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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는 죽어야 한다

Cesare deve morire Caesar Must Die

2012 이탈리아 12세이상관람가

드라마 상영시간 : 77분

개봉일 : 2013-05-02 누적관객 : 4,816명

감독 :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출연 : 살바토르 스트리아노(브루투스) 지오반니 아르쿠리(시저) more

  • 씨네218.00
  • 네티즌9.00

예술을 알고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 내 극장.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가 막을 내리고 무대는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찬다. 벅찬 감동으로 상기된 배우들은 살인, 폭력, 마약 등으로 복역 중인 실제 재소자들이다.
6개월 전. 교도소 교화 프로그램의 하나로 연극 <줄리어스 시저>의 오디션이 시작된다.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따낸 수감자들은 밤마다 연극에 대한 생각으로 설레기만 하다. 하지만 막상 시저 암살을 공모하는 상황을 연기하면서 수감자들은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떠올리게 된다. 연극이 끝난 후. 그들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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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16)


전문가 별점 (5명참여)

  • 7
    박평식시대정신을 일깨운 당신들은 ‘갇힌 자유인’
  • 10
    유지나권력, 배신, 고통… 그래서 예술이 존재한다. 타비아니 멋지다!
  • 8
    이동진대가의 오롯한 미니멀리즘
  • 7
    송경원삶을 비추는 거울, 예술에 대한 초상
  • 8
    김혜리다큐멘터리인 척하는 고도의 형식미
제작 노트
[ Prologue ]

가까운 친구 한 명이 며칠 전에 다녀 온 극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것도 울면서 말이다. 몇 년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우리는 교도소 내에 있다는 그 극장으로 갔다. 그곳은 로마의 레비비아 감옥, 중범죄자 수감시설이다.
수많은 출입구와 제한구역을 지나 무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선 20여 명의 수감자들이 (일부는 종신형이었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을 읊으며,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율리시스와 우골리노 백작의 고통과 번뇌를 토해내고 있었다. 교도소라는 그들만의 지옥 속에서. 사투리가 묻어나는 말투지만 때로 아주 진솔하게 표현하는 스토리에는 그들의 삶이 겹쳐 보였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실제 문화와는 거리가 먼, 소외된 이곳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이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알려야만 했다. 그래서 수감자들과 실제로 함께 작업하는 연출자 ‘파비오 카발리’에게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 공연 과정을 영화로 제작하자고 제안했다. 촬영은 수감자들과 공동 작업으로 이뤄졌다. 수용실, 교도소 마당, 중 범죄자 수감시설, 그리고 최종적으로 무대에서 촬영을 했다. 우정과 배신, 살인과 선택의 고통, 힘과 진실의 가치 등, 셰익스피어가 일으키는 감정의 시적 압박과 재소자들 삶의 어두움을 대조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방법으로 작품에 깊이 빠져들 때 우리 또한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대를 떠나 고립된 자기 공간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말이다.
파올로, 비토리오 타비아니 형제 감독




[ About Director ]

