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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고 매력적인 놈들
주성철 이화정 2012-10-30

007, 거의 모든 악당들의 역사

007의 역사는 악당들의 역사다. 시대상의 변화와 당대 대중영화의 변화, 그리고 블록버스터 초창기 테크놀로지의 변화를 캐릭터 속에 압축시켜온 결과이자 그 자체로 영화의 역사다. 다른 영화나 코믹스의 악당들에게도 그 잔인함은 물론 죽는 방식까지 영향을 미쳤다. 007의 지난 50년을 빛낸 악당 중 시대순으로 매력적인 악당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쉬운 마음에 나쁜 친구들 말고 좋은 친구들도 모았다.

악당의 기준을 제시하다 <살인번호>(1962)의 닥터 노(조셉 와이즈먼) 007 시리즈 최초의 악당인 닥터 노는 중국계 독일인으로, <푸 만추 박사의 비밀>(1913) 등을 통해 영국 작가 색스 로머에 의해 탄생한 괴상한 캐릭터 푸 만추 박사에 대한 오마주다. 20세기 초반 영미 추리소설에는 사악한 동양계 악당이 심심찮게 등장했는데 그 영향으로 보리스 칼로프는 영화 <푸 만추의 가면>(1932)에서 푸 만추를 연기하기도 했다. 이 캐릭터에 애착이 많았던 이안 플레밍은 친구인 노엘 카워드를 추천하며 영화 제작자들을 대신해 전보를 보내기까지 했는데 그의 대답은 ‘노’였다. 차선으로 선택된 배우는 바로 엘리아 카잔의 <혁명아 자파타>(1952), 존 휴스턴의 <용서받지 못한 자>(1960) 등에 출연했던 뉴욕 출신 배우 조셉 와이즈먼이었다. 연구실 사고로 손을 잃은 그는(원작에서는 조직에 의해 잘렸다) 금속 장갑을 낀 채 흔들림없는 침착한 표정과 말투로 본드를 위협했다. 본드에게 느긋하게 55년산 돔 페리뇽을 따라주는 여유로운 모습은 원작의 2m에 육박하는 거구의 대머리 악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하자면 가장 큰 변화를 준 캐릭터인 만큼 그 성공으로 인해 이후 등장하는 악당들의 어떤 기준이 됐다. 최후 원작에서는 새똥에 묻혀 죽지만 영화에서는 방사능으로 오염된 끓는 물에 빠져 죽는다.

본드의 거시기를 노려라 <골드핑거>(1964)의 오릭 골드핑거(거트 프로브) 능글맞고 또한 잔인한 오릭 골드핑거는 시대를 앞서간 악당이었다. 후반부에 이르러 근엄한 악당의 체통 따위는 무시한 채, 군인 복장으로 갈아입으며 살아남기 위한 변장술까지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게다가 과대망상에 부푼 악당이자 치명적인 레이저 광선으로 본드의 ‘거시기’를 도려내려 할 정도로 잔인했다. 이안 플레밍이 헝가리에서 태어난 위대한 건축가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으로 이주한 에르노 골드핑거에서 힌트를 얻어 창조한 인물로, <마부제 박사>(1960) 등에 출연한 독일 배우 거트 프로브가 연기했다. 작전 또한 기발했다. 중국에서 빼내온 원자폭탄으로 세계에서 금괴가 가장 많이 보관돼 있는 미국의 포트녹스를 방사능으로 오염시켜 서방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림과 동시에 자신이 지닌 금값을 폭등시키려 한다.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새로운, 사람들의 심리를 건드려 파괴와 공포를 조장하는 이른바 ‘이중작전’을 구사한다. 한편, 모자를 날려 살상무기로 쓰는 골드핑거의 하수인으로 나온 한국계 ‘오드잡’ 역시 시리즈를 빛낸 악당 중 하나다. 실은 일본계 미국인이자 1948년 런던올림픽 역도 은메달리스트 출신인 해럴드 사카타가 연기했다. 최후 비행기 안에서 총격으로 뚫린 창을 통해 밖으로 날아가버린다.

