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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보다는 마케팅적인 판단이지만…
이기준 2013-03-05

스타 연예인들의 더빙 참여 폭증, 산업적으로 긍정적 평가 받지만 해결 과제는 남아

<테드: 황금도시 파이티티를 찾아서> 더빙 현장.

스타 연예인들의 애니메이션 더빙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성우는 아니지만 목소리 연기에 비교적 익숙한 유명 배우들은 물론이고 인기 가수와 개그맨들까지 수입애니메이션의 더빙 작업에 캐스팅되는 추세다. 이제 극장가에서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함께 엄연한 ‘주인공’으로서 포스터에 실린 연예인들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글 더빙 대본에도 많은 수정이 가해져 예능 및 코미디 프로그램 속 유행어나 독특한 말버릇들을 그대로 집어넣는 경우가 많아졌고, 원작 그대로의 느낌을 선호하는 관객을 위한 자막 버전 상영 역시 요즘의 극장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더빙 현장.

연예인 더빙이 작품의 질을 훼손하는 것 아닌가

2006년 국내 최초로 자막판 없이 100% 더빙판으로 상영된 <빨간모자의 진실>을 시작으로 연예인 더빙의 비중은 해외 애니메이션의 한글 더빙과 더불어 나란히 증가했다. 2012년 10개이상 상영관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은 모두 44편. 이중 연예인이 더빙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션은 13편으로, 25%의 비율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전문성우를 선호하는 일본 작품과 한국 작품을 제외한다고 할 때 이 수치는 75%까지 뛰어오른다. 흥행을 위해선 연예인 더빙이 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양경찰 마르코>의 홍보를 담당한 아담스페이스의 김은 대표는 “이미 잘 알려진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나 TV에서 방영된 작품의 극장판인 경우가 아니라면 새로운 캐릭터를 초반에 널리 알리는 데 흥행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며 연예인 더빙의 산업적 측면을 높게 평가했다. 브랜드 자체가 유명한 만화 캐릭터나 다름없는 ‘디즈니’나 ‘픽사’ 등의 거대 회사가 아니라면, 낮은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연예인의 더빙 참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영화산업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연예인 더빙으로 인해 작품의 질적 저하와 훼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질적 하락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날이 갈수록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현재 업계의 중론이다. “전문 성우가 제일 좋은 선택이기는 해도, 요즘은 연예인들도 더빙을 잘한다. 작업 환경도 디지털로 바뀌어서 그걸로 다양한 보정 작업이 가능하다. 요즘은 크게 비교가 안될 정도로 결과물이 잘 나온다.” 18년 동안 더빙 연기 연출을 해온 애니플러스 김정규 대표의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화술이 잘 훈련된 전문 성우와 연예인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안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연출한 오성윤 감독은 “(연예인 더빙은) 한마디로 마케팅적 판단일 뿐 작품적인 판단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동시에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 성우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캐릭터에 잘 어울리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훈련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성우들은 약간은 과장된 애니메이션 톤에 단련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실적인 톤의 애니메이션에는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어울리지 않는다. <가디언즈>나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의 경우, 성우는 아니더라도 연예인과 캐릭터의 매치가 제법 잘됐다. 문제는 아무런 준비도, 훈련도 되지 않은 스타를 불러서 작업하는 경우다.”(오성윤 감독)

<해양경찰 마르코> 더빙 현장.

비전문 성우들도 책임감 갖고 더빙에 임해야

관계자들은 연예인 더빙이라도 배역에 맞는 인물과 적절한 사전 교육이 잘 배합된다면 전문 성우 못지않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가 있다면 단순히 연예인 캐스팅이 아니라, ‘한탕치기’ 이벤트성으로 진행되는 제반 시스템과 업계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마케팅과 결합된 형태의 연예인 더빙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중소 애니메이션들이 지닌 활로라면, 흐름을 이전으로 되돌리기보다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변이 넓어지고 발전해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누가 더빙을 하든 경력이 있는 전문 성우를 붙여서 일정기간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장사 마인드가 아니라, 연예인들도 작품의 창작에 일조한다는 ‘예술가 마인드’로 책임의식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경력 31년차의 베테랑 연기자인 서혜정 성우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특히 아래와 같은 지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목소리 연기의 테크닉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전체 스토리와 캐릭터 분석은 물론이고 상대 배역 및 성우들과의 조화, 전체적인 하모니, 심지어 원래 성우의 접근법과 뉘앙스도 파악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작품을 준비하는 데 매우 기본적인 단계들이다. 비전문 성우들의 경우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연기에 임해야 한다.”

관계자들은 이에 덧붙여, 더빙의 질에 대한 문제의 핵심은 연예인 더빙 현상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열악한 산업 환경에 있다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3년 전 <겨울연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배용준, 최지우와 더빙 작업을 했다. 두 배우 모두 작업에 대한 열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이 너무나 열악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없었다. 의욕있는 재원들은 충분한데 제반 시설이 엉망이다. 국가 차원에서 애니메이션 산업에 지급되는 지원금을 엉뚱한 데 쓰지 말고 기본적인 인프라부터 챙겼으면 한다.”(서혜정 성우) 한국 영화계에 불어닥친 연예인 더빙 열풍을 여러 가지 산업적인 조건들의 변화가 응축되어 드러난 일종의 복합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 산업적인 장점과 작품의 완성도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시급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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