‘파올로 타비아니’와 ‘비토리오 타비아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형제 감독이다. 초기에는 기록 영화 형식을 취하면서 네오리얼리즘을 추구했으나, 후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주관적으로 다뤘다. 사운드를 통해 주관적 세계를 서술하는 ‘사운드 몽타주’ 방식을 만들었다.
형인 ‘비토리오’는 1929년, 동생 ‘파올로’는 1931년에 이탈리아 산미니아토에서 태어났다. 유복환 환경 덕분에 어려서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등의 음악교육을 받거나 오페라를 자주 보러 가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음악에 대한 지식은 후에 영화를 만들 때 큰 영향을 끼친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전화의 저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된 형제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이는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1950년 무렵 피사 대학 시절 시네 클럽을 주도하면서 영화 경력을 시작한 타비아니 형제는 노동자의 아들로 격렬한 사회 혁명주의자였던 ‘발렌티노 오르시니’를 만나 오랜 시간 함께 작업을 한다. 그러던 1954년, 시나리오 작가인 ‘S.자바티니’와 함께 나치즘에 관한 단편영화를 만들고, 그들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1944년 7월 산미니아토>를 만든다. 이 영화는 형제가 유년시절 고향에서 경험한 독일군의 학살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훗날 형제는 이 이야기를 다시 장편극영화로 만들게 된다. 이 영화가 바로 <로렌조의 밤>이다) 1959년, ‘요리스 이벤스’와 함께 3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이탈리아는 가난하지 않다>를 찍은 ‘타비아니 형제’는 위대한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서 오히려 자신들이 다큐멘터리보다 극영화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그래서 1962년, ‘타비아니 형제’는 ‘오르시니’와 함께 작업 한 첫 장편영화 <불타는 남자>로 데뷔한다. 이 영화에서 형제는 네오리얼리즘과 표현주의 등을 과감하게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세계를 확립한다. 1967년 이탈리아 폭력적 정치 현실과 이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 <전복자들>로 그들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확립한 형제는 상업적인 성공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얻으며 이탈리아 대표 감독으로 떠오른다. 특히 1977년 발표된 <파드레 파드로네>는 칸 영화제 최초로 황금종려상과 비평가 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며 ‘타비아니 형제’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톨스토이’의 <신과 인간>을 각색한 <성인 미셸은 수탉을 가졌다>(1973), <알롱상팡>(1974), <카오스>(1984), <굿모닝 바빌론>(1987), <밤에도 태양이>(1990)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은 당당한 자존심, 사회적 신분의 변화, 본원으로의 귀환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1982년 <로렌조의 밤>으로 다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고 할리우드로 진출, ‘G.W. 그리피스’에 대한 오마쥬인 <굿모닝 바빌론>을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타비아니 형제’는 2007년 <종달새 농장> 이후 5년 만에 <시저는 죽어야 한다>를 내 놓으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 About Movie ]

셰익스피어도 예상치 못한 완벽한 캐스팅!
이탈리아 레비비아 교도소에 수감 중인 실제 재소자들의 열연
<시저는 죽어야 한다>가 전세계 영화 팬들과 평단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바로 실제 중범죄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열연을 펼쳤다는 점이다. 시저, 브루투스, 카시우스 등 로마사 영웅들로 분한 이들은 마약, 살인, 폭력 등 중범죄를 저질러 이탈리아 레비비아 교도소에 수감중인 재소자들이다. 교도소 교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된 ‘연극’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된 ‘타비아니 형제’ 감독은 흥미를 느끼고 직접 레비비아 교도소를 찾아 영화 제작을 확정한다. 실제 연극 배우들과 동일하게 모든 과정은 오디션부터 시작됐다. 단조로운 감옥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극에 도전하게 된 재소자들은 심사위원들의 요구에 따라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는 연기를 펼쳤고, 멋지게 합격해 “줄리어스 시저”를 연습한다. 시저 역을 맡은 ‘지오반니 아르쿠리’는 마약 밀매로 2001년 체포되어 17년 형을 선고 받았고, 카시우스 역을 맡은 ‘코시모 레가’는 살인을 저질러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브루투스 역을 따낸 ‘살바토레 스트리아노’는 카모라 조직 관련 범죄로 14년 8개월 형을 받고 복역 중 사면 출소했다. 연극 연습을 하던 배우이자 재소자들은 배역에 몰입할수록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우울해 하기도 하고, 동료들과 말다툼으로 연습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줄리어스 시저”는 권력, 야망, 우정, 배신, 살인 등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인간 관계가 집대성 되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재소자들 역시 연극 연습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비 전문배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력을 펼친 재소자들의 미묘한 감정의 추이까지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내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찬사를 받고 있다.


