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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그리우니 장사된다
윤혜지 2013-08-20

<대부> <러브레터> 등 재개봉 영화 봇물, 일시적 유행 넘어 자리잡을까

<데미지>

추억의 영화가 스크린으로 소환되고 있다. 포문을 연 건 <대부> 시리즈다. 2010년 5월 전국 16개관에서 재개봉한 <대부>(1972)는 2만5천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10월 전국 13개관에서 재개봉한 <대부2>(1974)는 1만8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후 <데미지>(1992)와 <타인의 삶>(2006)이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에 차례로 재개봉해 각각 2956명과 4423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 2월과 4월에 차례로 재개봉한 <러브레터>(1995)와 <레옹>(1994)은 손익분기점인 2만명보다 두배가량 많은 각각 3만8천여명과 4만2천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편수로 보나 흥행 성적으로 보나 극장가에서 재개봉 열풍이 불고 있는 건 분명하다. 수입사 관계자들은 재개봉 영화가 중/장년층 관객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을 재개봉 열풍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이는 전체 인구 가운데 12.4%에 이르는 2차 베이비부머(1968~74년생) 세대가 대중문화 상품, 이를테면 뮤지컬, 영화, 음악시장에서 주요 고객으로 자리잡은 사회적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조이앤컨텐츠그룹의 수입 담당 윤수비 대리는 “<러브레터>가 1999년 개봉할 때 20, 30대였고, 지금은 30, 40대가 된 관객층을 주된 타깃으로 삼았다”며 “당시의 관객에게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화이고 지금의 20대에게도 충분히 영화의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러브레터>를 재개봉한 이유를 설명했다.

개봉 당시 많은 인기를 모은 작품은 마케팅하는 데 있어서도 신작에 비해 수월하다. <시네마천국>을 수입한 그린나래미디어의 수입/배급팀 유현택 팀장은 “워낙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단 마케팅하기가 쉬운 것 같다”며 “다만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포지셔닝해서 영화를 보지 못한 세대들과 충분히 소통 가능한 방향으로 기획하려고 한다”고 <시네마천국>의 마케팅 전략을 밝혔다. 다른 수입 관계자들도 “인지도가 높긴 하나 영화를 잘 모르는 젊은 관객을 공략하기 위해 극장 개봉 당시와 다른 방향으로 마케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지만 “신작에 비해 마케팅이 수월한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러브레터>

부가판권시장과 동반성장하다

하지만 모든 재개봉 영화가 극장으로부터 환영받는 건 아니다. 재개봉 영화라고 해도 다 같은 재개봉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컴퍼니 엘 이형주 대표는 “같은 재개봉 영화라도 첫 개봉 때의 흥행성적이나 인기에 따라 극장과 관객의 호불호가 갈린다”며 “특히 제작연도가 오래된 작품은 극장 상영 순서에서 일단 밀린다”고 재개봉 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극장 역시 이 대표의 설명과 비슷한 입장을 내놓는다. CGV 무비꼴라쥬 이원재 과장은 “아무래도 극장으로선 작품성과 화제성 그리고 대중성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첫 개봉 때 크게 흥행한 작품이 아니라면 먼저 기획전으로 묶어 관객의 반응부터 살펴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부터 잉마르 베리만 영화를 아트하우스 모모를 통해 꾸준히 상영하고 있는 영화사 백두대간 최낙용 부대표는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같은 경우 기대했던 것보다 관객의 호응이 좋지 않아 고민 중”이라며 “그렇다고 배급의 규모를 늘리자니 다른 극장에 피해를 줄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수입사들은 판권 계약이 만료된 과거 영화들을 찾아내 재계약하며 꾸준히 수입하고 있다. 조이앤컨텐츠그룹 최광래 대표는 “지금은 재개봉 열풍의 초창기라고 생각한다. 붐이 있으면 가라앉을 때도 오겠지만 일단 적극적으로 재개봉 시장을 키워볼 생각이다. 10대, 20대 관객도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는 세대와 똑같이 즐거워하고 감동을 느끼길 바란다. 다른 수입사들도 힘을 합치면 극장가에서 좋은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기대와 달리 재개봉 영화의 미래를 극장이 아닌 부가판권시장에서 찾는 수입사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린나래미디어 유현택 팀장은 “극장에서의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며 “블루레이와 DVD 출시를 기다리거나 HD 리마스터링 버전을 기대하는 VOD 이용자들의 반응이 앞으로 상당할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부가판권시장에서의 수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가판권시장은 극장 수익에 의존했던 한국 영화산업의 편향된 수익 구조에 하나의 돌파구가 되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13년 5월 발표한 자료인 ‘유료 VOD, 어떻게 소비되나?’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TV 가입자 수는 약 14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IPTV 이용자가 700만명, 디지털케이블TV 이용자가 541만명, 위성방송 이용자가 199만명가량이다. IPTV와 디지털케이블TV의 VOD 이용 비율은 평균 19.9%이며 유료 VOD 이용률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유료 VOD 영화의 주요 이용자는 IPTV에 가입한 30, 40대 기혼자로서 일정하고 안정적인 소득원이 있으며,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계층이기도 하다. 이들은 수입업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재개봉 영화의 주요 타깃층이다. 유료 VOD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콘텐츠는 줄거리가 재미있고, 극장 흥행에 성공했으며, 추천인이 많은 영화다. 이 역시 현재 재개봉 중인, 또 재개봉 예정 중인 영화의 성격과 정확히 일치한다. 극장에서 상영 우위를 점하기 힘든 중소 규모의 수입사들이 공격적으로 부가판권시장에 뛰어들었다면 극장보다 유료 VOD 시장 같은 부가판권시장에서 수익을 기대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레옹>

파이는 성장하지만, 여기서도 분배 문제가

하지만 부가판권시장이 성장하면서 수입사간의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CGV 무비꼴라쥬 이원재 과장은 “소규모 영화를 수입하는 회사가 워낙 많아 정확한 숫자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확실히 부가판권시장이 성장하기 전보다 수입사가 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편당 수입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이에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수입사들은 더 많은 작품을 구입하는 실정이다. 여러 작품을 패키지로 계약하기를 선호하는 부가판권시장의 성향 때문이다. 수입사 찬란 이지혜 대표는 “부가판권시장이 떠오르기 전보다 수입가가 세배 이상 뛴 것 같다”며 “작품 편수가 많아지다보니 극장 잡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더컨텐츠콤 영화사업본부 양동명 이사 역시 이 대표의 말에 동의하며 부가판권시장의 과열된 경쟁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익히 알려진 대로 시장의 파이는 점점 성장하고 있지만 중소 규모 수입사들의 수익이 느는 것 같지는 않다”고 업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만 해도 부가판권시장은 중소 규모 영화사들의 활로였다. 그런데 시장이 하나의 수익모델로 가능성을 보이자 대기업 투자배급사나 직배사들이 시장 안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면서 “자연스럽게 부가판권시장의 구조는 멀티플렉스의 그것과 비슷해져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잘되는 영화는 부가판권시장에서도 잘나가고, 그렇지 않은 영화는 수익을 올리기가 점차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수입사, 극장, 부가판권시장 관계자들은 재개봉작들이 한동안 극장에서 크지 않지만 일정한 크기의 시장을 형성할 거라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재개봉 열풍이 일시적인 유행이 될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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