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자이며 동성애자, 그리고 후기 구조주의자로 유명했던 롤랑 바르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은 삶을 통해 여러 번 사랑한 적이 있으며, 또 사랑할 것이고, 스스로의 욕망이 아무리 특이하다 할지라도 그건 분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제13회 서울LGBT영화제’에 초대된 작품들을 살피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르트의 언급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예측할 수 없으며, 또한 끊임없는 독창성의 원류라는 데 동의하게 된다고 말이다. 국내 유일의 성소수자 영화제인 서울LGBT영화제가 예년보다 길어진 11일간, 총 11개국 48개 작품을 가지고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마이클 메이어의 장편데뷔작 <아웃 인 더 다크>다. 팔레스타인인이지만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심리학을 전공하는 나이머는 우연히 게이클럽에 들렀다가 이스라엘 청년 로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비롯해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의 현실적 모습을 인상적인 동성간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나이머 역의 니콜라스 자콥은 처음 연기에 도전한 비전문 배우이며, 로이 역의 마이클 알로니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청춘스타로 알려져 있다.
퀴어하지만 발랄한 저항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핫핑크’ 섹션에서는 개막작을 비롯한 총 네 작품이 소개된다. 먼저 제프리 슈발츠의 <비토>는 LGBT 인권을 대변하는 게이활동가 ‘비토 루소’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로 미국 <HBO>가 제작을 맡았다. 비토 루소는 할리우드영화들이 그간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묘사해왔는지를 분석한 저서 <셀룰로이드 크로지트>를 통해 영상학자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감독은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분수령이 되었던 1969년의 스톤월 항쟁이나 80년대 불어닥친 에이즈 강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며 동성애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 <나는 쿠추다>의 ‘쿠추’란 단어는 동성애가 불법으로 규정된 우간다에서 ‘레즈비언이나 게이, 양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들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영화는 우간다 최초의 커밍아웃 게이인 데이비드 카토의 힘겨운 투쟁을 소상히 소개한다. 만일 유니크한 동성애 드라마를 원한다면 세르비아 최초의 퀴어 코미디물 <퍼레이드>를 권하고 싶다. 최근 세르비아 영화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스르잔 드라고제빅 감독의 신작으로, 2011년 개봉 당시 흥행에서도 꽤 성공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갱단의 두목이 약혼녀의 청으로 게이 퍼레이드를 돕게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는다.
LGBT를 상징하는 여섯 색깔의 무지개를 인용한 ‘레인보우 섹션’ 중에선 니콜 콘 감독의 신작 <퍼펙트 엔딩>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상류층 중년여성인 레베카에게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데, 그간 감춰왔던 그녀의 욕망이 고급 콜걸 패리스를 만나며 폭발하게 된다. 호주 잡지 <Kurv.>는 2012년 가장 섹시한 레즈비언영화로 이 작품을 언급하기도 했다. 최초의 공개 동성애자 주교인 진 로빈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은 역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흥미를 끄는 소재의 영화이다. 2008년 잉글랜드 캔터베리에서 열린 주교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주교로서 그를 언급하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매일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로빈슨 주교의 이야기를 느리지만 단호한 어조로 쫓아간다. 이 밖에 2012년 제작되거나 수입된 퀴어영화 중 다시 볼만한 작품들을 모은 ‘어게인 퀴어 무비’ 섹션이나 ‘퀴어 아이’ 섹션에서 소개되는 작품들 역시 면면이 화려하다. 장국영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장국영 추모 특별전’에서는 <아비정전> <동사서독> <영웅본색> 등 화려한 장국영의 필모그래피를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