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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왕국의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이주현 장영엽 이화정 2012-09-11

<가디언즈> <몬스터 호텔> <메리다와 마법의 숲> <프랑켄위니> 등 2012년 하반기 애니메이션 기대작 7편

솔직히 <아이스 에이지4: 대륙이동설>과 <마다가스카3: 이번엔 서커스다!>로 대변되는 올해 상반기 애니메이션 라인업은 좀 심심했다. 원작과 프리퀄의 유혹에 빠진 실사영화계의 유행이 애니메이션계에서도 되풀이되는 걸까? 9월부터 줄줄이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신작들이 이런 의혹을 한번에 종식시켜줄 거다. 픽사의 첫 여전사, 드림웍스의 어린이 히어로들, 다시 열린 팀 버튼 월드, 소니가 재탄생시킨 고전 호러의 아이콘 등 당신의 눈을 사로잡을 7편의 신작 애니메이션을 소개한다. 하반기 개봉의 열풍을 이어갈 2013년의 신작들과 이국의 애니메이션 작품들,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보도 함께 실었다.

전세계의 어린이는 우리가 지킨다

가디언즈 Rise of the Guardians 감독 피터 램지 / 목소리 출연 크리스 파인, 휴 잭맨, 알렉 볼드윈, 주드 로, 아일라 피셔 / 수입•배급 CJ엔터테인먼트 / 개봉예정 11월

<슈렉> <쿵푸팬더> <마다가스카>의 속편이 거듭 제작될 때마다 드림웍스는 손쉽게 돈 벌 궁리만 한다고 욕을 먹어야 했다(어쩌겠나. 개봉만 하면 수익을 창출하는 훌륭한 효자 상품들인걸). 그런데 2010년 <드래곤 길들이기>가 개봉한 뒤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늘 픽사와 비교당하며) 비평에서 쓴소리를 듣던 드림웍스는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게 된다. 진일보한 기술과 오락성 그리고 감동까지 고루 갖춘 <드래곤 길들이기>는 ‘드림웍스의 쾌거’가 분명했다.

<가디언즈>는 어떤 면에서 제2의 <드래곤 길들이기>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대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야심이 닮았다. 게다가 <가디언즈>는 <드래곤 길들이기>와 비슷하게 어딘지 드림웍스 작품 같지 않은 구석이 있다. 드림웍스의 CEO 제프리 카첸버그는 <가디언즈>를 두고 “이 영화는 누구나 갖고 있을 어린 시절의 꿈과 현실에 대한 정의”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가디언즈>가 드림웍스의 주특기인 세태 풍자와 패러디에서 살짝 비껴난 곳에 놓인 작품임을 의미한다.

<가디언즈>의 주인공은 전세계 어린이들의 수호자인 5명의 가디언즈다. 눈, 비, 바람 등 기후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 잭 프로스트를 비롯해 괄괄한 산타클로스 노스, 땅굴 파는 데 일가견이 있는 부활절 토끼 버니, 매일 밤 아이들의 소망이 담긴 빠진 이를 가져와 그 꿈을 보관해주는 이빨요정 투스, 환상의 꿈나라로 안내하는 꿈의 요정 샌드맨이 가디언즈로 활약한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악당 피치 때문이다. 피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파괴해 세상을 지배하려하고, 5명의 가디언즈는 피치에 맞서 아이들의 꿈을 지켜야 한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가디언즈>는 애니메이션판 <어벤져스>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단조로운 서사를 메워줄 무기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스펙터클한 영상이다. 뒤늦게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깨치고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프로스트는 여심을 훔치기에 충분한 꽃미남이고, 전형성을 탈피한 산타클로스와 부활절 토끼는 극에 활기를 부여하는 웃음 제조기다. 어린아이들은 귀엽고 깜찍한 이빨요정과 샌드맨에게 매료될지도 모르겠다. 공개된 예고편을 통해 접한 영상 또한 더없이 화려하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버크섬에 비견될 공간들이 환상적으로 창조됐다.

