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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영화의 든든한 원군
황혜림 2013-04-23

당시 후배기자가 본 안정숙 편집장은…

“어쩜 이렇게 (잘) 쓸 수가 있지?” 안정숙 편집장은 정말 좋다고 생각되는 글을 만날 때면 감탄사를 아끼지 않는 선배로 기억된다. 어떤 기사든 일단 그 기사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 기다리고 읽는가 하면, 만족스러운 글에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간혹 편집장의 데스크에서 그 즐거운 탄성이 들려올 때면, 어떤 날카로운 지적이나 조언을 듣는 것 이상의 자극을 받곤 했다. <한겨레> 문화부를 포함해 15년 이상 기자생활을 해온 베테랑 선배의 감탄사를 듣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마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틈틈이 건네는 깨알 같은 칭찬으로 기자들을 춤추게 하는 편집장이었다.

깨알 같은 건 칭찬만이 아니었으니 방심은 금물. 조금이라도 궁금하거나 동의가 되지 않는 대목을 발견할 때면, 의문점이 풀릴 때까지 질문이 이어지곤 했으니 말이다. 지난 5년 동안의 습관으로 당연시하고 넘어가기 쉬운 것도 다시 묻고 되짚어보는 것. 돌이켜보면 기자들을 독려하는 칭찬과 잡지의 초심을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질문은, 2000년 당시 <씨네21>이 겪었던 안팎의 변화에 대처하는 힘이 됐던 것 같다. 내부적으로는 몇몇 기자들이 떠나면서 새로 합류한 기자들을 아우르고, 외부적으로는 하반기 <씨네버스> <필름2.0>의 창간으로 다변화하는 영화 주간지 시장에서 다시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는 시기였으니까.

안정숙 편집장 시절의 <씨네21>은 영화에 대한 비평적 접근과 산업적 분석, 대중적 소통을 아우르겠다는 초심을 유지하되, 고전을 포함한 예술영화와 작가영화, 독립영화, 애니메이션과 TV 관련 기획에 전보다 더 많은 힘을 쏟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슨 웰스, 루이스 브뉘엘 등 막 발돋움하기 시작한 시네마테크를 중심으로 소개되는 영화사의 고전들을 적극 조명하며 시네마테크 활성화 캠페인을 펼쳤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등 멀티플렉스로 재편되는 극장가에서 설 자리를 잃는 저예산 작가영화와 독립영화를 지지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안정숙 편집장은 지금까지도 작가영화와 독립영화의 든든한 원군으로 남아 있다.

그들 각자의 잡지관(觀)

후배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집과 고정 코너를 뽑았다

고정 코너 / 김지운의 숏컷 김지운은 감독 이전에 글쟁이였다네

아는 독자는 알 거다. 김지운 감독이 좋은 글쟁이였다는걸. <씨네21>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조용한 가족>이 입상한 것을 계기로 연출의 길로 들어서게 된 김지운 감독은 이후 <씨네21>에 ‘김지운의 숏컷’을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스타로 떠오른 류승완 감독이 ‘막 가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좀 가만 놔두라거나, 라면가게 아줌마가 냄비 받침으로 가져온 <씨네21>에서 시나리오 공모 소식을 읽었다는 일화를 전하는 등 그의 솔직담백한 입담이 인상적인 칼럼이었다.

특집 / <씨네21>이 틀렸다 사과는 빨라야 맛있다

조선희 편집장의 <씨네21>이 전쟁터 같았다면, 안정숙 편집장의 <씨네21>은 보다 온화한 분위기였다고 두 편집장을 모두 겪어본 누군가는 말한다. 신생 잡지의 근간을 세우기 위해 조 편집장이 어쩔 수 없는 악역을 맡아야 했다면, 그 뒤를 이은 안편집장의 역할은 초창기 <씨네21>이 남긴 유산을 안정화하는 것이었을 테다. <씨네21>이 오해한 아홉편의 영화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부친 ‘<씨네21>이 틀렸다’는 불안정한 시기를 마치고 두 번째 국면에 접어든 잡지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특집이다. 그중에는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 P. J. 호건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같은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선배님들, 서둘러 사과하길 잘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