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그 묵직한 질문에 응답하라
칸영화제 화제작부터 이란의 정치적 검열로 공개하지 못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다. 타비아니 형제, 미하엘 하네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 거장 감독들이 추궁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각자 다른 방식이지만, 근본적인 개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간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업은 닮아 있다.
아무르 Love 감독 미하엘 하네케 / 제작국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 상영시간 127분 / 섹션 월드시네마
확고불변한 사랑의 가치는 존재하는가. 관찰의 대상은 80대 노부부다. 평생 의지하며 살 것 같았던 아내의 몸이 어느 날 말을 듣지 않을 때, <아무르>가 처한 현실은 말문을 연다. 흡사 퓨즈가 끊긴 것처럼 정신을 잃게 된 아내는 병원에 실려갔고, 그길로 반신불수가 된다. 병의 증상은 단계별로 드러나는데, 내 몸이 아프다는 자각이 있기까지는 그나마 통제 가능한 단계다. 그러나 배변기능을 상실하고 의지를 잃게 된 건 예상치 못한 시련이다. 미하엘 하네케는 이 극한의 지점에서, 무너져가는 아내의 자존감과 그런 그녀의 병간호를 자처한 남편의 심리를 파고들어 질문한다. 과연 이 상황에서 사랑의 가치는 무엇이냐고?
질문은 집요하고 장치는 단출하다. 음악회의 북적거림에서 출발하지만, 이후 영화의 모든 사건은 부엌과 거실, 침실, 서재를 오가며 이루어진다. 외부와의 접촉은 가끔 찾아오는 방문객, 피아니스트였던 아내의 제자, 헬퍼, 상점 주인 그리고 딸 정도다. 단절된 삶에 끼어든 이들 젊은 방문객과 노부부는 좀체 화음을 이루지 못하고, 오롯이 부부의 고통으로만 점유된 공간은 갑갑하기 그지없다. 하네케는 감상적으로 이 풍경을 소비하려 드는 대신 시종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아내가 누렸던 한때의 활기를 떠올리는 남편의 회한과 맞닥뜨렸을 때, 아내를 돌볼 유일한 책임자인 그 역시 굼뜬 노인임을 발견하게 됐을 때, 그리고 그가 이 사투에서 내리게 될 어떤 결정을 지켜봐야 할 때 결국 우리를 못살게 구는 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 도달하게 될 그 지점에서 하네케가 던진 질문이 우릴 괴롭히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현실의 비정함과 쓸쓸함의 교차지점을 잡아낸 건 단연 노배우 장 루이 트랭티냥과 에마뉘엘 리바의 명연기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대신, 남녀주연상 후보 자리를 내줬지만, 두 노배우는 상으로 평가하기 미안할 만큼의 명연기를 선사한다.
코뿔소의 계절 Rhino Season 감독 바흐만 고바디 / 제작국가 이라크, 터키 / 상영시간 93분 / 섹션 갈라 프레젠테이션
이란에서 활동하던 감독들은 하나둘 스스로 정치적, 영화적 난민이 되어가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기 때문이다. 2000년 <술 취한 말들의 시간>으로 기적같이 등장한 이래 <고향의 노래> <거북이도 난다> 등의 작품으로 주목을 모아왔던 바흐만 고바디가 바로 그런 예에 속한다. 쿠르드족에 관한 영화를 줄곧 연출해온 고바디는 이란에서 영화 만드는 것이 어렵게 되자 터키로 옮겨 영화를 완성한다. <코뿔소의 계절>은 이란 이슬람혁명 당시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30년간 옥살이를 했던 쿠르드족 시인 사데그 카망가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화했다.
영화에서 시인 사헬은 아내와 함께 투옥된다. 하지만 사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는 옥에서 풀려나자 더 버티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형기를 마친 사헬이 아내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들의 사연은 슬프기 그지없다. 하지만 출옥한 시인의 불안정한 감각으로 묘사해내는 세상의 사물들, 쓸쓸함과 긴장감이 배어나는 인간관계의 구성, 그리고 더없이 시적인 이미지의 미장센이 이 슬픈 정치적 희생양의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만들고야 만다. 쿠르드식 혹은 고바디식 ‘오래된 정원’.
