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4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에 대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림에 따라 다시 한번 예술표현의 자유와 기관의 검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상의 내용 및 표현기법, 주제와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 부분에 있어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게 영등위의 등급 판결 내용이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표현”이 직접적인 문제였다고 적시했다. 이에 대해 김기덕 감독쪽은 “영화의 전체 드라마를 보면 그 의미가 확실히 다르고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이며 연출자로서는 불가피한 표현”이라고 항변했다. 이미 올해 칸국제영화제 마켓에서 각국에 선판매를 순조롭게 마친 뒤 내려진 판정이라 더욱 답답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칸에서 박선이 영등위 위원장에게 “제가 무엇이 부족해서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장면을 묘사했겠냐”는 편지까지 보내며 하소연했을까. 영화의 특정 장면이 청소년에게 어떤 모방심리를 일으키고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한 증명은 차치하고서라도 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는 감독의 작품이 등급 문제로 국내 관객을 만날 수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제한상영가의 함정
지난 6월17일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은 이번 사태에 대해 현재 영화계 등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뫼비우스>의 제한상영가 철회, 박선이 영등위 위원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선이 위원장 체제 이후 제한상영가 영화들이 급격히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제한상영가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의 기준도 모호하다며 “영등위의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잣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감독조합의 이번 성명은 <뫼비우스> 한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온 영화등급 분류의 구조적 모순과 시대를 역행하는 도덕적 잣대에 대한 불만이 꾸준히 쌓여온 결과물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감독조합 공동부대표를 맡고 있는 정윤철 감독은 “4월 중순 영등위와 간담회를 가졌지만 <뫼비우스>의 제한상영가 판정으로 간담회가 기만적인 행위에 불과했음이 드러났”고 “김선_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에 관한 행정 소송에서 패소했음에도 다시 항소하는 것은 영등위가 끝까지 헌법 22조 예술창작의 자유를 무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 다름없다”며 감독조합은 앞으로도 영화계 전체의 의지를 모아 투쟁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2011년 6월30일 박선이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2년간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총 23편(국내 10편, 해외 13편)으로, 2007년 1편(해외 1편), 2008년 5편(해외 5편), 2009년 6편(국내 2편, 해외 4편), 2010년 2편(국내 2편)에 비해 월등히 많다. 여기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까지 묶어서 살펴보면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함을 알 수 있다. 2009∼2010년 29.2%였던 청소년 관람불가 이상 등급 판정이 2010∼2011년엔 31.6%, 2011∼2012년에는 무려 42.5%를 차지했고, 최근 1년간(2012년 6월1일~2013년 5월31일)을 살펴보면 총 1061편의 영화 중 480편에 달하는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또는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영등위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는 단지 양적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올해 칸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14세 이상 관람가) 부문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신수원 감독의 <명왕성>이 국내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으며 국내 등급의 모호한 기준과 보수적 성향이 새삼 증명되기도 했다.
한편 감독조합의 발표가 있은 지 하루 만인 지난 18일, 김기덕 감독이 영등위가 지적한 사항에 맞춰 <뫼비우스>의 일부 내용을 삭제, 수정해 재심의를 받기로 하면서 문제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똑같은 영상을 다시 심사해줄 것을 요청하는 재분류 신청을 넣었다가 다시 한번 제한상영가를 받을 경우 3개월 뒤에야 재심의 요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9월 배급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극장에서 개봉하기만을 피가 마르게 기다리는, 저를 믿고 연기한 배우들과 스탭들의 마음을 무시할 수가 없기에”, “메이저영화가 극장을 장악한 현재 배급시장에서 어렵게 결정된 배급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김기덕 감독의 말에서 제도적 모순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뫼비우스>의 재심의 신청으로 일견 사태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구조적인 모순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점이기도 하다. 제한상영가라는 허울 좋은 제도 아래 드리워진 사각지대, 즉 독립, 예술영화의 상영과 배급 문제와 연관된 어둡고 오래된 그늘의 존재를 새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뫼비우스>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은 언뜻 감기 환자에 대한 반응과 유사하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고 기침이 나면 기침약을 먹듯 당장의 증상을 가라앉히기에 급급하다 보면 정작 왜 감기에 걸렸고 어떻게 하면 감기를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잊히기 마련이다. 감기를 으레 걸리는 것, 시간이 지나면 낫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이 우리는 해마다 꼬박꼬박 감기를 앓아왔고, 지금 또 한번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관심의 문제다. 예술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옥석을 가릴 것도 없이 지켜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는 둔감한, 무관심이란 이름의 중병. 시대정신을 역행하는 현 상황은 안타깝지만 기왕지사 검열이란 이름의 병이 도졌으니 이 기회에 왜 계속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 근본적인 체질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2년 11월1일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제한상영가 취소 행정소송 청구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가진...