핵폭탄을 탈취한 애꾸눈 <썬더볼>(1965)의 라르고 (아돌포 셀리) 원작에서는 블로펠드가 스펙터 2호, 그의 오른팔 라르고가 1호인데 그 이유는 스펙터의 수령인 블로펠드를 보호하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번호를 바꿔 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해하기 쉽게 블로펠드가 일관되게 1호로 나온다. 각각 찰턴 헤스턴과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연을 맡았던 캐럴 리드의 <아고니와 엑스타시>(1965), 마크 롭슨의 <폰 라이언 특급>(1965)에 출연했던 시칠리아 출신의 성격파 배우 아돌포 셀리가 스펙터 일당의 2인자 ‘라르고’를 연기했다. 그는 나토의 공군 조종사인 더빌 소령의 여비서를 매수해 그를 죽이고 하수인을 그와 똑같이 성형수술시킨 뒤 더빌 소령으로 위장해 핵폭탄 2개가 실린 나토 연습기에 태운 뒤, 다른 조종사들을 처치하고 핵폭탄을 탈취한다. 핵폭탄을 찾기 위한 ‘선더볼 작전’을 맡은 본드는 더빌 소령의 여동생인 도미노(클라우딘 오거)에게 접근하는데, 그녀는 오빠가 살해된 걸 모른 채 라르고의 여인으로 있었다. 그의 요트인 디스코볼란테는 선미의 양쪽에 달린 수중날개가 인상적이었다. 라르고는 애꾸로 등장하는 외양부터 압도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다음 편에서 조우하게 될 블로펠드의 안내자 역할이 짙었다. 최후 쾌속으로 달리는 요트에서 격투가 벌어지고, 급기야 본드에게 총을 겨누게 된 라르고의 등 뒤에서 도미노가 작살총을 발사해 오빠의 복수를 하게 된다. “내 손으로 죽여서 기뻐요.”

내 고양이를 건드리지 마라 <두번 산다>(1967), <여왕폐하 대작전>(1969),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의 블로펠드(도널드 플렌제스, 텔리 사발라스, 찰스 그레이) 스펙터의 우두머리로서 007 시리즈를 대표하는 악당이다. <오스틴 파워>와 <형사 가제트>에도 패러디될 정도로 인기있는 캐릭터다. <위기일발>과 <썬더볼>에도 등장했지만 손에 안고 있는 흰 고양이만 등장할 뿐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다가 <두번 산다>에서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건 이전에는 머리카락이 있었는데 이후 계속되는 스펙터의 작전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성 탈모가 진행됐는지 대머리로 등장한다는 사실. 세 영화에서 각기 다른 배우들이 블로펠드로 나왔는데 <두번 산다>에는 도널드 플렌젠스가 회색 정장에 눈에 띄는 흉터가 있는 모습으로 연기했고, <여왕폐하 대작전>에는 TV시리즈 <형사 코작>으로 유명한 텔리 사발라스가 나와 영화 사상 최초로 생화학 테러를 감행함과 동시에 본드(조지 레젠비)의 아내 트레이시(다이애나 리그)를 죽였으며,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는 이후 <록키 호러 픽쳐쇼>(1975) 등에 출연한 영국의 성격파 배우 찰스 그레이가 연기했다. 한편, 판권분쟁으로 인한 일종의 번외편이라 할 수 있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1983)에서는 무려 막스 폰 시도가 블로펠드를 연기했는데 당시 물망에 오른 후보로는 오슨 웰스도 있었다고. 최후 <두번 산다>에서 화산 기지를 폭파하고 달아났던 블로펠드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본드가 개인 잠수정으로 달아나는 그를 기중기로 들어올려 가지고 놀다가 죽인다.