코엔 형제, 워쇼스키 남매 이전에 타비아니 형제가 있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거장 ‘타비아니 형제’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가 탄생한지 12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의 영화계는 여전히 형제, 남매들의 맹활약 속에 성장하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코엔 형제’ 감독, 이제는 남매가 되어버린 ‘워쇼스키 남매’ 감독 등 세계 영화계를 이끌어 가는 우월 유전자 형제 감독의 원조가 있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거장 ‘타비아니 형제’ 감독이다. 1954년 <1944년 7월 산미니아토>로 데뷔한 이들 형제는 여든을 넘긴 지금까지도 메가폰을 잡고 현장에서 종횡무진하며 영화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파드레 파드로네>로 ‘칸 영화제’ 최초 황금종려상과 비평가 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로렌조의 밤>으로 다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형제 감독은 2007년 <종달새 농장>을 끝으로 조용히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 오던 ‘타비아니 형제’ 감독은 5년 만에 드디어 신작 <시저는 죽어야 한다>를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연출력에 녹이 쓸 법도 한데, 이 형제 감독은 제 62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귀환한다. 오랜 시간 준비한 모든 것이 담겨있는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노장의 손 끝을 통해 인간 삶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 6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 수상과 초청에 빛나는 걸작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타비아니 형제’ 감독이 <종달새 농장>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신작으로 제62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또, 국내 개봉 이전 이미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관객들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탈리아의 대종상 ‘다비드 디 도나텔로 시상식’에서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었고, ‘필라델피아 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하며 이탈리아 영화는 어려워 보여 관객들이 외면한다는 편견을 깼다. 지난 해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짧게 나마 소개됐었다. 영화제 마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의 새로운 시도와 ‘타비아니 형제’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가 이어졌다. 2013년 팜 스프링스 국제 영화제에서는 주연을 맡은 세 배우 ‘살바토레 스트리아노’와 ‘지오반니 아르쿠리’, ‘코시모 레가’ 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특히 이들 중 사면 출소한 ‘살바토레’를 제외한 두 배우는 전 세계 유일무이하게 재소자 신분으로 수상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꾸준히 전세계 영화제들의 초청을 받으며 수작의 명성을 드높일 예정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한 영화들 중 단연 최고!
이탈리아 최악의 범죄자들과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만남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이미 전세계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영화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시저는 죽어야 한다>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한 영화들 중 최고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타비아니 형제’ 감독의 색다른 연출 시도와 재소자들의 열연 덕분이다. 이탈리아 최악의 범죄자들과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만남, 세계가 인정한 영화계 거장 ‘타비아니 형제’ 감독과 ‘셰익스피어’의 만남만으로도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대중에게 회자될 만한 힘을 지닌 작품이다. 특히 수 많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줄리어스 시저”를 영화의 기본 플롯으로 잡은 점은 고대 로마사 영웅들의 모습에 현재 재소자들의 모습을 묘하게 투영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감과 함께 재미를 선사한다. 비극적 운명의 늪에 빠져 갈등하는 “줄리어스 시저”의 주인공들처럼 범죄를 저질러 스스로를 운명의 늪에 빠트린 범죄자들은 더욱 작품에 몰입하여 공감하게 된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 속에서도 연극 연습을 하던 배우들이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분노를 느끼거나, 연극이 끝나고 공허함을 느끼는 것도 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영화는 중범죄자들이 셰익스피어를 만났을 때, 우리도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 Production Note]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감독 인터뷰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영화 <파드레 파드로네>가 사르디나 출신 언어학자 ‘가비노 레다’를 우연히 알게 되어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연결해 준 친구에게 정말 고맙게도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봐왔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로마 교외에 위치한 레비비아 교도소는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꽤 달랐다. 첫 방문 때 수감자들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싯구를 읊고 있었는데, 철창 속 인생들의 우울한 분위기는 없고 문화적이고 시적인 활동에 오히려 생기 넘치고 약간은 흥분한 분위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중범죄자 수감시설 재소자들이고 대부분이 마피아나 범죄조직과 같은 부류와 연관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의 본능적인 연기는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와 연출가 ‘파비오 카발리’의 꾸준한 헌신에서 나온다. 레비비아를 나오면서 이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이들의 상황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영화로 각색해서 함께 작업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파비오’와 재소자들은 즉시,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합시다, 지금!”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실제 수감자들인가? 실제 오디션도 영화에서처럼 보았는지?
맞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실제 중 범죄자 수감시설 재소자다. 엄밀히 따지면, 브루투스 역의 ‘살바토레 스트리아노’는 레비비아 교도소에서 형을 마치고 출소했다. 원래는 14년 8개월 형이었으나 사면 받아서 6년 10개월을 살았고 지금은 자유인이다. 스트라토 역을 맡았던 ‘파비오 리주토’도 곧 출소한다. 영화 속 유일한 바깥 사람은 교도소 연기 지도자 중 한 명인 ‘마우릴리오 지아프레다(옥타비우스 역)’ 뿐이다.
오디션은, 몇 년째 아주 간단하면서도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마치 세관원이 심문하는 것처럼 배우들이 스스로를 조사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고통을, 그 다음엔 분노를 보이도록 요구한다. 이 작업에서는 ‘파비오’ 감독이 선별한 재소자들의 사진을 보고 먼저 선발했는데, 이때 뽑은 사람들 모두 최종선발 되었다.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프라이버시를 위해 원한다면 가명으로 해도 된다고 알렸는데 감동적이게도 모두들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잠시 후에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바깥 세상의 사람들에게 감옥의 침묵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자신들을 보여주는 수단인 것이다. 카메라 너머로 한 명 한 명 지켜보고 나서야 우리가 이 사람들을 알아야 하고 이들의 진솔한 모습을 밝혀야 한다는 걸 알았다.