이 야심찬 프로젝트를 총괄 제작한 이는 기예르모 델 토로다. <몬스터 vs 에이리언>의 각본에 참여한 피터 램지가 연출을, <모리스 레스모어씨의 환상적인 책여행>으로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윌리엄 조이스가 각본을 맡았다. <가디언즈>의 실체는 11월에 확인할 수 있다.

픽사 왕국에 여자들이 몰려온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 Brave 감독 브렌다 채프먼, 마크 앤드류스 / 목소리 출연 켈리 맥도널드, 에마 톰슨, 빌리 코놀리 (한국)강소라 / 수입•배급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 개봉예정 9월27일

우디, 플릭, 설리, 니모, 맥퀸, 레미, 러셀…. 픽사의 전성시대를 이끈 주연 캐릭터들의 이름이다.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본 관객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제인, 샐리, 미셸, 엘렌 같은 이름은 없는 걸까? 그건 픽사가 철저히 남성 캐릭터 중심의 애니메이션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픽사는 12편의 수작을 쏟아냈지만, 단 한번도 여성 캐릭터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준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픽사의 실질적인 책임자 존 래세터의 부인이 남편에게 이런 소리를 했겠는가. “나와 당신 조카를 위해 강력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주면 안돼요?”

2012년은 여성 캐릭터들에게 굳게 닫혔던 픽사의 문이 열리는 해다. 픽사의 열세 번째 작품은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다. ‘메리다’라는 이름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이번 영화를 이끌어가는 건 여자다. 게다가 메리다는 스코틀랜드의 공주다. 그녀는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용맹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여전사이기도 하다. 모전자전으로, 메리다의 엄마는 왕국의 강력한 군주다. 그녀 앞에 우락부락한 남자 신하들은 머리를 조아린다. 그동안의 설움을 보상하려는 듯,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픽사 역사의 어떤 남자 캐릭터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강인한 여성들로 무장했다. 드디어 픽사에 ‘여인천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메리다의 가장 큰 ‘적’은 엄마 엘리노어 왕비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메리다의 엄마는 그녀가 조신하게 교육을 받고 번듯한 남자와 결혼하길 원한다. 어쩌면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의 딜레마. 픽사 최초의 여성감독이 된 브렌다 채프먼은 자신과 다섯살 딸의 신경전을 바탕으로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이야기를 구상해냈다. 안데르센과 그림형제 동화의 어둡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 애니메이션의 작화는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원초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픽사는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25년 만에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모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숲의 거친 질감, 활을 쏘고 말을 타는 메리다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내기에 기존의 시스템은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내용적인 완성도와 비주얼적인 면에선 언제나 독보적인 우세를 보여왔으나, 기술적 진보를 거듭하는 다른 스튜디오들과 달리 다소 평면적인 애니메이션을 선보여왔다는 점이 픽사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그런 의미에서 픽사의 기술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최초의 여성 캐릭터, 최초의 여성감독, 최초의 동화, 최초의 애니메이션 시스템 재정비…. 이 작품은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화젯거리로 가득한 애니메이션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가 변화와 혁신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

인간인데요, 숙박 가능한가요?

몬스터 호텔 Hotel Transylvania 감독 젠디 타타코브스키 / 목소리 출연 애덤 샌들러, 셀레나 고메즈, 앤디 샘버그 (한국)정찬우, 김태균 / 수입•배급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 개봉예정 11월

인간은 출입 금지, 드라큘라가 주인이며 프랑켄슈타인, 미라, 늑대인간이 투숙객인 호텔이 있다면? 클래식 호러 팬들에게 종합선물세트처럼 다가올 이 상상을 실사영화보다 한발 빠르게 애니메이션이 구현해냈다. <몬스터 호텔>은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은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의 야심작이다. 최근 몇년간 소니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개구쟁이 스머프> 등의 작품이 흥행과 완성도 면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며 드림웍스, 픽사의 가장 강력한 후발경쟁주자로 떠올랐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독특한 소재, 성인 관객도 즐길 법한 풍자 섞인 유머로 승부해온 소니인 만큼 스튜디오의 차기작 <몬스터 호텔>에 걸게 되는 기대도 크다.