악어 농장주의 이름을 딴 흑인 악당 <죽느냐 사느냐>(1973)의 ‘미스터 빅’ 카낭가(야펫 코토) 처음으로 흑인 악당이 등장했다. 1970년대 초반은 <샤프트>(1971), <카피>(1973), <폭시 브라운>(1974) 같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가 유행하던 때였다. 그에 착안해 뉴올리언스도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등 화려한 의상과 마약, 슬럼가 등 흑인영화 특유의 요소들을 007과 결합시켰다. 그리하여 최초로 흑인 본드걸 ‘로지 카발’과의 러브신도 있었다. 영화에서 본드가 ‘침입자는 악어 밥’이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는 악어 소굴을 탈출하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그 악어 농장주의 실제 이름이 로스 카낭가였으며 거기서 이름을 따왔다. 단정한 흰색 정장의 카낭가 역으로 야펫 코토가 발탁됐으며 이후 <에이리언>(1979)에서 노스트로모 대원들 중 한명으로 출연했다. 사실 카낭가보다 인상적인 흑인배우는 그의 오른팔로 등장하는, 하지만 오른팔이 갈고리 기계손인 ‘티 히’(줄리우스 해리스)와 작품 전체에 묘한 분위기를 불어넣는 부두교 주술사 바론 사메디(제프리 홀더)다. 티 히는 임무를 끝내고 떠나는 본드를 기차까지 쫓아와 괴롭혔고, 바론은 죽지도 않은 채 뜬금없이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기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최후 상어가 노니는 비밀기지의 물속에서 육박전을 벌이던 중, 본드가 카낭가의 입에 특수장비를 쑤셔넣고 몸이 부풀어오른 그는 물 밖으로 솟구쳐 올라 펑~.

지적이고 쿨한 황금총을 가진 4차원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의 스카라망가(크리스토퍼 리) 가장 무섭게 생긴 악당이었다고나 할까. 영국 해머필름에서 테렌스 피셔의 <드라큐라>(1958)를 비롯해 <드라큐라: 어둠의 왕자>(1966), <드라큐라의 환생>(1970) 등에 출연하며 벨라 루고시를 잇는 대표적인 드라큘라 배우로 유명했던 크리스토퍼 리가 살인청부업자 스카라망가로 등장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사루만으로도 유명한 그는 1922년생으로 어느덧 90살을 넘겼다! 실제로 이안 플레밍과 사돈 관계였던 그는 함께 골프도 즐길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영화에서 “그 잘난 여왕을 위해서 죽도록 일하고 연금이나 받으며 살다니”라며 본드를 자극하기도 하는데 그의 지적이고 서늘한 분위기가 전편을 감쌌다. 특히 ‘세기의 대결을 벌여보자’며 마치 서부극의 일대일 대결처럼 자신의 황금총으로 본드의 월터 PPK와 대결하고자 한 ‘4차원’ 캐릭터이기도 했다. 특히 과거 표현주의 세트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세트에서 벌이는 마지막 대결은 그의 과거 이력과 맞물려 묘한 향수를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 스카라망가의 은신처로 나온 타이 푸껫 인근의 작은 섬 코 핑 칸은 이후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기도 했다. 최후 마치 영화 세트처럼 거울방이 있고 영상 조작이 가능한 거대한 세트에서 본드의 총에 맞아 죽는다. 다른 영화들처럼 본드와 악당이 마구 나뒹구는 육박전 없는 ‘쿨’한 결말이다.

본드의 좋은 친구들❶ 애스턴마틴 주차위반 딱지 걱정은 하지 않아 50년 동안 본드는 수많은 차를 몰았지만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은 <골드핑거>와 <썬더볼>에 등장한 유선형의 첨단 스포츠카 애스턴마틴 DB5다. 여기에 특수효과를 맡은 존 스티어스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켄 애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덧붙여 본드만의 애스턴마틴 DB5가 탄생했다. 연막탄을 발사해 짙은 연기를 내뿜고, 길에 기름을 분사하기도 하며, 헤드라이트에서는 기관총이 발사된다. 바퀴에는 드릴을 장착해 다른 자동차의 타이어를 찢기도 했다. 또한 3개국 번호판으로 바꿀 수 있는 회전식 번호판도 장착했는데, 이것은 프리 프로덕션 기간 중 주차위반 딱지를 여러 번 받았던 가이 해밀턴 감독의 아이디어였다고. <카지노 로얄>에 이어 <퀀텀 오브 솔러스>에는 바로 그 명맥이 끊겼던 애스턴마틴 DBS가 등장했다. 새로운 본드의 등장과 함께 애스턴마틴을 부활시킨 것만큼 최고의 되새김 효과를 가져다주는 설정은 없었을 것이다.