각본대로 촬영했나, 아니면 다큐멘터리처럼 즉흥적 상황들을 재구성했나?
각본대로 했다. 다른 영화 때처럼 미리 써 놓은 각본이다. 항상 그렇듯 세트가 구성되고 카메라가 돌고 배우가 연기를 시작하면, 각본은 뭔가 다른 것이 된다. 장소나 조명, 어둠에 따라서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를 자르고 쪼개서 다시 구성했다. 원작이 가진 비극적 영혼과 묘사는 그대로 살리되, 전통적인 진행 속도와는 전혀 다르게 조각을 내고 단순하게 만들었다. 영화라 부르는 시청각 조직체로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영화는 그 상위의 모든 예술이 낳은 퇴폐한 자식이다. 이 퇴폐한 자식은 셰익스피어도 분명 사랑했을 것이다! ‘파비오’는 대사를 재소자 배우들의 갖가지 사투리와 은어들로 재정비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배우들은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고, 감정과 몰입의 정도를 조절하며 넋을 빼는 연기를 보여줬다. 배우들이 보여준 다양한 진실들과 예상 밖의 멋진 연기 덕분에 각본은 멋지게 진화했다.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손바닥을 코에 대고 불안한 농담을 하던 점쟁이 역할의 나폴리 사람 ‘파자리엘로’가 관객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는 장면은 각본에 없던 거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여러 광적인 캐릭터 중 한 명을 떠오르게 한다. 예를 들면 비극에서 도망쳐버린 광대 요릭 같이.


