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성사되지 않은 건 내 그릇이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후 작품 활동이 그전에 비해 뜸해지긴 했지만 자그마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2007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가 공부를 더 많이 했다. 어릴 때는 영화를 보기 위해, 만들기 위해 학교 공부를 내팽개쳤다. 갈수록 영화가 뭔지 잘 모르겠고, 나에 대해 궁금해져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영화를 보는 시선이 진지해졌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유로워진 것 같다. 지금 <소녀>를 만든 건 내게 정확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고 있다.
-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영화광이었다. 영화, 아니 영화관을 사랑했다.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남들처럼 홍콩영화, 할리우드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뇌에 큰 각성이 일어났다.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1989)을 보고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에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구나 싶었다. 그때 받았던 충격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박찬욱 감독의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을 보고 또다시 느꼈다. 두 선배 감독의 영화에서 출발한 나의 팬심은 1990년대 중/후반 문화학교 서울을 전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고전영화, 단편영화, 독립영화 등 새로운 영화들을 하루에 6편씩 보던 시절이었다. 당시 6mm 카메라가 대중화하면서 300만원을 삼촌에게 빌려 소니 VX-2000 카메라를 샀다. 그때 냅다 찍은 게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였다. 영화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찍었기 때문에 그런 황당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봐준 것 같다.
-울산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자랐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얼마 전 <시네마천국>을 다시 봤다. 알프레도 아저씨가 토토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더 많은 것을 배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런 말을 한다. “영화는 현실과 달라.” 경쟁으로 점철된 이 하드보일드한 세상에서, 물론 자본주의의 콘텐츠이긴 하지만 영화관은 몇 안되는 소중한 도피처다. 어떤 연인들에게는 사랑을 나누는 공간. 백수들에게는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낭만적인 공간. 영화학도들에게는 꿈을 키우는 공간. 그런 것처럼 내게도 영화관은 현실과 차단되어 있는 공간이고, 그래서 좋아한다.
-차기작은 정해졌나. =13년 동안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실험영화, 뮤지컬영화, 장편 극영화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쑥스럽지만 항상 전작과 다른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있는 것 같다. 차기작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소녀>와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오랫동안 독립영화 작업을 해오던 최진성 감독이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 <소녀>를 작업한 것은 큰 변화다. 그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삶의 동반자가 생겼다. <I AM.gt;이 끝난 뒤 전 ‘두번째 달’의 멤버였고, 현재 밴드 ‘바드’와 ‘정원영 밴드’의 멤버인 박혜리씨와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경쟁하고, 소문내고,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는 하드보일드한 세상에서 집에서 ‘치맥’하며 TV를 보는, 무의미한 일을 함께할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의미 있는 일을 너무 많이 하는 이 세상에서 무의미한 일을 하는 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