순정마초, 그래도 나는 살아날 거야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 <문레이커>(1979)의 죠스(리처드 키엘) 키 217cm의 거구, 번쩍이는 강철 이빨을 가진 죠스의 등장은 본드 악당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일단 위협적인 등장, 그 뒤엔 마치 ‘톰과 제리’처럼 로저 무어와 혈전을 벌이는 죠스는 단연 발군이었다. 쇠붙이 이빨은 늘 공포와 위협으로 점철되는 대신, 전등에 감전되거나 혹은 자석에 붙어 낭패를 보았고, 죠스가 쇠이빨로 조스(상어)를 물어뜯는 코믹한 장면까지 연출하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프로듀서 알버트 브로콜리가 악당의 캐릭터화를 절감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스타워즈>와 <미지와의 조우>의 성공에 위협을 느낀 그가 시리즈 최초로 SF 장르인 <문레이커>를 연출했을 때, 죠스는 시리즈 최초로 ‘두번 등장한’ 악당이 됐고, 무명의 배우 리처드 키엘 역시 엄청난 스타덤에 올랐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죠스는 로저 무어의 발목을 물어뜯는 <문레이커>의 스카이다이빙 추격 신으로 007 영화의 대표 이미지를 생산해냈다. 더불어 죠스는 순정멜로까지 연출하는 쾌거를 올렸는데, 수줍은 거구의 죠스가 본드를 위협하던 이빨로 연인을 위해 샴페인을 딸 때, 그 장면은 팀 버튼의 동화를 연상시킬 지경이었다. 최후 두목 드랙스에게 반기를 든 채 우주로 사라짐. 로저 무어는 웬만한 충격에는 10분 안에 살아나는 그를 보며 “그래도 그는 살아날 거야”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TPO와 자본주의를 아는 악당의 등장 <뷰 투 어 킬>(1985)의 맥스 조린(크리스토퍼 워컨) <뷰 투 어 킬>에서라면 본드도 영예로운 패션왕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거다. 로저 무어의 적수로 등장한 사업가 맥스 조린은 단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차림새’로 본드를 위협한다. 금발의 단정한 헤어스타일, 깔맞춤한 샤프한 금테 안경, 정확한 재단의 슈트, 여기에 특유의 냉소적인 미소를 더하면 맥스의 차림이 완성된다. 한점 티없는 맥스의 의상은 화려한 액션이 집약된 광산에서 특히 빛났는데, 편한 점퍼 차림의 로저 무어가 되레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TPO에 맞는 격식있는 차림은 맥스의 캐릭터를 설명해줄 가장 정확한 키워드다. 맥스는 2차 세계대전 때 임신부들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하여 만든 슈퍼 차일드로, 천재적인 미치광이였다. 전문분야는 마이크로칩 사업이었다. 마이크로칩이 컴퓨터와 제조업 수송체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한 제작자 브로콜리는 곧 007 시리즈에 마이크로칩을 접목했다. 이전까지의 악당이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했다면, 거대한 지진을 일으켜 실리콘밸리를 파괴하려는 야심을 지닌 맥스는 자본주의적인 발상을 시리즈에 반영한 새 시대의 악당이었다. 로저 무어는 “마치 좋은 선수와 테니스를 치는 것 같았다”며 빈틈없는 그의 연기를 치하했다. 최후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위에서 손도끼를 들고 본드와 아슬아슬하게 대치. 망망대해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특유의 냉소적이고 비열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잔혹함의 끝을 보여주다 <살인면허>(1989)의 프랜즈 산체스(로버트 다비) 공중전, 수중전, 심지어 우주까지 해볼 건 다 했다. 이안 플레밍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한계를 느낀 제작진이 택한 것은 마약이었다. <살인면허>에서는 코카인으로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이 악의 근원이 됐다. 이번엔 남아메리카 마약왕인 프랜즈 산체스가 악당으로, 시리즈의 악당 중에서도 특히 잔혹함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파나마의 군부실력자 마누엘 노리에가가 마약 밀매에 연루되어 기소된 사건에 착안하여 탄생한 캐릭터로, 고문이 생활화되어 있으며, 애인에게 폭행도 마다지 않는 파렴치한이다. 신혼여행 중인 본드의 오랜 친구 펠릭스 라이터 부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기도 한데, 라이터는 상어 밥으로 주고, 그의 아내는 성폭행한 뒤에 죽이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다. 결국 본드가 상관의 명령을 어기고, 살인면허까지 취소되면서 복수를 결심하게 만든 인물이다. 프랜즈의 잔혹한 면모를 극대화한 배우는 로버트 다비다. 오페라 가수에서 배우로 전향한 그는 <다이 하드>에서 FBI 특수요원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최후 전복한 유조차 옆에서 본드와 격투하다가 불에 타 죽는다. 프랜즈를 향해 “왜 죽는지 아냐?”며 본드는 억울하게 죽은 친구의 유품인 라이터를 꺼내 보이고 불을 댕긴다.