왜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인가?
다른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꼭 필요하기 때문에 선택했다. 배우들에게는 오래되었든 최근의 것이든 청산해야 할 과거가 있다. 악행과 실수, 위법, 잘못된 관계들로 점철된 과거다. 그 과거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강력한 스토리로 그들과 대면해야 했다. 우리는 인류의 위대하면서도 측은한 관계들, 우정, 배신, 권력, 자유, 의심, 그리고 살인까지 이 이탈리안 영화 버전 “줄리어스 시저”에 담았다. 배우 중 몇 명은 한때 “men of honour”(갱단)에 몸 담았었는데, 극중 안토니오가 규탄하는 장면에서 “men of honour”가 쓰이기도 했다. 시저의 암살 장면을 찍는 날, 우리는 단검을 든 배우들에게 자기 안에 있는 동일한 살인 충동을 찾으라고 했다. 잠시 후 우리는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고 그 말을 취소할 수 있다면 취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들에겐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첫 번째 실습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나중에 지독히도 긴 수감자들의 하루를 좇아가기로 했다. 비좁은 5인용 수용실, 복도, 유일하게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고 가족의 면회를 기다리곤 하는 마당 등지에서 우리의 공동 작업을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비오 카발리 연출가와의 작업은?
‘파비오’가 어떤 열정을 가지고 협조했는지 우리와 처음 영화에 대해 얘기 나눌 때 한 말이면 알 수 있다. “교도소 뒤뜰에서 필리피 전투를 찍을 수도 있어요. 교도관한테 얘기만 잘하면...” 하지만 우리가 바란 영화의 관점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파비오는 바로 이해하고 수용했다. 지적으로 섬세하고 쇼 비즈니스에 조예가 깊은 그에게 정말 감사한다.
우리가 생각한 플롯 구성방식을 설명하고 함께 각본을 써내려 갔다. 파비오는 교도소의 가장 은밀한 구석들을 알려주었고, 어떤 역할에 어떤 사람이 잘 맞을 지 선별해서 만나게 해주었다. 최종 캐스팅이 확정되었을 때, 파비오는 배우들 중 한 그룹과 몇 가지 장면을 시연하려 했다. 특히 어시스트들과 함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나중에는 유색 섬유유리로 된 로마양식 기둥을 두 개 놓은 무대 세트까지 스케치해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결국에는 최종 도약을 했다. 실제 감독의 역할을 버리고 영화 속 주요 인물인 “감독” 연기를 맡은 것이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 멋지게 연기를 해낸 파비오는 배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나는 무대감독이 아니다. 영화 속으로 들어왔으니 완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할 거야. 그러니 이젠 저 감독들의 지시대로 하자.”
지금 파비오는 레비비아 교도소에서 재소자 배우들과 오리지널 버전의 <줄리어스 시저>를 준비하고 있다. 한번은 파비오가 도전적인 미소를 띄우며 이렇게 말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브루투스가 포르시아(브루투스의 아내)와 대면할 때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전부 남자 캐스팅이었기 때문에 그 장면은 제외해야 했다.


왜 각기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 재소자들이 필요했나?
촬영에 들어가기 몇 달 전부터 우리는 레비비아에 자주 갔다. 중범죄자 수감시설의 방들을 지나곤 했는데, 반쯤 열린 문들로 나이가 많든 적든 재소자들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말하길 “우리는 천장관찰자예요. 하루의 반을 침대에 누워서 천장 보는 데 보내거든요...” 그 말을 듣고는 복도를 자유로이 왔다 갔다 하는 데에도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조금 큰 방에서 벌어지고 있던 작당모의에 우리는 깜짝 놀라 웃고 말았다. 예닐곱 명의 재소자들이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에 둘러 앉아 대본을 읽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 각본을 보는 게 아니라, 배우들은 대사를 나폴리 사투리, 시칠리아 사투리, 아풀리아 사투리 등 각자의 방언으로 바꾸는 중이었다. 영화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동포들을 위해서 말이다. 이 작당은 늘 그렇듯 ‘파비오’ 감독과 ‘코시모 레가’(카시우스 역)가 조직하고 이끌었다. 이 일화도 역시 영화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전에도, 스크린 테스트를 하면서 나폴리 사투리로 티격태격 다투는 프로스페로와 아리엘이나, 시칠리아 사투리로 속삭이다 소리치고 욕하는 로미오와 폴로니우스를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은 말로 할 수 없다. 우리는 깨달았다. 대사를 사투리로 발음한다고 비극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진면목을 부여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이 읊는 대사를 아주 주의 깊게 들었다. 배우들이 우리가 준 각본에 각자의 본질을 덧입혔으니 이 아이디어는 우리가 아니라 배우들의 것이다.