<몬스터 호텔>의 줄거리는 어떤 면에서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주요 무대가 온갖 괴물들이 득시글대는 호텔이며,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는 인간이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야기는, 트란실바니아 호텔의 주인인 드라큐라가 애지중지하는 딸 마비스의 118번째 생일을 맞아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지의 괴물들이 호텔로 모여드는 이때,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인간 소년 조나단이 숙박을 하겠다며 찾아온다. 드라큐라는 당황스럽지만 프랑켄슈타인의 먼 친척 ‘조니’로 위장하는 조건으로 조나단을 받아들이고, 조나단은 드라큐라의 딸 마비스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한다. 한편 파티에서 달팽이수프, 벌레케이크보다 더 나은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은 호텔 주방장 콰지모도는 ‘인간 요리’를 해보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괴물 손님으로 북적이는 호텔, 끊이지 않는 사건들, 그 안에서 피어나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 <몬스터 호텔>은 흥미를 돋우는 매력적인 소재들로 무장한 작품이지만, 제작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적인 괴물 캐릭터를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이 만만찮았을 것이고, 전체 관람가를 지향하는 애니메이션 장르의 특성상 호러 장르의 캐릭터와 소재를 빌려 대중적인 이야기로 재정비하기까지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가기 전까지 무려 다섯명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이 프로젝트에서 하차했다는 ‘팩트’가 그 증거다. 여섯 번째 감독으로 러시아 태생의 젠디 타타코브스키가 지명되면서 <몬스터 호텔> 프로젝트가 겪어야 했던 혼란이 정리됐다. <카툰 네트워크>의 인기 TV시리즈 <사무라이 잭> <덱스터의 실험실> <심바이오닉 타이탄> <스타워즈 클론전쟁> 등을 성공적으로 연출해낸 그는 장편 애니메이션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새로운 성취를 이뤄내려 한다. 그건 바로 2D의 장점을 3D애니메이션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던 2D의 모든 미학을 이 영화에 적용했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현실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리얼리티를 압박하길 원했다. (중략) 그게 이 영화를 대하는 나만의 관점이다.” 타타코브스키가 <몬스터 호텔>에 합류하며 제작진에 당부했던 건, 이 영화를 카툰 <벅스 버니> 시리즈로 유명한 텍스 에이버리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하고 싶다는 점이었다. 그의 당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실사영화에 가까운 리얼함을 추구하려 하는 일련의 3D애니메이션과 다르게 <몬스터 호텔>은 카툰적인 설정으로 가득한 영화다. 주요 캐릭터들의 외모와 동작은 2D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처럼 과장되어 있고, 그들의 운동성을 극대화하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예정이다. 리얼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계량화되고 재단된 CG의 무미건조함에 지쳤던 관객이라면 손맛이 느껴지는 그림체, 카툰의 운동감으로 무장한 <몬스터 호텔>의 복고적인 매력을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내가 <몬스터 호텔>의 최강 괴물이야!

드라큐라 어둠의 왕자. 인간세계로부터 괴물들을 지키기 위해 괴물 전용 숙박업소 ‘트란실바니아 호텔’을 만들었다. 모든 괴물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가 일품이지만, 딸 마비스에겐 쩔쩔매는 아버지.

마비스 외모는 소녀이지만 나이는 118살이나 먹은 뱀파이어. 아버지 드라큐라의 과잉보호 때문에 평생을 호텔에서 살았다. 언젠가 바깥세상을 여행해보는 것이 꿈이다.

웨인 늑대인간…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다. 60명의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늘 피곤에 절어 있다. 그런 그에게 드라큐라의 초대는 꿈같은 휴식의 기회다.