본드의 좋은 친구들❷ M과 머니페니 “머니페니, 지금 본드는 어딨지?” 본드의 상관 M. 버나드 리는 시리즈 첫 작품부터 <문레이커>까지 총 11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장수했다. 주디 덴치는 시리즈 최초로 여성 M의 등장을 알렸다. 영국 비밀 정보국 M16의 실존 여성국장 스텔라 리밍턴이 모델. 시리즈에 등장한 여성 중 유일하게 본드가 여성으로 보지 않는 여성이다. <스카이폴>에서 그녀의 과거가 밝혀질 예정. 머니페니는 M의 집무실 옆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자료 및 정보를 제공하는 비서. <살인번호>부터 <뷰 투 어 킬>을 거친 1대 로이스 맥스웰을 이어, 캐롤라인 블리스, 사만다 본드 등이 등장했고, 그 이후론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KGB여 영원하라 <골든아이>(1995)의 알카디 그리고로비치 오르모브 장군(고트리프리드 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국가에서 연쇄적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했다. 소비에트 연맹의 해체와 함께 본드의 설 자리도 불투명해졌다. 냉전시대의 영웅이 아닌 급변하는 정세에 맞춘 새로운 본드가 필요했고 피어스 브로스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과 함께, 러시아는 부패했고 악당들은 부유해졌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악당들이 이제 본드와 맞설 악의 표본이 됐다. 변절한 장군 오르모브는 바로 마피아 보스에게 고용된 전직 KGB 요원이다. 알렉 트리벨리언(숀 빈)과 골든 아이를 탈취해 러시아를 집어삼킬 꿈에 부풀어 있다. 지난 시대 영광을 구가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는 철지난 화려한 제복으로 중무장한 차림이다. 더이상 그런 제복은 구하기 힘들어 의상디자이너가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고. 특히 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주목할 만한데,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검열 때문에 머리를 쏘는 장면은 편집됐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최후 악당 알렉 트리벨리언 일당과 함께 본드를 처치하려던 오르모브는 되레 본드의 기관총에 맞아 벽으로 튕겨져 나가며 시시한 최후를 맞는다.