스튜던트 Student 감독 다레잔 오미르바예프 / 제작국가 카자흐스탄 / 상영시간 90분 / 섹션 아시아영화의 창
카자흐스탄의 거장이자 동시대에 활동하는 가장 엄정한 예술가인 다레잔 오미르바예프가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학생이며 가난한 청년이며 그를 가난하게 만든 자본의 세계에 잔뜩 화가 나 있다. 그는 범죄를 계획하여 상점을 털고 주인을 죽이고 감옥에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죄책감은 사랑하는 여인의 극진함으로 인해 오히려 점점 더 커진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오미르바예프는 동시대 카자흐스탄의 실정에 맞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이야기를 옮겨놓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쓰던 당시의 현실과 현재 카자흐스탄의 현실이 비슷하다”고 그는 이미 이 영화를 예고한 적이 있다. 완성되어 우리 앞에 도착한 이 작품은 “영화는 전적으로 비주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그의 평소 견해와 다짐이 여전히 강하게 반영된 결과물이다. 오미르바예프의 인물은 여전히 말이 없고 차갑거나 끔찍한 시선을 보내거나 느리고 어색한 몸동작으로 움직인다. 놀라운 건, 동시대에 불시착한 이 도스토예프스키적 인물의 삶이 끝내 동시대 자본주의의 실체를 건드리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Like Someone in Love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제작국가 일본, 프랑스 / 상영시간 109분 / 섹션 아시아영화의 창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인물에게 자동차는 대화가 전개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감독의 이유가 재치있다. “차에 있다면 적어도 대화 도중에 도망갈 수 없다”는 이유다.
콜걸로 돈을 버는 여대생 아키코가 지방에 사는 엄마와 나누는 전화통화. 시부야의 밤을 관통하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의 압도적인 첫 장면 역시 택시에서 시작된다. 콜걸인 그녀의 하룻밤을 산 남자는 늙은 교수 타카시다. 그런데 노인은 응당 그래야 할 섹스 대신 아키코에게 끝없는 대화를 요구할 뿐이다.
키아로스타미는 돈과 육체가 지배하는 밤문화에 예상치 못했던 관계의 그물망을 쳐놓음으로써 새로운 드마라를 만들어낸다. 아키코를 돌봐줄 수 있다고 믿는 노인의 감정은 사랑일까? 혹은 타카시의 존재를 알게 된 뒤, 아키코에게 집착과 소유를 보이는 애인 노리아키의 사랑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급작스런 결론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키아로스타미의 영상문법과 주제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또 한편의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사랑을 카피하다>에 이어 이번엔 차창에 비친 도쿄의 하늘이 인상적으로 담긴다. 자국에서 영화 만들기에 곤란을 겪는 그의 두 번째 해외 프로젝트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 Caesar Must Die 감독 파올로 타비아니, 비토리오 타비아니 / 제작국가 이탈리아 / 상영시간 76분 / 섹션 월드시네마
평범한 공연장, 무대 위에선 셰익스피어의 <율리우스 시저> 공연이 한창이다. 연극은 브루투스의 죽음으로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배우들의 열연에 관객은 모두 숨을 죽인다. 성공리에 공연이 끝나고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뒤로한 채 무대를 내려온 배우들이 향한 곳은 무대 뒤 대기실이 아닌 교도소다. 그들이 교도소로 향하는 순간, 시간은 6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율리우스 시저>를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죄수들은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오디션을 본다. 열띤 오디션을 통해 주연과 조연이 정해지고 죄수들은 첫 연습에 임하며 즐거움을 맛본다. 교도소 전체를 무대로 삼아 죄수들은 연습을 거듭하고 이런 연습이 계속될수록 그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빠져든다. 몰두가 지나친 나머지 마치 연극 속의 상황처럼 배우간에 대립구도가 펼쳐지는 등 그들의 연습은 공연보다 실제 같고 허구보다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이 작품은 가상의 교도소에서 펼쳐지는 연극 프로젝트를 찍은 것으로 보이지만 로마의 교도소를 배경으로 실제 죄수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모든 것이 실제라는 점을 뒤로 해도 그들이 선보이는 연극은 죄수들이 처한 상황과 맞물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노장의 형제 감독 파올로와 비토리오 타비아니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알린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했다.
마리 크뢰이어 Marie Kroyer 감독 빌 어거스트 / 제작국가 덴마크 / 상영시간 98분 / 섹션 월드시네마
빌 어거스트 감독이 명화 속 인물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덴마크의 화가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의 아내 마리 크뢰이어가 바로 그 인물이다. 어린 딸 그리고 명망 높은 예술가인 남편 페더와 함께 온화한 일상을 보내는 마리. 그러나 점점 정신이상 증세가 심각해지는 남편 때문에 마리는 사실 상실감에 빠져 있다. 일상에 지친 마리는 남편이 입원한 사이 어린 딸과 함께 휴양지로 떠난다. 마리는 그곳에서 젊은 작곡가 휴고 알벤과 홀리듯 사랑에 빠진다. 마리는 죄책감에 페더에게 휴고와의 사이를 털어놓는다. 분노한 페더는 그녀에게 화를 내지만 아내를 떠나보내기엔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 깊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결국 페더는 마리와 휴고의 사랑을 인정하고 휴고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인다. 이렇게 마리, 휴고, 페더가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페더의 병세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상황은 극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누군가의 아내, 작품 속의 피사체가 아닌 한명의 여인 마리 크뢰이어의 선택에 주목한다. 남편의 그림 속에서 빠져나온 마리의 선택은 무모함에 가까워 보이지만 허상이 아닌 현실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헛되지 않는다. 안락함과 아름다움보다 중요한 무엇을 깨달아가는 그녀의 여정이 고되지만 단지 불행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