프랑켄슈타인 드라큐라의 절친. 마비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호텔에 왔는데, 갑자기 자신의 ‘먼 조카’라는 조니를 만나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조니를 친척으로 여기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미이라 화려한 언변의 소유자. 언제나 파티의 주인공이 된다. 주특기는 호텔방값 안 내며 말로 버티기.

그리핀 안경만 둥둥 떠다닌다면 그건 그리핀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호텔에 묵는 괴물들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남자이지만, 의외로 소심하고 허당인 캐릭터.

공포물과 청춘물이 만나 스톱모션

파라노만 Paranorman 감독 크리스 버틀러, 샘 펠 / 목소리 출연 코디 스밋 맥피, 안나 켄드릭, 케이시 애플렉 / 수입•배급 UPI코리아 / 개봉예정 2013년 1월

아성을 위협받는 건 드림웍스, 픽사뿐만이 아니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분야의 선두주자인 아드만 스튜디오와는 차별화된 매력으로 경쟁하는 스튜디오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설립된 미국의 라이카 스튜디오도 그중 하나다. 라이카는 2009년작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하 <코렐라인>)으로 ‘세계 최초의 3D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2009년 해외 평단이 선정한 베스트영화 목록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큰 성취를 거뒀다. 이들이 <코렐라인>의 도전을 통해 얻은 3D와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기술적 노하우를 발전시켜 만든 신작이 바로 <파라노만>이다. ‘좀비 애니메이션’을 표방하는 이 작품은 아드만 스튜디오 출신의 영국 감독 샘 펠과 <유령신부>의 스토리보드 스탭이었던 크리스 버틀러가 연출을 맡았다.

유령과 대화하는 능력을 가진 소년 노먼이 <파라노만>의 주인공이다. 그의 섬뜩한 능력 때문에 가족들은 노먼을 피하고, 학교 친구들은 그를 괴롭힌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자들이 하나둘씩 깨어나 마을에 모여들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노먼은 자신의 능력과 삼촌이 남긴 동화책을 도움 삼아 위기에 처한 마을을 구해야 한다. 감독 크리스 버틀러는 “존 카펜터가 존 휴스를 만났을 때”라는 비유를 들어 이 영화의 매력을 설명한 적이 있다. 그가 공포영화의 거장(존 카펜터)과 청춘영화의 대부(존 휴스)를 함께 언급한 건, 장르적인 쾌감과 대중적인 코드를 모두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버틀러가 <파라노만>의 가장 큰 참고자료로 <구니스>와 <고스트 버스터즈>를 꼽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한편 <파라노만>은 캐릭터의 다양한 얼굴 표정을 담아내기 위해 3D 컬러 프린터를 사용한 최초의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코렐라인>이 20만 가지의 얼굴 표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면, 3D 컬러 프린터의 도움을 받은 <파라노만>은 무려 150만 가지의 표정을 담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기술적 성취는 어쩌면 향후 스톱모션 장르의 미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8월17일 미국 극장가에서 먼저 개봉한 <파라노만>은 웹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87%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재미있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두개의 상반되는 장르(공포, 청춘)가 공존하는 기묘한 연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라는 <뉴스데이>의 평에 따르면, <파라노만>은 제작진이 언급했던 존 카펜터와 존 휴스의 이름에 남부끄럽지 않은 작품인 모양이다.

팀 버튼, 자신의 원류로 돌아가다

프랑켄위니 Frankenweenie 감독 팀 버튼 / 목소리 출연 위노나 라이더, 캐서린 오하라, 찰리 타헨 / 수입•배급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 개봉예정 10월11일

“<프랑켄위니>(1984)를 실사로 만들었던 것에 감사한다. 만약 그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었다면, 아마 그걸 지금 다시 실사로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프랑켄위니>가 2012년에 이르러 3D애니메이션이 되기 전, 당시 디즈니 직원이었던 스물다섯살 팀 버튼은 <프랑켄위니>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예산문제에 봉착했다. 30분짜리 단편을 실사로 제작한 것은 연출을 위한 일종의 현실적인 타협점이었다. 팀 버튼의 기괴하고 잔인한 동화의 세계를 인정할 수 없었던 디즈니는 팀 버튼이 명성을 얻게 된 1992년에 와서야 <프랑켄위니>를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DVD 서플로 수록했다.