느끼고 싶어, 느끼고 싶다고 <언리미티드>(1999)의 레나드(로버트 칼라일) “평소의 악당보다 복잡한 심리를 가진 악당이 필요했다.” 애초 액션보다 드라마에 치중하려는 의도를 밝힌 마이크 앱티드 감독은 기존 시리즈보다 캐릭터를 특화함으로써 자신만의 인장을 새겨넣는다. 사악함과 영리함을 동시에 갖춘 악당 레나드의 역할도 더불어 극대화됐다. 그는 석유와 첨단 기술의 테러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인물로, 특징은 뇌에 박혀 있는 총알 때문에 오감의 대부분을 쓸 수 없다는 점이다. KGB에 의해 암살자로 길러졌으나 정신 이상으로 쫓겨났는데, M16 요원에게 머리에 총알을 맞으면서 그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의 손을 가해한 뒤 피를 철철 흘리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소피 마르소에게 고통을 토로하는 베드 신이 특히 인상적이다. 내면의 연약함과 사악함을 오가는 복잡한 레나드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보여준 이는 다름 아닌 <트레인스포팅>과 <풀 몬티>로 친숙한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 로버트 칼라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구라 그를 캐스팅하며 걱정을 했다는 감독은, 그가 TV프로그램에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악역으로 등장한 모습을 보며, 레나드 캐릭터의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007 악당 중 가장 인간적인 악당의 출현이다. 최후 “잊었나본데 난 이미 죽었어!” 핵원자로의 최후 결투, 본드의 목을 조르며 그는 말한다. 승리의 환호도 잠시, 핵 융합 전 사출된 막대가 엄청난 속도로 그의 배를 가격해 최후를 맞는다.

나에게 물을 줘, 제발 <퀀텀 오브 솔러스>(2008)의 도미닉 그린(마티외 아말릭) ‘다국적 물기업’이 007의 새로운 악당이 된 건 필연적 선택이다. 냉전시대의 종말을 맞아 해마다 새로운 사회적 이슈를 찾아내야 하는 게 시리즈의 숙제라면, 친환경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소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친환경주의자를 표방한 도미닉 그린은 <퀀텀 오브 솔러스>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악의 축으로 자리한다. 자선파티를 열어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알리는 그는 실은 ‘퀀텀 오브 솔러스’라는 거대 조직의 수뇌부로 활약한다. 볼리비아의 군부를 도와 황무지 독점 개발권을 확보함으로써 공공재인 물을 팔기 위한 야욕을 가진 인물이자, 본드의 연인 베스퍼의 죽음과 얽혀 있어 본드의 원수이기도 하다. 도미닉은 <잠수종과 나비>에서 혼신의 눈 연기로 각광받은 프랑스 배우 마티외 아말릭에게 돌아갔다. <르몽드>의 저널리스트 부모를 두었으며, 연출자로서도 각광받는 아말릭은 평소 젠틀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보여줬으나, 도미닉을 통해 그와 상반되는 냉혈한 카리스마를 발산해 관객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도미닉은 전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배우를 악당으로 끌어안은 경우다. 그것은 <스카이폴>의 악당 하비에르 바르뎀에게로 이어지며 정점을 찍을 예정. 최후 본드의 습격으로 물 한 방울도 구할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다. 본드는 “곧 이거라도 마시고 싶어질걸”이란 대사와 함께 그에게 엔진오일 1병을 건네고 사라진다.

본드의 좋은 친구들❸ Q “제임스, 내가 새로 만든 게 있는데” 본드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역할. 피더 버튼, 데스몬드 르웰인, 존 클리즈에 이어 <스카이폴>에 출연할 역대 4번째 Q 역은 벤 위쇼에게 돌아갔다. 그는 노련미 대신 최첨단 장비에 능수능란하고 세련된 면모를 보여줄 예정. 과거 그는 제임스 본드에게 월터 PPK를 제공한 것 외에 <썬더볼>의 수륙양용 자동차, <두번 산다>의 소형헬기 ‘리틀 넬리’ 등 첨단 무기를 줄기차게 개발했다. 인터넷과 해킹에 능수능란한 젊은 Q는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그릴 <스카이폴>의 주제를 표현해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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