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초기부터 영화감독들은 ‘꿈의 건축가’란 별칭으로 불렸다. 영화와 건축은 모두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정신과 공간을 직조해내는 예술 분야이다. 그러니 이 둘을 잇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2009년부터 매년 세계 유수 건축영화들을 소개해온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올해 5회째를 맞는다. 대한건축사협회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도미니크 페로가 디자인한 이화여대 ECC의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10월31일부터 11월5일까지 엿새간 진행된다.
개막작은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다양한 영상 작업을 해온 게리 허스트윗의 <어버나이즈드>다. 디자인 다큐멘터리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세계의 혁신도시들을 방문한 감독이 도시가 직면한 문제들을 발견하고 대안을 고심하는 내용을 담는다. 건축에 대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시네 파사주’ 섹션에는 정재은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 시티:홀>이 포함돼 있다. 서울시청의 신청사 건설을 통해 감독은 ‘역사와 사람, 도시와 건축가’ 등 다양한 비전으로 현재의 서울을 바라본다. 올해 제주영화제에서 소개된 고형동의 단편 <9월이 지나면> 역시 흥미롭다. 이 영화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주인공을 매개로, 청춘의 역설적 심리를 감각적으로 풀어낸다.
거주하는 곳이란 의미의 ‘정주’를 키워드로 한 ‘줌 인 하우스’ 섹션에는 집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모인다. 일본의 신진 건축가 사카구치 교헤이의 이야기를 담은 <모바일 하우스 제작기>도 그중 하나다. 사카구치 교헤이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기존 건축시장에 흥미를 잃었고, 이후 노숙자들의 삶을 관찰하여 ‘0엔 하우스’ 개념을 창조해냈다. 11월1일과 3일 양일간 그가 직접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준비돼 있다.
지금은 대학 교수로 활동하는 황규덕이 오랜만에 영화를 들고 관객과 만난다. 감독은 직접 흙집을 짓는 과정을 담은 셀프다큐멘터리 형식의 <환생의 주일>을 통해 집을 짓는 과정과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유비적으로 엮는다. 한편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세계적 건축가 다섯명이 ‘5인의 아키텍트, 5개의 집’이란 키워드로 소개된다. <르 코르뷔지에의 오두막> <안도 타다오의 고시노 하우스> <알바 알토의 빌라 마이레아> <콘스탄틴 멜니코프의 멜니코프 하우스> <루이스 바라간의 스튜디오> 등 연작을 통해 랙스 린네캉가스 감독은 거장들이 구상한 하우스 설계를 꼼꼼히 되짚고, 그에 담긴 정신적 유산을 음미한다.
건축과 개발을 주제로 한 ‘시네 레트로’ 섹션에서는 아시아 거장들이 만든 건축영화를 만날 수 있다. 일본 다큐멘터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가와 신스케의 <산리츠카: 이와야마에 철탑이 세워지다>가 원본 16mm가 아닌 HD급으로 변환돼 상영되며, 차이밍량의 <떠돌이 개>, 지아장커의 <24시티>도 이 부문에 포함된다. 올해 신설된 ‘비욘드’ 섹션에는 디자인이나 회화 등 타 예술장르와 결합한 건축영화들이 다수 포진된다. 합판과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의 값싼 재료를 이용해 실용적 가구들을 제작한 임스 부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임스: 아키텍트 & 페인터>가 대표적이다. 2차대전 이후부터 1987년까지의 ‘임스 시대’를 영화는 역사적 사진 기록과 함께 재구성한다. 구스타브 도이치의 <셜리에 관한 모든 것> 역시 특별한 방식으로 도시인의 감성을 드러낸다.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고독한 도시 여성’의 이미지들이 영화 속 인물들의 역사적이고도 매혹적인 순간과 합쳐져 표현된다. 한편 구스타보 타레토의 성공적 데뷔작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도 빼놓을 수 없다. 남미의 거대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다양한 건축을 통해, 영화는 청춘들의 고립과 단절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