모든 촬영이 감옥 내에서 이뤄졌나? 예술적 도전은 없었는지? 교도소 측에서 카메라가 접근하는 데 제한을 두진 않았나?
모든 촬영은 레비비아 교도소 내에서 이뤄졌다. 4주 정도 머물렀다. 아침에 들어가서 밤까지 촬영하느라 피곤해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하루는 우리끼리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꼭 데뷔작을 찍을 때처럼 무모하고 거침없이 찍는 것 같아.”
감사하게도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찍을 수 있었다. 수용실, 계단, 칸막이 방, 뒤뜰, 도서관까지. 딱 한가지 제한은 있었다. 출입금지 구역인 독방과 독방 수감자는 찍지 못하게 했다. 아무도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교도관 한 명이 바깥 유리창 너머로 독방을 보여줬는데 정말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촬영을 잠시 중단할 때도 있었다. 다른 방의 수감자들이 뒤뜰에 나가거나 샤워하러 가려고 복도를 지나야 할 때, 또 우리 배우들이 가족들을 만나러 갈 때 중단했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그들은 매우 감동받아 있거나 우울해 하기도 하고 두 감정이 교차할 때도 있었다. 촬영이 시작됐는데, 집중력이 떨어져 연기할 수 없기도 했고, 부드럽고 즉흥적인 연기를 하기도 했다.
촬영 세트장은 우정이 피어 오르는 곳이다. 교도소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교도관 한 명이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너무 가까워지지 않는 게 좋아요. 나도 저들과 아주 친하고 때로는 연민이 들기도 하고 우정도 느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거리를 유지해야 해요. 고통 받는 건 저들도 물론이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있는 희생자들, 그 가족들을 생각해야 돼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교도소와 우리의 배우들을 떠나던 날, 그건 정말 가슴 아픈 작별이었다. ‘코시모 레가’(카시우스 역)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 계단을 기어올라서 팔을 들고 소리쳤다. “파올로, 비토리오! 내일부터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아요!”


영화 대부분이 흑백이다.
컬러는 현실적이고 흑백은 비현실적이니까. 마치 권위적인 진술처럼 느껴질 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렇다. TV 자연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흑백을 사용해서 방지하고자 했다. 흑백은 촬영을 더 발전시키고, 감옥이라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세트에서 하는 촬영을 자연스럽게 했다. 고대 로마가 아니라 수감자들이 바깥 공기를 마시며 쉴 수 있는 작은 칸막이에서 시저가 죽었어도 흑백 속에서는 자유로웠다. 브루투스가 감방 안에서 고통과 격정 속에서 “시저는 죽어야 한다”라고 반복적으로 독백을 외워도 흑백에서는 자유로웠다. 우리는 아주 강렬한 흑백 이미지를 택했는데, 마지막에 재소자들이 성공적인 공연에 격렬한 기쁨을 표현하는 무대 위에서는 화려한 컬러를 입혔다.
흑백을 선택한 건 진행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흑백이야말로 과거로 플래시백 하는 쉽고 분명한 방법이었다. 이건 새로운 기법이 아니란 걸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우리도 가끔 안전한 방법을 쓰고 싶다.


음악과 작곡가에 대해 얘기해보자.
늘 그래왔듯 뮤지션들에게 각본을 먼저 보냈다. 최종본이 아니더라도 보낸다. 그런데 뮤지션들이 가장 자극 받은 날은 그들이 레비비아에 촬영을 보러 왔을 때였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는 활기가 넘치고 완전히 집중한 상태였다. 그래도 뮤지션들은 재소자 배우들의 눈과 얼굴에 드리운 과거의 그림자를 캐치했다.
그날로 뮤지션들은 결정을 내렸다. 음악을 많이 넣지 않되 정말 강렬하게 가기로 했다. 달콤한 절망이 담긴 색소폰, 징조가 담긴 콘 등, 악기 몇 가지로만 날것과 같은 소리를 대강 내다가 마지막에는 전자악기와 신디사이저를 추가한 오케스트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우리의 사랑하는 조카인 ‘길리아노 타비아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족과는 같이 일 안 할겁니다.” 그렇게 말한 지 20년이 흘렀고 그 20년간 ‘길리아노’는 새로운 세대의 훌륭한 감독들과 26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우리는 ‘모리콘과 피오반니와’ 작업이 끝났을 때, 작곡가로 함께 작업하자고 요청했다.
그동안 ‘길리아노’는 아주 특별한 지역 에올리에제도에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을 만났는데,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사람은 엄청난 실력을 타고난 젊은 피아니스트 ‘카멜로 트라비아’다. 길리아노는 우리 영화 음악에 ‘카멜로’가 참여하도록 도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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