이름만 바꾼 사전검열의 망령
현재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제도는 절차적 투명성, 기준과 적용의 공정함, 등급위원들의 전문성, 무엇보다도 영화인들의 신뢰라는 측면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같은 크고 작은 문제들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제한상영가의 원래 취지와 운용 사이의 괴리 혹은 제도 자체의 내부 모순에 기인한다. 애초에 제한상영가란 완전등급제, 즉 사전검열을 거치지 않고 모든 작품을 상영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한 방편으로 탄생했다. 다시 말해 그 뿌리와 취지는 예술표현의 자유에 있다는 말이다. 이는 영등위 역시 마찬가지다.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영화산업 역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자율성의 시대가 열렸다. 1999년 공연법의 개정과 함께 출범한 영등위는 사전검열을 목적으로 하던 이전 기관들과는 다르다. 규제가 아닌 ‘안내를 위한 등급 분류’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초기엔 전체 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8세 이상 관람가의 3등급으로 분류했지만 2000년 영화진흥법 개정으로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도입해 지금의 4등급 체제의 틀을 갖췄다. 문제는 당시 존재했던 등급분류보류제도였다. <둘 하나 섹스>(1998), <노랑머리>(1999), <거짓말>(2000), <돈오>(2000) 등이 연달아 등급 보류 판정을 받으며 사실상 예전의 사전검열과 다를 바 없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자 영등위가 주장하는 예술표현의 자유가 허울 좋은 명분임을 깨달은 영화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이윽고 <거짓말>의 음란성 여부를 둘러싸고 제한상영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던 가운데, 2001년 8월 <둘 하나 섹스>의 등급 보류 판정이 사전검열에 해당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영등위는 등급 보류를 없애고 제한상영가를 도입한다. 표면적으로는 상영금지 처분이 없는 완전등급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신설했지만 정작 영화를 틀어야 할 제한 상영관의 허용 문제가 여전히 찬반으로 나뉘어 팽팽히 대립 중이었다. 그 와중에 2002년 <죽어도 좋아!>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으며 이 제도의 맹점이 드러났다. 완전등급제를 표방하였지만 상영관이 없는 상황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은 실질적으로 상영금지 처분과 같은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이후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드디어 제한상영관이 설치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완전등급제가 실행되는가 했지만 이도 잠시, 3개월 만에 문을 닫으며 제한상영가는 사전검열의 변형으로 활용되는 모순에 빠진다. 물론 제한상영관의 운영 문제가 영등위 소관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한상영관의 까다로운 설치 규정으로 인해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업무가 아니란 이유로 이를 도외시한 채 제한상영가를 매기는 행위는 영화인들의 눈에는 무사안일주의 행정으로 비칠 소지가 충분했다. 박선이 영등위 위원장은 “엄연히 제한상영가라는 등급이 있으니 기준에 따라 분류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아니냐며 항변하였지만 그러한 행정편의주의적인 태도야말로 영등위와 영화인 사이에 쌓인 불신의 실체다. 제도가 있으니 제도에 맞춰 분류할 뿐이란 말은 결국 제한상영가라는 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간 제한상영가를 두고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겉모습만 바꾼 채 본질은 변하지 않은 사전검열에 대한 당연한 저항이자 예술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연스런 열망의 발로인 셈이다.
제한상영가 제도 자체의 모순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운용에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우선 최근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 취소 승소 판결에서도 알 수 있듯 최근 영등위의 등급 판정은 그 기준이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영등위 내부의 구체적인 기준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잣대를 적용함에 있어 전체 맥락을 염두에 두지 않고 특정 장면의 물리적 묘사에 집착하거나 영화 외부의 사회/정치적 사안에 눈치를 보는 등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이는 외국의 상영등급 기준과의 확연한 차이에서도 증명된다. 유수의 국제 영화제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고 2012년 최고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히기도 했던 <홀리모터스>의 납득하기 힘든 제한상영가 판정이나 국내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신수원 감독의 <명왕성>이 좋은 사례다. 거꾸로 국내에서 제한상영가를 받았던 김선_감독의 <자가당착>은 일본에서는 청소년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유독 우리 관객만이 영등위의 기준에 입각한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문화적 맥락이 다른 만큼 일괄 비교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유독 높아진 영등위의 분류 기준을 보고 있노라면 일말의 씁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선택의 권리는 시민과 관객에게
현재 영등위의 등급 분류는 영상물의 윤리성 및 공공성을 확보하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이하 영비법)에 그 존립근거를 두고 있다. 이 영비법은 2008년 7월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천국의 전쟁>을 둘러싼 등급판정 위헌 소송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현재 개정 준비 중인 법이다. 다만 이때 <천국의 전쟁>이 승소한 부분은 제한상영가 등급의 명확성 원칙에 관한 것으로 영비법의 개정은 제한상영가에 대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지 제한상영가 제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박선이 위원장 체제 이후 급격히 늘어난 제한상영가 판정은 다시금 이 제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영등위는 스스로도 활동 업무의 주요한 지점이 청소년 보호에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줄 것을 호소했다. 백번 양보해서 그들의 청소년 계도와 훈육 기능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이는 거꾸로 제한상영가의 존립기반을 부인하는 것과 진배없다. 다시 말해 제한상영가란 청소년 관람불가 범위에서 처리해야 할 등급 분류에서 하나의 기준을 더 만들어 어른마저 훈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불필요한 분류에 불과하다. 실상 사전검열의 의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항목인 셈이다.
감독조합이 성명서에서 밝힌 대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은 영등위가 세우는 게 아니라 시민과 관객이 판단하고 세워나가야 할 과제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만큼 내가 보기 싫은 영화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필요하다. 핵심은 그 선택의 권리가 내 손에 있느냐 없느냐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 아닐까.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에 대한 관심이다. 더이상 이 권리를 영등위에 맡겨놓을 필요는 없다.
끝나지 않는 논쟁 제한상영가 공방 일지
1999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명칭 변경. 2001.08.30 <둘 하나 섹스>의 등급분류보류제도 위헌 판결, 제한상영가 제도 신설. 2000 제한상영관이 없는 상태에서 <죽어도 좋아!> 제한상영가 판정으로 논란. 2004 제한상영관 ‘피카디리’ , ‘동성아트홀’, ‘국도시네마’, ‘레드시네마’ 개관. 2006.05.01 ‘듀오시네마’를 마지막으로 제한상영관 모두 폐관. 2006 영화진흥법 폐지.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로 법령 변경. 2008.07.31 <천국의 전쟁> 제한상영가 등급 헌법불일치 판결. 2013.05.10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제한상영가 등급 1심 승소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