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하면 두 여자가 한 화폭 안에 화목하게 앉아 있다. 한명은 대형 광고회사의 독일 지부장인 크리스틴(레이첼 맥애덤스)이고, 다른 한명은 그 회사의 가장 유능한 직원인 이사벨(노미 라파스)이다. 크리스틴의 친절에 이사벨은 그녀를 절친한 동료로 여기지만, 이사벨이 ‘대박’을 터뜨린 광고 하나가 그녀들의 관계를 악몽으로 만든다. 크리스틴은 꼭두각시로 삼으려 했던 이사벨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이사벨은 수면제에 의지해 크리스틴이 안긴 모욕감을 씻어내려 한다. 하지만 크리스틴이 살해당하면서 악몽은 계속 더 끔찍한 악몽으로 변해간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사랑해온 ‘팜므파탈’들의 부활로 봐도 좋다. 알랭 코르노 감독의 <러브 크라임>을 리메이크한 <패션: 위험한 열정>은 드 팔마의 필모그래피를 가르는 여러 지류 중 <드레스드 투 킬> <팜므파탈> 뒤에 놓인다. 그를 평생 따라다녔던 히치콕의 그림자도 짙다. 특히 금발머리 여인의 형상을 중심에 둔 미스터리라는 점, 꿈의 구조 등을 비롯한 여러 설정은 <현기증>의 느슨한 변주로 읽힌다. <미션 투 마스> <리댁티드> 같은 전작들이 그의 다른 재능도 확인시켜준 바 있지만, 여기서 그는 ‘다시’ 히치콕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한편 드 팔마의 스타일리스트적인 면모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낳는다. 시각적으로 ‘센’ 미장센을 창조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그는 이번에도 분할 화면, 화려한 조명 등을 활용해 두 여자의 욕망을 가로지른다. 특히 크리스틴의 죽음을 처리한 방식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각각의 화면을 흥미로운 구조로 쌓아내는 데까지 이르진 못한다. <인셉션>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드 팔마의 취향은 이 영화 후반부의 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힌트지만, 그 효과는 단순한 충격효과에 머무른다. 원작에는 없는 반전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