코믹과 호러가 공존하는 <프랑켄위니>로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성을 인정받은 그가 이듬해 첫 장편 <피위의 대모험>에 착수할 수 있었고, 연이어 <비틀쥬스>(1988)와 <배트맨>(1989)으로 이어지는 팀 버튼 세계를 확립했다는 점을 돌아볼 때 이 작품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다수의 작품에서 그가 보여온 메리 셸리의 고전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오마주 혹은 <피노키오>와 같은 생명 창조의 문제는 여전히 이어진다. 단편과 핵심 플롯은 같다. 사고로 애완견 스파키를 잃게 된 소년 빅터가 과학시간에 전기 쇼크로 개구리를 되살리는 실험을 보고 스파키를 되살리기 위한 비밀 작전에 돌입한다는 내용. 100만 볼트의 전기 충격을 받은 뒤 스파키는 기적처럼 되살아난다. 문제는 그가 더이상 과거의 애교 많고 사랑스럽던 스파키가 아니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버전은 이 지점에서 몬스터 스파키의 등장과 함께 빅터의 악동 친구들이 마을의 잠들어 있던 영혼을 깨우면서 기이한 모험과 공포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따져볼 건 왜 하필 지금 그가 원류로 돌아갔냐는 점이다. 그것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와 <다크 섀도우>(2012)로 팀 버튼 월드에 살짝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이 시점에 말이다. 팀 버튼과 <빅 피쉬>(2003) 이후 쭉 함께해온 시나리오작가 존 어거스트가 2009년 정식 계약을 하기 훨씬 전인 2006년부터 이미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써온 걸 볼 때 <프랑켄위니>에 대한 팀 버튼의 애정은 단순히 현재에 그치지 않는다. 팀 버튼은 “아주 오래전에 간 곳을 다시 방문하는 것이지만, 이번 시도는 아주 새롭고 특별하다”고 말한다. 확연히 다른 영화란 생각으로 임했다는 거다. 캐릭터가 조금씩 달라진 데다 단편 때는 나오지 않았던 200여종이 넘는 다양한 몬스터도 등장한다. <빅 피쉬> 이후 팀 버튼 영화의 주연배우로 함께해온 조니 뎁과 <슬리피 할로우>(1999) 이후 붙박이 멤버였던 헬레나 본햄 카터가 사라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신 <비틀쥬스>, <가위손>(1990) 등을 함께한 위노나 라이더와 <비틀쥬스>의 캐서린 오하라가 컴백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애니메이션 기법은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유령신부> 때 사용한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다. 팀 버튼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 자신의 기괴한 그림을 담을 수 있는 형식이라 믿는다. 특히 실제 개가 할 수 없는 걸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할 수 있단 점에서 스파키의 활약이 실사보다 확대될 여지가 크다. 완벽한 고전 기법에 흑백으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이걸 첨단 3D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건 또 다른 모험이다. 이 이질적인 결합에 대해 오히려 팀 버튼은 자신감을 내비친다. “사람들은 3D의 표현이 너무 어둡고 우중충하다고 말한다. 흑백영화라면 그림자의 어두운 부분을 충분히 표현해줌으로써 이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특히 흑백이 그림의 질감을 더 잘 살릴 수 있고, 감정표현을 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스톱모션과 흑백, 3D의 선택은 정말 흥분되는 조합이다. 클래식 스타일에 대한 예상치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될 기회다.” 다시 태어난 스파키는 상처투성이의 꿰맨 자국과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보이는 기괴한 몬스터로 돌아왔다. 다시 만든 <프랑켄위니>에 대해서 말하자면, 착한 스파키는 필요없다. 부디 몬스터 스파키처럼 이상하게 돌아오길 오히려 바란다. 그게 팀 버튼의 방식이자 우리가 그에게 기대하는 지점이니까.

하이테크 대신 로테크로, CG 대신 손으로

28년 전 적은 예산은 팀 버튼이 영화를 만드는 데 제약이었다. 지금은? 이번 영화의 적은 예산은 오히려 의도된 바다. 3D영화지만 이번 영화의 원칙은 하이테크가 아니라 로테크에 기초한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 형식은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 충실하게 봉사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2012년, 디지털 시대에 만들었기 때문에 더 발전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냐고? 팀 버튼은 단호하게 ‘노!’를 외친다. 과거 그가 <프랑켄위니>를 만들 때나 지금이나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제작방식은 변함없다. 1초 24프레임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모든 걸 직접 손으로 해야 하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은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롭기 이루 말할 데 없는 제작방식이다. 그런데 팀 버튼은 평소보다 더 적은 스탭들로 팀을 꾸렸고, 예산을 좀더 줄였다. 극한의 정교함을 포기하자는 의도적인 계산이었다. 앞서 <유령신부>의 경험이 컸다. 움직임이 너무 정교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걸 컴퓨터 작업이라고 오해했다고 한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효과를 놓치게 된 거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과거의 단순함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사람들이 이 단순함에 반응할 때 그게 바로 마법의 순간이다.” 팀 버튼이 주목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마치 오래전 레이 해리하우젠의 특수효과처럼 결이 살아 숨쉬는 영화를 보여주자는 목표다. <프랑켄위니>의 기본방침이다.

세상은 왜! 악당을 싫어하는가?

주먹왕 랄프 Wreck-It Ralph 감독 리치 무어 / 목소리 출연 존 C. 라일리, 잭 맥브레이어, 알란 터딕, 제인 린치 / 수입•배급 소니픽쳐스릴리징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 개봉예정 12월

지금도 먼지 쌓인 동화책 뒤지느라 고생 중일 할리우드 제작자들이여, 이제 그만! <주먹왕 랄프>를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 거다. 랄프를 찾아낸 곳이 어디냐면, 놀랍게도 전자오락실이다. 뿅뿅, 띠리리리리 하는 1980~90년대 전자음과 그림의 연결선이 모두 드러난 8비트 픽셀 화면의 세계. 혹시 주인공이 슈퍼마리오냐고? 웬걸. 랄프는 오락 하는 이들에겐 동전을 뺏어먹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하루 종일 부수고, 부수고 또 부수고. 부수기만을 30년째인 악당 랄프. 문제는 그가 “세상은 왜! 악당을 싫어하는가?” 같은 <개그콘서트>의 ‘네가지’적 고민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과격한 겉모습과 달리 랄프는 소심하고 착한 순둥이, 남들이 그를 싫어하는 만큼 그 역시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 맡은 역할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주먹왕 랄프>의 악당이 악당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월트 디즈니 제작이지만, <주먹왕 랄프>는 디즈니식의 착한 영웅담보다는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와 같은 디즈니-픽사 협업이 만들어낸 모험담 분위기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만날 지구를 구하는 상대역 영웅 ‘픽스 잇 펠릭스’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퇴근(오락기가 멈추는 순간) 뒤엔 악역 캐릭터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려 한다거나, 같은 처지에 처한 동료 악당 캐릭터들에게 위안을 받는다는 설정이야말로 이 작품의 주옥같은 에피소드다. 랄프의 최종 목표는 악당이라는 오명을 씻고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영웅이 되는 것. 랄프가 자신의 게임이 아닌 다른 게임의 세계로 진입하는 모험의 길을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먹왕 랄프>의 재미는 바로 이 과정에서 전개되는 급격한 전환과 충돌에 있다. 아케이드 게임 캐릭터인 랄프가 1인 슈팅 게임으로 들어오는 생경한 광경, 그리고 8비트 픽셀로 이루어진 복고적인 화면이 3D애니메이션의 디지털 화면과 결합되는 순간의 묘미를 그대로 살려낼 예정이다. 자칫 이질적인 요소의 충돌처럼 보이지만 디지털 시대가 아날로그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볼 때 훌륭한 선택이다. <심슨 가족> <퓨처라마>에 참여한 리치 무어가 연출을 맡았는데, 영화로 만들면서 가진 큰 걱정은 무수한 게임 캐릭터에서 선별한 ‘어벤저스’급 캐스팅이었다고 한다. 맞다. 이 영화엔 장기에프, 에그맨, 쿠퍼왕, 고스트 같은 게임계의 스타들이 별스럽지 않게 떼로 카메오 출연한다! 무어는 “실사영화에서 캐스팅하는 노력만큼이라면 안될 것도 없다”는 심정으로 덤볐고, 제작사인 디즈니쪽 기우와 달리 빠져선 안될 게임 회사 남코, 캡콤, 세가의 협조가 뒤따랐다는 후문이다. 진정한 영웅을 향해 달려 나가는 랄프의 목소리는 존 C. 라일리가 연기한다. 최근작 <케빈에 대하여> <대학살의 신>에서 보인 그의 연기공력을 볼 때, 랄프가 명불허전 캐릭터로 탄생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엄마, 왜 흥분하면 꼬리가 생겨요?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감독 호소다 마모루 / 목소리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 오사와 다카오 / 수입 (주)얼리버드픽쳐스 /배급 (주)미디어데이 / 개봉예정 9월13일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워즈>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3년 만에 아름다운 동화 한편을 들고 왔다. ‘타임 리프’와 ‘사이버 가상세계’에 이어 그가 손을 뻗은 소재는 ‘늑대인간’이다.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한뼘 성장해가는 이야기 구조는 이번에도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보다 더 보편적인 주제로 더 깊은 감동을 준비했다는 점이다.

<늑대아이>는 ‘늑대아이’를 낳아 키우는 하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학생 하나는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눈이 내리던 날 태어난 첫째는 유키란 이름을, 비가 내리던 날 태어난 둘째는 아메란 이름을 갖는다. 누나인 유키는 말괄량이이고 남동생 아메는 겁이 많고 내성적이다. 아이들은 평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흥분하면 늑대로 변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의 남편이 갓난아기 둘을 남긴 채 세상을 뜬다. 지켜보는 눈이 많은 도시에서 ‘늑대아이’를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걸 깨달은 하나는 결국 외딴 시골마을로 이사를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아이와 함께 자급자족의 삶을 꾸려간다. 호소다 감독은 “주위에 아이가 생긴 부부가 늘어났고,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들이 멋있고 빛나 보여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또 <늑대아이>가 “전 세대가 즐거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 작품이 모성애를 주제로 하지만, 어린 세대나 나이든 세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는 뜻이다.

확실히 <늑대아이>는 호소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성숙해진 느낌이다. 그건 <늑대아이>가 다루는 시간의 길이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썸머워즈>는 삶의 한 시절을 뚝 떼어내 이야기했다. 반면 <늑대아이>는 평범한 대학생 하나가 강인한 어머니로 바뀌어가는 십 몇년의 세월을 담는다. 그 과정에서 유키와 아메는 늑대의 삶과 인간의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소년이 된다. 호소다 감독은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2시간짜리 영화로 그려내는 것 자체가 큰 시도였다”고 말했다. 캐릭터의 감정을 주무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그이지만, 하나와 유키와 아메의 변화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하는 게 결코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였음을 짐작게 하는 말이다.

7월21일 일본에서 개봉한 <늑대아이>는 이미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한달이 넘게 일본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호소다 감독 작품 중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호소다 감독과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각본가 오쿠데라 사토코, 캐릭터 디자이너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이름도 <늑대아이>를 더욱 믿음직스럽게 한다. 또 일본의 주목받는 비디오 아티스트 겸 음악가 다카기 마사카쓰가 영화음악을 담당했고, <나나> <소라닌>의 미야자키 아오이가 하나의 목소리를 훌륭히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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